妙莊嚴王本事品(묘장엄왕본사품) 第二十七
8. 묘장엄왕은 사라수왕불(娑羅樹王佛)이 되리라
오늘은 지난시간에 이어서 ‘묘장엄왕은 사라수왕불(娑羅樹王佛)이 되리라’ 하는
그 부분부터 할 차례입니다.
이게 묘장엄왕본사품(妙莊嚴王本事品)이라고 하는 그 과거생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저 앞에서 약왕보살본사품, 묘음보살품, 관세음보살보문품,
그 다음에 묘장엄왕본사품 이런 품들은 모두가 법화행자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은 되겠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법화행자로써의 그런 삶 중에 조금 특이한 것이
외도를 신봉하는 아버지를 신통으로써 교화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이것이 참 큰 문제인데
여기서도 불교를 믿는 어머니와 그리고 두 아들, 이교도인 아버지
이러한 관계에서 그것을 아주 조화롭게 잘 교화해 나가는 이야기가 됩니다.
어떤 종교인들 보면 불교를 믿는다거나 스님들 같이 두드러진 복장을 보면
너무 적대시한다고나 할까 그런 사탄을 보는듯한 그런 느낌을 갖고 대하는
그런 종교인들도 간혹 있어요.
그런데 불자들은 그렇지는 않죠.
다 이해하고 감싸주고 인정해주고 그렇습니다.
다종교 사회에서 여러 종교를 우리는 수용하는 입장인데
이런 종교를 믿을 수도 있고 저런 종교를 믿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달라이라마님의 말씀을 한 가지 좋은 것은
카톨릭에 가서 강의를 하시면서 이교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렇게 질문을 던졌는데
수 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근기를 생각 한다면 지금보다도 더 종교가 많아야 된다.
어찌 좀 역설적으로 표현 하자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종교 한 가지씩 있어야 할 정도로
그렇게 사람들은 다양하고 또 그 다양한 개성을 우리는 이해하고 인정해줄 줄 아는
그런 마음가짐 그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참으로 진정한 종교인이 아닐까 이런 말씀을 했어요.
그 말씀을 늘 내가 잊지 못하고
인간의 다종다양한 개성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수용하고
그 근기를 맞춰서 포용해주는 그런 마음이 참 훌륭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정말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되겠고
꼭 바른 법으로 교화를 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있다면
정말 희생을 치루고 여러 가지 좋은 방법을 강구해서 교화를 해야 되는 거죠.
그런 희생 없이 그냥 말로만 ‘우리종교 믿어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써가면서 이도교를 교화 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이해 해줘야 된다는 거죠.
설사 부부간이라도 그렇습니다.
만약에 다른 종교를 각각 믿는다면 각각 그렇게 믿고
가족관계는 가족관계이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이해해주는 것이 바람직한데
꼭 나와 같은 종교를 믿지 아니 하면 결혼을 할 수가 없다.
또 가족이 될 수가 없다 하는 그런 생각은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친구들 사이에 모여서도 나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해야만 내가 친구로 인정하겠다.
조금 비약시켜서 이야기 하자면 그런 말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습니까.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다른 얼굴을 갖고 다른 모습을 가지고 다른 생활을 하고
그러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죠.
산에 똑같은 나무 똑같은 키 똑 같은 굵기가 꽉 차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산 볼게 뭐 있겠습니까.
각각 다른 나무 다른 크기 다른 방향으로 뻗고
다른 시기에 잎이 돋고 다른 시기에 단풍이 들고
다른 시기에 낙엽이 지고 하는 그런 모습이 아름다운 모습이고
참으로 정말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기 ‘묘장엄왕은 사라수왕불(娑羅樹王佛)이 되리라’하는 부처님의 이 수기는
‘외도들 까지도 부처님이다’ 외도들도 인정하는 이런 마음에 까지 이른 거죠.
이교도도 부처님이다.
