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4 동기생 여러분께 안부인사 드립니다.지금껏 도둑괭이 모냥 몰래 들어와 검색만 하고 도망가곤 하면서 나도 언젠가는 정식으로 데뷰(?)해서 글도 좀 올리고 하며 사이트 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맘 먹은지는 벌써 몇해인데 시간만 물같이 가버렸네요. 그래서 이번에는 격식에 구애없이 일단 저지르고 보자 하는 심정으로 올립니다. 제가 그동안 산(등산)과 들(도보)에 흠뻑 빠져 걸으면서 지난10월31일과 11월1일에 걸쳐 있었던 도보대회 참가후기( 동호회 사이트에 올린 것)를 여기에 전재합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걷기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고들 하니 우리 길에서 자주 만납시다(사랑의 기운을 키우는 데도 단연 왕도!).관심 있으신 동기생께서는 다음까페에 가셔서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을 클릭하시기 바랍니다.의외로 활성화되어 거의 매일 도보모임이 있는즉,편한 시간에 가면 언제나 웰컴입니다.
세월 가면서 그간 여러 상황들로 인해 비틀거리면서 살아온 족적들이 세삼 되돌아 보입니다. 앞으로나마 자주 만나서 좋아진 막걸리 앞에 놓고 회포 풀도록 합시다(송태준 배)
1.시작하기에 앞서
신라의 달밤 도보를 접한 것은 지난 9월말 한강 울트라도보때 길동무한 영남방 회우들과의 대화에서였다.늧가을 경주 66키로 도보길이 워낙 좋으니 꼭 참가해 보라는 요지의… 허나 금년 5월에서야 인도행에 가입한 초보자가 선뜻 결정하기엔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100키로를 걷는 베테랑 회원들에 끼어 겨우 50키로를 도전하는 터에 높낮이가 심한 66키로는 길기도 하려니와,또 한편으론 원지에 출정한다는 게 좀 주제넘기도 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10월 접어들면서 “깊어가는 가을 달밤의 길 나그네” 이미지가 점차 강한 유혹으로 닥아오는데다, 내년봄 울트라 100키로를 도전하는데 필요한 징검다리가 되겠다 싶어 신청하기로 마음을 정한다.어차피 인생 살아가는 과정이 길위를 걸어가는 노정(路程)과 다를 바 없고,사람 만나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어려움을 이유로 뒷꽁무니질 칠 일이 아니다.한번 부딫쳐 보는 거야! 그리고 인도행에 들어와 걷기재미에 빠지면서 마주쳤던 동행들을 고도(古都)의 정취 베어있는 경주 무대에서 만나보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2.경주로 가는 차 안에서의 단상(斷想)
20여명을 태운 전세버스가 출발하기 전 그예 하늘은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비 예보로 걱정이,그것도 지난해 참가자들로부터 지독했던 악천후 도보의 고생담을 들은 바 있어 걱정이 클 수밖에 없어 서울출발은 그리 상쾌하지가 못했다.그나마 남은 희망은 중부에서 시작하는 비가 남부로 이전하면서 그 세(勢)가 많이 줄 것이라는 예보가 맞아들기를 기대해 보는 것.
경기도를 벗어나면서 가려있던 해가 나오고,들판은 황금빛 가을색을 회복한다. 내가, 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는 계절인 가을의 미덕은 역시 원색의 아름다움에 있지 않을까?금빛 들판에다 너무도 티 없어 허전하리만큼 심원한 쪽빛 하늘이며 오색으로 불타는 단풍, 이 모두는 원색이고 원색은 무궁의 순수미를 우리들 마음에 각인시킨다.아름다우면 그만큼 행복해 하면서 즐기면 될 것을… 가을이 깊어가면,원색이 우리 주위를 에워싸면 왜 마음은 서러움의 옷으로 갈아입고 과거를 아프게 추억하는 걸까?누군가 가장 순수한 인간의 감정이 슬픔이라고 했는데,아름다움의 순수가 슬픔의 순수를 손짓하여 동무하는 계절이 가을인듯도 싶다.아무튼 가을은 원색이고, 아름다움이며,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 충동이다. 그래,이 가을 마저 가기 전에 떠나보는 거다,신라의 달밤으로!
