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저녁의 일이었습니다.
9시가 넘어가서 조카녀석이 2층에서 내려와서리
자꾸 '베틀블레이드'가 안된다고 울먹울먹이며
그 맑은 눈으로 나에게 호소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제 컴에서는 '여우와 솜사탕' 다시보기가 나오고 있었고
저는 그 소리를 들으며
분리한 마우스 조립에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분리할 때는 쉽더니 다시 조립하려니 얼매나 짱나게 힘들던지.
그런 핑계로 강력한 조카의 시선을 외면하던 저는
더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왜냐구요.
조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에휴-
오락명 '베틀블레이드'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짱인 만화 '탑블레이드'를 게임화한 작품이죠.
이 탑블레이드가 얼마냐 인기냐면
온 길거리에 팽이 돌리기와 팽이 싸움이 넘쳐나고
그 팽이 위에 맹물을 뿌려대며
성수를 운운하는 엽기적인 아이들이 우리 골목곳곳, 전국곳곳에 만연할 정도이죠.
탑블레이드 팽이는 없어서 못 팔 정도죠.
나의 장조카.
올해 나이 7살.
입학하는 7살 조카를 위해 비록 현재의 신분은 공익이나
(전직 교사로서, 이보다 전에 돈을 벌었다는 이유로)
그의 입학식선물을 외면할 수 없었죠.
우리 형님형수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더구나 내 ADSL비용도 대 주는디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에게 무슨 선물을 진상할까 고민하던 저는 문득 '베틀블레이드'라는 게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바로 이거다라는 느낌이 오더군요.
그래서 그걸 사서 주면서
학교 들어가서 1주일동안 열심히 학교 생활하면 2층 컴퓨터에 깔아주라고 형수에게 말했는데
어제 저녁이 바로 그날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이유로 2층에 올라가 보았더니
이 망할 놈의 게임이 설치는 되는데 작동이 안 되는 겁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안되더만요.
순간 불량품을 사다주었다는 쪽팔림에
울먹울먹이는 조카의 슬픈 눈에
주체할 수 없는 황망함이 밀려오더군요.
그 좋아하던 탑블레이드 게임을 1주일을 넘게 기다려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어제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7살짜리의 간절한 마음을 아실런지...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걱정마라 이놈아! 삼촌이 알아서 해 주께"
그리고 근엄하게 2층을 내려와 1층부터
정말 사투리로 쌔빠지도록 뛰었습니다.
당시 시간은 9시 30반.
그 게임을 산 문구사가 문을 닫을 즈음이었습니다.
일요일의 피로를 뒤로하고 정말 쌔빠지게 뛰어 가게에 도착했더니
문이 열려 있더군요.
허지만,
허지만,
하늘이 무너지게도 그 게임은 절판되어 있더랬습니다.
친절한 아저씨가 책임지고 다른 게임으로 바꾸어 주겠다는 말을 했지만
이미 상황은 '베틀블레이드'가 아니면 안 되는 상황.
혹 우리 컴퓨터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함양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컴마을'로 달렸습니다.
그때 시간 9시 50분.
겨을연가를 보러가야 된다며 문을 닫으려는 사모님(좀 아는 사이)을
붙잡고 늘어져서 제발 테스트 한번 해 달라고 부탁해서리 겨우겨우
테스트에 돌입.
기사아저씨가 테스트를 해 보더니 시디에는 이상이 없구
설치를 잘못했다고 말하더군요.
얼매나 반갑고 눈물이 날려던지.
설치법을 배운 후에 다시 열나게 달려서 집에 도착한 후
우선 1층에서 숨을 고른 후에 근엄하게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문을 연 순간
이런.
다 자는 분위기.
그 어린 눈망울로 나의 심금을 울리게 만들어
달밤에 체조하게 만들었던 그 순진한 어린아이는
코를 골며 맘편하게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더군요.
그 허망함...
뭐라 표현해야 할지.
그리고 오늘 아침.
단잠에 빠져있는 나를 기어이 깨워서
어찌되었냐고 묻더군요.
망할 넘.
암튼 그렇게 저는 오늘도 피로를 간직한 채 출근했습니다.
담부터 게임시디 사주려면
설치가 간단한 걸로
경상도 사투리로 썩주구리한 걸로 사 줄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