저 앞에 불교 만대의 원수로 생각하는 제바달다도 부처님이라고 하였고
그 외에 수많은 이들을 수기를 해서
전부 인간의 고귀하고 위대한 그본성을 부처님으로 인정하는
그런 말씀이 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종교를 믿어도
역시 그 인간의 고귀하고 위대한 참으로 가치 있는 그 본성은
정말 가치 그대로기 때문에
역시 부처님으로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는 그런 의미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때 운뢰음수왕화지 부처님께서 사부대중에게 말씀하셨느니라.
'그대들은 이 묘장엄왕이 내 앞에 합장하고 서있는 것을 보는가.
이 왕이 나의 법 가운데서 비구가 되어
부지런히 수행하면서 부처님의 도법(道法)을 돕다가
당래(當來)에 성불하여 이름을 사라수왕불(娑羅樹王佛)이라 하리라.
이렇게 이교도에게 수기를 주는 장면입니다.
아주 근사하죠.
이런 장면, 이게 불법의 위대함이고 부처님의 넓으신 자비고
또 그것은 인간에 대한 본성을 바로 이해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과 가치를 이해하면 바로 이렇게 나오는 거죠.
인간의 존엄한 본성과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면
모두가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게 하는데
무슨 옷을 입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을 차별 할 수 없다는 거죠.
사실 조금만 우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보면 당연한 이치고
그렇게 조화롭고 편안한 길이 있는데
그저 갈등하고 경계하고 나와 같은 어떤 종교 단체에 나가지 않는다는 그것 하나만 가지고
껄끄럽게 생각하고 갈등을 잠재우지 못하는 그런 자세는
잘 소화하고 생각해야 할 점이다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국토의 이름은 대광(大光)이요, 겁의 이름은 대고왕(大高王)이니라.
그 사라수왕불에게는 한량없는 보살대중과 한량없는 성문이 있으며
국토는 평평하고 반듯하리니, 공덕이 이러하니라.
9. 왕(王)이 출가하여 수행하다
'왕(王)이 출가하여 수행하다'
이게 두 아들이 신통을 보여서 거기서 마음이 돌아서고
급기야는 왕이 출가해서 수행하는데 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그 왕이 즉시 나라 일을 아우에게 맡기고,
부인과 두 아들과 여러 권속들과 함께 불법(佛法)에 출가(出家)하여 도를 닦았느니라.
왕이 출가하고 나서 팔만 사천년 동안 부지런히 정진하여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수행하다가
그 뒤에 일체정공덕장엄삼매(一切淨功德莊嚴三昧)를 얻었느니라.
'묘법연화경을 수행했다' 이것은 불교를 수행했다,
불교 최고의 길을 수행했다, 더 이상 나아갈 때 없는
말하자면 인불사상을 몸으로 실천했다,
사람이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그 사상을 몸으로 실천했다,
그게 묘법연화경을 수행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이렇게 해놓고 보면 막연하죠.
사실은 묘법연화경을 수행했다 이렇게 하는 것 어떻게 하는 게 수행하는 것인가?
서사 수지 독송 위인 연설 이게 물론 좋은 수행입니다.
또 그 핵심은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인간의 행복은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그 한가지 길 밖에 없다고 하는 그것입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선지식(善知識)이다 이랬어요.
불교의 정신에서는 선지식이 연령, 지혜의 차이 없이
누구든지 나에게 깨우침을 주는 사람이라면,
또 깨우침을 주는 그런 가르침이라면 전부가 스승이고 나의 선지식이다,
이렇게 되어야죠.
그러한 자세를 가질 줄 아는 게 또한 불자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이야기라도 귀를 기우려서 유심히 들어볼 줄 아는
그런 그 마음가짐, 이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옛날에 그런 말이 있죠.
남을 충고 하는 사람보다 충고를 듣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뛰어나다 그런 말이 있죠.
내가 어릴 때 그 말 듣고는 아주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불교에는 그런 말이 있죠.
"입은 하나고 귀가 둘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말은 듣는 것보다 반 밖에 하지 말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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