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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중의 남자. 러셀 크로우 를 설명할 때, 그 이상의 표현을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는 할리우드의 반듯한 배우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근사한 마초 이미지를 선사했고, 이는 [글래디에이터]에서 정점에 달했다. 그리고 10년 후, 러셀 크로우 는 리들리 스코트와 다시 호흡을 맞춘 에픽 서사 [로빈 후드]로 다시 돌아왔다. 나이가 든 만큼, 그의 남성 호르몬은 더욱 강력해졌고 성숙해졌다.
길들여지지 않은 에너지, [로빈 후드] 러셀 크로우 A to Z
러셀 크로우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진정한 고향은 호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4세 때 가족 전체가 호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으며, 이후 크로는 그곳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러셀 크로우의 부모가 영화 현장에서 케이터링 일을 담당했기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촬영 현장이 익숙했다. 그가 처음 카메라 앞에 선 것은 5살 무렵. 우연히 캐스팅된 TV 시리즈 [스파이포스 Spyforce](1971)의 대사 한 줄로 배우 인생이 시작되었다.
14세 때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왔으나, 21세에 호주로 건너갔을 땐 본격적인 연기 수업을 시작했다. 지금도 그는 복잡한 할리우드보다 호주의 자연을 더 사랑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으며, 호주 시민권을 획득하는 데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편 러셀 크로우 는 2004년 호주의 유산과 문화에 영향을 끼친 업적을 평가 받으며 '호주의 살아 있는 국보'로 선정되었다.
언뜻 듣기에 이물질이 잔뜩 낀 것 같은 러셀 크로우 의 목소리는, 헤비 스모커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 그러나 러셀 크로우는 훌륭한 배우 이전에, 재능 있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가 조직한 밴드만 해도 상당한 수준. 뮤지션으로서 러셀 크로우의 행보는 '러스 르 록'(Russ Le Roq)이라는 밴드에서 첫 번째 싱글 'I Just Want to Be Like Marlon Brando'(나는 말론 브랜도처럼 되고 싶다)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이 노래를 쓰고 녹음할 때만 해도 러셀 크로우는 말론 브랜도의 영화를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친구와 함께 '로만 안틱스'(Roman Antix)란 밴드를 조직했는데, 이것이 발전해서 록 밴드 '30 오드 풋 오브 그런츠'(30 Odd Foot of Grunts, TOFOG)가 되었다. TOFOG는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큰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2005년 초에는 캐나다 밴드 '그레이트 빅 씨'(Great Big Sea)의 리드 싱어 앨런 도일과 함께 음악 활동을 계속했는데, 이때 발표한 싱글 앨범 [Raewyn]에는 [글래디에이터](2000)에서 만나 깊은 인간적 관계를 맺은 노배우 리처드 해리스에게 바치는 곡이 포함되어 있다.
밴드 결성에 재미를 붙였는지, 2006년에는 '더 오디너리 피어 오브 갓'(The Ordinary Fear of God)이란 밴드를 새로 만들어 TV 토크쇼인 [투나잇 쇼]에서 공연했다. 또한 러셀 크로우는 아내 대니얼 스펜서의 노래를 포함한 몇몇 뮤직비디오를 연출했으며, 데뷔 초기에는 [그리스] [록키 호러 쇼] 등의 뮤지컬에서 가창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미국 대공황 시대, 불굴의 인간 승리를 보여준 인물 제임스 J. 브래독은 러셀 크로우가 꼽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다. [신데렐라 맨](2005)은 브래독이라는 라이트 헤비급 복서가 어떻게 링 위에서 재기하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던 평범한 노동자의 초상을 그린다. 러셀 크로우가 매력을 느꼈던 지점은, 복서가 아닌 평범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그는 [뷰티풀 마인드](2001)를 찍을 무렵 론 하워드 감독에게 브래독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신데렐라 맨]에서 다시 만났다. 100퍼센트 브래독으로 태어나기 위한 러셀 크로우의 노력은 대단했다. 그는 브래독의 행동 하나하나와 표정을 분석했고, 브래독이 연습했던 방식과 똑같은 훈련을 거쳤다. 너무 과도한 스파링을 하다가 촬영 1주일 전에 어깨가 탈골되는 바람에, 크랭크인이 두 달 정도 늦춰지기도. 그러나 [신데렐라 맨]이 개봉 2주차에 접어들 즈음 러셀 크로우 는 호텔 종업원 폭행 사건을 일으켰고, 이 사건은 흥행에 악영향을 끼쳤다.
