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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력(信心力)은 변화를 극복해 나가는 힘입니다.”
용학스님이 큰스님이 계시던 방 낮은 상에 책과 염주를 올려놓으셨다. 침상과 높은 책상은 큰스님 자리로 비어 있었다.
입승 정오스님이 오셔서 용학스님에게 일 배를 하셨는데 용학스님도 같이 절을 하셨다.
절을 마치신 두 스님이 앉아서 큰스님 소식을 이야기하셨다.
큰스님은 포행을 좀 하시고 화엄전으로 오르시다가 난간 짚은 팔에 힘이 빠져 두어 계단쯤에서 넘어지셨다고 했다. 고관절 수술은 수술 전 컨디션을 만들 준비가 필요해서 5일 정도 기다렸다가 무사히 잘 마치셨다고 했다.
진통제로 견디며 수술을 기다리시는 와중에도 문병 가신 용학스님에게 화엄경 강의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우선은 몸만 생각하시라고 여러 번 말씀드리던 용학스님이 그러면 스님이 오실 때까지 중강소임을 맡고 있겠다고 여쭸더니 흔쾌히 ‘그러자’ 하셨다고 했다.
“우리가 화기애애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통해서 근심을 덜어드리면 어른의 쾌차하시는 것도 빠를 것”이라고 공백없이 법회를 하자고 정오스님이 법회 전에 대중스님들께 공지하셨다.
용학스님은 대만순례에서 돌아와 큰스님을 문병 갔다 온 날 다시 전화를 받고 한차례 병원을 옮기게 된 에피소드 등을 전하시면서 한마디로 모든 과정이 “전쟁입니다. 전쟁”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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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정리하는 때는 큰스님께서 수술 받으신 후 3주가 지난 뒤인데 다시 처음 수술했던 병원으로 돌아와 재활치료를 순조롭게 받고 계시다고 했다. 보원스님께 전화를 해서 여쭤보았다. 재활하고 계신 병원은 문병도 허용이 되어서 낮에는 상좌이신 시원스님이 오시고 보원스님도 밤에 자주 찾아뵙는다고 했다.
큰스님은 재활훈련이 고되어서 한번 하고 오면 녹초가 되시는데, 기분도 좋으시고 병원의 옥상이나 병원 앞 도로에도 휠체어를 타고 나가 둘러보기도 하셨다고 했다. 전날에는 혼자서 침상에 앉아 계실 수도 있게 되어서 회복이 점점 빨라지시겠다고 보원스님이 밝은 목소리로 전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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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성 보살님이 무량사 성오스님을 보고 인사하셨다. 법회 때마다 늘 커피를 가져오셨던 것처럼 수술을 기다리시는 동안 큰스님께 여러 가지 반찬을 해오셨다고 고마워하셨다. 큰스님께서 냉이국을 좋아하셔서 다행이었다고 성오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창가에 현수스님이 계셔서 인사드렸다.
“큰스님이 안 오셔서 어떠신가요?”
“뭐 어때요. 이렇게 공부할 수 있으면 되지.”
현수스님은 오전에 문병을 갔는데 대학병원이라 문병이 안되고 큰스님과 통화를 하셨다고 했다.
“여기 스님들 많이 안 오실까 걱정하시더라고요. 나보고도 얼른 가서 공부하라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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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입니다.”하고 늘 인사하시던 석교스님은 “아 오늘은 큰스님께서 아프시니 그렇게 좋은 날은 아니네요.” 하셨다. 그날 와서 큰스님 소식을 처음 들으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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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무거사님은 큰스님께서 그래도 더운 여름에 다치신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하시면서 앞으로 선원 앞에 휠체어가 오를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쉬는 시간에 오늘 오신 스님들은 몇 분 정도나 될지 여쭤보니 한 75분쯤 오신 것 같다고 하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五十
[平等因果中 明果]
如來出現品 第三十七之一
三. 普賢菩薩의 說法
어른스님께서 뜻하지 않게 편찮으시니까 상당히 마음이 무겁다. 우리가 늘 그렇게 살얼음 밟듯이 무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하루 전날 같이 계셨는데 이튿날 날 맑다고 포행 조금 하시다가 다치셨다고 하니까 연로하시기도 하고 주변 분들도 놀라고 당신께서는 더욱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상당히 마음이 무겁다.
“강의 생각하시지 마시고 휴강도 좀 하시고 대중하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스님 몸이 쾌차하시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는데 당신 해오던 원력이 있으니까 “강의가 계속 되어야겠다.” 말씀하셔서 할 수 없이 모시고 있는 시자로서 제가 중강(仲講)으로 여러분들과 같이 논강하듯이 공부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른 스님께 최대한 보답해드리는 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하튼 오늘 공부할 부분은 가지고 계신 교재 248페이지(민족사刊 제3권) 대천세계의 성립부터 할 차례다.
1. 如來出現答
(4) 重頌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대목이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이다.
익숙하게 잘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오시니까 여래출현품 내용을 짧게 요약해보면, 화엄경에는 인과법으로 따졌을 때 오주인과(五周因果)로 나눈다.
1회차 설법에서는 소신인과(所信因果)라 해서 무엇을 믿어야 될 것인가, 믿을 바에 대해서는 부처님의 의보와 정보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잘 설명한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중생들을 위해서 다시 2회차 설법부터 7회차 설법까지 31품이 설해진다.
화엄경 39품 중에 장황한 이 서른 한 대목이 화엄경의 몸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논리적 근거를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고 할 때 해(解)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 이론의 처음 시작 부분은 제7품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이고 그 몸통의 마지막 부분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제37품 여래출현품이다.
여래명호는 마치 그 집 대문의 문패를 보는 것과 같고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여래출현은 그 집 주인이 문밖으로 나오는 것과 같다.
이 여래출현품을 60화엄경에서는 보왕여래성기품(寶王如來性起品)이라고 한다. 성품이 일어난 품이다, 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방광이 두 번 이루어진다.
앞에서 배웠다시피 여래성기묘덕(如來性起妙德)보살의 정수리로 방광이 들어갔다.
여래성기(如來性起) 여래의 성품이 일어났다. 성품이 일어난 것을 다른 말로는 출현(出現)이라고 한다. 부처님이 출현하신 것이다. 성품이 일어났다는 것을 또 다른 말로 법신(法身)이라고 이야기한다.
성품이 일어난 것은 법신이다.
연기가 일어난 것은 흔히 보신(報身)이라고 이야기한다. 과보(果報)라고 할 때의 보(報)자 보신(報身)이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여래출현이라는 말이 여래성기품이고 여래성기묘덕은 문수보살을 상징한다.
문수보살은 문수사리이고 이 말을 묘덕이라고 번역한다. 문수보살을 만수시리라고 번역했을 때는 묘길상이라고도 한다. 문수보살은 어떤 보살보다 지혜가 뛰어나다,라고 이야기할 때는 머리 수(首)자를 써서 묘수라고 한다.