중.북부지역은 벼 수확도 거진 끝나 논바닥은 암갈색 나지를 드러내고 있다.가을의 또 한 모습,결실의 풍성함을 과시하던 벼의 황금물결도 사라져 갔고, 이제 머쟎아 산들도 잎들을 모두 떨구고 나면 또 한해가 가는 거겠지.그러면 나이테 한겹 더 감아야 할테고…근년에 들어 예민해지는 세월감각을 언짢아해 보지만 그게 어디 마음 쓴다고 없어지랴? 이런 저런 상념과 졸기를 번갈아 하는 사이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봉긋봉긋 부드러운 능선의 산들이 경주에 가까웠음을 알린다.
예전에 경주를 들리거나 스치면서 늘 가졌던 인상 중의 하나가 부드러운 산세다. 경부선 이 대전을 지나면서 산악,그것도 능선이 날카로운 악산지대가 연속되다가 경주에 가까워지면서 능선들은 부드러운 포물선으로 바뀐다.마치 왕릉들이 주는 포근함의 느낌과도 닮아 있다.이런 산세, 지기(地氣)가 신라 천년과 혹시 연관이 있는 것일까? 과거에 품었던 막연한 상념이 문득 스치는 사이 버스는 집결 예정시각인 오후 6시에 조금 못미쳐 황성공원에 닿는다 .
3.황성공원 풍경과 출발
버스에서 내려보니 집결지인 황성공원 실내체육관 앞 넓은 노지에 사람들이 혹은 나다니고 혹은 군데 군데 떼를 지어 모여들 있고, 중앙에 설치된 가설무대에선 설익다 여겨지는 가수들의 노래와 춤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어릴적 학교 운동회의 점심시간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고향의 5일장 장터도 연상시키는,어수선하면서 좀은 싸구려 냄새가 느껴지는 풍경이다.내가 좋아하는 민속씨름대회 중계를 볼때마다 느끼는 아쉬운 대목과도 상통해 있다. 국민적인 건강종목으로 확산되고 있는 도보문화의 발전과 격높임을 위해서 주최측이 좀 더 배려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아무래도 못먹은 저녁이 걱정되어 근처 포장마차에서 어묵으로 약식 해결한 뒤 인도행 표지가 쳐진 천막쪽으로 향했다.먼저 와 있던 수십명의 회원들과 덕운님을 비롯한 도우미님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명단확인을 거쳐 배포해 주는 배번표를 배낭 뒤에 메어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나, 일천한 회원경력 탓인지 아는 얼굴은 잡히지 않는다.주변에선 오랫만에 해후하는 회원들이 끼리끼리 악수하고 포옹하며 떠들썩한 가운데 문득 군중 속의 고독(?) 비슷한 외로움을 느낀다.
한참이 지난 후에 반가운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부산의 도마뱀님이다.달포전 한강울트라 때 만나 앞서거니 뒤처지거니 하면서 세상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정작 오늘 신라의 달밤 도보를 강추했던 장본인이다.반가움의 악수 뒤 아버지를 소개하겠다며 나를 이끈다.1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단아한 체구에 연륜과 관록이 느껴지는 한분을 뵈오니 바로 백일봉님이시다(사실 이때까지 두분이 부녀관계임을,부녀가 함꼐 인도행 회원임을 전혀 모르고 있던 터라 처음에는 당황.등산을 오래 하시다 근래 도보를 하게 되었다고 하시는데 예사롭지 않은 내공이 은연중에 내비친다.도보후 듣기에 대학에서 정년퇴임하신 일흔 넘으신 이 노학자님께서 몇 안되는 선두그룹으로 완보하셨다니 그저 감탄과 존경밖에는… "아,나의 노후도 저러했으면!").잇달아 울산의 동트는 광야님을 해후하고,여의도 화요도보에서도 자주 동행했던 라이트님을 만난다.동트는 광야님은 후미대장의 도우미까지 맡으셔서 평소의 성실에 이력 하나를 보태신다.그 조금 뒤에는 광주에서 호남방 회우들을 인솔해 온, 싹싹하기 그지없는 시린님까지 만나게 되니 경주도보에 참가한 목적의 상당부분이 달성되었다고나 할까? 이제 남은 일은 무탈하게 완보하는 일이다.
