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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송아지와 야웨 하나님”
□ 출애굽기 32:1-14 □
장국원 (순신대학교・성경언어학)
이야기의 배경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현재에도 역시 긴장 상황에 있다. 아랍 전체와 이스라엘의 관계도 긴장 상황이다. 팔레스타인의 자치구의 안정과 점진적 독립에 따라 이스라엘의 호전전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중동과 세계 테러는 잠재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3천 5백년에서 3천 2백여년 전 사이 고대 이집트의 18왕조와 19왕조 시대 히브리 민족이 모세와 여호수아의 영도를 따라 출애굽 하던 때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긴장은 막대하였을 것이다. 이집트는 당시 가나안 지역의 수많은 군소 도시국가들을 지배하는 제국이었다. 이러한 대제국에서 히브리 민족이 야웨 하나님과 모세의 지시를 받고 미증유의 표적과 기적을 보인 뒤 이집트에서 나와 시내 사막에 있었던 역사 상황은 세계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었다.
그것은 히브리 민족의 수가 많다거나 그들의 힘이 막강한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이시고 창조자이신 야웨의 택하신 족속이었다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야웨 하나님께서는 근동세계의 여러 자연신들과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시다. 또 신상들로 시각적 표현을 갖는 신들과 비견되시지도 않으신다. 야웨 하나님께서는 보이시지 않고, 만약 사람이 본다면 그 인간은 필경 죽을 수밖에 없으면서도, 우주를 다 장악하시고 지배하시며 무소부재하신 창조자 하나님이시며, 인격적으로 그 택하신 민족이나 인물을 철저히 보호하시고 관리하시는 분이시다. 보이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참 하나님을 뵙는다는 것은 곧 죽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Gott sehen heisst sterben 출20:18-20; 출33:20 등 참조). 이 하나님 야웨의 총애 속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들게 되므로 그 후손 히브리 민족이 모세의 지시와 인도를 따르며 세계사에 하나의 신기원(新紀元)을 이루는 출애굽 사건과 시내산과 그 사막에서 자기들이 지킬 계명을 받는다는 것은, 가슴을 쥐고 숨을 죽이며 한 순간 한 순간을 두려움과 전율 속에서 엄숙하게 기다려야 할 입장에 놓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세계사에서 이루어진 가장 위대한 두 혁명은 구약 성경에 나타난 불가시적 유일신 사상과 셈족어 알파벳 발명이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고대 근동 가나안 땅에서 이루어졌다. 이 보이시지 않으시면서 우주와 세계와 민족과 개인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야웨 하나님께서 당시 근동 세계의 최대 제국인 이집트에서 기세 당당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는데 그들이 야웨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얼마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하여 변심하였다. 이 변심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출애굽기 32:1-14 본문은 잘 일러주고 있다.
본문 번역
1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리라는 기대가 어긋나고 수치를 입게 되었다고 여기게 되자, 백성들은 모여 아론에게 항의하였다. 일어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만들라.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이 사람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2 아론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 아내들과 아들들과 딸들의 귀에 있는 금귀고리들을 떼어 나에게 가져오라.
3 백성 모두가 자기들의 귀에 있는 금귀고리들을 떼어 아론에게 가져왔다.
4 그는 그들의 손에서 금을 받아 녹여 신상(神像)을 조형하고 첨필로 다듬어 송아지를 만들었다. 백성들은 말하였다. 이들이 이집트 땅으로부터 너를 데리고 나온 너 이스라엘의 신들이다.
5 아론은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은 뒤 부르짖었다. 내일 야웨의 축제가 있다.
6 그들은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가져왔다. 백성들도 앉아서 먹고 마신 뒤 흥겹게 놀이하려고 일어섰다.
7 야웨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내려가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네 백성이 못된 짓을 하였다.
8 내가 그들에게 지시한 길에서 그들은 빨리 이탈하였다. 그들은 금을 녹여 송아지를 만들고 그에게 절하고 제사 드리며 말하기를 이들이 이집트 땅에서 너를 데리고 나온 이스라엘 너의 신들이라고 하였다.
9 야웨께서 모세에게 이어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눈여겨보았다. 살펴라. 그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다.
10 이제 내 하는 대로 두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퍼부어 그들을 멸절시키고 너는 큰 나라를 만들겠다.
11 모세는 하나님 야웨 앞에서 간청하여 아뢰었다. 야웨시여,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으로부터 당신께서 데리고 나오신 당신의 백성에게 왜 진노를 퍼부으시려고 하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 사람들이 말하게 하시려고 하십니까? 당신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재앙에 빠뜨리려고 데리고 나와 산들 속에서 죽여 지면으로부터 멸절시키셨다고 그들이 말해서야 되겠습니까? 돌이키셔서 퍼부으시려던 진노를 거두시고 당신의 백성에게 내리실 재앙을 삼가 거두시옵소서.
13 당신의 종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당신 스스로를 두시고 맹세하시며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후손을 하늘의 별들처럼 많게 하고 내가 말한 이 땅 모두를 너희 후손에게 주어 그들로 영원히 상속받게 할 것이다.