묘수(妙首), 묘덕(妙德), 묘길상(妙吉祥) 이 모든 말이 문수보살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렇게 문수보살을 지칭하는 것은 문수보살이 과거 7불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이 탄생하였다고 해서 ‘나무(南無) 오봉성주(五峰聖主) 칠불조사(七佛祖師) 문수보살(文殊菩薩)’이라고 예참한다.
우리가 공부하는 곳도 문수선원이다.
문수보살의 상징이 여래성기묘덕 보살이다.
여래출현품에서는 부처님의 백호미간에서 방광을 했다. 미간은 양쪽으로 나눠지는데 백호미간(白毫眉間)이라고 하는 것은 양쪽에 치우침이 없는 것을 뜻한다. 진속(眞俗)에 치우침이 없고, 진망(眞妄)에 치우침이 없는 모든 것을 끊어버린 중도정견(中道正見)을 백호미간이라 이야기한다.
그 백호미간에서 나온 광명을 문수보살인 여래성기묘덕보살의 정수리, 그 근본으로 부처님께서 쏟아부으신다.
나중에 보현보살은 입에서 구중방광을 보여서 보현보살 입으로 쏟아붓는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실천궁행을 상징한다.
간략하게 크게 나눠서 이러한 내용이 여래출현품의 대체적인 요강이다.
오늘은 여래의 신업(身業)까지는 봐야 안 되겠나 하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다. 大千世界의 成立
譬如世界初安立에 非一因緣而可成이요
無量方便諸因緣으로 成此三千大千界인달하야
如來出現亦如是하사 無量功德乃得成이니
刹塵心念尙可知어니와 十力生因莫能測이로다
譬如劫初雲澍雨에 而起四種大風輪하니
衆生善根菩薩力으로 成此三千各安住인달하야
十力法雲亦如是하야 起智風輪淸淨意하고
昔所廻向諸衆生을 普導令成無上果로다
비유하면 세계가 처음으로 생겨날 적에
한 가지 인연으로 된 것 아니요
한량없는 방편과 모든 인연으로써
이 삼천대천세계 이루었듯이
여래의 출현함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공덕으로 이룬 것이니
세계의 먼지 같은 마음은 오히려 안다 하여도
십력(十力)의 생긴 인연은 측량 못하도다.
비유하면 맨 처음에 큰 구름이 비를 퍼부어
네 가지 큰 바람둘레 일으키듯이
중생의 착한 뿌리와 보살의 힘으로
이 삼천대천세계가 생겨서 머물렀나니
십력의 법의 구름도 그와 같아서
지혜의 바람둘레와 청정한 뜻을 일으켜
옛적에 회향하온 여러 중생을
인도하여 위없는 과(果)를 이루게 하도다.
*
대천세계(大千世界)의 성립(成立)
*
대천세계의 성립이라고 해서 세계가 형성되는 부분이다.
세계가 형성되는 것은 세계의 주인이 마음에서부터 다 나왔기 때문이다. 왕이 즉위하면 그 국토가 모두 왕에게 소속된다고 세주묘엄품에서 배웠다. 여래가 출현해 버리면 국토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모든 것은 부처님의 소속으로 해당된다.
삼천대천 세계 성립과정 세 번째 단락부터 보도록 하겠다.
*
비여대천세계초안립(譬如世界初安立)에
비일인연이가성(非一因緣而可成)이요
무량방편제인연(無量方便諸因緣)으로
성차삼천대천계(成此三千大千界인달하야
*
여래출현역여시(如來出現亦如是)하사
무량공덕내득성(無量功德乃得成)이니
찰진심념상가지(刹塵心念尙可知)어니와
십력생인막능측(十力生因莫能測)이로다
*
비여겁초운주우(譬如劫初雲澍雨)에 : 비유하면 겁초에 운주우라, 앞부분에 겁초가 나왔다. 이 세계가 시작되기 전에 최초, 시초를 겁초라고 했다. 겁초에 큰 구름이 비를 퍼부어서
이기사종대풍륜(而起四種大風輪)하니 : 네 개의 대풍륜을 일으켰다.
앞에 나온 장문에는 염지불망다라니(念持不忘陀羅尼)대지혜라든지, 지관(止觀) 사마타와 비파사나의 대지혜 바람이라든지, 선교회향(善巧廻向)의 대지혜 바람이라든지, 때 구정물 번뇌를 떠나게 되는 출생에 장엄하는 대지혜 풍륜 등 네 가지 풍륜이 나왔다.
장문에서 했던 것을 여기 중송에서 다시 거듭 네 가지 대풍륜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불설포태경(佛說胞胎經) 이런 데 보면 바람이라고 하는 것이 나온다. 절에서는 그냥 바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가면 바람이 흔적이 없는 것 같지만 거기서는 꼭 깨잡아서 물고 넘어가는 것이 생명의 지혜를 물고 넘어간다.
우리가 자궁 속에서 잉태됐을 때 일주일 일곱 시간 뒤에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가면서 따뜻한 열기가 피어난다고 나와 있다. 일주일마다 자궁에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갈 때 포태되어 부모의 자궁 속에 우리가 수태됐을 때 처음에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간다고 하는 것은 바람뿐만이 아니라 거기에 꼭 의식, 유식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같이 깨물고 넘어가는 것이다.
오온 고기덩어리만 생겨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 세계가 형성되는 것도 우리 육체가 형성되는 것처럼, 일주일이 지나면 거기서 세포가 분화를 하기 시작하고 알포담(遏蒱曇) 갈라람(羯囉藍)해서 능엄경에서 자세하게 배웠다. 그런 것처럼 1주차에 열기가 올라온 것이 우리가 평생 살아가면서 체온이 되고, 그때 돋아났던 촉촉한 물기운은 평생토록 살면서 지수화풍의 물기운이 된다.
그때 3주차 지나면서 유야무야 만져질 듯 안 만져질 듯하던 딱딱한 기운들은 평생토록 살아가면서 뼈와 살과 근육 같은 것이 되어서 땅기운이 된다.
5주차가 지나면서 이마와 양어깨와 두 무릎이 생겨난다.
7주차가 지나면서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가면 눈코입귀가 벌어지고 손톱 발톱이 생겨난다.
불교 경전을 통해 스님들께서 익숙하게 아시는 바와 같이 이렇게 형성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래서 여기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간다고 하는 것은 그냥 바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태동이다.
요즘 같은 훈풍에 만물이 호장신이라 따뜻한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가니까 만물이 다 자라게 된다.
이런 의미로 지금 여래출현품에서 대천세계가 형성되는 것에도 바람이 바람이 아니라 한 줄기 바람 속에 모든 생명이 태동한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중생선근보살력(衆生善根菩薩力)으로 : 중생의 착한 뿌리와 보살의 힘으로
성차삼천각안주(成此三千各安住)인달하야 : 삼천대천 세계가 생겨서 안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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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력법운역여시(十力法雲亦如是)하야 :십력, 부처님의 법운, 법의 구름도 그와 같아서, 구름은 꼭 비를 머금고 있어서 비가 내려야 만물이 생장한다.
