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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하나님의 것이냐, 가이사의 것이냐?
(마태복음 22:15-22)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셋돈을 내게 보여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하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유대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으로부터 약점을 잡아내어 예수님을 쓰러뜨리려고 하였다. 그래서 고난 주간에 네 종류의 사람들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마치 유월절 어린양이 택함 받은 후 나흘 동안 조사를 받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 첫째 사건은 성전 청결 사건 직후에 있었다. 곧 백성의 장로들이 와서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던 일이다. 그때에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으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라고 반문하심으로 그들을 물리치셨다.
둘째 시험관은 오늘의 본문인 이 헤롯당이었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만일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이는 국가의 법을 어기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세금을 바치라고 한다면, 백성들이 모두 로마를 미워하고 있는데 오히려 로마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두둔하는 것이 되므로 백성들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움 가운데 계셨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들의 생각일 따름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답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본다. 무엇이라고 대답하셨는가? 먼저 저들의 악함을 꾸짖으셨다.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그리고는 말씀하시기를 “셋돈을 내게 보여라.”하셨더니, 그들이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다. 예수님은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라고 물으셨다. 그들이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라고 하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라고 하셨다.
“지혜로운 대답이다.”라고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하고, 또한 우리 자신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은 돈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의 문제다. 곧 우리가 세상에 속한 것인가, 하늘에 속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고, 우리가 인간에게 속하였나, 하나님께 속하였나를 깊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데에 있다.
우리의 육신은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에 속하여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미국에서 살기를 원하고 있다. 북한을 탈출한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나 러시아나 몽골로 도망가서 숨어서 살고 있다. 그들은 중국이나 러시아의 시민권만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래야 마음 놓고 살 수 있고, 다른 나라에 여행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나라의 시민권을 받지 못하면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나라의 시민권을 원하는가? 이 세상은 더 이상 소망이 없다. 우리도 머지않아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곳은 천국이나 지옥이다. 지금 이 시간이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니까 이 세상 나라의 시민권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그 나라 사람으로서의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게 된다.
1. 가이사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대답에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을 말씀하시는 기이함이 있다. 일찍이 니고데모가 찾아왔을 때에도 그는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어떤 비책이 있는가를 알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으로 그를 당황하게 만드셨다. 니고데모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간음 중에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 대한 재판도 그렇다. 이 여인을 어떻게 처벌해야 하겠느냐고 사방에서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용히 땅에다 글을 쓰셨다. 그들의 독촉이 빗발치자 조용히 일어나셔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라고 하셨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어떤 권세로 한다고만 대답하면 되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라고 해도, 사람으로부터라고 해도 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엉뚱하게도 오히려 “세례 요한의 권세가 어디로부터 온 것이냐?”라고 반문하셨다. 물론 그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헤롯당원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가?”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는 ‘예’나 ‘아니오’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만 하시지 않고, 기이하게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는 말씀도 더 하셨다. 이런 말씀들에 하나님의 지혜가 번쩍인다.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닫자. 이런 말씀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일깨워주는가?
1) 인간의 얄팍한 수단으로 의인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짓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모든 일에는 동기가 순수해야 하고, 내용이 진실해야 한다. 악한 의도와 거짓된 내용으로 의인을 대적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악한 마음으로 의인을 대적하면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만 받게 될 뿐이다.
2) 가이사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앞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심을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도 역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인간적 방법만 찾지 말고 먼저 하나님 앞에서 변화 받은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경우도 그렇다. 자기들의 영광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성전을 장사치들의 소굴로, 또는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놓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인가? 하나님의 집을 먼저 거룩하게 해야 한다. 그뿐인가? 하나님의 성전이 된 우리의 몸도 거룩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3) 가이사의 형상과 글만 보지 말고,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형상과 글도 볼 수 있어야 함을 일깨워주신다. 본래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그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것이 되면, 우리가 가진 돈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형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살면, 결국은 마귀의 형상이 되어 마귀를 좋게 하는 일들을 하지 않겠는가?
2.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의 증거는 무엇인가?
사람을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는 돈이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하여 밤낮으로 고생하며 일을 한다. 돈을 안 준다면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겠는가? 사람들은 돈만 많이 준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감수하고 돈을 벌려고 한다.
