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미디어 리뷰] 2014-02-28>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감독과 배우들이 함께한 우아한 난장판
감독 : 웨스 앤더슨
출연 :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토니 레볼로리, 시얼샤 로넌
줄거리
1927년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세계 최고 부호 ‘마담 D.(틸다 스윈튼)’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다녀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의 살인을 당한다. 그녀는 유언을 통해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전설적인 호텔 지배인이자 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
)’ 앞으로 남긴다. 마담 D.의 유산을 노리고 있던 그의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는 구스타브를 졸지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게 되고, 구스타브는 충실한 호텔 로비보이 ‘제로(토리 레볼로리)’와 함께 누명을 벗기기 위한 기상천외한 모험을 시작한다. 한편, 드미트리는 그녀의 유품과 함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까지 차지하기 위해 무자비한 킬러 ‘조플링(윌렘 대포)’을 고용하기에 이르는데…
웨스 앤더슨 만큼 자신만의 확고한 개성과 스타일을 지속해서 유지하는 예술인은 보기 드물 것이다. 데뷔작인 [버틀로켓] 부터 최근작인 [문라이징 킹덤] 까지, 어느 하나 그의 스타일에 조금이라도 벗어난 영화가 있던가? 그래서 그의 영화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매니아들은 앤더슨 만의 독특함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의 영화가 다소 생소한 일반관객들은 웨스 앤더슨의 스타일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웨스 앤더슨 스럽고 그를 위한 영화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의 스타일을 위해 모든 유명 배우들이 참여하고 아낌없이 망가졌다. 그것도 아주 우아하게 말이다.
그가 연출한 모든 작품은 대부분 코미디다. 다만, 그의 유머 코드가 너무 스타일리쉬 하게 고상하게 그려져 일반 관객들이 이해하고 즐기며 관람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새로운 느낌과 긴 여운이 남는 작품을 체험해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은 그러한 측면에서 부담없이 즐겨 볼수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다. 작품은 마치 한편의 소설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처럼 동명의 소설책을 넘기며 시작한다. 우리가 듣게 되는 이야기의 전달 방식은 죽은 화자가 작품속 모티브가 된 인물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장면으로 연결되는 다소 복잡한 설정인데, 이를 통해 작품속의 이야기를 더욱 신비롭게 꾸며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실사 화면을 유지하던 영화가 이야기의 배경인 1927년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웨스 앤더슨 트레이드라 할 수 있는 동화 같은 영상미와 세계관이 반영되기 시작한다.
배경이 되는 산속 언덕 위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전경은 인형극의 세트장 같으며, 호텔을 비롯한 여러 내부 세트의 모습은 영화보다는 연극 무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기자기하다. 주변 환경은 눈밭이 쌓인 겨울로 설정하면서 극명한 색의 조화를 이끌어낸다. 앤더슨 영화속 주인공들은 간혹 약간의 침묵을 유지하거나 대사를 빨리 길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 인물의 뒷배경을 돋보이게 해 극명한 조화와 대립을 이루게 하는 재주가 있다. 이번 영화 또한 그러한 방식을 그대로 이어간다. 배경+대사+인물의 표정이 함께 가미된 디테일의 힘이 앤더슨만이 스타일이 살아 숨 쉬는 영화를 완성한다.
주인공들을 돋보이게 해 긴 여운을 남기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분장부터 신경쓴 부분이 눈에 띄는데, 수염,안경,헤어스타일,버릇 같은 행동 등 캐릭터의 외적,내적인 측면을 조화롭게 꾸며내 보는것만으로도 강렬함을 주고있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대사에 시적인 부분을 첨가하거나 자신들의 인생관과 철학을 휘황찬란하게 떠드는 수다스럽게 떠든다. 이를 적절하게 배치한 앤더슨의 계산적인 연출 덕분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영상,대사,스토리,연기적 측면에서 다양하고 재미있게 감상할수 있다. 이렇듯 독특한 배경과 그 안에서 놀고있는 배우들 마저 남다른 개성을 부여 함으로서 영화는 예상치 못한 조화를 이룬 즐거운 전개를 이어간다. 그 과정이 막장과 같은 난장판으로 연결되면 더욱 즐겁다. 스타일과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 충돌하고 대립하고 조화를 이루게 되면서 앤더슨 만의 우아한 유머를 마음껏 즐길수 있다.
하지만, 후반부 결말로 이어지게 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고 급전개 방식으로 정리되는 과정은 영화의 여운에 비해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를 보여주고 있어 진한 아쉬움을 주고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앤더슨 영화의 스타일답게 유쾌하고 즐거운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하지만, 그 배경을 보면 슬픈 현실이 숨겨져 있다. 가상의 역사를 배경으로 두었지만, 영화가 배경으로 두고있는 시대적 배경은 1,2차 세계 대전을 연상시키는 '파시즘' 적인 슬픈 역사이며 암울한 시기이다. 영화속 배경이 되는 호텔은 이와 대비되는 다양한 인종,신분,나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가고 일하며 '인정(人情)'으로 서로를 돕고 사랑하던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장소에 정겨운 캐릭터들이 함께 모인 것처럼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 모두가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었던 주인공 구스타브(랄프 파인즈)의 철학은 어쩌면 웨스 앤더슨 본인이 그동안 연출한 영화속 세계의 이상향인듯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