법화경의 약초유품 같은 데 이런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기지풍륜청정의(起智風輪淸淨意)하고 : 기지풍륜이라. 지혜의 풍륜과 청정한 뜻을 일으켜, 바람이 지나가면 그냥 바람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꼭 깨끗한 진여 자성을 깨물고 간다, 깨잡아 간다, 이런 뜻이다.
석소회향제중생(昔所廻向諸衆生)을 : 옛적에 회향해 온 여러 중생을 널리 이루게 하여
보도영성무상과(普導令成無上果)로다 :보도영성(普導令成) 뭐뭐하게 이루게 한다. 무상과(無上果)로다, 아뇩다라 삼막삼보리과를 이루게 하도다.
여기서 삼천대천 세계가 형성된 것을 총괄적으로 이야기하고 다음에는 낱낱이 비유로써 아홉 가지로 나눠서 이야기한다.
총체적으로 여래출현 대목을 37 게송으로 나눠 놓았는데 지난 시간까지 열네 게송을 공부했고 오늘은 스물세 게송을 공부한다.
스물세 게송 중에서 앞부분의 네 게송은 그런 뜻이고 여기서 하나하나 대비해서 비유와 회통을 통해 정리를 한다.
라. 餘他九喩
如有大雨名洪澍라 無有處所能容受요
唯除世界將成時에 淸淨虛空大風力인달하야
如來出現亦如是하사 普雨法雨充法界하니
一切劣意無能持요 唯除淸淨廣大心이로다
譬如空中澍大雨에 無所從來無所去며
作者受者悉亦無호대 自然如是普充洽인달하야
十力法雨亦如是하야 無去無來無造作이라
本行爲因菩薩力이니 一切大心咸聽受로다
譬如空雲澍大雨에 一切無能數其滴이요
唯除三千自在王이 具功德力悉明了인달하야
善逝法雨亦如是하야 一切衆生莫能測이요
唯除於世自在人이 明見如觀掌中寶로다
譬如空雲澍大雨에 能滅能起亦能斷하며
一切珍寶悉能成하며 三千所有皆分別인달하야
十力法雨亦如是하야 滅惑起善斷諸見하며
一切智寶皆使成하며 衆生心樂悉分別이로다
譬如空中雨一味에 隨其所雨各不同이나
豈彼雨性有分別가 然隨物異法如是인달하야
如來法雨非一異라 平等寂靜離分別이나
然隨所化種種殊하야 自然如是無邊相이로다
譬如世界初成時에 先成色界天宮殿하며
次及欲天次人處하며 乾闥婆宮最後成인달하야
如來出現亦如是하사 先起無邊菩薩行하며
次化樂寂諸緣覺하며 次聲聞衆後衆生이로다
諸天初見蓮華瑞하고 知佛當出生歡喜하나니
水緣風力起世間하야 宮殿山川悉成立이로다
如來宿善大光明으로 巧別菩薩與其記하시니
所有智輪體皆淨하야 各能開示諸佛法이로다
譬如樹林依地有하며 地依於水得不壞하며
水輪依風風依空호대 而其虛空無所依인달하야
一切佛法依慈悲하며 慈悲復依方便立하며
方便依智智依慧호대 無礙慧身無所依로다
譬如世界旣成立에 一切衆生獲其利하나니
地水所住及空居와 二足四足皆蒙益인달하야
法王出現亦如是하사 一切衆生獲其利하나니
若有見聞及親近이면 悉使滅除諸惑惱로다
퍼붓듯이 내리는 억수장마 비를
어디에도 받아둘 처소 없건만
오직 대천세계 이뤄지려 할 때만
맑은 허공 큰 바람이 다스리듯이
여래의 출현함도 그와 같아서
법의 비를 널리 내려 법계에 가득하니
용렬한 소견으로는 못 지니지만
오직 청정하고 광대한 마음은 지닐지니라.
비유하면 허공에서 큰 비를 퍼부을 적부터
온 데도 없고 간 데도 없고
짓는 이도 받을 이도 다 없지마는
자연히 저러하게 널리 흡족하듯이
열 가지 힘의 법의 비도 그와 같아서
오고 가는 일 없고 지음도 없고
본래 행(行)이 원인되어 보살 힘으로
큰 마음 가진 모든 사람 받아 듣도다.
비유하면 허공의 구름에서 내리는 큰 비
아무도 빗방울을 셀 수 없지만
오직 삼천세계 자재천왕은 셀 수 있을 것이니
공덕 힘을 갖추어 모두 다 알듯이
잘 가신 이[善逝]의 법의 비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은 헤아리지 못하지마는
오직 세상에 자재한 이는 헤아릴 것이니
손바닥에 있는 보배를 보는 듯하도다.
비유하면 허공의 구름에서 내리는 큰 비
없애고 일으키고 끊기도 하며
여러 가지 귀중한 보배 만들고
삼천세계 있는 것 다 분별하듯이
열 가지 힘의 법의 비도 그와 같아서
미혹은 없애고 선행은 일으켜 모든 소견 끊으며
여러 가지 지혜 보배 이루게 하고
중생들의 좋아함을 다 분별하도다.
비유하면 공중에서 내리는 비는 한 맛이지만
비로 적실 것을 따라서 같지 않나니
어찌 비의 성품에 분별이 있으랴만
사물이 다르므로 이치가 그와 같듯이
여래의 법의 비도 같지도 다르지도 않아
평등하고 고요하여 분별없건만
교화할 바 갖가지가 다름을 따라
자연히 그와 같이 그지없도다.
비유하면 세계가 처음 이룰 때
형상세계 하늘궁전 먼저 생기고
다음에 욕심하늘 다음에 인간
건달바의 궁전은 나중에 이루듯이
여래의 출현함도 그와 같아서
그지없는 보살행 먼저 이루고
고요함을 즐기는 연각(緣覺)이 다음
그 다음은 성문(聲聞)들 나중에 중생이로다.
모든 천신들이 연꽃 상서(祥瑞) 처음 보고서
부처님이 출현하시리라 환희하더니
물 인연과 바람의 힘으로 세간이 생기며
궁전과 산과 강이 모두 생기고
여래의 지난 세상 선근의 큰 광명이
보살 근기 분별하여 수기를 주고
지혜의 바람둘레 모두 청정해
제각기 부처님 법 열어 보이도다.
비유하면 나무숲은 땅덩이를 의지해 있고
땅은 물을 의지해서 무너지지 않으며
물은 바람을 의지하고 바람은 허공을 의지하되
그렇지만 허공은 의지함이 없듯이
모든 불법은 자비를 의지하였고
자비는 좋은 방편 의지해 있고
방편은 지(智)를 의지하고 지는 혜(慧)를 의지하되
걸림 없는 혜신(慧身)은 의지할 데 없도다.
