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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40121 주일오전예배/김동건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예배자 |
성경 | 히브리서 11:4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히브리서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녹취자료 |
책 제목 중에 ‘예배냐 쇼냐?’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 복음 가진 기독교인들이 온전히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으로 기쁨을 누려야 하는데 예배가 자꾸 육신의 즐거움이나 쇼로 전락한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전 세계가 지금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는 구별된 예배입니다. 우상 예배, 종교예배가 아닙니다. 오늘 드려지는 예배로 나의 삶을 살고, 하나님을 찾는 자로,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한 주간 승리하면서 예배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론 :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자로 창조
그래서 진정한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믿어지고,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예배자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로봇이나 AI 기계가 아니에요. 개나 돼지나 짐승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호흡이 있는 자, 살아있는 자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은 찬송받기 위해서 우리를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억지로, 싫어하는데 학습된 대로, 입력된 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고,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자의적으로 예배드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요4:24절을 보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입력된 대로 움직이는 기계나 로봇처럼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기쁨으로, 자유의지대로 찬양하길 원하십니다. 오늘 그 찬양과 하나님 앞에 호흡 있는 자로 예배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 얼마나 거룩한 날입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최고의 언약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에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오늘 그 은혜를 함께 나누시길 바랍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당연히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게 되어있습니다. 왜 예배드립니까? 하나님의 자녀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당연하니까. 여러분, 부모님이 계시죠? 자녀가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오늘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나는 오늘 그리스도 아니면 안됩니다. 내 인생을 예배로 채우시고, 하나님을 찾는 자로 예배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면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예배는 영원한 축복입니다. 또한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사야 40:8절을 보니까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모든 풀, 꽃은 다 시듭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영원히 서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만, 복음만 영원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6:26절을 보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일점일획도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대로 성취, 응답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최고의 축복이라면 이 예배는 최고 축복의 자리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는 시간이 최고의 시간, 가치 있는 자리와 시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예배가 강조되고 말씀이 강조되는데 허투루 듣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요. 말씀을 들으시면서 ‘하나님, 말씀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말씀이 잘 박힌 못과 같이 박혀야 하는데 자꾸 말씀이 튕깁니다. 하나님 저에게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예배자로 서게 하옵소서.’ 기도하시면서 들으시면 됩니다. 잠깐이라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의 마음 문을 여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지속되는 거예요. 우리가 은혜 받아야 살 수 있지 않습니까? 한주간 얼마나 세상적으로, 삶 속에, 인간관계를 돌아볼 때 사실 녹록치 않잖아요. 힘들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하나님의 복음이 왔다갔다 하고 불신앙하고 염려한다면 얼마나 삶이 힘들겠습니까? 오늘 예배이기 때문에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 예배로 하나님께 드리고 내가 과연 예배자인가? 쇼로 드리는가? 아니며 건성으로 드리는가? 와야 하니까 드리는 예배인가? 하나님께 ‘내가 오늘 예배 드려줄께요.‘ 하면서 드리는 척하는지 한번 생각해보시고 ‘내가 하나님께 예배를 거룩하게 드리게 하옵소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1. 언약 전달한 아벨의 제사 (본문 4절)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자, 아담과 하와의 첫째 아들이 가인이고, 둘째 아들이 아벨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제가 어렸을때만 해도 이렇게 들었습니다. 가인은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지 못해서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고, 아벨은 정성을 다해 예배드려서 하나님께서 받으셨다 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복음을 깨닫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보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가인은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피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겁니다. 근데 아벨은요 피 예배를 드렸어요. 아담과 하와가 붙잡은 창세기 3장 15절의 그 언약이 아벨을 통해서 전달된 거예요. 그래서 이 믿음이란 건 뭐냐면은, 창세기 3장 15절을 아는 여자의 후손을 믿었다는 겁니다. 누가요? 아벨이요. 그 피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린 거예요.