7시를 넘기면서 사람들이 출발선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하고,내려오는 버스에서 기경험자인 38이춘하님의 조언(3천명 넘는 참가자들이 북적이는 와중에서는 선두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도 익히 접했던 터라 선두그룹에서 출발을 기다린다.이윽고 7시반,체크카드를 받으면서 출발이다.가둬 놨던 봇물이 풀리듯 한꺼번에 사람의 강물이 어둠속으로 빨려나간다.
4.초장 분위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걷다 보니 보속이 여간 빠르지가 않다.한번 밀리면,줄에서 쳐지면 낙오될 듯한 기세로들 지쳐 나아간다.길 오른쪽 이름을 모르는 냇가(아마 형산강 지류인듯)에 우묵히 솟아난 갈대와 억새를 타고 오는 밤바람이 삽상키 그지 없다.한데도 빨리 걷다 보니 얼마 못 가서 땀이 베어 걸음을 멈추고 방한점퍼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그렇게 시간여 걸었다 싶으니 오른쪽으로 장대한 보문호가 나타나고,길은 호반을 따라 이어간다.호수 중앙의 분수가 여러 색깔의 물을 공중에 쏘아올리는 모습이 아름다워 한커트 사진으로 남기고프나,카메라는 애초에 없고 휴대폰 카메라도 사용방법을 모르니 한갖 희망사항일 수밖에…
보문 관광단지를 비껴나와 길은 이제 야산 오르막으로 이어진다.안내 지도상에는 암곡으로 되어 있는데 옆사람에게 무슨 산이냐고 물으니 경주 지방의 대표적인 등산지로 억새밭이 일품인 무장산의 지맥이라고 한다.아까 보문호를 돌면서부터 보름을 하루 앞둔 달빛이 아름다워 연신 고개를 달쪽으로 향하곤 했는데,산속 늧가을 단풍을 감싸 흐르는 달빛이 교교하고도 푸근하다.밤을 잊은 풀벌레 울음소리까지 달빛에 화답하고 있는즉,아름답다는 말 한마디론 턱없는 부족을 느낀다.아-,살아 숨쉬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이여!길 걷는 사람들에 대한 축복이여! “….. 밤이여 어서 저 들에 달을 비춰 나로 하여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도 좋을 길을 끝없이 가게 해다오.” 지금은 멀어진,거진 반백년의 시간을 멀어져간 사춘기 시절의 감성으로 신라의 달빛은 그렇게 나를 데려가고 있었다.