비유컨대 세계가 이루어진 뒤에는
여러 종류 중생들 이익 얻나니
땅과 물과 허공에 사는 것들과
두 발, 네 발 가진 중생 다 이익하게 하듯이
법왕(法王)의 출현함도 그와 같아서
여러 종류 중생들 이익 얻나니
보는 이나 듣는 이 친근히 하면
모두 다 번뇌 의혹을 소멸케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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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구유(餘他九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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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대우명홍주(如有大雨名洪澍)라 : 비유컨대 마치 억수로 쏟아지는 장맛비라. 큰비가 내리는데 그 장맛비를 홍주라고 한다. 그 홍주가
무유처소능용수(無有處所能容受)요 : 무유처소다. 앞의 장문에서 다 배웠던 것들이다. 비가 하늘이 뚫린 듯이 쏟아지면 그 물을 받아줄 처소가 없다. 예를 들어서 세수대야나 한정된 그릇이나 연못이나 저수지나 이런 데는 하늘에 비가 내리면 홍수가 나든지 둑이 터지든지 다 무너져 버린다.
그러나 저 바다는 모든 물이 다 쏟아지더라도 다 능히 받아들인다. 백천 강물이 매일같이 일초도 쉬지 않고 밀려들어오더라도 그것을 다 감당해 낼 수가 있다. 이것을 흔히 법해(法海)라고 하고 화엄성해(華嚴性海)라고도 한다. 화엄성품의 바다다.
법계를 이야기할 때는 법계의천(法界義天)을 말한다. 법계 뜻의 하늘은 모든 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더라도 허공 너머의 별까지도 다 수용할 수 있는 법계의천이 있다는 것이다.
법해, 진여성해, 화엄의 바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유제세계장성시(唯除世界將成時)에 : 여기서는 삼천대천 세계가 유위법으로, 생멸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루에 백천 개의 삼천대천 세계가 생겨지더라도 얼마든지 감당해 낼 만하다. 그것이 바로
청정허공대풍력(淸淨虛空大風力)인달하야 : 여래의 대지혜 풍력 속에서 있다. 대지혜 가풍이다, 본래면목이다, 이런 뜻이다.
이 세상 유위법을 보면 저 쏟아지는 비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오직 세계가 장차 이루고자 할 때 청정 허공은 그 풍륜의 힘을 다 받아들인다. 그것만은 제외다.
아무리 태풍이 지나가더라도 허공 밖을 지나가는 바람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심외무법(心外無法) 마음의 밖에는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여래출현을 보고 있다. 여래출현을 다른 말로 하면 여래의 성품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여래 성품이 일어나는 것을 의상스님께서는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이라고 한다.
여래의 성품은 없는 데서, 본래 무면목에서 왔기 때문에 그것은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라고 이야기한다.
제법(諸法)은 부동본래적(不動本來寂)이다. 제법은 부동해서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것인데 그러나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이라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진다. 성정본각(性淨本覺) 차원에서는 텅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지만 수염본각(隨染本覺) 차원에서는 불가사의하게 세상의 모든 법, 만법이 오직 유식에서 비롯됐다,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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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출현역여시(如來出現亦如是)하사 : 부처님의 출현도 그와 같아서 이 대목 여래출현에 대해 잘 이해하시려면 화엄경 79권 미륵보살장을 보면 된다. 또 십회향품 제8 진여상 회향에 보면 진여자성이 어떻게 출현하는가에 대한 것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유마경 같은 경우는 관중생품(觀衆生品) 같은 데 잘 나온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매일 읽는 반야심경의 6불 불생(不生) 불멸(不滅) 불구(不垢) 부정(不淨) 부증(不增) 불감(不減)이 바로 이 여래출현을 하실 때를 말한다. 그때가 바로 그 6불(不)을 이야기할 수가 있고, 오온개공(五蘊皆空)이 됐을 때가 여래출현으로 가는 길목에 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오온으로 가는 이 여래출현을 못 보는 것은 오온에 집착해 있고 오온개공이 안되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여래출현도 이와 같아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보우법우충법계(普雨法雨充法界)하니 : 널리 법비를 내려서 법계를 충분히 적시니, 가득하게 충만하게 하니
일체열의무능지(一切劣意無能持)요 : 집착을 해서 소갈딱지가 아집덩어리 같은 사람들은 열의(劣意), 그런 마음을 가지고는 무능지라, 잠시도 지탱할 수가 없다.
종이쪼가리 그릇을 가지고는 포항제철 용광로의 쇳물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뜻이다.
뭐하나 폭 찌르면 바르르 끓어서 냄비 끓듯이 끓었다 넘쳤다 끓지도 않고 넘치는 소갈딱지로서는 못 견딘다는 말이다.
경전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대목도 없고, 실천할 수 있는 대목도 없는 것은 경전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마음의 아집이 너무 강해서 잘 안되는 것이다. 일체열의가 무능지다.
유제청정광대심(唯除淸淨廣大心)이로다 : 오직 청정하고 광대한 대자대비한 마음에서는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가 있다.
대표적으로 법화경의 제바달다품이 그렇다.
‘제바달다를 넘어서 제바달다는 나의 스승이었다’라고 했던 부처님 같은 소견이 있으니까, 부처님은 제바달다를 넘어서 부처님이 될 수 있었다.
다른 종교이기는 하지만 예수 같은 경우도 유다를 용납해버리니까 예수가 될 수 있었다.
유다가 용납이 안 되고 제바달다가 용납이 안 되면 그냥 옹졸하게 살다가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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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공중주대우(譬如空中澍大雨)에 : 비유하면 공중에 허공에서 큰비가 쏟아부을 적에
무소종래무소거(無所從來無所去)며 : 온 데도 없고 간 데도 없다.
금강경에도 여래자(如來者)는 무소종래(無所從來)며 역무소거(亦無所去)라고 나온다.
거듭 말씀드리자면 이 대목은 화엄경 입법계품 79권 미륵보살장에 보면 ‘그대는 어디서 왔습니까?’‘온 데 없이 왔다’ 라고 나온다.
쉽게 예를 들면 이렇다.
선재동자가 비로자나장엄장 누각 앞에서 덕생동자 유덕동녀로부터 선지식을 소개받고 비로자나장엄장 누각 앞에서 미륵보살이 오시기를 그렇게 간절하게 기다렸다. 그런데 미륵보살은 비로자나장엄장 누각 문을 열고 나오시지 않고 별처래(別處來)라. 멀리 다른 데서 오셨다.
그 대목이 화엄경 입법계품 첫 대목에 나온다. 선재동자가 보증수표 같은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고 덕운비구를 찾아갔는데 일주일 동안 찾아 헤매도 덕운비구는 그 자리에 안 계셨다. 일주일 후에 산을 돌아서 떡 보니까 타산(他山)에서 다른 산 꼭대기에서 서서히 경행하고 계셨다. 이것이 바로 오늘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여래출현품이 되겠다.