여러분들이 예배드리면서 한 주간의 영적 전쟁이 승리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흑암에 계속 이길 수 없어요. 흑암의 망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불신자가 아닌데 불신자처럼 사니까 얼마나 우리가 많은 걸 놓치고 흑암 전쟁에서 집니까? 우린 불신자가 아니잖아요. 근데 불신자를 따라가고, 불신차처럼 행동하고, 불신자처럼 우리가 속고 이렇게 되어버리면 흑암의 망대를 이길 수 없고 내 안에 불신앙과 흑암을 이길 수 없는 거예요. 이걸 안 아벨은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이신 어린 양의 피, 지금의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 예배를 붙잡고 나간 거예요. 이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예배를 받으신 겁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시면서 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 언약을 붙잡고 오늘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난 가야 되겠다.. 종교적인 어떤 열심, 선행, 봉사, 종교, 우상 그런 예배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피언약의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 이 신앙 고백을 하는 그 중심 자체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는 거예요. 이게 예배자의 저와 여러분들의 역할과 사명입니다. 그래서 생명과 관계 있습니다. 구약에 범죄한 사람들은요 하루가 가기 전에 피를 뿌리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항상 영적 생명이 고갈되기 전에 하나님께 나아가야 돼요. 어떻게 나갑니까? 우리 열심으로 나갑니까? 지식과 여러 가지 우리가 똑똑하니까 나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피 언약을 붙잡고 가는 거예요. 오늘 다시 한번 예수그리스도의 피 언약의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지고 예배드려야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 되면 영적전쟁에 항상 승리하게 돼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강단을 통해 답을 주십니다. 주의 종을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을 하세요. 그래서요, 고개를 들고 저를 보세요. 그래서요 주의 종을 위해서, 말씀을 선포하는 주의 종을 위해서 기도해야 돼요. 그리고 예배를 섬기는 대표기도, 헌금위원들, 예배 전체에 하나님께 드리는 이 헌신하는 이런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모아 모아져서 하나님께 최고로 영광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주의 종, 또 말씀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 함께 기도가 모아져야 돼요. 그래야 하나님 앞에 내가 은혜롭고 산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요즘에요, 그냥 예배가 쇼가 됩니다. 요즘 잘하시네.. 저 분 명설교답게 잘하시네.. 웃기시네.. 이 정도에요.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복음을 붙잡는 예배가 돼야 되는데 그게 되지 않으면 예배를 드리면 드릴수록 내 삶은 어려워지는 거예요. 나중에 나도 예수님 믿어봤습니다, 나도 교회 다녀봤습니다, 뭐 했습니다, 저거 했습니다. 다 놓치는 겁니다.
하나님은 강단을 통해서 반드시 주의 백성들에게 한 주간 살아갈 영의 양식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절대 잊어버리시면 안 돼요. 그래서 은혜를 구하면 됩니다. 은혜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발견하게 돼 있어요. 은혜는 어디서 올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데서부터 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발견케 하시고 알게 하시고 깊이 깨닫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예배의 목적이요 먼저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힘을 얻는 거예요. 그 힘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가야 그게 예배의 목적이에요.
2. 어떻게 예배 드려야 되는가?
그러면요. 아벨이 이런 응답을 받고 지금도 계속 이 응답을 따라 우리가 응답을 받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됩니까? 내 기준을 내려놔야 돼요. 상처, 체험, 공부, 실패 이걸 가지고 말씀을 들으면 안 됩니다. 그걸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 되는 말씀을 붙잡으셔야 될 줄 믿습니다. 내 걸 내려놔야 돼요.
여러분들 이것만은 꼭 다 있을 겁니다. ‘이것만은 절대 안 돼.’ ‘복음이라도 이것만은 건들면 난 폭발해.’ ‘이것만은 절대 안 돼.’ 그거를 내려놔야 돼요. 그걸 가지고 예배를 드리면 그게 충족이 안 되면 교회를 떠나고 시험 들어요. 그걸 내려놔야 된다니까요. 그리스도보다 앞선 거를 내려놔야 돼요. 제가 예전에 예를 든 적이 있었었는데 제가 부교역자 생활을 하다가 어떤 청년이 새가족으로 왔습니다. 근데 이 청년이 잘 예배를 드리다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너무 전화하고 찾아가면 조금 약간 좀 이렇게 힘들어할까 봐 제가 이제 한참 있다가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시험에 들었다는 거예요. ‘뭐 때문에 시험에 들었냐?’ 그러니까 어떤 분이 이 플라스틱을 플라스틱 통에 버려야 되는데 종이에 버렸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시험거리냐?‘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는 분리수거가 중요하기 때문에 분리수거를 꼭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걸 보고 어떤 분이 그거를 잘못되게 분리수거를 했는데 그걸 보고 시험이 든 거예요. 그때 제가 섬겼던 교회 어떤 장로님이셨어요. 그걸 보고 시험이 든 거예요. 그러니까 이 청년은 예배와 말씀보다 분리수거에 딱 꽂혀가지고 그걸 하지 않으면 예배에 시험 드는 거예요. 이걸 제가 왜 말씀을 드렸습니까?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상처, 체험, 여러 가지 실패, 기준 이거를 내려놓지 않고 예배를 드리면 예배 중에 그게 충족이 안 되면은 예배를 못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드릴 때는 “이것만은 꼭” 그걸 내려놔야 돼요. 하나님 앞에 온전히 예배드릴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을 내려놔야 됩니다.