1) 누구의 형상이 있는가?
① 일반적으로 돈에는 왕이나 대통령의 그림이 있다. 정치적 통치자의 형상을 만들어 넣은 것이다. 미국 돈에도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분들의 초상화를 넣었다. 그분들이 지금 생존해 있는 분은 아니지만, 그들이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이끌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기리기 위해 돈에 그들의 형상을 넣은 것이다. 한국 돈에도 5만원권이 나오기 전에 가장 큰 단위인 10,000원권 지폐에는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인 세종대왕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는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쓰고 누구나 쉽게 쓰는 1불짜리에 그려져 있다. 이런 것에서도 미국인과 한국인의 문화와 의식의 차이가 나타나 있지 않은가?
② 미국 돈을 쓰는 사람은 미국 사람이요, 미국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다. 한국 사람은 한국돈을 쓴다. 그들은 한국 정부의 통치를 받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돈을 쓰는 사람은 국적이 어디이고, 누구의 통치를 받을까? 우리가 쓰는 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에 우리는 돈을 바르게 쓰는 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③ 세상 사람의 형상이 있으면 세상의 것이고,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면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세상의 돈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넣은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령한 눈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2) 누구의 글이 쓰여 있는가?
① 모든 돈에는 그 돈을 만들어 쓰는 나라의 글이 쓰여 있다. 또한 그 돈이 얼마짜리인지를 기록해 놓았다. 그러므로 만일 미국 글이 쓰였으면 미국돈이고, 한국글이 쓰였으면 한국돈이다.
② 마찬가지로 사람의 글이 쓰였으면 사람의 것이고, 하나님의 글이 쓰였으면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글은 쉽게 구별되고 알 수 있지만, 하나님의 글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미국 돈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In God We Trust)라는 글이 씌어 있다. 이것이 미국의 건국 정신이고, 돈을 쓰는 정신이다.
③ 글이 쓰였다는 말은 또한 어느 나라의 말을 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당신이 한국말을 하면 한국인이다. 미국말을 하면 미국인이다. 우리는 미국말을 한 마디도 못해도 미국에서 살 수 있다. 그러나 천국말을 못하면 천국에서 살지 못한다. 비록 이 세상에 살지라도 우리가 천국말을 열심히 배워야 한다. 항상 그 나라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 그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3) 그 돈을 어디에 쓰느냐? - 이것은 충성의 문제다.
① 돈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돈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에 쓸 수도 있고, 살리는 일에 쓸 수도 있다. 세상 물건을 사는 데에 쓸 수도 있고, 천국을 사는 데 쓸 수도 있다. 이것이 문제다. 그 사용처에 따라서 그 돈의 방향이 결정되고, 그 돈의 주인이 누구인가가 결정된다.
② 돈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 무엇을 위해서 얼마나 쓰는가? 그 사람의 인격과 사상과 그 사람의 삶의 목표와 방향이 나타난다.
③ 돈은 우리 믿음의 척도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돈도 집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갔다. 또한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그 후에 따르라고 하셨다. 이 말은 천국을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돈으로 밭을 샀다. 그는 천국을 산 것이다.
3. 두 가지의 형상과 글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 가이사의 것은 우리 육신의 눈에 보이는 형상과 글이다.
① 가이사의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쓰고 다 좋아하는 돈에 기록되어 있다. 돈을 좋아할수록 가이사의 글과 형상을 좋아하고, 따라서 가이사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된다.
② 그 나라 사람들이 다 보고 읽을 수 있도록 그 나라의 글자로 기록하였다. 곧 로마의 글자로 기록하였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 글자를 읽을 수 있어야 그 돈을 쓰게 된다. 로마의 글자만 익히면 그는 로마에만 속한 사람이 된다. 하늘을 쳐다볼 줄 모르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불쌍한가!
③ 또한 돈에 가이사의 형상을 그려넣은 것은 가이사를 존경하고, 그에게 충성하게 하려는 것이다. 자꾸 보면 사랑이 생긴다. 존경이 생긴다. 나아가 숭배하게 된다. 예배의 대상이 된다.
2) 하나님의 것은 우리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형상과 글이다.