2003년 4월7일, 러셀 크로우가 39세 생일을 맞이하던 날 결혼한 대니얼 스펜서는 현재 크로우와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두 사람은 1989년 로맨스 영화 [크로싱 The Crossing](1990)에 함께 출연하면서 사귀기 시작했는데, 이후 13년간 헤어짐과 재회를 반복하다가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대니얼 스펜서는 호주 출신의 여배우로, TV 시트콤 [왓츠 해프닝! What's Happening!](1976~1979)에서 아역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스펜서는 주로 TV에서 많은 활동을 했는데, 영화 대표작으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 정도.한편 그녀는 많은 밴드에서 활동한 뮤지션이며, 2002년 데뷔 앨범 [White Monkey]를 발표했다. 러셀 크로우의 가족 사랑은 지극한데, 아내가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그 좋아하던 술을 끊었고, 두 번째 아이를 "파파라치들에게 시달리느라 첫째 아이가 3주 일찍 태어났다. 이번에도 내 아내를 괴롭히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엄포를 놓기도 했다.
러셀 크로우와 니콜 키드먼이 호주에서 호흡을 맞출 뻔한 적이 있었다. 폭스 서치라이트가 제작에 나선 저예산 멜로 [유칼립투스]는 침체기에 있던 호주 영화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프로젝트로, 두 스타가 개런티를 대폭 삭감하고 출연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호주에서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머레이 베일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로, 러셀 크로우 는 니콜 키드먼과 결혼하기 위해 유칼립투스 나무의 이름을 모조리 외워야 하는 남자 역을 맡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촬영이 시작되기 전 이 프로젝트는 무기한 연기되었고, 결국 지금까지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공식적인 이유는 "시나리오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는데, 뒷이야기가 꽤 무성하다. 그 중 하나는 러셀 크로우의 입김. 크로우는 개런티를 삭감하는 대신 제작자의 지위로 영화에 참여했는데, 자신의 비중을 늘려달라는 등 이것저것 간섭이 심했던 모양이다.
러셀 크로우는 호주영화 [유칼립투스]에서 니콜 키드먼과 함께 출연하기로 했으나, 프로젝트 자체가 무한 연기되었다.
러셀 크로우는 영화에서는 더없이 매력적인 배우일지 몰라도, 실제로 만나면 다정다감한 스타는 아닌 모양이다. 기자들에게 무뚝뚝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에게도 시큰둥하다는 악명이 자자하다. 그는 불 같은 성미 때문에 한동안 타블로이드 신문 가십에 끊임없이 오르내린 전력이 있다. 가장 악명 높았던 것이 2005년에 호텔 종업원에게 전화기를 던진 사건. 아내에게 국제전화를 하려다가 통화가 잘 되지 않자, 종업원에게 전화기를 던져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 그는 폭행죄와 무기 소지죄로 기소되었다가, 1년간 다시는 범죄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형을 감면 받고 160달러 벌금을 내는 것으로 그쳤다.
[신데렐라 맨] 촬영 도중 자신의 보디가드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보디가드의 귀를 문 적도 있다. [어느 멋진 순간](2006) 프로모션 일정 중 비행기를 탔을 때는 식사 시간에 자신을 깨우지 않았다며 승무원에게 욕을 퍼부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처럼 러셀 크로우의 무례한 행동은 업계 사람들마저도 종종 불편하게 했는데,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렸던 사건은 2002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일어났다.