내리막 길을 얼마큼 내려간 곳에 우리 인도행 쉼터가 나를 반긴다.시계를 보니 9시반,이곳이 12키로 지점이니 시속 6키로로 내달려 온 셈이다. 오버페이스가 우려될 정도로 초반은 호조세다.갈증엔 물보다 막걸리가 제격임을 경험칙으로 터득하고 있어 이쁜 도우미님(이름을 못 물어 죄송)이 따라주는 막걸리 두잔을 과매기 안주에 곁들여 들이키니 갈증은 어젯일인냥 사라져 버린다.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곧장 발길을 재촉한다.한참을 더 간 지점에 주최측이 개설한 쉼터에서 커피를 마셨다.이때까지도 시간당 6키로 약간 못미치는 보속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5.깊어가는 밤, 진화하는 도보
길은 계곡을 따라 쉼없이 이어지고 가끔씩 대여섯채 민가의 작은 시골마을이 나타났다간 어둠 속에 묻혀간다.어김없이 잠을 방해당한 견공들이 불청객을 향해 컹컹댄다.대략 밤 11시를 지나면서는 풀벌레의 울음소리도 잦아들고,주변에 인지되는 것이라곤 구름과 바삐 숨바꼭질하며 쏟아내는 더 환해진 달빛,계곡을 훑어오는 바람소리뿐.이쯤 되니 초기에 3355 무리지어 담소 나누며 걷던 도보행렬도 길게 늘어선 일렬종대 대형으로 바뀌어 모두들 혼자만의 상념을 이고 묵묵히들 걷는다.
그렇게 해서 추령재 꼭대기 쉼터(25km 지점)에 도착한 것이 12시 10분께.시간당 5.3키로 남짓의 보속은 아직 양호하다.백년찻집 앞 공터는 환한 불야성을 이루고,야식으로 나눠주는 라면을 먹는 사람들과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질펀한 잔칫집 분위기를 연출한다.나도 사발면 하나를 받아놓고 땅바닥에 퍼질고 앉아 우선 신발을 끌러 발 상태부터 확인한다.지난 울트라때 20키로 지점부터 양 발바닥과 발가락에 온통 물집이 잡혀 고생 꽤나 했었는데 지금은 말짱하다.여러분들의 어드바이스를 좇아 등산화에서 운동화로 신발을 바꾼 게 주효한 덕분인듯 하다.발바닥 열을 식히며 라면을 맛있게 처분한 뒤 한참을 쉬었다.한가하면 잡념이 생기는가.서울에 두고 온 일상(日常)이 문득 문득 뇌리를 무겁게 스쳐간다.만사 잊고 걷기에만 탐닉되면 좋으련만,스스로 만드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필부의 심사가 만추의 밤 아래서 허허롭기만 하다.
신발끈을 다시 조여매고 출발하면서 나는 이번 도보에서 남은 긴 길을 9시간 가까이 동행하면서 도움을 받을 고수 한분을 만나 뵌다.양산에서 오신 아름다이님이셨다.조심스레 연세를 여쭤보니 나보다도 2년 연상이시다.지난 울트라도보 100키로를 22시간대에 완보하셨으니 대단한 내공을 쌓은 분이시다.그래서인지 평지나 오르막에서도 페이스가 한결 같고 흐트러짐이 없으셨다.님께서는 또한 말을 많이 아끼시는 편이었으나,그 과묵이 옆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독특한 분위기도 가지셨다.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또 저마다의 상념에 젖어들기를 반복하면서 32키로 지점의 인도행 마지막 쉼터에 도착,덕운님이 권하는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했다.이때가 새벽 2시,지금부터 토함산을 오르는 오르막길이라니 긴장이 조여온다.
6.토함산,그 후덕한 육산(肉山)을 타고 넘다.
토함산 밑자락을 3키로 오른 곳에 설치된 장항리 쉼터에서 꿀차 한잔씩을 얻어마시고 10여분 휴식을 취한 뒤 길을 재촉한다.시간은 얼추 2시 반경,잔뜩 흐려진 하늘에 달빛도 숨어버리고, 완만한 우회로이긴 하나 오르막길은 벅찰 수밖에 없다.보속이 한결같으신 아름다이님의 페이스를 따르기가 수월치는 않다.얼마 안 가 뒤에서 치고 오르는 도마뱀님과 조우한다.같이 가자고 했는데도 오르막에서 속도 한번 내보겠다며 길동무 맺어준 우리 둘을 야속하게(?) 버리고 간다.