이런 대목을 원효스님께서는 일찍이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의 주제로써 ‘무리지(無理之)가 지리(至理)다. 이치 없는 것이 지극한 이치요, 불연지(不然之)가 대연(大然)이다. 그러하지 않은 것이 지극히 그러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금강삼매경론에도 그렇게 쓰시고 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에서도 ‘이치 없는 것이 지극한 이치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것이 여래출현이다.
다른 말로는 금강경에서 ‘여래자(如來者)는 무소종래(無所從來)며 역무소거(亦無所去)라’ 고 표현했고, 화엄경에서는 무소종래며 무소거다, 라고 하였다.
화엄경 여래출현품을 보든지 금강경을 보든지 기신론을 보든지 금강삼매경론을 보든지 육조스님의 의견을 들어보든지 간에 모든 것의 진여자성, 여래출현은 ‘여래는 모습이 없다, 법신은 모습이 없다’라고 표현된다.
이것을 49재 지낼 때 흔히 고혼청(孤魂請)을 할 때 많이 한다. ‘법신무적(法身無跡) 종연은현(從緣隱現) 약경상지유무(若鏡像之有無) 수업승침(隨業昇沈) 여정륜지고하(如井輪之高下)’ 무상게에도 여기 나오는 여래가 출현하는 대목을 잘 써놓았다.
49재 지낼 때는 생멸에 대해서, 사람이 죽었다 살았다, 살았다 죽었다 이것을 가지고 법문을 해야 되는데 49재 관음시식이라든지 상용영반(常用靈飯)은 전부 불생불멸만 이야기한다.
묘체(妙體)는 담연(湛然)하여 무처소(無處所)다, 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가? 무처소다, 처소가 없기 때문에 적멸하다. 적멸하기 때문에 여래가 출현하셨다.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이나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이다, 이렇게 되겠다. 좀 어렵지만 넘어가겠다.
작자수자실역무(作者受者悉亦無)호대 : 짓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실역무라. 이래서 반야심경에는 짓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없기때문에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무집무고라고 하였다. 인(因)도 없고 과(果)도 없다. 이런 것은 화엄경 보살문명품에 너무 자세하게 잘 써 놓았다.
짓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다.
금강경에서는 이런 대목을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고 한다. 주는 사람도 없고, 받는 사람도 없고, 하나 더 보태서 주는 물건도 없다. 삼륜이 청정하다. 이것이 여래출현이 되겠다. 짓는 이도 받을 이도 다 없지만
자연여시보충흡(自然如是普充洽)인달하야 : 자연히 이와 같이 보충흡이라.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라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이라. ‘아 그렇게 부처님은 오셨다 가시는구나’ 그러니까 오고 간 바는 없지만 갖은 방편을 설해서 중생을 교화한다. 왜 갖은 방편이냐? 중생들의 근기와 욕망과 성품이 다르기 때문이다.
태양은 높은 산을 먼저 비추고 낮은 계곡이나 평야를 늦게 비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태양은 늘 동시에 똑같이 비췄을 뿐이다. 그런데 중생이 저절로 높은 사람은 먼저 받아들이고, 낮은 사람은 늦게 받아들이고, 구멍에 처박힌 놈은 못 받아들이고, 엎어진 놈은 안 보인다.
그것은 태양의 잘못이 아니라 각자의 업의 차이라고 본다.
기신론 같은 데는 ‘아니 이렇게 불교경전에 설했으면, 딱 한 번 깨달아 듣고 알아들었으면 끝나야지, 여래가 출현해야지, 왜 견성성불을 못 합니까?’‘중생들의 무명에 덮인 업장의 두텁고 얇은 정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지 경전의 문제는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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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력법우역여시(十力法雨亦如是)하야 : 열 가지 힘의 법비도 그와 같아서, 열 가지 힘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다. 부처님께서 내리시는 법비라고 하는 것은 경전 아니겠는가. 말씀도 그와 같아서 오고 가는 일도 없고 지음도 없다.
부처님이 아무것도 안 하시지만 수보리에게 부처님께서 물으신다.
“여래가 석재연등불소(昔在燃燈佛所)에 유소득법부(有所得法不)아, 얻은 바 법이 있더냐 수보리야?”
“불야(不也)니이다 세존(世尊),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얻은 바 법이 없사옵니다.”
수보리는 그렇게 건방스럽게 이야기한다. 진짜인데 우리가 볼 때에는 건방스럽다.
“수보리가 정말 잘 대답하는구나.”
부처님께서 자존심도 안 상하고 “그래 네가 잘 아네.”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 바로 이 이야기다.
무거무래무조작(無去無來無造作)이라 : 무거무래무조작이라.
본행위인보살력(本行爲因菩薩力)이니 : 부처님의 본행이 원인이 되어 보살의 힘, 보살력이니
일체대심함청수(一切大心咸聽受)로다 : 일체대심(一切大心)은 함청수(咸聽受)로다. 이 정도 얘기는 마음이 툭 터진 사람이라야 알아들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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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무래무조작이라 하는 대목에 대해서 부연설명하자면 여러분들에게 오늘 나눠드린 유인물이 하나 있다.
이것이 화엄경 십인품(十忍品)에 나오는 내용인데 십인품의 하이라이트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다. 무생법인을 중심으로 해서 앞 뒤로 다 정리되어 있다.
<유인물>
p.1
삼십삼천중(三十三天中)에 삼십삼천 가운데
소유제천자(所有諸天子)가 있는 하늘 사람들이
공동일기식(共同一器食)호대 한 그릇에서 밥을 먹지만
소식각부동(所食各不同)하니 먹는 밥 제각기 달라
소식종종식(所食種種食)이 제각기 다른 여러 가지 밥이
부종시방래(不從十方來)라 시방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여시소수업(如是所修業)으로 그들의 닦은 업으로
자연함재기(自然咸在器)니 저절로 그릇에 담기니
보살역여시(菩薩亦如是)하야 보살들도 그와 같아서
관찰일체법(觀察一切法)이 온갖 법 살펴보건대
실종인연기(悉從因緣起)하야 인과 연으로 생기는 것이니
무생고무멸(無生故無滅)이로다 나지 않으매 사라짐이 없으며
무멸고무진(無滅故無盡)이요 사라지지 않으매 다함이 없고
무진고무염(無盡故無染)이니 다함이 없으매 물들지 않아
어세변이법(於世變異法)에 세상의 변하는 법에
요지무변이(了知無變異)하며 변함이 없음을 알고
p.2
무이즉무처(無異則無處)요 변함이 없으매 처소가 없고
무처즉적멸(無處則寂滅)이니 처소가 없으므로 고요하나니
기심무염착(其心無染着)하야 마음이 물들지 않아
원도제군생(願度諸群生)이로다 중생을 건지려 하네
전념어불법(專念於佛法)하야 부처님 법 오로지 생각하여
미상유산동(未嘗有散動)하고 언제나 산란치 않고
이이비원심(而以悲願心)으로 자비와 서원하는 마음과
방편행어세(方便行於世)로다 방편으로 세상 다니며
근구어십력(勤求於十力)하야 열 가지 힘 애써 구하며
처세이부주(處世而不住)하며 세상에 있으나 머물지 않고
무거역무래(無去亦無來)하야 가는 것 없고 오는 것 없이
방편선설법(方便善說法)이로다 방편으로 법을 말하네
차인최위상(此忍最爲上)이라 이 인(忍)이 가장 높아서
요법무유진(了法無有盡)하야 모든 법 다함이 없고
입어진법계(入於眞法界)호대 참 법계에 들어가지만
실역무소입(實亦無所入)이로다 실제로는 들어갈 것도 없어
*
2페이지 뒤에 보면
근구어십력(勤求於十力)하야 : 부지런히 부처님을 구해서
처세이부주(處世而不住)하며 : 세상에 살되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 무주이주라. 머무름 없이 세상에 처하지만 세상에 살면서 주세 하지만 머무르는 것이 없다. 머무르지 않고
무거역무래(無去亦無來)로다 :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이
방편선설법(方便善說法)이로다 :방편으로 선설법이라, 방편으로 법을 말하네.