[뷰티풀 마인드](2001)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러셀 크로우는, 무대에 나와 긴 수상 소감을 말했다. 그 중 수상 소감 일부가 편집되었는데, 편집된 부분이 바로 [글래디에이터](2000)에 함께 출연했던 리처드 해리스에게 바치는 시였다. 당시 리처드 해리스는 병상에 있던 상태였다. 자신의 수상 소감이 편집된 것에 화가 난 러셀 크로우는, 시상식 프로듀서 말콤 게리에게 달려가 "다시는 할리우드에 발 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며 폭언을 퍼부었다. 이후 정중히 사과했다고 하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러셀 크로우는 사건을 저지른 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편. 그러나 그에게도 불만은 있으니, 미디어가 지나치게 자신을 폭력적인 인간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특히 사실이 아닌 것을 부풀려 쓴 기사들 앞에서, 천하의 러셀 크로우 도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정보가 너무 많다. 대표적인 예로 난 파파라치와 싸운 적이 없는데, 인터넷에는 사실이 아닌 기사가 수백 개씩 올라와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러셀 크로우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영화 [글래디에이터]. 러셀 크로우의 탄탄한 육체와 고독한 표정은, 비탄에 가득 찬 검투사 '막시무스'를 탄생시켰다. 가족을 잃고 노예로 전락한 검투사, 복수를 향한 집념 하나로 매일 검을 휘두르던 사나이. 러셀 크로우 는 이미 1990년대 초에 '차세대 멜 깁슨'으로 거론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건 단순한 육체적 매력을 넘어 다채로운 영혼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글래디에이터]의 성공은 러셀 크로우를 '블록버스터의 영웅' 자리에 올려놓았고, 더불어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페르소나로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글래디에이터] 현장에서도 러셀 크로우는 고분고분한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시나리오에 끊임없이 불만을 가졌고,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자주 세트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후에 계속 리들리 스코트와 호흡을 맞춘 걸 보면, 스코트 감독은 러셀 크로우 가 만들어낸 압도적인 장면들을 포기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러셀 크로우 에게 할리우드로 가는 문을 열어준 작품은 샘 레이미 감독의 서부극 [퀵 앤 데드](1995)다. 아직 미지의 배우였던 러셀 크로우를 발탁한 사람은 샤론 스톤. 스톤은 "러셀 크로우 는 영화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그는 근성과 반짝거림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 영화에서 러셀 크로우는 순수한 영혼의 성직자로 살다가 다시 살인의 세계로 이끌린 남자 '코드' 역을 맡아, 샤론 스톤과 피할 수 없는 대결을 펼친다.
[퀵 앤 데드]가 러셀 크로우에게 남긴 것은 좋은 점만이 아니었다. 그는 엑스트라 출연료에 가까운 미비한 수입만을 가져갔으며, 오랜 촬영이 독이 되었는지 5년간 사귀던 대니얼 스펜서와 잠시 헤어지게 되었다. 그를 측은히 여겼던 샤론 스톤은, 러셀 크로우를 크리스마스 아침에 초대해 함께 구세군 자원 봉사를 하며 건전한 성탄절을 보냈다는 후문.
러셀 크로우를 공격적인 마초로만 생각했다면, [인사이더](1999)는 그 이미지를 완전히 배반한 영화로 다가올 것이다. 여기서 러셀 크로우는 심약한 과학자로 나와, 거대 담배 회사의 음모 앞에서 망설인다. 그러나 내면에 꼭꼭 눌러두었던 고뇌가 터져 나오는 순간, 러셀 크로우의 진정한 매력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담배 회사의 연구 개발 중역 '제프리 위갠드'로 출연한 그는, 결국 법정에서 담배 회사의 은폐된 진실을 거침없이 폭로한다. 러셀 크로우가 지닌 어둡고 네거티브한 에너지가 제대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사실 마이클 만 감독은 '제프리 위갠드' 역에 발 킬머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프로듀서 피터 한 브뤼게의 제안으로 러셀 크로우가 출연하게 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러셀 크로우가 10살 때부터 담배를 피워온 애연가라는 사실. 