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지락 반갑습니다. ^^
저는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98학번 이며,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3학년에 재학 중인 전승학입니다. 꿈지락 활동은 2005년 상반기부터 시작했구요. 신학대학원 입학 전 2007년 상반기 까지 주로 활동 했었습니다. 오랜만에 꿈지락 카페에도 들러보고 게시판에 글도 남기게 되었습니다.
지난 북한산 가을 산행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그날 함께 산에 올랐던 세진, 다미, 대익, 성희, 태인 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짧은 만남 이었지만 무척 즐겁고 기뻤습니다. 그때 세진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 중에 제가 공부하고 있는 내용들과 현재 삶에 대한 이야기를 구실로 사회사업을 논해 보면 어떨까 하는 착상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용기를 내어 이렇게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기독교(장로교)인 이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지만 꿈지락 게시판에 종교적인 글을 남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앞서 밝혔듯이 제가 공부하면서 얻은 유익과 사회사업적 생각과 의미를 중심으로 나누려고 합니다. 현재 사회사업가라는 이름으로 실천현장에서 직접 일하지는 않지만 교회 유년부(초등학교 1~3학년) 교육전도사로서 어린이들과 교우들을 만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사회사업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자, 이제 그럼 슬슬 이야기를 꺼내 보겠습니다.
오늘 제가 나눌 내용은 이번학기 제가 학교에서 듣는 수업 "영국종교개혁과 청교도운동" 과목에서 추천 받은 책의 내용입니다. 책 제목은 '존 낙스의 생애와 사상'(스탠포드 리이드 지음, 서영일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입니다. 그 책에서 밑줄 긋고 고민하며 생각한 내용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존 낙스(1512년~1572년)는 영국(정확히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입니다. 그는 16세기 종교개혁자로 유명한 루터(독일), 칼빈(스위스)과 함께 기독교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사상에 사회복지 이념이 들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주목하고 나누려는 것은 바로 이것이지요. 그럼 지금부터 제가 책을 읽다가 밑줄 긋고 고민한 흔적을 말씀 드립니다.
"낙스가 깊이 관련되었던 종교개혁의 정치적 중요성은 국가 내에서 교회가 차지하고 있던 위치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다. 1500년에서 1560년 사이에 벌어진 각종 사건들을 통해 교회는 특히 그 부유한 재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사회적 요소로서 등장한다. 교회는 전 국토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국왕의 연간 수입이 겨우 17,000 파운드 였을때, 교회가 거둬들인 수입은 1년에 300,000파운드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부는 귀족들과 부유한 상인들에게 부여한 봉토와, 일부는 십일조 및 기타 종교세의 형식으로 거두어진 수입들을 놓고 탐욕을 금치 못하였으며, 또 다른 이들은 증오를 불태우고 있었다.'(책 18~19쪽)
-> 돈과 권력을 가진 교회는 결국 타락 할 수밖에 없다. 종교개혁의 주요한 요인은 당시 교회의 타락이다. 교황을 중심으로 한 중세 가톨릭교회는 대형 건물을 짓느라 면죄부를 판매 했으며 값싼 구원을 전파 하였다.
"스코틀랜드에는 당시 1,000개가 넘는 교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900개 이상은 수도원, 대성당, 혹은 대학에 부속된 교회로서 수입만을 거둬들였을 뿐, 영혼을 구제하고 돌보는 목회는 별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굶주려서 영양실조에 빠져있게 만들었다." (21쪽)
-> 오늘날 한국교회의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다. 수 많은 교회가 있지만 수입(헌금)만 거둬들이고 있다. 수입의 대부분을 자신의 교회를 늘리는 데 사용하고 있다. 내가 속해 있는 교회는 지역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주기도 하고, 장애인 자립시설에 후원도 하고 있는데 이는 잘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명확하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다.
"또한 낙스는 언제나 빈곤 구제 문제에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항상 교인들에게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설교를 멈추지 않았다. 낙스의 초기 저술 가운데에는 특히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헌금을 거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난 바 있었다. 따라서 개혁서는 주장하기를, 빈자들은 1/10세를 면제 받아야 하며, 집사들은 여유가 있는 이들로부터 1년에 4번씩 구제 헌금을 걷어야 한다고 하였다. 낙스 및 그의 동료들은 빈곤이 단순히 게으름과 죄악의 결과라고 보지는 않았다. 이들은 가난한 자들은 대부분 스스로의 비참한 곤경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믿었다. " (책 249쪽)
-> 낙스의 사회복지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글 이다. 낙스는 교회 지도자 로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함을 교우들에게 강조하였다. 신구약성경에는 사회적 약자(고아, 과부, 나그네,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낙스는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합리적인 구제책을 만든 것이다. 그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세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의 부담을 적게하는 대신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여 구제 헌금을 내도록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런한 계획들을 수행하기 위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토지들은 개혁교회에 양도되어야 한다고 치리서는 주장하였다. 전국 부동산의 50% 이상 및 각종 헌금과 세금의 명목으로 교회에서 거둬들이는 금액은 연간 300,000파운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었다. 만약 이 돈들이 진정 종교적, 사회적 목적을 위해 제대로 쓰여지기만 한다면 진정 막대한 금액이었다. 이 당시 왕실의 연간 예산이 겨우 17,000파운드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정부 측이 왜 이러한 제안을 거부할 수 밖에 없었는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교회의 세속화(돈과 권력으로 인한)가 종교개혁을 촉진 했다. 낙스는 사회의 불의를 그냥 지켜 보지 않고 용기를 내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위와 같은 실제적인 구제책(사회사업 방법)을 제시하였다. 물론 이 제안은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으나 1601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구빈법'을 만드는 사상적 토대가 된다. 우리 한국교회도 어쩌면 당시 스코틀랜드 가톨릭교회의 재산 만큼의 거대한 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사회적 약자들을 현실적으로 돕기 위한 '방법' 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속한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실천 할 수 있는 무엇일까? 이런 사상을 배웠다면 이제 현실적으로 실천해야 할 일만 남았다.
영국의 종교 개혁가 존 낙스. 저는 그분을 통해서 위대한 사회사업의 정신을 배웁니다. 낙스는 시대의 아픔을 뼈저리게 고민하여 위대한 사상을 만든 사상가 였습니다. 그의 사상 속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려는 노력이 스며 있었습니다. 낙스가 활동했던 16세기와 500년이 흐른 지금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낙스의 삶과 사상을 통해서 저의 향후 목회 비전을 생각합니다.
2010년 10월 10일 저녁 적음.
첫댓글 꿈지락 게시판에 전승학 선생이 올린 글을 옮겼습니다.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여 나누고, 그 글을 소재로 다시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공부하는 이의 모범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