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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같은 사랑을 합시다.
- 민들레 국수집의 서영남 대표
인천 동구 화수동에 위치한 민들레 국수집은 “들어오는 사람 막지 않고, 나가는 사람 잡지 않는” 가게이다. 다시 말해 음식을 내놓는 대가로 어떤 것도 받지 않고 가게를 종종 들르라고 잔소리하지도 않는다. 민들레 국수집은 가게 이름대로 잔치국수 파는 것으로부터 가게를 시작했으나 손님들이 배가 더 차는 밥 종류를 원하자 이젠 더 이상 국수를 내놓지 않는다. 가게 이름만큼이나 소박한 이곳의 주인장 서영남 대표, 그는 좀 더 나누는 삶을 살기 위해 오랜 세월의 수도원 생활을 접고 사랑이 넘치는 맛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호 ‘주목! 이사람’ 코너에서는 인천 ‘민들레국수집’의 주인장인 서대표를 만나봤다.
◆ ‘하느님의 대사’인 서영남
서대표는 우리 사회의 어렵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고자 25년간의 수사생활을 접고 무료급식소인 민들레 국수집을 차렸다. 3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서 가게를 시작한 그는 어느 화려한 식당보다도 맛깔스러운 밥상을 내놓는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기 위해 그는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냈다. 또 정부지원을 받으면 급식량이 정해지므로 그는 한 푼의 정부지원금도 받지 않으면서 자발적인 후원을 통해 운영을 해나간다. 민들레 국수집에 하루 70명가량 오던 노숙자들은 최근 입소문이 나며 많은 날은 300명 정도까지 오고 있다.
굶주리고 가난할 뿐 아니라 사랑도 부족한 노숙자들. 하지만 민들레 국수집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원 없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각각의 사람마다 그들이 좋아하는 식성까지 파악해가며, 성심성의껏 음식을 차리는 서 대표, 그는 우리 주변 가난한 이웃들을 ‘하나님의 대사’라고 일컫는데 그의 삶을 살펴보면 서대표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대사라는 생각이 든다.
◆ 민들레, 그 조건 없는 사랑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9월 19일, 서 대표를 만나기 위해 인천 화수동에 위치한 ‘민들레국수집’을 찾았다. 민들레 국수집에는 밥을 먹는 노숙자들과 일을 하는 봉사자들이 좁은 공간에서 북적대고 있었다. 하지만 서 대표는 출타중 이어서 기다리라고 한다. 국수집 일이라도 도와드릴까 생각했지만 워낙 넉넉한 수의 자원봉사자들이 있어 오히려 방해가 될까봐 건너편 교회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서 대표가 멀리서부터 인사를 건낸다. 그가 정한 인터뷰장소는 골목입구에 있는 정육점.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소박하고 인간적인 정육점 인터뷰는 시작됐다.
-민들레국수집에서 민들레의 의미를 여쭐 수 있을까요?
“(빙긋 웃으며)별 의미 없는 데요?”
의외의 대답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그는 살인미소를 그대로 머금은 채 말을 잇기 시작했다.
“민들레는 보잘것없는 잡초나 다름없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오히려 뿌리는 약용으로 쓰이고 아름다운 꽃도 피우잖아요. 이런 민들레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으면 했어요. 여기 오셔서 우리 국수집 간판을 보셨나 모르겠네? 거기에 오묘한 이치가 들어가 있는데.”
민들레국수집의 간판은 특별한 것이 없다. 하얀색 배경에 옅은 귤색으로 글자가 씌어져 글자가 잘 안 보인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그런데 이것에 ‘오묘한’ 의도가 있다니!
“간판이 뭡니까? 최소의 투자를 통해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한 광고에 목적이 있잖아요. 눈에 잘 안 띄게 우리 간판을 만든 것은 이런 의도가 안 들어나게끔 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 다짐한 것이 있어요. ‘정부지원을 안 받겠다’가 하나고, 다음이 ‘후원회나 모금프로그램을 통해 돈을 확보하지 않겠다’예요. 생색내는 돈이 아닌 사랑을 바탕으로 한 생명의 돈으로 복지활동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서영남 대표
세레명은 베드로. 25년 동안 수도원의 수사로서 전국의 장기수들과 면담활동을 하다가 환속했다. 1998년부터 2년 동안 ‘서울교구 평화의 집’에서 출소자와 함께 살기도 했다. 이후 2003년부터 민들레 국수집을 운영하여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민들레 국수집뿐만 아니라 떠도는 아이들을 위한 민들레 공부방을 운영할 예정이다.