그는 "담배의 부작용을 잘 알고 있지만, 내가 담배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점이 굉장한 아이러니"라며 이 영화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뉴질랜드와 호주를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낸 러셀 크로우 . 그는 10살 때부터 담배를 폈으며, 사람보다 말에 더 애착을 갖고 있는 기이한 소년이었다. 많은 시대극에서 보여준 수준급의 승마 실력 역시,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것. 그는 "말은 사람 같다. 타게 되는 즉시 뭔가 깊은 커넥션을 느끼게 되는 말들이 있다"며 말에 대한 예찬을 아끼지 않는다. 여기서 러셀 크로우의 학창 시절 친구의 증언을 잠시 빌려보자. "러셀 크로우는 음침하고 정상이 아닌 사람이었다. 때로는 속옷 차림으로 다니기 일쑤였다." 역시 어린 시절부터 평범한 남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러셀 크로우가 오사마 빈 라덴의 타깃이 된 적이 있었다. 9·11 테러가 일어나기 9개월 전, 그러니까 러셀 크로우가 [글래디에이터]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무렵이었다. 오스카 시상식을 앞두고, 러셀 크로우는 FBI로부터 자신이 알 카에다 테러 조직의 타깃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 카에다는 미국에 문화적인 동요를 일으키기 위해, 상징적인 인물을 납치하겠다는 계획이었던 것. 결국 러셀 크로우는 FBI 요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이에 대해 러셀 크로우는 놀라는 한편 아이러니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내 인생에서 알 카에다에 대한 대화를 나눈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가는 곳마다 FBI 요원들이 있으니, 마치 내가 엘비스 프레슬리라도 된 기분이었다"며 당황스러워했다.
범죄 조직이 거리를 장악했던 1950년대 LA. 미국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LA 컨피덴셜](1997)을 진행하면서, 제작사 측에서는 미국 출신이 아닌 배우를 쓰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두 주인공 러셀 크로우와 가이 피어스는 각각 뉴질랜드와 영국 출신. 특히 러셀 크로우의 경우, 커티스 핸슨 감독이 [이유없는 반항 Romper Stomper](1992)을 보면서 '버드 화이트' 역에 이미 정한 상태였다.
가이 피어스가 연기한 신참 형사 '에드'가 성공에 혈안이 된 약삭빠른 인물이라면,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버드 화이트'는 정의감에 불타는 열혈 형사. 러셀 크로우는 자신이 거친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아 출연 제의를 거절했지만, 결과적으로 삶에 짓눌린 남자의 분노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러셀 크로우의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연기하기 만만치 않은 역할이었음에도, 러셀 크로우가 정작 고통스러워했던 부분은 엉뚱한 지점이다. 원작자 제임스 엘로이는 "버드 화이트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캐릭터"라고 강력하게 못박았다. 이에 대해 러셀 크로우는 "블루 칼라 계층의 경찰이 어떻게 술을 마시지 않느냐"고 반박하면서도, 5개월하고도 7일 동안 완전히 술을 끊어야만 했다. 러셀 크로우는 그 시기를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한 때"였다고 이야기한다.
TV 시리즈 [섹스 & 시티]의 한 장면. 누군가 "마스터베이션을 할 때 어떤 남자를 상상해?"라고 묻는 순간, 네 여자들은 일제히 이렇게 외친다. "러셀 크로우 !" 확실히 러셀 크로우 에게는 저돌적인 매력이 있다. 하지만 그가 달달한 로맨스 영화에 출연하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 실제로 러셀 크로우 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남성 호르몬이 넘치는 영화들로 가득한데, 의외의 영화가 한 편 있다. 그것도 리들리 스코트 감독과 호흡을 맞춘 멜로 영화, 바로 [어느 멋진 순간](2006)이다.
프로방스의 낭만적인 와인 농장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 능력 있는 '바람둥이 증권맨'으로 출연한 러셀 크로우 는, 전원에서 프랑스 여인 페니(마리옹 코티아르)를 만나 귀여운 사랑에 빠진다. 그는 어깨에 힘을 빼고, 실수 연발의 해프닝과 유쾌한 웃음으로 영화를 채운다. 다소 밋밋했으나, 러셀 크로우 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 하긴 출발 자체도 리들리 스코트 감독과 러셀 크로우 가 "전혀 다른 느낌의 영화를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서였으니, 그 의도는 충분히 전달된 셈이다.