그리고 감정 충족이 아닌 은혜 예배를 드려야 되는데 감정, 충족이 우리가 은혜로 와 닿지 않나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감정, 충족은 뭡니까? ‘야 저 목사님 기승전결이 확실하구나.’ ‘서론 본론 결론이 확실하구나.’ ‘내가 어제 유튜브를 봤는데 저 단어가 나오는 저 목사님이 저 단어를 쓰네.’ 고급 단어가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전문 지식, 명언 이런 게 나오는 겁니다. ‘야 내가 유튜브 보고 누구한테 듣고 책을 봤는데 저분이 저런 얘기를 하니까 속이 시원하다. 스트레스가 해소되네.’ ‘웃기고 재밌네.’ 여기까지는 충족입니다. 이게 감정이에요. 은혜가 아닌 겁니다. 은혜는 뭐냐? 그리스도만 들었는데 내 영이 반응하는 거예요. 그게 은혜입니다. 별 얘기를 안 하셨는데 떠듬 떠듬거리셨는데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니까 내 영이 반응하고, 내 영이 기쁘고, 내 영이 평안하고, 은혜 받는 그게 은혜인 거예요. 멋있는 말, 기승전결이 맞고, 확실하고, 그렇게 말씀을 받은 들 내 영혼 속에 말씀이 없다? 그러면 그 예배는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거룩한 예배가 아닙니다. 거의 이렇게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예배 개념은 바꿔야 돼요.
제가 렘넌트들에게 이런 얘기를 합니다. 예배는 힘들어야 된다. 예배는 힘들게 드려야 된다. 지금 얼마나 쉽게 쉽게 드립니까? 예배를. ‘그러면 목사님 불신자들이 힘들어 하는데요?’ 그거는 다른 얘기고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드리는 거는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예배 안에서 모든 게 다 나와야 돼요. 오늘 그리스도만 들었는데 여러분들의 영이 기쁘고 반응하는 오늘 예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만 얘기 들었는데 막 기쁨이 오는 거예요. 그게 은혜 받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감격과 감사가 있는 겁니다. 구원받은 자의 감격이 있어야 됩니다. 체험한 성도가 은혜를 누려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하는 거 아시죠? 광고. 그 간장 맛 찾는 거예요. 내가 체험을 누려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은혜를 구한다니까요. 죽어 마땅할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잖아요. 여러분들이 완전히 죽었습니다. 영적으로. 그 죽었던 내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됐어요. 구원받았어요.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삼으셨어요. 어떻게요? 창세전부터. 여기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으셔야 돼요. 이걸 지금 다 놓쳤어요. 우리가..
그래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예배.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고요,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는 예배는 허공을 치는 거와 같습니다. 아무 하나님과 상관없어요.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오늘 상한 심령의 은혜를 구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 나는 그리스도가 없으면 안 됩니다." 저는 배우기를 그렇게 배웠고요. 제 신앙 양심상 예수 그리스도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설교 시간에 강조해야 된다는 사람 한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조금 이상하고 설교가 떠듬거리고 단어가 이상하고 그래도 저는 예수가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이 계속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수만 번이고 예배 시간에 선포된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입니다.
은혜하고 상관없어요. 설교 잘 한다 상관없습니다. 이 설교를 백성들이 듣고 한 주간 영적 변화가 일어나느냐 그게 중요한 거예요.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이 내 안에 다가왔느냐 그게 중요한 겁니다. 내 영육 간에 힘이 생기느냐 그게 중요한 거예요. 설교 잘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근데 그 설교를 듣고 내 영이 변화하느냐 그게 중요한 거예요. 우리 다락방 내에도요, 날고 기고하는 명설교가들 많습니다. 근데 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한 주간 내 안에 스며들어서 그 말씀대로 생각을 하면서 기도하면서 응답되고 성취가 되느냐, 안 되느냐 그게 중요한 거예요.
제가 그래서 오늘 쭉 말씀을 드렸지만 어떤 것으로? 그러면 안 됩니다. 아는데 목사님 예배가 안 됩니다. 안 될 겁니다. 뭐밖에 안 됩니까? 기도 외에는 안 되는 거예요. 기도 외에는 안 됩니다. "하나님,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그리스도를 갈망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예배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은혜를 사모하는 제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시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예배 전에 좀 일찍 오세요. 예배를 15분 전에 오셔서 본문도 찾아보시고 이 본문이 주의 종 목사님을 통해서 어떻게 이게 양념이 되는지. 어떻게 예화를 들고 어떻게 나에게 말씀을 와닿는지. 그거를 찾아야 됩니다. 기도하세요. "하나님, 오늘 제가 자꾸 딴 생각하고 예배를 등한시 여기고 잠이 올 것 같은데, 하나님 저에게 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저에게 강건함을 허락하게 해주옵소서." 기도하면서 들으셔야 되는 거예요.
