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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언약의 탁월함
히브리서 8:7~13
우리는 지난 주 수요일에 예수님께서 참 성소 곧 하늘의 장막 성전에서 우리를 위하여 섬기시는 대제사장이심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지상의 성소는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형입니다. 이렇듯 지상의 성전과 제사장과 제물은 불완전한 것이요 본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하늘 성소에 올라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섬기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며,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십니다. 그렇다면 더 좋은 언약이 주어졌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의미가 있습니까? 또한 더 좋은 언약은 옛 언약에 비하여 어떤 점에서 더 탁월합니까? 히브리서의 저자는 오늘 본문 말씀인 히브리서 7절 이하에서 이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새 언약이 주어진 것은 첫 언약이 불완전함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7절 말씀로부터 9절 말씀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이 말씀의 뜻은 둘째 언약을 언급했다고 한다면 첫째 언약이 불완전하고 흠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언약인 시내산 언약도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그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과 친히 맺은 약속이지만 그것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완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언약을 베푸신 하나님이나 그 언약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언약 자체는 거룩하고 신령한 것이지만, 그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언약을 지킬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내산 언약을 담은 율법과 모든 규례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에 결국 그 언약에 기록된 저주를 다 당하고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점이 첫 번째 언약의 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 시대 이후로 광야에서도 끊임없이 범죄하였으며,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그들은 그 언약을 지키는 데 실패하기를 예수님 오시기까지 천 사백 년 동안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실패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미 첫 언약의 중보자로 세우신 모세에게 이르신 바 있습니다. 신명기 31:16 말씀에 이르기를
“또 여호와깨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러한 인간의 본질적인 부패성을 이렇게 갈파한 바 있습니다.
예레미야 13:23 말씀에 이르기를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또 예레미야 17:9 말씀에서도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고 증거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율법을 받았고 성전이 있고 제사장들이 있었고 선지자가 때를 따라 보냄을 받아 그들 가운데서 사역을 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행과 거역함을 오래 참고 징계의 채찍으로 권면해보기도 하였지만 그들의 반역과 죄성을 결코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옛 언약을 파기하고 새 언약을 주시겠다고 여러 차례 예고하셨습니다. 이사야 42:6 말씀에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라고 하였으니, 이는 장차 보낼 그리스도를 새로운 언약의 중보자로 세우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31:31 말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고 선포하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이어지는 예레미야 31:32 말씀에서 밝히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남편이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신성한 결혼 언약을 시내산에서 맺었으나 그 언약을 깨뜨리고 바알과 다른 여러 우상들을 자기의 남편으로 삼고 섬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의 택한 백성들과 새롭게 맺어야 할 것이라고 예고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까닭은 그의 선민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맺었던 언약을 지키지 않았고 지킬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첫 언약이 주어졌지만 선민의 특권을 가졌고 성전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주어졌으나 그 언약을 지킬 수 없어서 결국 구원받지 못하고 저주와 패망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첫 언약 대신에 새 언약을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첫 언약은 불완전한 것이요 새 언약은 더 좋은 언약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첫 언약 대신에 주어진 둘째 언약, 옛 언약 대신에 더 나은 언약으로 주어진 새 언약은 과연 어떤 내용을 갖고 있을까요?
첫째로, 새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마음에 받아들여 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이 말씀은 예레미야 31장 33절 말씀의 인용인데, 옛 언약 시대에는 율법을 주셨으나 그 백성들이 그 계명들을 지킬 수가 없었는데, 이제 새 언약 시대의 하나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율법을 마음으로부터 지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십계명 돌판에 새겼지만, 이제 새 언약 시대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심령 판에 그의 계명들을 새겨놓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법을 그 백성들이 결코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항상 마음에 새겨져 있으니까요.
