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이 어때서 호박이 어때서
호박은 열대 및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박과에 딸린 한해살이 덩굴채소이면서 열매채소이다. 호박은 공터에 아무렇게나 심어놓아도 넝쿨손으로 물건을 잡고 벋어나가며 큰다. 꽃은 노란 초롱에 불이 들어온 것 같다가 별처럼 벌어진다. 어딘가 넉넉하고도 소박하다. 약삭빠르지 않고 느긋하면서 순박한 아줌마와 같은 모습에서 여유가 넘쳐나고 까칠함보다는 친밀감이 넘친다.
울타리이나 텃밭에서 꽃가루를 듬뿍 묻힌 벌이 이 꽃 저 꽃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수정이 되고 암꽃에 달렸던 작은 씨방이 열매가 된다. 호박은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따는 것이다. 항간에 호박꽃도 꽃이냐고 깐죽댔는데 잘못된 오해다. 호박꽃은 심성이 고운 농심을 닮아 푸짐하며 수더분하다. 호리호리한 모습만 귀엽게 보다가 튼실하고 성실함을 깜빡한 것이다.
큼직한 호박꽃에 꿀을 따러 벌이 들어가면 꽃송이를 우그려 등불처럼 들고 다니며 벌을 못살게 굴기도 했다. 호박잎을 둘둘 말아 잎담배 ‘풍년초 담배’를 긴 담뱃대에 담아 피우는 시늉을 하다가 독해서 캑캑거리기도 했다. 짓궂은 아이 녀석은 호박에 수박 흉내를 낸다고 줄을 그려 넣었다. 상처에 진물이 줄줄 흐르다 두둘두둘 아물었다. 호박에 말뚝을 박듯 망가뜨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은 주인은 이미 누구 짓인 줄 다 안다는 듯이 하나하나 눈길이 다가올 때, 어린 마음에도 양심은 떨리고 죄어 오는 눈초리에 더는 참지 못하고 그만 엉겁결에 울음을 터뜨리면 자백하는 꼴이 되었다. 주인은 괜찮다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오히려 민망해하는 것 같았다. 농촌에서 자라면서 특별한 놀이가 없었으므로 호기심으로 겪은 보는 추억이다.
기름기 잘잘 흐르는 애호박으로 전붙이고 나물로 무치고 찌개로 끓이고 볶아서 내놓으면 먹을 것이 신통치 않거나 입맛 없는 여름날 이만큼 흠잡을 데 없는 반찬도 드물다. 이처럼 농경시대에 농촌에서 호박은 식용뿐 아니라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주 밀접한 관계에 좀처럼 잊히지를 않는 추억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호박은 농촌에서 소홀히 할 수가 없는 작물이다.
늙은 호박은 호박떡, 호박엿, 호박국, 호박즙에 쓰였다. 된서리가 내리기 직전에 호박순이나 연한 잎을 따서 된장에 쌈으로 먹으면 좀 까칠까칠해도 상추는 저리 가라고 할 만큼 별미로 일품이다. 이처럼 호박은 다양하게 쓰이면서 농촌 살림에 한 몫 거들었다. 손쉽게 재배하고 거둘 수 있는 효자 품목으로 사랑을 듬뿍 받는 대표적인 채소로 소 돼지의 먹이가 되기도 하였다.
이제 호박은 농촌뿐 아니라 전 국민의 식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다. 늙은 호박은 죽을 쑤면 입맛이 되살아나고 산모가 먹으면 부기가 빠진다고 곧잘 찾았다. 골난 사람에게 호박국을 먹이면 풀어진다고도 하였다. 이처럼 다양하게 쓰였던 호박은 어찌 보면 농촌에서 애환을 함께한 고마운 식재료이기도 하다. 호박은 어려웠던 시절에 식량으로도 보탬이 되기도 하였다.
