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월간팝송 1984년 11월호의 창강 13주년 특집기사로 실린, 이승용님의 "한국의 포크음악 그 줄기를 찾아본다."를 옮겨놓은 글 입니다. 그림도 음악도 없지만 7080 추향인으로서 다들 잘 아시겠지만 한번쯤 정리하는 것도 유익할 것 같아 4편으로 나누어서 올립니다.
프롤로그
포크음악은 그 나라의 전통음악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쓰일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는 기타나 하모니카등 간단한 악기를 이용하여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고 전통, 정서, 사회풍자등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꾸밈없이 부르는 노래로 임의로 정의 하기로 한다.
<우리에게 영향을 준 해외 아티스트>
미국의 모던 포크를 이끌었던 밥 딜런이 있기까지 Woody Gurthrie, Pete Seeger의 공헌이 있었듯이 우리의 모던 포크음악이 있기까지는 여러 오소가 복합되어 영향을 주었다. 우리의 전통민요를 현대화하는 작업도 많았지만, 역시 포크의 흐름은 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우리에게 영향을 많이 준 가장 대표적인 아티스트는 밥 딜런으로 그의 창법을 모방하거나 그의 노래를 번안하여 부른 경우는 수없이 많다. 즉 밥 딜런은 포크음악의 정신을 전해주었음은 물론 그의 곡들은 많은 포크 아티스트들의 바이블이 되었다.밥 딜런 이전에도 헤리 벨라폰테, 카니 후란시스, 킹스턴 트리오, 브러더스 포, 그리고 피터 폴 엔 메리 등의 음악이 국내에서 히트하면서, 그들의 노래가 번안가요로 널리 불려졌고, 포크음악이 생성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며, 여성 아티스트중 죤 바에즈, 주디 콜린스 등은 국내 여성가부 뿐아니라 남자가수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아티스트뿐 아니라 1960년대 말기부터 70년대까지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밀바, 니콜라 디 바리 등의 칸초네 가수와 아다모로 대표됐던 샹송가수들 또한 많은 영향을 준 아티스트 였고, 영국 포크음악의 대가 도노반 역시 우리 포크 가수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티스트였다.
그밖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일부계층의 아티스트에게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인물들도 많다. 레오나드 코헨은 우수에 찬 분위기로 조동진등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주었고, 숀 필립스는 포크 기타의 독특한 주법으로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사이먼 엔 가펑클, 에벌리 브러더스 역시 트윈 폴리오부터 시작되는 남성 듀오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잊을 수 없는 듀오였다. 그 외에도 일일이 언급할 수 없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이것은 도입기에 발생했던 필연적인 일이라 하겠다.
<60년대의 한국가요>
'전쟁때에는 젊은이들이 빵을 달라고 외쳤다. 그러나 전쟁 후에는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어느 프랑스 예술전문가의 이 말은 젊은이들이 얼마나 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나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6.25로 중단됐던 우리의 대중문화는 전후 다시 꽃피기 시작했으나 50년대의 경제와 사회의 불안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젊은이들의 비판을 담을만한 내용 보다는 비탄조의 사랑노래가 우리 가요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그러나 60년대에 사회안정과 경제성장 등으로 몇몇 수준높은 가요가 나오게 되었고 전형적인 트로트풍의 가수 외에 개성이 강한 가수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최희준, 위키리 (이한필), 박형준, 유주용 등이 '훠 클로버'라는 명칭으로 각자 수준높은 가요를 부르기 시작 했으며, 박재란, 현미, 이금희, 한명숙, 김상희 등 개성강한 여가수들이 나오면서 점차 정서적이고 희망적인 내용의 가요 숫자가 늘어났다. 특히 60년대 중반 한국적인 전통의 포크 가요 - 우리 민요풍의 가요 - 가 큰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는데, 대표적 작품 <갑돌이와 갑순이>, <쾌지나 칭칭나네> 등은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멜로디 에 재미있는 가사로 큰 인기를 모았었다. 그러나 이 당시 가장 인기를 모았던 가요는 <동백아가씨>로 대표되는 트로트 가요였으며, 전체적인 가요의 흐름도 트로트의 거센 물결에 흽쓸리게 되고 말았다.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님이라 부르리까> 등의 계속되는 폭발적인 히트와 남진의 <가슴 아프게>,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 등 트로트 계열의 노래의 대 히트는 당시 우리 가요의 한계를 단적으로 지적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젊은 층에서는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외국과 국내의 건전 포크송이 널리 불려졌는데, 이 포크운동의 확산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전석환으로 그는 수많은 포크 송을 개사하고 정리하여 그 후의 포크음악이 꽃 필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으며, 그가 개사한 <석별의 정>, <사모하는 마음> 등은 지금까지도 자주 애창되는 곡이다. 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외국의 여러 음악이 빈번히 소개되며 신중현으로 대표되는 록 리듬과, 포크 취향의 가요가 히트 하면서 우리 가요도 다양해지기 시작, 궤도에 오르게 된다.