14 야웨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내리시겠다고 하신 재앙을 삼가 거두실 뜻을 가지시게 되었다.
원어 관찰
1절 ⌈보쉐쉬⌋ vveb 는 기본형 ⌈보쉬⌋ vwB 의 피엘 강세형으로
‘지체하다’의 의미로 보고 있으나 피엘의 기능을 잘 고찰하면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다’ 또는 ‘부끄럽게 행동하다’의 뜻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위(作爲)와 추정(推定) 또는 사역(使役)의 기능이 피엘 강세형에 있다고 할 때 ‘부끄럽게 행동하다’라는 말은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거나, 사역의 의미로 모세가 부끄럽게 하였으면 백성은 수치를 당한 것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모세를 위대하게 생각하였는데 기대에 어긋나므로 수치를 당하였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의 행방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게 되어 우리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까지 선언한 것이다.
4절. ⌈야싸르⌋ rc;Y" 는 그 동사의 기본형을 ⌈싸라르⌋ rrc 로 보고
‘묶다, 누르다’ tie up, press 의 뜻으로 볼 수도 있고 ⌈쑤르⌋ rwc 로
볼 때 ‘가두다, 매다, 동여매다’의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때 ⌈야싸르⌋는 힙필 사역형 삼인칭 단수 남성 연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브라운 Brown, 드라이버 Driver, 브릭스 Briggs 가 공저한
사전이라 하여 BDB라 하는 히영(希英) 사전 849 쪽을 보면 ⌈쑤르⌋
rwc 동사의 동음이의어 네 번째는 ‘형성하다, 만들다, 그리다, 묘사하다’ fashion, delineate 의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 번역에서는 이 동사의 의미를 고려하였다.
4절에서 주목할 것은 송아지라는 히브리어 단어 ⌈에겔⌋ lg<[ 이
단수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 송아지 ⌈에겔⌋을 가리켜 복수 대명사
⌈엘레⌋ hL,ae 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때 복수의 등장은 혹시 추상
화나 최상급 또는 절대화의 표현 의도가 아닌가 생각하여 볼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또는 고대 근동 만신전의 총수(總帥)를 이 송아지로 보아 신군(神群)과 우두머리 송아지를 의도하였지 않은가 여겨지기도 한다.
6절. 마지막에 있는 ⌈싸헥⌋ qxec; 은 기본형 ⌈싸학⌋ qxc 동사의
피엘 강세형 부정법이다. 원래 ⌈싸학⌋의 뜻은 ‘웃다’이지만 피엘에서는 ‘놀다, 장난하다’의 의미를 가지게 되며 창26:8과 창39:14, 17의 경우를 보면 애무(愛撫) 또는 성관계(性關係)의 뜻을 암시하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본 절에서 ⌈싸헥⌋을 ‘흥겹게 놀다’의 뜻으로 번역하였으나 고대 근동의 신전에서 성행한 신전(神殿)의 부패한 성행위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추측되기도 한다. 고대의 농경 위주 사회에서 황소 숭배가 왕성하던 때에 신전의 남창과 성행위를 한다는 것은 하늘과 땅이 접합하여 풍부한 비가 오고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기도 하였다.
7절. ⌈쉬헷⌋ txev 은 기본형 ⌈샤핫⌋ 의 피엘 강세형으로 작위나
추정의 타동사이지만 목적어가 없다. 이러한 경우 목적어나 목적격 명사나 대명사가 없지만 생략법의 관점에서 함축적인 의미를 띨 수가 있다. ⌈쉬헷⌋은 ‘망치다, 파멸시키다, 전도(顚倒)하다, 부패케 하다, 부패한 행동을 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못된 짓을 하였다’로 번역할만하다. 이 행동은 타락, 탈선, 왜곡, 부패 전반을 망라하는 반역을 총칭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8절 말씀이 ⌈쉬헷⌋의 내용을 잘 예시하여 주고 있다.
9절. ⌈힌네⌋ hNEhi 는 지금까지 개역 한글판에서 거의 예외 없이
‘보라’로 번역된 부사이나 다양성 있게 ‘살펴라’로 번역하여 보았다.