마가복음 9장 29절에 보니까요,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한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막 해야 되는데 나가야 되는데 귀신이 안 나가는 거예요. 제자들이 묻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은 나가는데 왜 우리는 안 나갈까요?"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올 수 없느니라.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늘 예배를 드릴 때 기도하면서 준비하시고 와서는 기도로 항상 준비하셔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주셔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심을 체험케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가면 갈수록 여러분들의 현장과 삶과 개인은 아마 어려워질 겁니다. 빛을 발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임해야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가서 빛 발해야지, 복음 전해야지, 전도해야지.. 하나님이 전도의 문 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담겨서 그 말씀 붙잡고 기도했더니 응답이 되어져서 그 응답을 보는게 빛을 발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배가 살아있고 살아나는 우리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최우선적으로 예배의 자리와 시간을 회복하세요. 예배를 타협하지 마세요. 흥정하지 마세요. 이유 없습니다. 우리 중직자 분들. 제가 시험 드는 건 아닌데, 약간 고민되는 것이 우리 중직자 분들이 예배를 조금 소홀히 여기시는 것 같아요. 무슨 일 있으면 빠지고 전화 드리면 아니 오늘 뭐가 있어가지고요.. 아니, 중직자 분들이 그것을 하지 말고 예배를 나오셔야지 그것을 타협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흥정하면 안됩니다, 예배는. 친척과 가족과 불신자들과 타협하지 마세요. 그때는 핍박을 받을지언정 하나님의 응답은 빠를 줄 믿습니다. 타협하지 마세요 예배를.. 시간을 내고 그 자리에 참석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체가 은헤에요. 예배에 와서 졸아도 예배에 와서 조세요. 다른 생각 해도 예배에 와서 다른 생각 하세요. 올 한해는 우리 중직자분들이 개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해요. 뭐 있다고 그냥 훅 빠지고, 뭐 있어서 그냥 훅 빠지고 그러면 안되요.
요즘에 수요 예배, 금요 예배 우리 제일 멀리서 오시는 정완택 장로님 가정. 실명을 거론해서 죄송한데요. 우리 이영호 장로님 가정, 공남식 장로님 가정. 제일 멀어요. 그런데도 예배 시간에 오십니다. 예배 중요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이 그 장로님들 가정에 하나님이 은혜로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결단하면 하나님이 움직이세요. 저는 그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똑같으면 안되니까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예배를 드리고 훈련 받는 영적인 은혜와 조금 놓치는 부분들에 구별된 응답을 주옵소서. 그래야 따라오죠, 똑같으면 어떻게 따라옵니까.. 아 저분도 예배 안드리니까, 나도 예배 안드리는데 응답이 똑같네.. 하나님, 이러면 성도들이 안 따라옵니다. 하니님, 예배 드리고 훈련 받을 때 구별된 응답을 주옵소서. 그것을 보고 따라오게 하옵소서.
그래서 주일 예배에 모든 삶이 연장되어야 돼요. 주일 예배가 오늘로 끝나면 안됩니다. 예배 드렸으니까 끝났네 이게 아니라 직장과 가정과 삶과 학교에 연장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반드시 할 때, 결단 할 때는 강단의 말씀이 떠올라야 해요. 제목이라도 대지라도 떠올라야 돼요. 그럴 때에 현장이 살고 나를 통해 살아나는 겁니다. 그럴 때 빛을 발하는 것이에요. 오늘 말씀을 들은 여러분들,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좀 기억을 하셔서 그렇구나.. 내가 오늘 다시 한번 예배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야 되겠다.. 예배자로서 응답 받아야 되겠다.. 하나님은 예배 드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보여 주십니다. 한주간도 예배자로서의 하나님의 응답 받는 우리 귀한 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성도님들 예배자의 위치와 자리에 서게 하옵소서. 예배로 나의 삶을 살고 하나님을 찾고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된다는 존재로 하나님 앞에 구별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예배자로 창조했습니다. 그동안에 모든 부분을 내려 놓고 다시 한번 예배를 다시 생각해서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귀한 구별된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한주간도 응답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영육간에 변화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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