<태동기>
이 시기는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기에 해당 하는데, 외국의 포크음악을 흉내내던 때였으나 뛰어난 역량을 가진 포크 싱어들이 탄생하였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전석환이 주도했던 포크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었으며,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이 운동이 확대되어 나가자 60년대 후반 기성 작곡자들의 작품 중에서 포크 풍의 음악이 작곡되어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밝고 건전한 노래들이 발표 되었으며, 이런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가수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 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 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비둘기집)
마?메아리처럼 해맑은 가사 (전우 작사)와 쉬운 멜로디 (김기웅 작곡)에 이석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비록 발표 당시 대중적으로 큰 히트를 기록 하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히트곡이 지금은 대부분 추억의 노래로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자주 불려지는 한국 포크음악의 시조격인 노래이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악이기는 했지만, 이 곡은 메시지를 전달해 주기 보다는 단순한 캠프송의 성격을 띤 노래였으며 이석도 그후 별다른 히트곡을 발표하지 못했고 외국 번안 포크음악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외국의 포크 음악에 나름대로의 가사를 붙여 그들 사이에 애창됐던 곡들은 상당히 많다. 킹스턴 트리오의 'Greenback Dollar', 해리 벨라폰테의 'Night on the Rose'들은 대표적인 곡들이었다. 이런 대학생들이 자주 모이던 음악감상실에서 여러 통기타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드디어 우리나라의 포크음악시대가 싹트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음악감상실이 세시봉이었고, 여기서 트윈 폴리오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등이 선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올 때 언덕에 홀로 서서
눈물로 흔들어주던 하얀 손수건
그때의 눈물자욱 사라져버리고
흐르는 내 눈물이 그 위를 적시네
(하얀 손수건)
송창식과 윤형주의 이질적인 목소리가 그야말로 절묘한 하머니를 이루며 오리지널 곡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옥같은 노래를 발표한 트윈 폴리오의 번안 가요중 가장 히트한 곡이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내용인 것을 보면 우리 팬들의 취향은 꽤나 애상적인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이들의 가사내용도 우리의 정서를 나타내거나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음악은 아니었지만 간단한 기타반주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어 사랑을 받았던 음악이었다.
이들 노래외에 조영남, 최영희등의 음악이 젊은이들 사이어서 인기가 있을 때 우리 포크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일대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1968년, 장발에 하모니카와 기타를 들고 당시 미국 유학생이었단 한대수가 귀국하면서 TV에 출연하여 일대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한대수의 등장은 트윈 폴리오등 각광받는 아티스트들 이외에도 활동을 준비중이던 김민기, 양병집등 예비 포크싱어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준 것이다. 그러나 '69년 한대수가 군에 입대하게 되고 그 음악을 소화할 만한 역량을 가진 아티스트들의 기량이 그때까지는 성숙되지 않아 본격적인 포크음악의 발전은 뒤로 미루어지고 포크음악을 흉내내던 시절이 계속되었다.
그러한 번안 포크가요의 히트와 함께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창작 포크가요가 선보이게 되었는데 이러한 포크가요 중에는 상상을 초월한 대히트를 기록하여 포크음악 발전에 도화선을 붙인 곡들도 많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예예예 예예예예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사랑해)
너무나 간단한 가사에 단순한 멜로디의 이 곡은 남녀노소 어느 계층의 구별없이 쉽게 부를 수 있는 장점으로 당시 기록적인 레코드 판매를 보였으며, 이 곡을 부른 라나에 로스포를 스타의 위치에 올려놓았고, 뒤를 이어 이런류의 포크송과 뚜아 에 무아 (이필원, 박인희), 바블검 (이규대, 조연구)등의 남녀 혼성 듀오가 경쟁적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밖에 솔로로 활동하기 시작한 윤형주의 '라라라'도 크게 히트한 포크송이었는데 여기서는 가사가 좀 더 공감할 수 있고 구체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조개껍질 묶에 그녀의 목에 걸고
물가에 마주앉아 밤새 속삭이네
저 멀리 달그림자 시원한 파도소리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질 않네
아침이 늦어져서 모두들 배고파도
함께 웃어가며 식사를 기다리네
반찬은 한두가지 집생각 나지마는
시큼한 김치만 있어줘도 내게는 진수성찬......
(라라라)
여름캠핑의 한 모습을 서정적인 필치로 그린 수채화처럼 깔끔한 가사와 재미 있으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가사로 비록 이 곡은 표절시비로 금지곡이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자주 애창되는 캠프송이다. (그후 이 곡은 '조개 껍질 묶어'로 멜러디를 약간 바꿔 다시 발표함.)
포크가요들이 히트하자 젊은이들 사이에서 노래부르던 캠퍼스 가수와 그들의 노래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첫댓글 조개껍질묶어 하면 늘 생각 나는게 옹기종기 도란도란 야외에 모여앉아 기타치며 즐거웠던 시절 청춘남녀가 한데모여 웃고 노래하며 그저 기쁘기만 했는데 왜 지금은 기타들고 야밤에 나가 옹기종기 모여앉아 노래를 하면 안되는지 그저 밤바람 밤하늘 그믐달, 보름달 휘영청 밝았을때 입가에는 노래가 술술 흘러나오는데 기타들고 다 나와 노래하면 이상하다 하겠지요 지금은 그냥 씁쓸한 미소만 띄운채 집안으로 되돌아 옵니다. 괜히 겸연쩍히 씁쓸해집니다. 여름 밤하늘은 어떤때는 동심으로 또 열혈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 밤을 본문에서 거론된 가수와 노래를 찾아 듣는 행복한 밤이 될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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