체크포인트 2에서 도장 찍은 시각이 정각 3시,그 직후부터 하늘은 비를 흩날리기 시작했다.빗나가기를 바랐던 기상청 예보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상황에 우산을 꺼내 배낭 옆주머니에 예비해 두곤 계속 오른다.과묵하신 아름다이님께서 이제 다 왔습니다 하셔서 시계를 보니 3시 20분,그런데 그것은 오르막길 다 왔다는 말씀이셨지, 길은 거기서도 지루한 능선길을 한시간 넘게 걸어서야 석굴암주차장 아침식사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의 기억에 남아있는 석굴암은 좀 높기는 하나 야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날 걸어본 토함산은 상당한 높이를 가진,두텁고 후덕한 육산의 느낌이었다.서라벌 동남쪽을 중후하게 틀어앉아 외세로부터 신라를 보호해 온 수문장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 하산길까지 포함하면 토함산을 넘는데 꼬박 3시간이 걸렸으니 웬만한 등산코스 하나로도 손색이 없겠다.
아침으로 주는 시락국밥 한그릇을 빈 속에 털어넣고는 여러 사람이 누워있는 천막속 모퉁이에 베낭을 벼개삼아 토끼잠을 청해 본다.허나 한겨울 같이 몰아치는 강풍에 천막 외벽이 찢어져라 요동치고,젖은 땀이 한기 되어 몸속을 파고드니 온 몸이 오한으로 덜덜거린다.추위를 이기는 방법은 운동뿐! 서둘러 아름다이님과 하산길에 나서 캄캄한 계단길을 손전등에 의지해 불국사에 도착하니 이때가 4시반이다. 오랫만에,20년도 넘는 세월 뒤켠에서야 새로 찾은 경주인지라 불국사며 석굴암 다시 보고 싶으나,캄캄한 밤중이니 어찌하랴. 인적 없는 대로를 따라 불국사역도 제치고,이제 경주 시내쪽으로 곧장 나아간다.
7.종반을 향해 가는 도보
대로를 곧추 가던 길이 왼편 남산쪽으로 틀어 통일전으로 향하고,대지는 7시가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통일전 앞 쉼터에 도착하니 바나나와 막걸리가 준비되어 피로에 젖은 길손을 반긴다.바나나와 막걸리,언뜻 보기엔 기이한 조합으로 보이나,갈증에 막걸리가 특효이고 소진된 비타민과 무기질 보충엔 바나나가 제격일듯도 싶다.이곳이 55키로 지점이고,남은 거리는 11키로에 불과하니 이제 도보도 종반에 접어들었다. 나른한 안도감이 즐겁다.
통일전에서 시내 어귀까지는 기분 좋은 들길이 이어지고,막 떠오르는 양광이 따사롭게 나를 감싸온다.미루어졌던 졸음이 슬슬 막걸리 기운을 타고 올라온다.졸음을 쫒는데는 노래가 특효약! " 잊혀진 계절,고향역,산들바람,옛날은 가고 없어도,내마음의 강물,산유화,산포도 처녀 …" 가요,가곡이 순서 없이 뒤섞인다.앞서 가는 분들에게 방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노래로써 잠을 물리친다.
반월성에 들어가서 길이 헷갈렸고,대릉원 지나면서도 좀 헛돌았다.군데 군데 배치되어 있는 안내인과 표지판의 위치가 적소인지 주최측이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볼 대목이다.
생각보다 경주 시냇길이 길고 지루했다.하기야 신라 천년의 유장한 역사를 도는 길이 그리 경박하게 끝날 일은 아니지 않는가.역사는 주어진 것,불변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고 해석하는 후손들에게 주어진 몫일진데,발이 닳도록 눈에 진물이 나도록 걷고 보아도 다함에 미치지 못하리라….
솜처럼 젖어드는 피로를 쫓으면서 스스로를 닥달하여 황성공원 결승점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9시 58분,14시간30분에 66키로를 완보하였다.제한시간인 12시에는 2시간이 남았다.열한두 시간대에 골인한 고수들엔 비할 바가 못되나,인도행 가입 5개월여의 루키(?)인 점을 감안하면 선방한 셈이다.완보증과 기념메달을 받고 돌아서 나오는데 저편 천막안에서 솔낭구대장님이 환하게 웃으면서 어서 오라 손짓하신다.