그다지 먹을 것 없었을 때 호박씨는 고소하니 맛이 좋았다. 작은 호박씨를 어렵게 까서 엉뚱한 입에 넣는다고 “호박씨를 까서 한입에 털어 넣는다.”는 속담이다. 애써 모은 것을 한꺼번에 털어 없앤다는 뜻으로 어렵사리 한 푼 두 푼 모은 것을 한 번의 큰 실수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고생고생한 만큼 보람 있게 써야 하는데 한순간에 허무하게 날려버려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호박씨는 커다란 덩치 속에 들어있는 작은 씨앗이다. 작은 호박씨를 손톱으로 하나하나 까먹는 맛은 아주 고소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엉뚱하게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말이 생겨났다. 왜 하필 뒷구멍까지 들먹거리는지? 겉으로는 얌전한 체하면서 보지 않거나 은밀한 곳에서는 겉 다르고 속 다르게 온갖 못된 짓을 빗대 비꼬는 말이다. 그런데 하필 호박씨이어야 했을까.
호박은 쓰임새가 아주 많은 유익한 식품이다. 그런데 몸매가 다소 뚱뚱하다거나 배가 좀 불룩하게 나왔다고 호박 같다고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 호박이 정말 못생겼는가. 호박의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하다고 할 것이다. 호박꽃의 꽃말은 ‘포용, 관대함, 해독, 사랑의 용기’다. 호박의 외모에 사람을 비유하는 것은 비하하는 말로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호박이 얼마나 듬직한가.
호박이 잘 생겨서 좋은 먹거리로 애용되고 못생겨서 짐승의 먹이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호박꽃이 어때서, 호박이 어때서” 좋은 데 잘 쓰고 이용하고 결국은 말장난하는 것 같다. 어디 무화과도 아니고 꽃이 피지 않고 열매 맺는 것이 있던가. 꽃이 곱게 들어온다고 그 열매까지 그렇게 곱던가. 오히려 아주 보잘것없는 것도 많이 있다. 아름다워도 화무십일홍이라고 한다.
호박꽃이 좋아야 좋은 호박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호박은 뚱뚱하면서 못생긴 것이 아니고 넉넉하면서 포용력이 있는 것이다. 가식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순박함이 있다. 쓰임새만 보아도 오지랖이 넓을 만큼 용도가 아주 다양하다. 너 자신을 돌아보아라, 너는 호박꽃만이나 한지. 더는 호박꽃도 꽃이냐고 얕잡아보면서 이죽거리지 마라. 호박 같은 몸매라고 빗대지를 마라.
한 마디로 겉모습인 외모만 중요시할 때는 지나갔다. 내실을 튼튼하게 하여야 한다. 내놓은 쪽보다는 잘 보이지 않는 쪽에 관심을 가질 때이지 싶다.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라는 노랫말이 있다. 튼튼한 몸에서 건강미가 넘친다. 비록 꽃으로는 다소 부족할지 몰라도 그 됨됨이나 용도는 어느 것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호박만 한 작물도 드물 것이다.
단순히 호박꽃도 꽃이냐 거나 호박 같은 몸매라고 야유 섞인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을 일이 아니다. 가을이 되면 누렇게 잘 익은 늙은 호박을 거두는 손길에서 오히려 여유가 흐르고 편안함이 묻어나며 흐뭇한 웃음이 배어 나온다. 여름 땡볕을 온몸으로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으며 내공을 쌓은 기다림에서 넉넉한 가을을 느끼게 한다. “호박이 어때서? 저리 당당한 것을.”
지금은 개성시대다. 몸매만 미끈하다고 요즘 같은 세상에 그냥 밥 먹여주냐고 경종을 울리는 것이 낫다. 호박은 그 쓰임새만 보아도 오지랖이 아주 넓다. 그러나 특별히 모난 곳이 없어 무난하다. 가식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순박함이다. 못생긴 것이 아니라 넉넉한 포용력이다. 한쪽만 보고 편파적으로 쉽게 말하지 마라. 골난 사람 호박국을 먹이면 쉽게 풀어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