병렬 구절인 에스겔서 36:26~28 말씀에서 이렇게 보충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여기서 보면 하나님께서 새 언약 백성들에게는 그의 영을 심령 속에 부어주며 새 마음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 앞에 딱딱한 돌 같은 굳은 마음을 변화시켜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 부드러운 말씀 가운데 계시면서 하나님의 모든 율례, 요구 사항을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답게 살게 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옛 언약 시대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아무리 지키고 싶어도 마음이 따라가지 않고 행할 능력이 그들 자신에게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계명을 받아들이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새 언약 백성들은 새 마음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하나님의 율례를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 8장 3절 이하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삶의 모습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로마서 8:3,4)
그렇습니다. 새 언약 시대의 하나님 백성들에게도 죄의 본성이 남아 있고 세상의 풍조에 끌리는 연약함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새 언약의 말씀대로 우리 안에 새 마음을 주셨고 그 안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해놓으셨기 때문에 옛 본성의 강력한 저항을 이겨갈 수 있게 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실천하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점점 육체의 열매를 맺지 않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새 언약 백성의 성품의 변화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5:16 이하의 말씀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 5:16~24)
그래서 새 언약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심령과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거룩하게 하심과 죄의 본성과 육신의 본성과 세상의 유혹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계명을 즐겁게 행하고자 하는 소원과 능력을 얻음으로써 점점 세상과 자신의 타락의 본성과 죄를 이기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품과 하나님의 계명들을 즐거이 행하는 성화의 열매들을 맺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단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신앙만 지키는 수준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거룩해지고 점점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온전한 성숙함에 점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새 언약 백성들은 각각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체험적 지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11절을 함께 있겠습니다.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옛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지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이방 민족들의 우상 숭배의 유혹에 그토록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니, 죄를 두려워함이 없고 욕심과 교만과 포악에 사로잡히고 미래에 대하여 늘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염려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성전이 있고 제사장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선지자들이 그들 곁에 주어졌어도 그들은 늘 뿌리 없는 나무처럼 흔들리며 세상을 의지하고 강대국을 의지하며 우상들을 수없이 마음에 들여 믿고 늘 불안에 싸여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서 4:6 말씀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이르기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망한 이유는 바로 이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율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선지자가 없는 것 아니고 성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제사장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진정한 하나님과의 개별적이고 친밀하고 깊은 인격적 만남, 깊은 앎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앎이 없는 자의 비극에 대하여 잘 알 수 있는 예가 예레미야 22:13 이하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왕에게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져지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예레미야 22:13~19)
그 아버지 요시야 왕이 지극히 경건하여 하나님 말씀의 두루마리를 읽을 때에 통곡하며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나라를 쇄신하고 영적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그 말씀에 따라 먹고 마시는 일 곧 방탕한 것을 삼가고 늘 정의와 공의를 행함으로 인하여 형통한 것을 보고도, 그 아들 여호야김 왕은 아버지의 본보기를 전혀 따르지 않고 탐욕과 방탕을 일삼고 포악을 행하며 자기의 왕궁을 호화롭게 장식하는 일에만 급급하면서도 일꾼들의 품삯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행실의 차이는 그 아버지 요시야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이요 그 아들 여호야김은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던 요시야 왕은 경건하고 충성스러웠고 그 결과 형통하였고 그 아들 여호야김은 포악하고 탐욕스럽고 방탕하며 사치를 즐겼고 그로 인하여 결국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침략을 당하고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새 언약 시대의 하나님 백성은 요시야 왕과 같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고 그의 모든 계명들을 주의 깊게 여기고 지키고자 몸부림치는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산 지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늘 표면적이고 종교적으로 끌려서 종교 생활할 뿐인 것과 다른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새 백성들은 이처럼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성경을 사랑하여 읽고 묵상하며 지켜 행하며 마음 깊이 그 말씀에 대한 존중심을 갖고 범사에 행하고자 애쓰며 그렇지 못할 때 마음으로부터 참회함으로써 점점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셋째로, 새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얻고 죄를 영원히 사함받는 복을 누립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제물로 자기 죄를 씻고자 하였지만 그 죄를 지우지 못합니다. 죄를 이길 수 없고 죄에 대한 심판의 두려움을 지워버릴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제사 자체가 소와 양과 염소로써 그 죄를 씻기에 불완전한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의 속죄 제사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제사를 드렸어도 하나님 앞에서 죄가 기억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 언약 시대 백성들은 그들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들의 타고난 본성이 악하고 죄를 이길 힘이 없고 세상에게 늘 끌려다니는 연약함을 우리 주님께서 잘 아시고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은 죄악들을 씻어주시고 다시는 기억조차 하지 않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기까지 하십니다.
구약 성경에 그러한 새 언약 시대에 임하게 될 죄사함의 은혜에 대하여 많은 말씀들이 곳곳에 뿌려져 있습니다. 시편 32편 1절 이하에서 다윗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32:1,2)
미가서 7:18 이하에서는 장차 임할 새 언약 시대의 은혜에 대하여 이렇게 예고한 바 있습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가 7:18,19)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새 언약 백성들에게 지극히 긍휼히 여기시며 그들의 죄악들을 다 지우시되 깊은 바다에 빠뜨리시고 다시는 기억조차 하지 않은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씻어버리고 깨끗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는 복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담대하며 그의 의로우심을 덧입고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서 담대하게 뛰놀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새 언약 시대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백성들은 새 마음과 주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법을 즐거이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깊이 인격적으로 각각 알기에 흔들림없이 평강 가운데 세상을 살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로서 죄 사함을 받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좋은 새 언약 시대를 우리 주님께서 열어주신 중보자가 되셨으니 참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우리는 행복한 자들입니다.
13절에 이르기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새 언약이 왔으니 낡아지고 쇠하여진 첫 것 곧 없어지는 것을 붙드는 자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옛 율법으로 돌아가고 옛 아론의 후손 제사장들을 의지하려는 히브리인 성도들에게 히브리서 기록자는 불완전하고 없어져가는 옛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리석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힙니다.
우리 모두 새 언약의 탁월함을 알고 경험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새 언약 백성으로서 이 은혜의 복음을 굳게 붙들고 어떤 시험과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소망 중에 계속하여 믿음으로 기쁨으로 달려가는 성도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