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시민 - F. 게리 그레이, 남영동1985 - 정지영
모범시민?
난 얼핏 어린시절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이었다. 위인전을 즐겨 읽고, 충효를 앞세웠다. 중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모범생 기질이 있다. 모범시민이다. 학교에서 내준 과제는 최대한 할려고 노력하는 학생처럼, 무엇이든 기본은 할려고 하는 속성이란 걸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충과 효를 앞세우고 착하게 살려는 인생 좌우명을 가지고 있던 시골 촌놈이 대학생이 된 건 불행이었다. 세상은 겸허하고 겸손하고 소박소탈하게 살려고 했던 모범생을 그렇게 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인간애를 가진 착한 사람으로 살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다.
고문?
86년 5.3인천투쟁으로 수배 중 구속된 나에게 군사독재의 폭력과 고문은 더 이상 관념으로만 놓을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성동구치소 독방에서 끙끙앓고 신음하며 일주일을 고통에 젖어 있었다. 모범생, 착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불의한 권력의 고문까지도 버티거나 감당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필요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고문 앞에 동지를 보위하고 조직을 보위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 그냥 조용히 살자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게 충과 효를, 선한 삶을 앞세웠던 진실을 배신할 수 없었다. 그래, 고문의 그런 날이 오면 저들을 더러운 벌레라고 생각하자. 끝내 못버티면 그냥 죽어버리자 하고, 일주일간의 신음과 고통을 마무리했다.
어느 순간 나는 야수의 폭력과 고문을 버티고 끝내 이기는 자들이 감동과 아름다움의 제1순위가 되었다. 유신을 앞두고 감옥에서 진행된 장기수선생들에 회유고문은 죽어도 무방하게 진행되었다. 나중에 풀려난 분들은 그 죽음의 고문을 감당한 분들이다. '전향'이라는 두 글자를 쓰지 않았다. 일제의 살인적인 고문 앞에서도 당당했던 유관순, 안중근, 아리랑의 김산 등은 감동, 그 자체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의 국가폭력은 우리에게 모범생, 모범시민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묻게 만든다. 쥐새끼를 뛰어 넘는 닥의 시대는 거짓말, 사기, 감시, 공갈협박이 난무하고 있다. 카톡, 네이버밴드에서 포털사이트에 이르기까지 민중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정신적 육체적 고문을 하고 한다.
모범시민은 어쩌면 저들이 요구하는 말이지 싶다. 모범생이라는 말이 낡고 구태의연하듯이…….
자본과 권력의 돈, 출세, 일등, 시장, 상품이 미화되고 멋진 것처럼 인식되거나 보이지 않게 만들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앞세우고 지킬 줄 아는, 착한 사람들이 일반화되고 인정받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감동과 아름다움이 넘치게 하자. 그런 곳에 어찌 '고문'이라는 말조차 있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