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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교회(계 3:1-6)
할렐루야!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멈추지 않는 코로나 19, 태풍의 북상 등 복잡한 여러 가지 사회적인 이유 속에서, 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가운데, 다섯 번째 교회인 사데 교회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데”라는 곳은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사데는 고도 450m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지형적으로, 적이 쉽게 침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적으로부터 성을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데를 비롯한 리디아 왕국은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하였다가, 훗날, 다시 로마에 점령당하여, 로마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사데는 무역이 발달하고, 일찍부터 양털 가공업과 염색 공업이 시작되어, 경제적으로 큰 부를 축적한 도시였습니다. 사데에는 화려한 궁전이 있었고, 경제적인 부로 인하여,
그들에게는 “내가 최고다”라는 교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벨레”라는 부도덕한 여신상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 사데라는 도시의 특성을 사데 교회 성도들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출석한다고 하지만, “명목상 성도”에 불과했습니다. 이름뿐인 성도였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갖추고 있었을 뿐, 경건의 능력은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죽어 있는 신앙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데 교회는 하나님을 위하여 큰 일을 감당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데 교회 성도들은 과거의 성취와 영광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들이 다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 그 신앙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에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에는 냉담하면서도, 자꾸만 과거의 화려했던 신앙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날 화려했던 신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작은 헌신과 순종이 중요합니다.
동물원에 가면, 호랑이, 사자, 독수리, 그리고 토끼, 염소 등 살아 있는 동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에 가면,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볼 수 있지만, 모두 다 죽은 동물들입니다. 화려하고 멋진 독수리도, 무서운 호랑이도 박제되어 있습니다.
동물원에는 생명력이 있지만, 박물관에는 생명력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동물원에서는 작은 짐승의 움직임에도 시선이 따라가고, 계속 머물지만, 박물관에서는 힘있는 호랑이일지라도, “아 호랑이다”라고 그냥 스쳐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움직임이 전혀 없는 박제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살아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성장하고, 성숙해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박물관에 박제되어 있는 동물들처럼, 전혀 변화가 없이 옛날의 화려함만 자랑하는 박제된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사데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죽은 신앙이었다는 것입니다.
박제되어 있는 것처럼,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변화가 없었습니다.
주일이면, 교회에 나와, 찬송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매주일, 어떤 동일한 의식을 또 한번 행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하늘에 미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그 찬양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립니다. 그러나, 그 예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물이 아니라, 형식적인 의무감으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뿌려져, 싹이 나고, 열매를 맺기 보다는 한 귀에 들렸다가, 다른 한 귀로 금방 빠져 나가 버렸습니다.
살아 있을 때, 성장이 있는데, 박제되어 있기에, 성장이 전혀 없을뿐더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히려, 박제된 것이 뜯겨져 나가, 볼품없는 모습만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죽은 신앙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무리 멋지고 화려하다 할지라도, 박제된 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날마다,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살아 있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신앙, 생명력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아멘.
사도 요한에게, “사대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도 요한은 그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표현했는데, “하나님의 영”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등장하는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일곱 영”이란 “완전하신 성령님”이라는 뜻입니다.
“일곱 별”은 요한계시록 1:20절에 기록된 대로,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를 의미합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목회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하신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시고, 일곱 교회의 목회자를 붙들고 계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주인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와 모든 목회자와 모든 성도들의 주인이 되십니다. 모든 만물의 주가 되십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신 예수님께서 모든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붙들고 계십니다.
교회의 주인되시는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한 마디로, “너의 믿음은 죽었다”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지만, 진짜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짜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지만, 그 기도에는 “생명력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기도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지만, 기도의 내용은 전혀 없고, “기도하는 모습만 있다”라는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와 기도했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가운데,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세리의 기도가 아니라,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바리새인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성도라고 하지만, 진짜 성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짜라는 것입니다.
자기 믿음이 최고라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진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믿음,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보시고, 나의 행위를 보시고, 나의 믿음을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살아 있는 그런 진짜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3절 말씀입니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아멘.