올해 칸영화제 개막작인 [로빈 후드](2010)는 리들리 스코트 감독과 러셀 크로우가 [글래디에이터] 이후 10년 만에 서사 액션으로 다시 만난 영화다. [로빈 후드]는 평범한 활잡이가 부패한 왕에 맞서는 의적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이제껏 만들어진 숱한 로빈 후드 소재의 영화가 의적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는 로빈 후드의 탄생기를 그린 최초의 작품인 셈. 펄펄 날아야 할 로빈 후드를 소화하기엔 46세의 나이가 조금 많은 감이 있지만, 영화는 오히려 '막시무스'의 또 다른 버전을 연상시킬 정도로 러셀 크로우의 진지하고 뜨거운 면모를 십분 끌어냈다.
러셀 크로우 이전에 크리스천 베일이나 샘 라일리 등이 로빈 후드 역할에 거론되었다는데, 그도 그럴 것이 러셀 크로우는 로빈 후드를 연기한 배우 중 가장 나이가 많기 때문(숀 코너리가 44살에 [로빈과 마리안 Robin and Marian](1976)을 찍었다). 실제로 나이 운운하는 비판이 쏟아지자, 러셀 크로우 는 체중을 10킬로그램 이상 감량했고 3개월간 하루 200개 이상의 활을 쏘며 강도 높은 훈련을 거쳤다. 그 결과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쏠 수 있는 경지까지 올랐다고.
러셀 크로우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 연속 [인사이더] [글래디에이터] [뷰티풀 마인드]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2001년 시상식에서 [글래디에이터]로 트로피를 가져갔다. 2002년 오스카 시상식에서는 [트레이닝 데이](2001)의 덴젤 워싱턴에게 트로피를 빼앗겼는데, 이를 두고 러셀 크로우가 2002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저지른 만행(?) 때문에 미움을 샀다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러셀 크로우의 오스카 자살"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한편 러셀 크로우는 오스카에 관련된 놀라운 경력을 지닌 배우이기도 하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간 출연한 다섯 편의 영화 [LA 컨피덴셜] [인사이더] [글래디에이터] [뷰티풀 마인드] [마스터 앤드 커맨더]가 모두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 그 중 [뷰티풀 마인드]와 [글래디에이터]가 트로피를 가져갔다. 러셀 크로우 이전에는 198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윌리엄 허트가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다. 윌리엄 허트는 1983년에서 1988년까지, 6년간 찍은 다섯 편의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올랐는데 단 한 편도 수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글래디에이터] 이후 러셀 크로우가 새로운 액션 히어로로 떠오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러셀 크로우를 단순히 '액션 히어로'로 부르기엔 뭔가 허전한 구석이 있다. 그 대명사인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러셀 크로우 사이에 어떤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LA 컨피덴셜]을 찍으면서 러셀 크로우는 '버드 화이트'의 캐릭터에 대해 "매우 육체적인 남자"라고 표현했는데, 어쩌면 이 표현이 가장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거침없이 몸을 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네거티브한 에너지를 더 많이 함유한 남자. 러셀 크로우의 액션 연기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넓은 스펙트럼의 인간 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작품을 찍으며 함께 출연하는 배우를 꼭 좋아할 필요는 없다. 감독을 좋아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좋아하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건 존경으로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거친 남자'라고 부르는데, 그건 별 도움이 안 된다.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싶어하게 만드는 것은, 내 영화의 퀄리티다."
"나는 제작비의 필요 때문에 뭔가가 만들어지는 환경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 나는 자선 활동을 하지만, 메이저 스튜디오를 위해서 자선 활동을 하고 싶진 않다."
"나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하려 하지만, 무엇보다 조용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선동하기 위해 일어서서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신물이 난다."
"전쟁에서 승자는 없다. 모두가 패자일 뿐이다. 거기에는 영웅도 없고, 죽은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글래디에이터] [어느 멋진 순간] [아메리칸 갱스터](2007) [바디 오브 라이즈](2008) 그리고 [로빈 후드]까지. 러셀 크로우는 벌써 리들리 스코트 감독과 다섯 편의 영화에서 만났다. 에픽 서사시에서부터 로맨틱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함께 작업하는 걸 보면 확실히 러셀 크로우를 리들리 스콧의 페르소나라고 부를 수 있을 듯.
