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기념 답사기- 무작정 답사
월성중학교 2학년 6반 김민욱
오늘은 현충일. 돌아가신 순국선열들을 애도하기 위해서 제정된 날이다. 아파트에 보니 곳곳에 조기가 달려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달려서 많이 아쉬웠다.
현충일 날 경주에서는 충혼탑 앞에서 항상 행사를 한다. 오늘은 그 충혼탑 행사에 가보았다.
가보니 사람들로 북적 북적 거렸다. 거의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이셨다. 몇몇 분들은 가슴에 훈장을 달고 나오시기도 했다. 아마 6.25 또는 월남전에 참전하셔서 우리나라를 빛내주신 분이라 생각된다. 10시에 싸이렌이 울리고 1분간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군인들의 총쏘는 시범과 축사 등이 이어졌다. 행사에서는 공고 악단이 와서 연주도 하고 했다. 워낙에 멋져 보여서 카메라를 가져왔지만 이미 행사는 다 끝난 뒤여서 아쉬웠다. 하지만 헌화는 하고 갔다.

(충혼탑. 한분이 헌화를 하고 계시다.)

(충혼탑. 행사를 해서 그런지 위에 검은 천막을 쳤다.)

(충혼탑 앞의 수많은 자리들. 원래는 다 꽉 차있었다.)
주변에서는 각 동과 여러 면(행정구역)에서 음식을 주고 있었다. 황성동과 충효동은 잘 안보였다. 그렇게 충혼탑 행사는 끝났다.
쉬는 날이어서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외할머니댁에 가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김밥을 하나 사갔는데 이 김밥은 '교리김밥'으로 인터넷 상에서는 우리나라 3대김밥이라고 한다. 예전에 최부잣집의 노비 출신인 판돌레가 이 김밥집을 처음 열었고, 그 후 요석궁의 직원들이 줄을 길게 서며 김밥을 먹으면서 유명해 졌다고 한다. 뭐든지 음식점은 자리가 좋아야 한다. 그걸 시작으로 삼대째 김밥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교리 김밥집. 누추해 보여도 맛은 있다. 계란 지단을 많이 줘서 고소하다.)
10여분 후, 외할머니댁에 도착을 했다. 내남 노곡인데 들은 바로는 임진왜란 때 치열한 노곡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한가롭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외할머니댁 근방에 문화재가 있나 찾아 보다가 용문사에 유명한 불상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즉시 가려 했으나, 어머니는 피곤하시다며 안가셔서 결국 외할아버지께서 경운기로 태워다 주셨다. 난생 처음 경운기 답사는 그렇게 시작 되었다.

(외할아버지의 경운기. 최대 시속이 15km라고 하신다. 천장이 없어 조금 뜨거웠다.)

(경운기를 타고 불상으로. 타고가는건지, 실려가는건지.)

(외할머니댁인 노곡1리. 이제 노곡1리를 벗어나 불상이 있는 명계로 간다.)

(저 멀리 보이는 성부산. 봐도 봐도 신기한 모양의 산이다.)
멀리 성부산이 보인다. 성부산은 사투리로 솥뚜껑을 닮았다 하여 소두방산이라고도 부른다. 등산은 잘 모르겠다. 저기 등산해봤다는 소리를 들은적은 없었다. 그래도 저기 움푹 파인곳은 한번 가보고 싶다. 성부산은 또 신라시대 유리가마터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노곡1리를 지나 노곡2리다. 역시 경운기는 느려서 많이 못간다. 주변 차들이 먼지를 날리며 지나간다. 가는 걸에서도 여러 유적들이 보인다. 지금 지나는 곳은 마석산인데 외할아버지께서는 거의 남산과 하나라고 하신다. 여기에는 정씨의 시조묘, 박상진 의사묘, 마석산 삼층석탑 등 드문드문 유적이 보인다. 하지만 길 가에서 본 터라 제대로 보진 못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한번 둘러 보고 싶다.

(경주 정씨의 시조묘. 홍살문이 보인다.)

(고헌 박상진 의사의 묘. 오늘 처음 안 분이시다. 우연치 않게 현충일 기념?)
그로부터 1시간을 더 달려서 명계에 도착했고 얼마 안가 용문사 입구가 보였다. 경기도의 용문사랑 이름은 똑같았지만 규모는 훨씬 작았다. 그런데 알아 본 것과는 달리 산 위에 있었다. 그리고 길도 군데군데 파여져서 더이상 경운기가 올라갈 수 없었다. 결국 의도치 않은 등산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농사로 단련하신 외할아버지 께서도 나이가 칠순이 넘으셔서 등산은 많이 힘들어 보이셨다. 중간에 내려가자고 했으나 끝까지 가자고 하셨다. 길은 차를 들어 오게 하려고 약간 닦아 놓은 흔적은 있어서 평탄 했지만 중간 중간 10분 간격으로 쉬어가며 올라갔다. 왠지 외할아버지께 죄송했다.
한 30분 후, 드디어 절이 보인다. 그런데 절 입구에는 자연이 만든 거대한 돌문이 있었다. 절은 작지만 이런 멋진 것을 품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돌문이 만들어진 이유. 이 바위에서 쪼개졌는데 절묘하게 걸쳐져 문을 만들었다.)