여기서 무생법인(無生法忍) 무생이기 때문에 무멸이다. 그것은 불생불멸이기 때문에 무생법인이 바로 여래출현이다
여래출현이라고 하는 것은 무생법인이다.
1페이지 한 번 읽고 넘어가겠다.
반야심경이나 오늘 우리가 하고 있는 여래출현품 대목을 잘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글귀를 소개하고자 유인물을 한 장 가져온 것이다.
p.1
삼십삼천중(三十三天中)에 : 삼십삼천 중에 저 도리천에서는 소유제천자(所有諸天子)가 : 거기 사는 모든 천왕의 아들들이 공동일기식(共同一器食)이라 : 유마경에 이 대목이 똑같이 나온다. 화엄경 십인품(十忍品) 무생법인에 나오는 대목처럼, 유마경에서는 공동일기식이라고 안 하고 보배그릇이라고 한다.
일기(一器), 보배그릇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일심(一心)이 되겠다. 한 그릇에서 밥을 먹지만
소식각부동(所食各不同)하니: 밥 한 그릇에서 똑같이 먹는데 먹는 사람이 천 명이 되든 백 명이 되든 열 명이 되든 밥은 한 그릇인데 어떤 사람은 짜장면 먹고 어떤 사람은 짬뽕 먹고 어떤 사람은 볶음밥 먹고 찰밥 먹고 먹는 바가 다르다. 업이 다르다는 것이다.
*
소식종종식(所食種種食)이: 제각기 여러 가지 밥이 다른 것은
부종시방래(不從十方來)라 :다른 데서 온 것이 아니고
여시소수업(如是所修業)으로 : 그들이 자기가 닦은 업으로
자연함재기(自然咸在器)니 : 전부 자업자득이다. 자연히 자기 꼬라지 대로 마음을 쓰다가, 자기 생각대로 살다가 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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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역여시(菩薩亦如是)하야 : 보살들도 그와 같아서
관찰일체법(觀察一切法)이 : 일체법을 보는데 무학대사는 부처님처럼 본다면 이성계는 돼지처럼 보듯이
실종인연기(悉從因緣起)하야 :인과 연으로 생기는 것이니 인연으로 생겨진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보신(報身)이다. 연기는 보신이고 성품으로 일어난 것은 법신(法身)이다. 불신(佛身)이고 여래신(如來身)이다.
여래신은 일어난 바가 없기 때문에 무성(無性)으로 이기(而起)한 것이다. 성품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무생고무멸(無生故無滅)이로다 :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안 생긴 것을 어떻게 없애겠는가. 없는 것은 없앨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무멸고무진(無滅故無盡)이요 : 없어지지 않는 까닭으로 다할 수도 없다, 무진이다.
무진고무염(無盡故無染)이니 : 다할 수 없는 까닭으로 변질되거나 오염되는 것도 없다. 항상 무염이다. 물들지도 않는다.
어세변이법(於世變異法)에 : 그러나 세간의 변화되고 달라지고, 변이법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변해 가는 것, 물질이 유통기한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생불멸의 여래는 유통기한이 없다. 중생은 유통기한이 있고, 업보에 따라서 유통기한이 있지만, 성품으로 일어난 것은 유통기한이 없다.
요지무변이(了知無變異)하며 : 변함이 없음 ‘세상의 변하는 법에, 변하는 법이 없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모든 것은 인연법으로 생겨진다. 일체법, 만법은 유식이다. 원효스님이 해골바가지 물을 마셨듯이 그렇다.
삼계는 유심이요 만법은 유식이라는 말을 여기에 그렇게 인용해 놓았다.
p.2
무이즉무처(無異則無處)요 : 변이되는 것이 없는 까닭에 처소도 없다.
무처즉적멸(無處則寂滅)이니: 처소가 없기 때문에 적멸하다. 익숙한 이야기다.
기심무염착(其心無染着)하야 : 그 마음에 염착이 없어서
원도제군생(願度諸群生)이로다 : 중생을 다 건지려고 하는데 *
전념어불법(專念於佛法)하야 : 오로지 한 생각으로 전념어불법이라, 불법을 오로지 생각하여
미상유산동(未嘗有散動)하고 : 언제나 번뇌에 흔들리지 않고
이이비원심(而以悲願心)으로 : 자비와 서원하는 마음과
방편행어세(方便行於世)로다 : 방편으로 세상을 다니면서
*
근구어십력(勤求於十力)하야 : 열 가지 힘을 애써 구하여
처세이부주(處世而不住)하며 : 처세이부주하며
무거역무래(無去亦無來)하야 : 무거역무래하야
방편선설법(方便善說法)이로다 : 방편으로 선설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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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최위상(此忍最爲上)이라 : 이 무생법인은 최위상이라, 가장 최고 높은 법이다.
무생법인 자체가 여래출현 부처님이 탄생할 수 있는 팔십퍼센트 8부 능선을 넘어간다.
8지 이상의 보살이라야 얻는다. 여기서부터는 순풍에 돛단 듯이 억지로 엔진 걸고 시동 걸고 기아 변단 변속하지 않아도 잘 간다.
순풍에 돛단 듯이, 여기서부터는 노력하지 않아도 간다고 해서 흔히 수로이행이라 한다. 물 위에 배가 순풍에 돛단 듯이
요법무유진(了法無有盡)하야 : 모든 법을 다함이 없고
입어진법계(入於眞法界)호대 : 깨달아 들어간다. 진짜 법계에 들어가는 진법계, 무법계다. 법계는 일상이고 일상은 무상이기 때문에 진법계에 들어가지만, 법계에 들어갔지만
실역무소입(實亦無所入)이로다 : 실제로는 들어간 바가 없다.
