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는 비평작업에 앞서서 그 작품이 쓰여진 시대배경과 역사부터 샅샅히 조사했습니다.
한시대가 작가를 통해 어떻게 작품에 반영되었는지 역사와 시대를 작품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이른바 문학사회학적 접근이었습니다.
*한일회담 반대시위 (1965년)
그는 그렇게 문학사회학적 접근으로 일제시대작품들을 분석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생각으로 자료조사를 하던 그에게 65년 한일회담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굴욕적인 한일정상화이후 생겨날 제2의 이완용 제2의 송병준에 대한 경고장으로 나온책이 친일문학론입니다.
이책의 서문은 ‘자화상’이란 글로 시작됩니다.
독자들이 제일 궁금하게 생각할 것은
이책을 쓴 임종국이는 친일을 안했을까?
이것이 아닐까 한다.
이의문을 풀어드리기 위해
필자는 자화상을 그려야겠다.
이때 내 나이 17세.
하루는 친구놈한테서 김구 선생님이 오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 김구 선생이라는 이가 중국사람이래!”
“그래? 중국사람이 뭘하러 조선엘오지?”
“임마 그것두 몰라! 정치하러 온대”
“정치? 그럼 우린 중국한테 멕히니?”
그 무렵의 내 정신연령이 몇 살쯤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식민지 교육밑에서 나는 그것이 당연한 줄만 알았을 뿐 한번도 회의조차 해본 적이 없다.
한국어를 제외한 모든 관념.
이것을 나는 해방후에 얻었고 민족이라는 관념도 해방후에 싹튼 생각이었다.
이제 친일문학론을 쓰면서 나는 그토록 천치로 만들어준 그무렵의 일체를 증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친일문학론은 역사에 대한 자각과 자기반성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친일문학론은 단순한 고발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역사앞에 자기성찰과 반성을 촉구하는 살아있는 기록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 반성은 곧 아버지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임문호 / 임종국의 아버지
(책의내용중)
37년 9월 4일 - 27일 백동빈, 임문호, 김병제로써 금산, 회령, 함흥외 35개 처를 순회강연케 하는 한편, <비타산적으로 내선일체의 정신을 발휘하고 거국일치의 백력을 고양하자>는 등의 삐라를 발행하게 했던 것이다.
그는 천도교 당수로서 시국강연을 통해 ‘내선일체’를 강요했던 아버지 임문호의 행적을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임순화 / 여동생>
글을 쓰는 사람이 누구는 쓰고 누군 안쓰고 그게 뭐 어떠한 근거문헌이 없는 것이라면 또 뺄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근거문헌이 착실한 것을 내아버지라고 뺀다면 다른사람것도 다 안써야죠.
그래서 이제 아버님도 거기에 대해서 어... 일절 거의 말이 없으셨고 그렇다고 뭐 괘씸하다거나 이런말씀을 하신적은 없어요.
아버지를 이은 다음대상은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은사 유진오의 친일행적을 밝히는 한편 아버지의 사랑방에 드나들던 백철, 조용만, 조연현등 내놓라 하는 문학계 인사들까지 역사앞에 반성해야 할 사람들로 지목했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을 넘어서 오로지 역사앞에 정직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강만길 / 상지대총장, 대학입학동기>
어... 그 책을 내가 처음 접하고 좀 놀랜게 있는데...
에... 그 책속에 담긴 인물중에는 어... 그도 배웠고 나도 배운 대학의 선생님들이 몇 분이 계셨습니다.
어... 그래서 그 제자가 친일문학론을 만들면서 그 자기의 선생도 그 속에 넣어가지고 다룬다는 것은 참... 그때로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솔직히 말하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