(거대한 돌문. 정말 절묘하게 걸쳐져 있다. 이 돌문이 용문사의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는 듯 했다.)

(돌문 뒤의 또 다른 공간. 저런 곳만 보면 꼭 불상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돌문을 지나 계단을 더 올라가니 엄청 부실해 보이는 축대가 나탔다. 아마 절벽에 짓다보니 이렇게 된것 같았다. 절에는 고양이가 두마리 살고 있었는데, 둘다 생김세가 똑같았다. 외할아버지를 엄청 잘 따랐다. 획실히 사람손에 길러진 고양이 같았다. 그 고양이는 우리가 불상을 보는 내내 졸졸 따라다녔다.

(절. 엉성하게 지은 티가 나다. 사람이 지었는게 방금 그 자연의 돌문보다 훨신 못한것 같다.)

(고양이. 외할아버지한테 붙어서 떨어질려 하지를 않는다. 워낙 사람이 뜸해서 그런가?)

(고양이는 두마리. 근데 오른쪽 고양이가 앉아있는 곳의 물에서 엄청난 악취가 났다.)
절 위에 올라가니 법당 하나와 불상 하나만 있었다. 스님께서는 어디 외출이라도 하셨는지 계시지 않았다. 나무판자들은 걸을 때 마다 삐거덕 삐거덕 소리가 났다. 조금 더 튼튼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불상은 절벽에 조각되어 있는 마애불인데 솜씨가 상당했다. 이 곳, 계속 날 놀라게 하고 있다. 순백색 자태와 잘생긴 얼굴, 남산의 부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얼굴과 손이 너무 커서 비례는 잘 맞지 않았다. 그런데 이 불상은 미완성 불상이라는 데에서 특이한 점이 나타난다. 얼굴은 그려져 있으나 옷을 아직 그리지 않은것에서 그런 티가 난다. 완성했다면 더 높은 가치를 지녔을 것이다. 높이는 4.6m로 장육존상의 높이와 같다. 학자들은 처음부터 장육존상을 염두해 두고 만들었을 거라고 한다. 황룡사에도 이런 장육존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직접 보니 실로 어마 어마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배는 겉둘레만 보이고 자세히 조각하지는 않았다. 부처님 근방에는 경치가 좋았다. 동네가 다 보였고, 특히 절벽에서 보니 그 경치는 가히 끝내 주었다.

(법당. 부실하지만 나무들을 배려한 구조가 멋지다.)

(마석산 석불입상. 얼굴쪽이 특히 하얗다. 스님께서 닦으시는지 아니면 원래 이런지.)

(불상 앞 소나무. 역시 부처님 앞에서는 소나무도 저절로 고개를 숙인다.)

(불상에서 바라본 경치. 명계리가 한눈에 다 보인다.)

(그리 높은 것 같지는 않은데 남산 일대도 보인다.)

(왼쪽에 있는 여러 산들. 저 산들의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

(절벽 끝에서의 명상. 근처에 기암괴석들이 많았다. 정말 때묻지 않은 산 같았다.)
불상 관람을 마치고 내려간다. 내려가는건 빨랐다. 다시 1시간 동안 경운기를 타고 외할머니댁으로 향했다. 그렇게 여러가지 반전을 준 마석산 불상을 떠났다.

(불상이 있는 절. 입구와 달리 정말 허름했다.)
가는 길에 특이한걸 보았는데 바로 임실 치즈체험장이었다. 이런 시골 동네에 이런게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경주의 숨은 보물 같았다. 아마도 이런 곳들은 남산의 유명세에 묻혀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 임실 치즈체험장은 꽤 많은 아이들이 체험을 하고 있었다. 이제 굳이 멀리 가지 않고 여기서 쉽게 체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처음 본 곳. 폐교를 활용해서 지은것 같았다. 버스도 있고 사람들은 많아 보였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나중에 집에 돌아간 뒤 들은 얘기지만 외할아버지께서 완전히 녹초가 되셔서 쓰러지다 시피 계신다고 했다. 역시 오늘은 너무 무리하신 것 같았다. 다음부터는 등산같은건 개인답사에서 하지 말아야 겠다. 아무튼 현충일! 정말 알차게 보낸 것 같았다.
-일정- (2012. 6. 6. 水)
황성공원 충혼탑→ 교리김밥집→ 노곡 외할머니댁→ 노곡 2리→ 용문사 → 마석산 석불입상→→ 노곡 외할머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