깨달아도 깨달은 바가 없어야 되는데 ‘깨달은 바가 있다’ 하면 거기서부터는 증상만인(增上慢人)이라 한다. 제일 거짓말쟁이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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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공운주대우(譬如空雲澍大雨)에 : 비유하면 허공의 구름에서 내리는 큰비
일체무능수기적(一切無能數其滴)이요 :아무도 빗방울을 셀 수는 없지만
유제삼천자재왕(唯除三千自在王)이 : 오직 삼천세계 자재천왕은 셀 수 있을 것이니
구공덕력실명료(具功德力悉明了)인달하야 : 공덕의 힘을 갖추어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제외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공덕력을 갖춘다고 했다.
나고 죽는 것, 우리가 아프든지 하는 것을 자세히 관하면 아픈 것은 마음에서 왔다. 그것을 형악혜사선사(衡岳惠思禪師)는 알게 되었다.
형악혜사선사는 하안거를 지내면서 공부를 하다가 팔다리가 축 늘어져 아파서 ‘내가 업장이 두텁나? 일어나 서지도 못하고 와이리 아프노? 병은 어디서 왔는가?’ 이렇게 관한다.
병은 어디서 왔는가 관해보니 병은 고(苦)인데 ‘병고는 이 고통스러운 업보는 어디서 왔는가? 과보는 어디서 왔는가’ 하니까 ‘병은 업에서 왔더라’ 그럼 ‘이 업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관해보니 ‘업은 내가 미혹한 데서 왔다’
미혹해서 업을 짓는다.
그래서 우리가 12연기에서 혹(惑) 업(業) 고(苦) 이 세 가지는 악차취(惡叉聚) 열매와 같아서 한 세트라 한다. 이 세 동가리는 늘 한 다스 케이스 속에서 혹업고 한다.
그럼 미혹한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
무명에서 왔다. 무명업식에서 왔다. 그러면 캄캄한 무명이라고 하는 지혜 광명이 없는 무광명은 무명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무명은 저혼자 홀연히 생겨질 수가 없다. 무명은 어디에서 붙어 있느냐? 어여래장하야 유생멸심이라. 생멸을 일으키는 마음은 여래장, 진여자성에 붙어 있다.
그럼 진여자성 본심은 어디에서 왔는가?
본래 온 바가 없이 왔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다.
‘어 그럼 처음부터 온 게 없네?’ 이렇게 되어서 병도 ‘아 일체 유위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형악혜사선사(衡岳惠思禪師)가 거기서 깨쳐 버렸다.
우리는 계율도 안 지키면서 삼매를 닦으려고 하니까 그렇게 관할 수가 없다. 우리는 자비심이 없다. 삼매의 근본은 자비인데, 자비로와야 탐진치가 끊어질 텐데, 탐진치 속에 살면서 자꾸 삼매를 구하니까 삼매가 안 된다.
삼매를 못얻으니까 가피력이 없어진다. 그러니까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 앉아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깬다. ‘니와그라노 니와그라노’ 강산에 노래처럼 ‘니와그라노 니와그라노’ 와그라노 노래 한 번 들어보기 바란다.
여기서 공덕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다.
공덕력이라고 하는 것은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元功德母)
장양일체제선법(長養一切諸善法)
단제의망출애류(斷除疑網出愛流)하야
개시열반무상도(開示涅槃無上道)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현수품의 게송이다.
천친보살(天親菩薩)은 무엇을 가지고 공덕력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갖추었다고 하느냐? 공덕력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천친보살은 ‘믿음은 공덕을 귀하게 여긴다’ 라고 딱 못 박아 놓았다.
불신종자(不信種子)는 뭘 귀하게 여기느냐? 믿음이 없는 사람은 지져분하게 사는 것으로써 자기 인생의 종지를 삼는다.
예를 들어서 어떤 종파는 임전무퇴 결사항쟁 이런 종파가 있다. 어떤 종파는 직지인심 견성성불이 종지다.
똑같이 가사 입고 있는데 서로 종파가 다른가 보다.
한쪽은 임전무퇴 결사항쟁 한쪽은 직지인심 견성성불 누구 이야기인지 대놓고 방송이라서 이야기를 못한다.
여기서 공덕력이라고 하는 것은 글만 읽을 것이 아니다. 파고들어가서 보면 절대신심이다. 있다가 떨어지는 상대적인 신심이 아닌 것이다.
제가 어릴 때 은사스님이 “니 요즘 왜 그리 사노?” 이렇게 물으신 적이 있다. “신심이 떨어져서요.” 하니까 “니 신심은 희한하다. 붙었다 떨어졌다 한다.”고 하셨다. 용접하는 것도 아니고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것은 신심이 아니다.
신심은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이 강물 저 강물이 아니라 한 덩어리가 되어서 온통 바다가 되었을 때 신심이 된다.
부처님과 우리가 한 뭉치가 되었을 때, 한 허공이 만리무운 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이 되었을 때, 층층 구분 없이 차별 없이 하나의 신심으로 들어간다.
신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 정도에 따라서 공덕행을 귀하게 여긴다. 천친보살이 그렇게 해 놓았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공덕행을 귀하게 여긴다’ 그 공덕은 신위도원(信爲道元) 도의 근원이고 공덕모(功德母)다, 우리가 말만 외워 놓았다.
말만 외운 것을 네 치 신심이라고 한다.
여기에 입하고 귀하고 거리가 딱 네 치다. 눈하고도 네 치다. 눈으로 금방 읽었다고 입으로, 귀로 들었다고 입으로 톡 톡 뱉어내는 것 있지 않은가. 네 치 신심.
진짜 신심은 눈으로 보고 견문(見聞)이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 가슴에 찡하게 감동해서 손끝까지 발끝까지 갔을 때 신심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공덕행이라고 한다.
흔히 논문 같은 것을 써놓은 것은 지식적으로 꽃꽂이해 놓듯이 하는 것이다. 유통기한이 하루 이틀도 못가지만 그럴싸하게 꽃꽂이해 놓으면 볼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하고 화엄경은 비교가 안 되니까 이렇게 써 놓은 것 같다.
저는 이 대목에 와서는 너무 감동을 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면 여래 공덕행은 무엇에 의지해 있는가? 공덕행은 화엄경에 보면 항순중생(恒順衆生)이라, 보현행원에 항순중생이 공덕행이다, 라고 나와 있다.
니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것 유타(由他)라고 한다.
불요이타(不要理他)라 남을 다스리려고 하지 않고 남을 바로잡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유타(由他) 남을 말미암아서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간다.
말은 많이 들었는데 그것이 안 되지 않는가.
유마경에서도 공덕에 대해 나온다.
“어떻게 이 공덕행을 하는 사람이 머물러야 합니까?”
“공덕행을 잘 실천하려면 도탈일체중생이다. 일체중생을 어떻게 하든지 자비롭게 제도하려고 해야 한다.”
