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의 본 53 선지식 18차. 20, 고목 나무 옷을 벗으니
고목 나무 옷을 벗으니
겨울은 참으로 잔인한 달
온갖 사물을 멈추게 하는 계절
아 인간의 삶에 있어 빈민에게
겨울은 슬픈 자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얼음의 나라에 살고 있는 에스키모는
겨울이 오히려 행복을 노래하고 있지만
적도 중심 지역에 사는 이들은
얼음 나라를 동경하고 있음도 있다,
얼음 나라 중간 지역에 사는
인간들은 추운 겨울이 오면 준비
삶에 대해 준비해야 하는데
자본을 추종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빈민의 삶은 오히려 무더운 여를
여름이 지상의 낙원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자본을 선전하고
자본에 의하여 자신의 존재를 말하지만
자본이라는 것을 선양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인간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든다.
인간이라는 이름을 무시하게 만든다,
고대 인도나 한나라에서 사는 인간들은
지상에서 오래 사는 것을 추종해
나무 아래에 앉아 명상하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한다고 했다
실로 인간이란 생명을 논한다면
영원히 사는 인간이란 없다
인간의 수명을 말하자면
금관가야를 건국한 김수로왕은
159세를 인간의 몸으로 있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하고 있고 인도에서 시집온
허황후도 157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거리마다 앙상한 모습으로 서 있어
삶의 고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거리
나는 몸을 떨면서 바라보고 있으니
어쩌면 슬픈 날의 몸이라고 말함이다
저기 바라보고 있는데 나를 바라보는 이들도
무슨 시연이 있어 저렇게 떨고 있나!
잘 사는 나라라고 칭하고 있는데도
노숙자들이 슬픔을 보여주고 있어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 말해 보라
추운 날을 동장군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동장군이라는 말의 의미는 전쟁에서 죽은
얼어 죽은 자들에게 주어진 명칭이라고
그렇게 보여주고 있는 동장군이다
장군도 추운 날에는 이겨낼 수 없다는 의미
겨울은 참으로 슬픈 날이라는 것을
노숙자들에게 주어진 이름이라고 칭한다.
어느 날인지는 모르지만, 노숙자들이 놀고 있던 거리
그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고 본다.
추운 겨울날에 옷을 입고 노숙을 하던 사람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전쟁터에서 죽은 그것도 아닌데
보이지 않는 것은 고목이 옷을 벗고
거리에서 찾아온 인간들에게 슬픔을 보여주고 있어
겨울은 잔인한 달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겨울은 나를 슬프게 하는 언어다
옷을 벗고 있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데
떨고 있는 몸은 나를 슬프게 하려고
그러는 그것이냐고 반복한다,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어서 말하라는 압력도
인간의 존재도 무시한 나라
그러한 나라를 누가 믿을 수 있나!
민주화에 대한 부정한 나라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하는데
자기 몸을 인정해주던 몸을 비판하면
자신의 존재를 등장하게 하려는 바위
바위에 이끼 꽃을 피우는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추종하는 몸으로 알고
자기 몸을 벗기는 겨울 같은 날에 나무
고목도 떨고 있는 날이 얼마나 지냈나!
겨울을 이겨내는 날을 참고 견디면서
얼마를 지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수년 전 거리에서 나를 비판하던 노숙자도
올해는 보이지 않는 그것은 무엇인가?
코로나19라는 악마 선전에 희생당했나!
주사를 맞아서 죽었다는 전설도
그 모든 것이 다 인간을 위함이라고
그렇게 칭하고 있던 사연이 종결되었나!
아주 먼 날에 있을 노숙자는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
올해에 가장 추운 거리를 걷다 보니
고목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이름이 있는 시인이라는 명칭이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시인이란 자신의 존재를 바르게
바르게 기록해야 하지만 시인이란 이름은
자신의 존재를 드날리는 명성을 다시 찾아야 한다,
시인은 자기 몸을 소중하게 해야 한다.
자기 몸을 보존하는 몸이 되어야 한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보면 고목 나무에
나의 몸을 의지하려는 의도를 누구도 모르고 있어
하늘에 오르는 고목이 있는지
하늘이 영혼을 모으는 집이라고 한다면
하늘에도 고목을 키우는 바람이 있나!
바람아 불지 말라 고목에 가지가 위태롭다.
나무에 옷을 벗기는 겨울은 잔인하다.
2022년 11월 30일
출처: 불교평화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진관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