주님은 죽어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데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깨어”라는 말은 “너는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죽어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잠자는 신앙에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가짜 신앙을 버리고, 진짜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어나야 합니다. 형식적이고, 미지근한 신앙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박제되고 전시된, 보여지는 신앙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어지러운 시대에,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잠을 자서는 안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깨어 있어야 할 때,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베드로는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40-4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또다시 잠을 잤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닭이 두 번 울 때, 베드로는 그제서야 깨닫고, 통곡하며,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훗날,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4:7. 5:8-9)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믿음이 더 이상 죽은 믿음이 되지 않도록, 굳건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남은 신앙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죽어가는 불씨를 살려야 해야 합니다. 불씨가 완전히 꺼지면, 다시 살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줄을 붙들어야 합니다. 놓으면 안됩니다.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성장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 성도들에게,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해야 합니다.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칭찬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마나한 행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면 할수록, 책망 듣는 행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인정받고, 칭찬들을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자금껏 우리의 행위가 온전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 원인을 찾아,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대로 놔두면 안됩니다. 방치하면 안됩니다.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주님으로부터 책망받은 원인이 무엇입니까?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사데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사데 교회 성도들은 무엇을 받았으며, 무엇을 들었을까요?
그들은 복음 전도자들로부터, 하나님의 귀한 복음의 말씀을 듣고,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감격하고, 감동함으로, 그 복음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지만, 세월이 흘러감으로 인하여, 복음의 깊은 감동은 사라지고, 마음은 메말라가고, 굳어져 가고, 아무 은혜도 없이, 아무 감동도 없이, 매주일 교회에 나와, 형식적인 의식만 행하고, 돌아갈 뿐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의 그 은혜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처음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의 그 감동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처럼,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잘못된 신앙이라면,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돌아서야 합니다. 굳어진 신앙을 버리고, 살아 있는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차가워진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여러분! 만약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은 도둑 같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도둑이 임한다고 하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나쁜 소식입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빼앗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도둑 같이 임하시는 주님을 맞이해서는 안됩니다. 하늘이 열리고, 천군 천사들의 나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구름 타고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오시는 것을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두렵고 떨림으로 서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찬양하며, 주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림으로,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아멘.
대부분의 성도들이 죽은 신앙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썩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고 해도, 거기에 휩싸이지 않고, 굳건하게 오직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어떤 경우에든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세상이 타락했다고, 함께 그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면서, 믿음도 버리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타락한 삶을 사는 이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꿋꿋하게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세상 풍조에 따라가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순종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손해를 보고,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썩어빠진 세상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유혹과 시험에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비록 죄악이 가득찬 세상 한 가운데 서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죄악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진실함으로,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기쁨으로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영혼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의의 흰 옷을 입고, 그 옷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오직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우리도, 오직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음 받고, 주님께서 입혀 주신 의의 옷을 더럽히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 어떤 시험거리라 할지라도 물리치고, 승리함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절 말씀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복은 어떤 복입니까?
첫째는 흰옷을 입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흰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서는 날, 거룩한 흰 옷을 입고,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의 이름은 하나님 앞에 있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분명하게 기록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은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교적부와 생명책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이든 간에, 교적부에는 그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때로는 지워지기도 합니다.
연말이 되면, 교적부에 기록된 어떤 이름을 지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있었습니다. 안 지우고, 놔두었는데, 시간이 지나고나서, “그냥 그때 지울 걸”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이미 깨끗하게 지워버렸는데, “어, 빨리, 다시 기록해”라고 몹시 당황할 때도 있습니다. 교적부에 있는 이름은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지울 수도 있고, 다시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은 전혀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이 나를 아신다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내가 너를 안다” 아니면,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라는 말 중에, 주님으로부터, 어떤 말을 듣고 싶습니까?
우리 모두는 당연히, “내가 너를 안다”, “수고했다”라는 주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형편에 있든지, 오직 믿음으로 승리함으로, 이기는 자 되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지고, 주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주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죽은 믿음의 자리에서 일어나, 살아 있는 믿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미지근한 믿음이 아니라, 뜨거운 믿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이기는 자 되어, 하나님 앞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이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누리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