◆ 복지의 메커니즘 그리고 종교에 대한 아쉬움
돈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사회에 행해지는 복지의 실태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때 동네 아이들이 서영남 대표를 알아본다.
-인기가 좋으시네요?
“아, 저는 동네 골목대장이예요. 하하하.”
-민들레 국수집에 찾아올 때 동네 분들이 대표님과 국수집 모두 알고 계시더라고요. 주민들께서 많이 도와주시나 봐요?
(정육점 아저씨를 가리키며) “일단 저 양반부터 많이 도와주지. 주민들께서 국수집 옆에 창고도 만들어 주셨고 몰래 감자나 고기를 약간이나마 놓고 가시고 그래요.”
5년 동안 후원회나 모금활동 없이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할 수 있었던 힘인 사랑과 생명의 돈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고 있을 때,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회복지는 돈의 논리와는 독립돼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사랑만으로 저처럼 복지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현재 우리사회의 복지 활동은 돈이 선의보다 우선시 돼서 아쉬워요. 한 급식봉사 단체는 직원 인건비가 예산의 80%를 차지한다고 해요. 노숙자는 그 누구보다 영양식이 필요한 사람이 아닙니까? 하지만 1식 3찬에 개밥과 다름없는 식사를 제공하고 있어요. 그리고 봉사자라는 사람들은 따로 밥을 먹더군요. 자기들은 그 밥을 못 먹겠다고. 우리 국수집에 처음 온 서울 노숙자를 구분하는 법을 아세요?”
- 아……잘 모르겠는걸요.
“밥을 먹을 때 모든 반찬을 한곳에 말아 먹으면 처음 온 노숙자예요. 그 배고픈 노숙자들도 반찬을 따로 먹을 수 없을 만큼 급식의 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사회의 무료급식봉사는 메커니즘에 빠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모든 건 사람위주로 돼야 해요. 무료 급식의 목적은 노숙자 갱생에 있습니다. 노숙자들은 허기가 져서 한동안 게걸스럽게 밥을 먹다가도 배가 부르고 몸이 생기를 찾으면 무슨 일이라도 하려 합니다. 그런데 하루에 정해진 1끼씩 줄을 서서 기다리고 설교 듣고 하다 보면 한 끼 식사시간이 2~3시간이 돼요. 먹는 것에 급급해지니 갱생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 설교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샘물교회부터 시작해서 요즘 종교계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믿는 대로 살면 되는데 입으로만 믿어서 그래요.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을 간다는데 왜 지옥을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이것은 광신입니다. 광신은 믿음이 아녜요.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예수로 보고 부처를 믿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부처로 봐야 해요. 식사를 줄 테니, 도와 줄 테니 기독교를 믿으라는 말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목적이 돼야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목적이 돼서 되겠습니까?”
◆가족과 함께 ‘도로시 데이’처럼
수도 생활을 목적으로 여긴 것이 아니고 사랑을 베푸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왔기에 서 대표는 환속을 할 수 있었다. 그에게 가족 얘기를 묻자 “민들레국수집 사람들부터 노숙자까지 모두 내 가족”이라 했다.
- 환속을 해서 가족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이렇게 베푸는 삶을 살면 가족들에게 신경을 많이 못쓰시겠어요?
“가족요? 딸은 지금 국수집에서 음식하고 있는데? 하하. 마누라는 돈 벌고 있고요. 마누라에게 돈을 받을 수 있는 비법을 아세요?”
- 가르쳐 주시면 한 수 배우겠습니다.
“사랑을 하세요. 사랑을 받으면 사랑하는 사람끼리 없는 돈도 사랑하는데 나눌 수 있습니다. 돈이 사랑보다 우선 될 수는 없어요. 돈은 똥과 같은 거예요. 끌어 모아 놓으면 썩지만 풀어헤치면 거름이 돼 생명을 창조 할 수 있죠.”
- 사랑하고 베푸는 삶을 살면서 존경하거나 혹은 닮고 싶은 인물이 있으신가요?