8. 마치면서
우연히 참가한 신라의 달밤 도보가 너무나 인상깊고 정겨워서 그 경험을 다른 분들과 공유하고픈 욕심, 인도행 사이트에 올라오는 후기들을 접하면서 언젠가는 나도 한번 써 봐야지 하는 희구가 합쳐져 후기 작성에 착수하였지만,일지타법에 머물고 있는 워드 실력 때문에 지지부진을 불면… 몇번을 그만 두고픈 충동을 겨우 이기고 여기까지 오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습니다.오랫만에,참으로 오랫만에 쓰기작업을 하다 보니 스스로의 감정통제가 절제되지 못한 점이 없쟎은 것 같고,주관적 기술에 치우친 면이 거슬릴 수도 있겠습니다.단지 저런 느낌, 표현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넘어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아름다운 신라의 달밤 도보에 대한 관심이 공유되고,향후 더 많은 분들이 경험해 보는데 일조할 수 있으면 저로선 다행입니다.
무지상태인 경주도보를 알게 해주고 강추하신 도마뱀님,고맙네요.소개받은 백일봉님,뵈어서 영광이었습니다.다음엔 저에게도 한수 가르침을 주십시요.초면에 긴 길을 동행하면서 한결 같은 페이스로 이끌어주신 아름다이님,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길 빕니다.호남방 참가자들 끝까지 챙기느라 늦게까지 고생하시던 시린님,상냥한 미소가 늘 신선합니다.라이트님,동트는 광야님,참 보기 좋으십데다.앞으로도 길 인연 이어 가십시다.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이끈 솔낭구대장님,덕운님,그리고 이름 모르는 도우미님들,고맙다는 인사말로는 부족을 느낍니다.강건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길 많이 열어 주십시오.
인도행 회원님들,모두 건강하시고 다음 길에서 만나십시다!!
|
첫댓글 아들이 신혼여행을 갔다가 오는 날이다. 새애기가 오니. 점심을 같이하자고 초청한 장모님이 아침을 드시고 곧장 오셨다. 점심시간을 지나 나타난 처남이 복장이 얄굿다. 산을 가는 것인지? 주말 농장에 가는 것인지? 처남댁 여고 2년생인 딸도 마찬가지다........허허참 경주 신라의 달밤 도보를 간다고 싱글벙글이다. 지난해는 2시간 지나 골인했다나 ...물론 매달을 걸지 못했고...처남은 나보다는 10살 아래다...올해는 시간내에 도착했는지 아직 물어보지도 않았다..송형 축하하네...대단한 용기고 아직도 젊음이 가득하네 그려. 66km를 시간내에 완보 하였다니...감동이네 그려..... 나도용기를 내어 볼까?????
동우친구, 지난번 며느리 들이는 날 보기 넘 좋더라. 부럽기까지 하던걸...사이트에 올리는 좋은 글들과 근황에 접하면서 인생을 관조하고 즐기는 친구의 모습을 나도 닮고 싶다네. 좋은 처남과 조카 두었네 그려. 언제 시간 나면 함께 걸어보세! 팔공산 산행도 좋고~~.
나라송, 참잘했다. 대단하다. 축하한다.
뭉치,참 오랫만일세. 등산 많이 하시고? 부산 해안길 코스가 그리 좋다는데 언제 함 같이 걸었으면 좋겠네(참고로 이번 일요일 15일 국제신문이 주관하는 부산 해안길 100리걷기 행사가 있으니 한번 참가해 보시게! 닠을 우리말로 하면서 끝자를 바꾸었다네..)
나라솔이 오신다면 언제나 환영이지, 참고,나는 100리 걷기는 안돼고 20리정도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