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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순흥안씨 을유보(乙酉譜,1765) 범례(凡例) : 광주-순흥 분관 기록
영조 41년(1765)에 간행된 순흥안씨족보 을유보(乙酉譜)의 범례(凡例)의 3항을 보면 凡例
廣州安氏鼻祖 大將軍邦傑下 舊有缺世 今考其新譜別編 始於大將軍下 繼以 子門下侍中 國信 子門下侍郞 礪仲 子內史侍郞 輔平 子僉議中贊 憲思 子平章事 武成 子參知議事 慶立 子中書令 石昌 子內史令 弼夢 子門下侍中 弘美 以吾始祖 護軍公 書於弘美弟行 而註以順興安氏始祖 以爲得於順興刊板舊譜云 此所謂舊譜迺吾安之所不知者也 若有此舊譜 則何不出於 前後修譜時耶 其言固無稽 其所錄 亦傳疑之例 而旣有刊行文字 恐爲百世之疑 故玆以卞明焉 (번역문) “광주안씨(廣州安氏) 비조(鼻祖)인 대장군 방걸(邦傑)의 아래에 빠져 있는 세대가 있었는데, 이제 그 신보(新譜)의 별편을 상고해보니, 대장군의 아래로부터 시작하여 아들인 문하시중 국신(國信)과 아들인 문하시랑 여중(礪中)과 아들인 내사시랑 보평(輔平)과 아들인 첨의중찬 헌사(憲思)와 아들인 평장사 무성(武成)과 아들인 참의지사 경립(慶立)과 아들인 중서령 석창(石昌)과 아들인 내사령 필몽(弼夢)과 아들인 문하시중 홍미(弘美)를 계속 썼으며, 우리 시조인 호군공(護軍公, 安子美)을 홍미의 아우 항렬에 써 놓고는 순흥안씨(順興安氏)의 시조라 주기(註記)하고, 이것을 순흥안씨의 판각한 구보(舊譜)에서 얻었다 하였다. 이들이 말하는 구보는 우리 안씨는 일찍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구보가 있었다면 어찌 전후에 수보(修譜)할 때 나오지 않았단 말인가. 그 말은 진실로 황당무계하며 그 기록 또한 의심스러운 것을 전하는 준례에 불과한데, 이미 간행한 문자가 있으면 백세(百世)에 의심할까 염려되므로 이에 분별하여 밝히는 바이다.”
광주안씨 방걸(邦傑) - 국신(國信) - 여중(礪中) - 보평(輔平) - 헌사(憲思) - 무성(武成) - 경립(慶立) - 석창(石昌) - 필몽(弼夢) - 형 홍미(弘美)는 문하시중, 동생 자미(子美)는 순흥안씨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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