또한 리들리 스코트는 러셀 크로우의 별난 성격을 장점으로 소화할 줄 아는 감독인 듯하다. 언젠가 러셀 크로우는 어떤 작품이 끌리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배경은 서기 185년이고, 당신은 로마 장군을 연기할 것이며 감독은 리들리 스코트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작품이다." 최근작 [로빈 후드] 촬영을 끝낸 후에도 러셀 크로우는 "리들리 스코트와 나는 정말 잘 맞는다. 우리는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낸다"며 감독에 대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뭐든 관심이 있는 걸까? 어린 시절부터 승마를 즐겼다는 러셀 크로우 는, 나이가 들수록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호주 럭비 팀 '사우스 시드니 래비토스'의 열혈 팬이었는데, 배우가 되어 유명세를 타면서는 경제적인 후원도 아끼지 않았다. 결국 러셀 크로우 는 '사우스 시드니 래비토스'의 공동 구단주 역할까지 하고 있으며, 한때는 코치 역을 맡아 침체기에 있던 팀에 단단한 기합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외에도 FC 바르셀로나의 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하키에도 일가견이 있다. 최근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는 "이번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이 기대된다. 하지만 스페인이든 브라질이든 영국이든 호주를 이길 순 없을 것"이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했다. 열혈 축구 팬다운 발언이다.
러셀 크로우 가 자신에게 들어온 역할들을 모두 받아들였다면, 할리우드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다음은 러셀 크로우 가 출연 제의를 거절한 작품들이다. 우선 [엑스맨](2000)의 울버린 역할을 거절했고, [반지의 제왕](2001~2003) 시리즈의 아라곤 역할은 자신의 고향 뉴질랜드에서 촬영된다는 사실에 기뻐했음에도 불구하고 [뷰티풀 마인드] 출연 스케줄과 겹쳐 포기했다. 마이클 만 감독의 [콜래트럴](2004)에서 살인 청부업자 '빈센트' 역할은 [유칼립투스] 스케줄과 겹쳐 톰 크루즈로 대체되었고, [매트릭스](1999~2003) 시리즈의 '모피어스' 역할은 "[매트릭스]의 세계가 내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차버렸다. [어바웃 어 보이](2002)에서 휴 그랜트가 맡은 역할도 거절했으며,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휴 잭맨이 맡은 역할은 개런티 삭감에 동의할 수 없어 거절했다. 또한 [블랙 호크 다운](2001)으로 리들리 스코트 감독과 함께 작업할 뻔했으나, 스케줄 문제로 에릭 바나가 대신 가져갔다.
러셀 크로우 와 작업한 수많은 감독 리스트에 폴 해기스가 추가됐다. [로빈 후드] 이후 러셀 크로우가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폴 해기스 감독의 범죄 스릴러 [넥스트 쓰리 데이즈 The Next Three Days]로, 러셀 크로우 버전의 [프리즌 브레이크]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아내가 살인 혐의로 기소되면서 인생이 산산조각 난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러셀 크로우는 '존 브레넌'이라는 인물로 등장해 아내의 석방을 위해 애쓴다. 러셀 크로우의 아내 역으로는 엘리자베스 뱅크스가 출연하며, 리암 니슨이 감옥에서 탈출한 인물로 등장해 러셀 크로우의 '프리즌 브레이크'를 돕는다. 미국에서는 올해 11월19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러셀 크로우의 풋풋한 악역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인 브렛 레너드 감독의 [가상현실](1995)은 러셀 크로우가 할리우드에 살짝 발을 걸치기 시작한 무렵에 찍은 영화. 인간과 사이버 범죄자의 대결을 그린 SF 영화다. 이 영화에서 러셀 크로우가 맡은 역할은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사이버 범죄자 '시드6.7' 애초의 용도는 가상현실을 이용해 경관들의 훈련을 책임지는 프로그램이었으나, 부작용으로 인해 민간인들을 습격하는 위협적인 캐릭터다. 여기서 러셀 크로우는 죄수 역할을 맡은 덴젤 워싱턴과 함께 출연했는데, 두 사람은 2007년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형사와 마약상 역할로 다시 호흡을 맞췄다.