“도로시 데이라는 분을 아시나요? 우리 국수집의 모델인 미국 ‘환대의 집’을 만들어 평생을 베풀며 살아온 분입니다. 이분은 이런 봉사단체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강제가 없는 자유로움을 강조한 것이죠. 민들레 국수집에는 그 누구라도 언제든지 와서 횟수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식사할 수 있습니다 . 또 자원봉사도 자유롭게, 기금마련도 시민의 자발적 의지에 기대고 있어요. 다 도로시 데이의 생각을 이은 거죠.
도로시 데이는 ‘자비와 정의는 같아야 한다고 했다. 서 대표는 자비를 베푸는 복지와 사회정의가 같지 않고 돈에게 휘둘리는 복지의 실태가 안타깝다고 했다.
도로시 데이(Dorothy Day: 1897~1980)
신문기자이자 여성운동가였던 그녀는 아이를 낙태시킨 후 가톨릭 신자가 된다. 이후 도시의 힘없는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고 미국 사회에 큰 감동을 줬다. 월간 신문 ‘가톨릭 노동자’를 발간했으며 집 없는 사람들의 거처가 돼주고 굶주린 사람들의 끼니를 제공해 주는 ‘환대의 집’도 곳곳에 세웠다. 그녀는 지난 100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톨릭 신자로 꼽힌다.
◆죄수·사형수 그리고 노숙자
서 대표의 활동은 비단 민들레국수집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죄수들과 면담을 하기도 하고 같이 생활도 하며 그들의 갱생을 도와왔다. 현재도 청송교도소로 죄수들을 보러 주기적으로 나가고 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 대해 물어봤다.
“사람은 천천히 변합니다. 계속되는 상담을 통해 죄수가 가지고 있는 착한 면을 끄집어 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현재도 그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 같이 생활했던 장기복역수 15명 중 두 명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너무나도 사회에서 잘 생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함을 끄집어 낼 현실이 우리사회에 부족합니다. 교도관부터 판사까지 모두 죄수의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하여 근무하고 징역을 남발하지 말아야 합니다.”
- 사형수도 많이 만나 보셨나요?
“그럼요. 사형수의 공통점은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그들이 반성하고 변했을 때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은 비참한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사형수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현실을 우리는 주시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대표님이 자주 보시는 노숙자들의 특징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노숙자들은 결코 게으르지 않아요. 우리국수집에서 생기를 찾은 분들은 모두 일을 찾아 나섭니다. 노숙자는 자본주의 경쟁체제의 산물예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누구라도 노숙자가 될 수 있지요. 또한 그들은 착합니다. 남의 것에 욕심이 없어요. 그저 하늘이 보이지 않는 지붕아래에서 잠을 실컷 자는 것이 그들의 소원입니다.”
◆진심으로 나누는 사랑
정육점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서 대표와 함께 다시 민들레 국수집으로 왔을 때, 노숙자 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끊이지 않고 오고 있었다. 정말로 모든 반찬을 말아 먹는 서울에서 온 노숙자도 볼 수 있었고, 나이 불문하고 굳은 일을 마다않는 자원봉사자도 볼 수 있었다. 헤어지기에 앞서 국수집을 둘러보며 노숙자에게 계란 하나라도 더 부쳐주고 있는 그와 몇 마디 더 나눴다.
-추석이 다가오는 데요.
“노숙자들은 가족이 없어요. 명절이 가장 심적으로 힘들죠. 우리 국수집도 추석당일 빼고 계속 문을 열겁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빵 전체가 누룩이 되면 먹을 수가 없어지죠? 누룩은 조금만 있으면 됩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착한 소수 사람들의 작은 실천만 있다면 우리사회가 얼마나 풍족해질 수 있을까요?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마음처럼, 우리 사회 모두들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은 힘든 일이 아닙니다.”
밥 한 끼 먹고 가라고 붙잡던 사람들을 뒤로 하고 민들레 국수집을 나왔다. 이 조그만 집으로부터 나오는 조건 없는...
“진심으로 사랑을 하면 실천이 고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을 나눕시다.” 서영남 대표의 말을 거듭 되새기며 서울행 전철에 몸을 실었다.
첫댓글 민들레에 오면 이런 따뜻한 소식을 많이 접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