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3고 현상과 3저 현상
 
1980년대 중반 '3低 현상',
단군 이래 최대 호황 이끌었어요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생긴 '3高'… 수출 의존도 높던 우리나라에 타격
1985년 美 달러 가치·유가 떨어지자 우리나라 비약적 경제 성장 이뤘죠
최근 원·달러 환율이 1050원대까지 떨어지면서 우리나라 돈값이 많이 올라갔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국제 유가(油價·석유 가격)도 최근 3년 새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지요. 저금리(낮은 금융이자)를 유지하던 국제 금리도 조금씩 오르면서 우리 경제에 이른바 불황의 상징인 '3고(高)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요.
우리나라 경제는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3고 현상'이 미치는 영향이 크답니다. 반면 달러 가치와 국제 유가, 국제 금리가 내려가는 '3저(低) 현상'은 우리나라 경제에 좋은 영향을 주지요. 오늘은 1980년대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통해 '3고 현상'과 '3저 현상'에 대해 알아볼게요.
◇3고 현상의 시작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3고 현상'이 나타났어요. 고달러·고유가·고금리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는 당시 빠르게 성장하던 우리 경제에 큰 장애물로 작용했어요.
먼저 고달러란 미국 달러화 가치가 높다는 걸 의미해요. 이때 단순히 우리나라와 미국 돈을 비교하면 안 되고, 일본 엔화에 대한 미국 달러화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하지요. 미국 달러화 가치가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일본 엔화 가치가 낮아지기 때문에 일본 물건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져요. 그러면 일본·중국 등 다른 나라 물건보다 우리나라 기업이 만드는 물건의 수출 경쟁력이 나빠지지요.
▲ 1980년대 중반 저달러·저유가·저금리라는 ‘3저 현상’이 찾아오자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라는 경제적 풍요를 누렸습니다. 사진은 수출 주문이 밀려 한밤 중에도 자동차 선적이 한창인 2003년 현대자동차 울산 부두의 모습 |
1980년대 초반 달러 가치가 올라가자 우리나라 기업들은 미국 등 해외 시장에 물건을 파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어요. 당시 해외에서 우리와 수출 경쟁을 벌이던 국가는 일본이었는데, 일본의 엔화 가치가 미국 달러화에 비해 낮았기 때문에 미국 시장에서 일본 물건이 많이 팔리기 시작한 거예요.
여기에 고유가가 겹치면서 우리나라에 큰 타격을 줬어요. 당시 고유가 현상은 1970년대 중동 국가들의 석유 파동(석유 공급 부족과 석유 가격 폭등)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는데요. 중동산(産) 원유값이 1년 만에 4배 가까이 오르자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입국들은 큰 경제적 타격을 입었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중화학 공업을 막 육성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석유 파동이 끼친 영향이 매우 컸어요. 이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지요.
1980년대 초 국제 금리도 '고금리(높은 금융이자)'를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금리는 은행에서 빌려쓴 돈에 대한 사용료이기 때문에, 금리가 높아지면 이자에 대한 부담이 커져 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쉽게 빌리지 못해요. 결과적으로 기업의 투자와 생산이 위축되고 각 가정의 부채(빚) 부담이 늘면서 경기가 침체하지요. 또 다른 나라에서 빌린 돈에 대한 이자 부담이 늘면서 나라 재정에 큰 부담이 됐어요.
◇호황기 만든 3저 현상
1985년이 되자 '반전'이 일어났어요. 저달러·저유가·저금리란 '3저 현상'이 찾아온 거예요.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1980년대 중반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라는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답니다.
먼저 두 번의 석유 파동을 겪은 여러 나라가 중동산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서면서 '저유가'를 이끌었어요. 세계 곳곳에서 유전 개발이 진행되자 중동 국가들은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석유 생산량을 크게 늘렸고, 그 결과 석유값이 크게 떨어졌어요.
유가가 떨어지면 원자재를 만드는 비용도 낮아져 기업이 물건을 만들 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어요. 비용이 적어지면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해외 시장에서 아주 유리한 입장을 차지할 수 있지요.
세계 각국 정부는 석유 파동 이후 침체에 빠진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실시했어요. 금리가 낮아지면 돈을 빌리는 데 들어가는 이자 부담이 낮아지고, 그만큼 더 많은 기업이 은행에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어요. 따라서 기업이 투자와 생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지요. 또 가정의 부채 부담도 적어지기 때문에 더 많이 소비하고 투자할 수 있어 돈이 시장에 많이 돌아요.
저달러란 호재(好材)도 찾아왔어요. 1980년대 초 미국 레이건 행정부는 개인 소득세를 대폭 줄여주고 국가 재정 지출을 늘리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어요. 여기에 일본 제조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대거 진출하면서 미국은 안으로는 재정 적자, 바깥으로는 무역 적자라는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지요.
결국 미국은 1985년 프랑스·독일·일본·영국 재무장관을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초청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가치를 높이고 미국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플라자 합의'를 발표했답니다.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쌍둥이 적자(재정·무역 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일본과 독일 입장에선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최대 수출국이 사라지고 자국 경제가 휘청일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제안에 동의한 것이지요.
그 결과, 플라자 합의 직전 달러당 240엔대였던 엔화는 1988년 120엔대까지 떨어졌어요. 엔화 가치가 큰 폭으로 올라가면서 미국 달러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지요. 우리 입장에선 원화 가치가 엔화보다 낮아져 해외 시장에서 수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어요.
이처럼 1980년대 중반 국제 경제의 기막힌 타이밍이 우리 경제에 최대 호황기를 가져다줬어요. 이번에는 '신3고 현상'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 경제가 현명하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석유 파동(Oil shock)
1차 석유 파동은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공(4차 중동 전쟁)하면서 벌어졌어요. 당시 중동의 석유 수출국들은 석유 가격을 17%나 올리겠다고 발표했어요. 또 이스라엘이 아랍 지역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매월 석유 생산을 5%씩 줄이겠다고 말했지요. 이는 석유를 무기로 국제 사회를 위협하기 위해서였어요.
1978년엔 2차 석유 파동이 벌어졌어요. 이란의 유전(油田) 노동자들이 국왕에게 대항해 파업에 들어가면서 이란의 석유 수출이 하루 500만배럴에서 200만배럴로 감소한 거예요. 석유 가격이 폭등하면서 세계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어요.
조운학·세명컴퓨터고 사회 교사, Chosun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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