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역에서 갈아 타는,,
서울발 행 야간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보통 서너 시간을 역 내에서 기다려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역내에서 서성거리거나,,
갓 나온 신간 센데이 서울을 사서 보거나 또는 오래된 신문을 깔고 역 한쪽 편 구석에 앉아서는 퀘퀘한 냄새에도 아량곳 하지 않고 피곤한 몸을 추수리기 위해서 비몽사몽간으로 졸고 있었다,,
역 밖으로 나서면 금세 찬바람이 몰아 치면서 컴컴한 구석구석 골목길 마다 서성대는 그림자들이 순식간에 다가온다
"쉬었다 가세요,,"
40대 내지 50대 아주머니들이 조그만 가방을 하나씩들고 서는 은밀히 다가와 사람들을 끌어 당긴다,
대부분 사람들은 피곤해선지 쉬었다가 가는가 보다,,
우리도 쉬었다 갈까 !
돈이 부족하잖아,,아니 열차 시간이 얼마안 남았으니까, 안되겠어,,잠시후 우리는 서울발 행 야간 열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1975년 2월의 겨울, 빨간 가방과 파란가방을 멘 열다섯인 나와 창식이가 용산역에 도착한것은 새벽 3시 경 이었다,,성공적인 도착이었다,
우리는 서울로 오기 위해서 3개월전부터 준비 해온 터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무작정 걸었다, 이른 새벽인데도 수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다니고 있었다,,한참 걷고 있는데 뒤에서,,
야 !,
니들 어디서 올라왔어 ?,,, 고향이 어디야 ?
라는 소리가 들려 왔다.
청주에서 올라 왔는데,, 씨발 왜그래,, 창식이가 소리 쳤다,,.
창식이는 나보다 세살이 많았는데 내가 나이를 동갑이라고 속였기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함께 일할 때도 창식이는 친구들과 곧잘 싸우곤 했는데 대부분 부엌칼 두자루로 싸우기 때문에 별명이 쌍 칼 이었다,, 그는 나에게 이상하리 만치 잘해 주었다, 물론 나도 창식이가 싸울 때에는 거들어 준적이 많이 있었다. 지금의 우체국자리인 군청뒤에서 싸움이 자주 있었는데,,
대부분 공장에서 훔쳐온 연장과 제무시 트럭이나 농기구를 수리해주고 남은 신주라는 값비싼 물건의 쟁탈전이었다, 나는 자전거 체인을 파이프에 용접하여 허리에 차고 다니면서 창식이가 싸울 때면 도와 주곤 했었다.
야, 니들 잠깐 와 봐라,,!
골목길에서 초등학생만한 놈이 우리를 불렀다,
요새끼가,,!. 창식이가 소리치며 달려 가는데, 야 ! 안되,, 내가 제지 하면서 말했다,
임마!,,, "저기 갔다가는 맞어 죽는다"
얼마전에도 탄금대에서 초등학생이 까불어서 가보니까 내 나이 정도의 열 대여섯 놈들이 모여 있어서 도망치느라고 죽을뻔한 경험이 있어서 였다.
우리는 그놈을 무시하고 계속걸어 갔다,,그들은 우리를 계속 따라왔다. 안되겠다 쉽어 되도록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발길을 돌렸다, 배가 고팠다,,큰길을 벗어나 한쪽 구석에 붉은 빛이 보였다, 포장 마차였다,,
오뎅과 오뎅 국물로 배를 채웠다,, 푹 삶아진 무우였지만 국물을 떠 먹으면서 주인 몰래 오뎅국물 속에 있는 무우를 많이 건져 먹었다, 포장 마차에서 나서서 한참을 걸어 가는데,, 한놈이 뒤에서 부르면서 말했다.
야 !,, 니들 청주에서 올라 왔다면서 !. 청주 어디야 !
사직동에서 왔는데..!.창식이가 말 했다.
창식이는 충주에서 올라 왔다고 하면 촌놈 취급 할까봐 청주에서 왔다고 했단다, 그리고 작은집이 청주여서 사직동이라는 동내 이름만 알고 있었던 거였다,,
어쟀든,, 창식이가 청주 사직동에서 올라 왔다고 하는 바람에 우리는 청주 사람인 그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그는 15,000원을 주면 TV 만드는 공장에 취직 시켜 준다고 했다,,
나는 주머니에 1,500원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1,500원을 주면서 취직을 시켜주면 첫월급 받아서 갚는다고 했으나 그는거절하면서 말했다
야 !, 니들 갈데 없지,,
우리는 갈데도 없고 돈도 없었다,, 그는 우리를 북아현동 산 동내의 빵 만드는공장으로 데려갔다,
그는 주인 같이 생긴 사람과 한참을 애기 하더니 우리에게 여기서 먹고자면 된다고 했다,,
방 한칸에서 10명 정도가 같이 잤다,, 밤세워 빵을 만들어 인근 학교에 아침에 납품하는 일이었다
한밤중에 작업을 하는 도중에 우연히 주인집 방안을 보게 되었다,
주인 여자가 잠옷차림으로 있었다 ,,
당시 유행하던 스립으로된 잠옷이었기 때문에 속이 거의 들여다 보일 정도 였다..
처음보는 여자의 나체 비숫한 실물이었다,,
나는 그때 이후로,.,.
누구나 강간범이 될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착한 다음날 부터 본격적인 빵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나는 연탄개스에 중독되어서 쓰러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연탄불로 빵을 굽는데 연탄 화독에서 나오는 연탄개스에 중독된것이었다,, 세상이 모두 하얗게 변하더니 기억이 없었다..
며칠 후에 깨어보니 방안에 누워 잇었다,,병원에도 안갔었던 것 같았다,,
창식이 하고 나는 몰래 화장실에서 만나 이야기 했다.
"여기 있다간 아무래도 않되겠어 !.
둘이서 도망치기로 약속하면서 ,, 창식이는 나에게 말했다
야 !,, 부엌에 굴비 두줄하고 트랜치스터 라디오가 있는데,, 가지고 가서 팔아가지고 차비하자,,
하지만 나는 그것을 훔쳐서 나오다 보면 그들이 우리를 찾아 나설 것만 같아서 그냥 가자고 햇다,, 창식이도 내 속 뜻을 알고 우리는 새벽 직원들이 빵 굽는 틈을 타서 도망쳐 나왔다.
우리는 기차길만 따라서 걸었다,, 용산역으로 가기 위해서 였다,,
용산역에 도착한것은 오후 2시 경이었는데 용산역까지 가면서 땅만보거나 어디 가방치기 할 수 없나 하고 기회만 보면서 왔다,, 땅에 돈이 떨어진것이 없나 하는 생각이 정말 간절 했지만 땅에 떨어진 돈을 발견 하지는 못했다,, 가방 날치기는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해서 못했다,,
나는 누구나 도둑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 때에 조금이라도 허술하게 보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면 틀림없이 날치기를 했을 것이다,,
용산역에 도착하면서 어떻게 하면 집에 갈수 있을까 고민만 하던 중에 갑자기 기도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의 기도가 거의 생각이 나지 않았다 ..
3년만에 처음으로,,생각 나는 대로 주의기도와 성모송을 한번씩 했다,,
조치원 발 기차가 도착 했다는 역내 방송 소리가 들리고 나는 무작정 뛰었다,,
역 안으로,,창식이도 뛰었다,,
우리를 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왕,,,
첫댓글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용서 하지 않으면,, 내가 용서 하지 않은 상대방 보다 더 많은 죄와 고통을 가지게 돠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