“그러면 일체중생을 제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니 마음속에 있는 번뇌부터 벗겨야 할 것이다. 니부터 솔선 수범해라.”
“그러면 어떻게 해서 내 마음을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번뇌를 없앨 수 있겠습니까?”
“정념이라. 반드시 올바른 생각을 유지시켜라.”
“올바른 생각을 유지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생불멸하라. 생멸심에 떨어지지 말아라.”
이렇게 이야기한다.
유마경 관중생품을 보면 그렇게 자세하게 되어 있다.
유마경을 보든지 화엄경을 보든지 그런 부분들이 나온다.
“그러면 어떤 법이 불생입니까? 어떤 법이 불멸입니까?”
“불생이라고 하는 것은 못된 탐진치가 일어나지 않도록 꺾어버리는 것이 불생이다.”
“그러면 불멸은 뭡니까?”
“돋아난 중선봉행이 있잖은가. 착한 것을 절대로 없애지 않고 내가 그 싹을 잘 키워 나가는 것이 불멸이다. 불생불멸이다.”
그런 것을 볼 때 ‘야, 경전에서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게 해놨는가?’ 싶을 때가 있다.
육조스님은 선악에 휘말리지 말라고 했다.
“선이다 불선이다 하는 것이 뭐가 근본이 됩니까?”
“선하고 악한 것은 몸이 근본이다.”
“몸은 또 무엇으로 근본을 삼습니까?”
“탐심이 그것의 근본이 된다.”
탐심이 많은 사람은 몸을 못 다스린다. 마음은 더더욱 못 다스린다. 오온개공은 무슨 오온이 개공인가, 오온이 완전이라, 오온이 내인생이다 그런다.
그다음 대목을 보겠다.
요번 시간에는 게송을 조금 하고 가겠다.
제가 잡담을 좀 늘어놔서 죄송하다.
선배스님들도 많으신데 잡담이라고 하기보다는 제가 늘 해오던 버릇이 그러니까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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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서법우역여시(善逝法雨亦如是)하야
일체중생막능측(一切衆生莫能測)이요
유제어세자재인(唯除於世自在人)이
명견여관장중보(明見如觀掌中寶)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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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공운주대우(譬如空雲澍大雨)에 : 비유하면 허공에서 큰 비를 내림에
능멸능기역능단(能滅能起亦能斷)하며 :능멸 없애고 능기 일으키고 끊기도 하며, 능멸능기역능단이라.
일체진보실능성(一切珍寶悉能成)하며 : 여러 가지 귀중한 보배를 만들기도 하고
삼천소유개분별(三千所有皆分別)인달하야 : 삼천대천 세계에 있는 것을 잘 구분해서 지혜롭게 분별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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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력법우역여시(十力法雨亦如是)하야 : 열 가지 힘, 십력이 부처님이다. 부처님의 법비도 그와 같아서
멸혹기선단제견(滅惑起善斷諸見)하며 : 혹은 없애고 또 미혹한 것, 무명번뇌를 없애기도 하고 착한 선을 일으키기도 하고 못된 것 삿된 소견머리를 끊기도 하고
일체지보개사성(一切智寶皆使成)하며 : 일체 지혜의 보배를 또 이루게 하고
중생심락실분별(衆生心樂悉分別)이로다 :중생들이 좋아함을 분별하도다.
그런데 욕심은 무엇이 근본이 되느냐?
욕심의 근본이 되는 것은 허망분별심이라고 해서 우리가 흔히 제6식이라고 한다. 욕심을 끊으라고 해서 반야심경은 아예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라고 이야기한다. 욕심, 분별심을 끊어라.
그러니까 허망한 이 분별심 제6식은 어디를 근본으로 삼고 있느냐? 안쪽에서 뱀처럼 또아리 틀고 있는 제7 말나식 그것을 우리가 전도몽상이라고 한다. 전도망상.
8식이가 원래 본래면목이 뒤집어져서 7식으로 끄집어 나온 것이다.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구경열반(究竟涅槃)’ 이렇게 이야기하잖는가.
전도몽상, 앞에 있는 아가 행동대장을 하는 의식이고 그 행동대장 의식 앞에 있는 것이 그 몸뚱이다.
몸뚱이는 말초신경이라고 해서 입에 맛있는 거 먹으려고 하고 눈으로 좋은 것을 보려 하고 귀로 어디 고운 소리를 들으려고 하고 전부 다 아상을 끊지 못하고 쭈욱 따라간다.
그러면 전도몽상은 근본이 어디에 있는가?
전도몽상은 육조스님이 금강경 서문에 그렇게 해놓았다.
무상으로 위종하고 무주로 위체하며 무주에 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육조스님의 서문에 나온다.
제 얘기가 아니다. 무주가 근본이 된다.
전도몽상은 원래 없다. 전도몽상은 찰나도 쉬지 않고 계속 찰나 생멸하고 계속 일어났다 꺼졌다 한다.
일념 사이에 몇 번 생각이 일어났는가?
순식간에 쓱 쳐다보는데 900번 일어났다.
그러면 하루에 648만 번의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한다.
하루에 변덕이 열두 번도 더 바뀌고 팔만 사천 정도가 아니라 640만 번이다. 하루에도 생각이 그렇다고 유식종에서는 판단한다.
그 전도몽상이 생각이 안에서 잔머리 굴리는 것이 또로록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것이 얼마나 많이 굴러가는가?
그런데 무주로 근본을 삼는다.
그러면 무주의 근본은 무엇이겠는가?
무주의 근본은 무엇이겠는가?
여기까지 하고 안되면 저는 내려가겠다.
무주의 근본은 무엇인가? 무본이다.
근본이 없다.
육조스님이 그래서 본래무일물이다, 했다.
그것이 바로 여래출현이다.
제 얘기는 하나도 없고 유마경이나 화엄경에 있는 것을 이야기했으니까 이해 안 되시더라도 저를 욕하지 마시고 경전을 욕하시기 바란다.
제가 기록을 남겨 놓는 것은 우리 대중뿐만 아니고 다른 데서도 누구든지 들어야 하니까 소개시켜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유마경에도 보면 ‘문수사리(文殊師利)여 종무주본(從無住本)하야 무주의 근본을 의지해서 입일체법(立一切法)이니라. 일체법을 세웠다. 일체법은 그래서 선 바가 없다’ 이런 말이 나온다.
반야심경에는 딱 주제를 그래서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니라. 얻을 바가 없느니라’ 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야도 없고 열반도 없다.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이다.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얻을 바가 없기 때문에 부처님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한다. 이렇게 반야심경에 철저하게 새겨 놓았다.
자 그다음 대목으로 넘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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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고맙습니다._()()()_
부처님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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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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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_()()()_
나무대방광 불화엄경 🙏🙏🙏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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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설법마다 아름다운 말!
녹취록마다 아름다운 글!
읽는 이마다 아름다운 마음!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