리들리 스코트는 물론이고, 론 하워드, 테일러 헥포드, 마이클 만, 커티스 핸슨, 제임스 맨골드 등 수많은 이름 있는 감독들과 작업한 러셀 크로우. 이들의 러셀 크로우에 대한 평가는 거의 비슷하다. 무례하고 직설적인 성격을 감당하긴 힘들지만, 그의 놀라운 연기력 때문에 참을 수 있다는 것.
러셀 크로우는 성공과 함께 변질되는 스타일의 배우는 아닌 것 같다. 그는 초기 시절에도 꽤 거칠었던 듯. 1992년에 [이유없는 반항]에서 함께 했던 제프리 라이트 감독은 "내가 만난 배우 중 가장 무례하다"고 말했고 [퀵 앤 데드]의 샘 레이미 감독은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러셀 크로우는 신기하게도 감독들의 속을 무던히도 뒤집어놓고는 늘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프루프 오브 라이프](2000)의 테일러 헥포드처럼 "러셀 크로우와 멕 라이언의 로맨스 때문에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아내 대니얼 스펜서와 13년간 다사다난한 연애를 지속하는 동안, 러셀 크로우 곁에는 수많은 여인들이 스쳐갔다. 특히 유명 여배우들과 많은 염문설이 있었는데, 멕 라이언, 조디 포스터, 킴 베이싱어, 니콜 키드먼, 헤더 그레이엄 등이 있었다. 니콜 키드먼과는 남태평양 피지에서 함께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타블로이드의 전언이 있었으며, 심지어 조디 포스터가 낳은 아이의 아빠가 러셀 크로우 라는 소문까지 있었다(이에 대해서 조디 포스터가 아니라고 밝혔다). 어쨌거나 러셀 크로우 가 조디 포스터를 위해 노래를 썼을 정도로, 둘은 절친한 사이. 가장 시끄러웠던 상대는 [프루프 오브 라이프](2000)에 함께 출연했던 멕 라이언이었다. 촬영 현장에서 뜨거운 사이가 된 두 사람은 한동안 파파라치들의 공세에 시달리다가, 6개월간 만에 연인 관계를 끝냈다.
러셀 크로우는 한때 '차세대 멜 깁슨'으로 거론된 적이 있는데, 크로우의 이미지는 멜 깁슨보다는 확실히 더 어두운 면이 있다. 멜 깁슨의 핸섬한 얼굴과 달리 뭔가 흐릿한 인상을 가진데다가, 얼굴을 찡그리는 순간 다양한 감정이 분출되는 느낌이 있는 것. 게다가 멜 깁슨에게는 없는, 자기 조롱의 기운도 있다. 이에 대해 마이클 만 감독이 정확한 지적을 했다. "그는 굉장한 감정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 내가 늘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있는데, 러셀 크로우는 젊은 말론 브랜도를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러셀 크로우 는 억만장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시드니의 울루물루 워프에 소유한 1,375만 달러 상당의 펜트하우스나 시드니 외곽에 있는 560에이커 규모의 농장만 봐도, 그의 경제적 여유를 가늠할 수 있다. 개런티의 경우 2000년 [글래디에이터]에서 50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던 러셀 크로우 의 몸값은, 3년 후인 2003년 [마스터 앤드 커맨더]에서 2,000만 달러로 훌쩍 뛰었다. 작품의 성격에 따라 개런티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거나 러셀 크로우 도 2,000만 달러 클럽에 가뿐히 입성한 셈.
그러나 한때 러셀 크로우 는 불명예를 안았던 적이 있었으니, 2007년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서 '지나치게 많은 개런티를 받는 배우' 1위에 올랐던 것.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를 찍으면서는 제작사 수입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면서도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로빈 후드]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상, [글래디에이터]의 영광이 다시 도래할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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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가 젤 좋아하는 미국 배우.... 글래디에이터.... 5번정도 봤을것이다...ㅋ
요즘 케이블에서 스파르타쿠스 하는데.... 그게 그거여....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