①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의 마음에 새겨 넣으셨다. 그러므로 자기의 마음을 자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된다. 이왕이면 하루에 한 번만 보지 말고, 10번이고, 100번이고 자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형상이 더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② 또한 하나님의 글을 우리 마음에 기록하셨다. 대관절 그 글자가 어떻게 생겼을까? 세상 글자도 배우기 어려운데, 또 어느 시간에 하늘의 글자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세상 나라들의 글자는 배워야 하지만, 천국 글자는 배우지 않고도 알게 된다. 마음을 깨끗하게만 하면 하늘의 글자는 저절로 깨우치게 된다.
③ 신기한 일이다. 이런 신비가 이루어질 때에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이 된다. 그 형상과 그 글자가 너무도 신기하고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자꾸만 더 읽어보고 싶고, 더욱 가까이하여 만나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3) 사람 중에도 가이사의 것이 있고, 하나님의 것이 있다.
①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나누어진다. 누구의 말을 듣느냐, 누구를 위해서 사느냐에 따라서 나누어진다.
② 또한 누구의 형상이 이루어졌느냐를 보아 알 수 있다. 마귀의 형상이 이루어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보시니 그들은 마귀의 형상을 가진 자들이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 않았는가?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가득하다.
③ 누구의 글이 쓰여 있느냐를 보아 알 수 있다. 당신 마음에 하나님의 글이 쓰여 있어야 한다.
4.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한다.
1) 하나님의 것이 되면 어떤 복을 받을까?
①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천국에서 파송되어 나온 사신들이다. 머지않아 우리의 임무를 마치면 본국에 돌아갈 것이다.
② 이 세상이 함부로 대적하지 못한다. 세상이 훔쳐갈 수도 없다.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요 10:29). 이 세상이 그들의 생명을 빼앗아갈 수 없다.
③ 이 세상에서도 참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천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롬 14:17). 그러니까 성도들의 마음에 있는 천국을 아무도 빼앗을 수가 없는 것이다.
2) 왜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할까?
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고, 주인이 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주인도 역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것이 되면 영원한 형벌과 저주가 기다릴 뿐이다.
② 그리스도께서 고귀한 피를 흘려 우리를 사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원래 죄로 인하여 마귀의 종이 되었고, 마귀의 말만 들으면서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 핏값으로 우리를 사셔서 천국의 백성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다(롬 14:8).
③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어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을 주셨기 때문이다.
3) 누가 하나님의 것일까? 세상 만물이 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요, 따라서 하나님의 것이 아닌가! 욥기 41:11에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라고 하였고, 시편 50:10-12에는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학개 2:8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별히 하나님이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사람들이 있다.
① 초태생이다. 출애급기 13:2에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려라. 이는 내 것이니라.”라고 하셨고, 34:19에서는 “초태생은 다 내 것이며, 네 가축의 수컷 처음 난 우양도 다 그러하다.”라고 말씀하셨다.
② 특별히 택함 받은 사람이다. 이사야 43:1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라고 하신다.
③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다. 예레미야 31:33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라고 하셨고, 에스겔 11:20에서는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라고 약속하셨다.
④ 연단을 통하여 세상 줄을 끊고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이다. 스가랴 13:9이다.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4) 이 모든 조건을 가장 잘 요약 정리한 말씀이 오늘의 본문의 예수님 말씀이다. 곧
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이렇게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사라지게 되자, 인간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 후로 인류는 천국의 백성이 되지 못하고 늘 죄 가운데 살면서 마귀를 따르는 마귀의 소속이요, 마귀의 종들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이시며, 그 형상의 본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들 마음에 회복시켜 주신다.
② 하나님의 글을 새겨 넣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한다. 하나님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③ 하나님께 바쳐져야 한다. 우리들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이 쓰시도록 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우리는 평생 누구에겐가 쓰임을 받는다. 한국의 어느 유명한 배우가 죽었는데, 그의 장례식에서 그를 추모하는 사람의 말 가운데 지금도 내가 기억하는 말이 있다. “당신은 평생 남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당신 자신의 삶을 사시구려!”라는 말이었다. 배우만이 아니다. 우리도 다 남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이젠 우리를 주님께 바쳐 참 나의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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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 가이사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2.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의 증거는 무엇인가?
3. 두 가지의 형상과 글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것이 되어서 저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찬송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