문맥에 따라 여러 가지 우리말 표현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히브리어 표현 ⌈암 케쉐 오렙⌋ @r,[o-hveq.-~[; 은
7절의 ‘못된 짓을 하였다’는 ⌈쉬헷⌋의 근본 성격을 대변하여 주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 ‘목이 곧은 사람 또는 백성’이라는 표현이 ‘마음이 강퍅한 사람 또는 마음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과 동의어적 평행을 이루고 있다. 내면적 강퍅이 시각적으로 목이 곧은 태도와 자세로 나타난다 (행7:51등 참조). 강퍅한 마음과 목이 곧은 것은 반역의 대명사로서 이집트의 파라오가 야웨 하나님 그리고 모세와 아론 앞에서 치욕과 참패를 당하게 된 근본 원인이 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하게 된 궁극적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
11절. ⌈예할⌋ lx;y 은 기본형 ⌈할라⌋ hlx 의 피엘 강세형 완료
시제 ⌈힐라⌋ 의 미완료 권고형 삼인칭 단수 남성형 연계용법의 예이
다. ⌈힐라⌋ 다음에는 많은 경우 ‘얼굴’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파님⌋
~yniP' 의 연계형이 뒤따르고 ‘진정시키다, 달래다. 호의를 간청하다,
즉 진노와 징계 대신에 호의를 베푸시도록 간청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12절. ⌈베라아⌋ h['r'B. 에서 전치사 ⌈베⌋ B. 가 ‘…를 가지고’의
뜻을 가진 것으로 보아 ‘나쁜 목적을 가지고’로 이해할 수 있다 (BDB
89 참조). ⌈슈브⌋ bWv 는 ‘돌아오다’의 뜻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
게 말씀하실 때는 ‘회개하라’ ‘(악한 길과 배도의 길에서) 돌아오라’는 의미이고, 하나님께 ⌈슈브⌋를 쓸 때는 ‘(진노와 징계의 계획에서) 그만두시라’는 호소의 부르짖음이라 할 수 있으며, 본절의 ⌈슈브⌋는 후자에 해당한다.
12절과 14절의 ⌈힌나헴⌋ ~xeN"hi 과 ⌈인나헴⌋ ~x,N"YIi 은 ⌈나함⌋
~xn 동사의 닙팔 피동 또는 재귀형으로 ‘미안하게 생각하다, 긍휼히
여기다, 동정하다. 후회하다, 스스로 위로하다, 위로 받다, 편하게 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진노의 마음을 푸시고 긍휼히 여겨주시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삼가 (진노를) 거두시다‘라는 표현으로 번역하여 보았다.
본문의 위치
출애굽기의 내용을 중요 사항별로 간추려 보면 먼저 이스라엘 자손들이 당시 최대 강국 이집트의 무대에서 강력한 도전 세력으로 출현하고 있다. 창세기에서 족장들은 세계사에서 문자 발명으로 최초의 문명 발상지가 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연안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족장들은 이 문명의 다신교적 허구성에서 야웨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 창조에 선택되어 가나안으로 온다. 여기에서 야곱의 아들들과 야곱의 총애아 요셉과의 비극적 분리로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형들을 이집트에서 양심 가책으로 회개시키면서 새로운 민족 형성의 기틀을 다지신다.
요셉과 야곱의 식구들이 이집트에서 왔다는 것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랜 나일강 문명의 역사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창조적 도전이 이루어졌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요셉 이래 무려 4백여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그 수가 불어나고 강대한 민족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고대 근동의 초강대국 이집트의 파라오가, 증가하고 있는 히브리 민족의 도전을 우려하여, 인종 말살 정책을 획책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출1:16등). 이것은 20세기의 세계 정치 판도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또 이러한 살벌한 현실에서 모세가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출2:1-10). 모세의 이름 자체가 당시의 이집트 왕조와 일면 견주어진다. 이집트의 18왕조 왕들 중에는 아흐모세, 투트모세 등의 이름으로 불린 파라오들이 있었다. 이 왕들의 이름에는 모세라는 성명 구성 부분이 있고, ⌈아흐⌋나 ⌈투트⌋는 이집트의 만신전에 있는 신들의 이름이 모세 앞에 부가된 것이다. 모세는 이집트어 어휘 ⌈메스⌋ ms 에서 파생한 것이고 그 뜻은 ‘태어나다, 태어난 것, 아이, 아들’이다. 그렇다면 아흐모세는 아흐신의 아들이고 투트모세는 지혜의 신 토트 Thot 신의 아들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기의 모세 이름 앞에는 이러한 신 이름이 전혀 없다. 그리고
모세의 이름을 히브리어 동사 ⌈마샤⌋ hv'm' 에서 파생시키고 있다
(출2:10). ⌈마샤⌋의 뜻은 ‘끌어내다’이므로 ‘구원하다, 건져내다’의 구속사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모세라는 존재는 초강대국 이집트의 파라오들과는 다른 성격의 인물임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고대 근동의 대부분 나라들은 왕정 제도 속에 있었다. 왕은 많은 경우 사제와 재판관과 행정가, 군사적 지도자 등의 기능을 다 내포하고 있다. 왕의 권한은 거의 절대적이었고 서민 대중은 사람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출애굽의 지도자인 모세를 보면 초강대국의 제왕이 될 가능성을 버리고 (히11:24-26) 초야의 인물이 되어 하나님의 종으로서 오히려 겸손의 덕성을 함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구약 성경의 모세오경 중에서 하나님께서 어느 제왕을 선택하여 하나님 섭리의 도구로 쓰시는 것을 볼 수 없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장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개인 인물들이지 제왕이 아니라는 사실은 고대 근동사에서 유일무이하게 독특한 사실이고 또 세계사 연구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모세는 황제적 지도자로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사용하신 인물이 아니라, 보이시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중재자로 세우신 표상적 인물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 (출20:18-20; 33:20등).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세에게 지시하신 하나님의 분부나 모세의 하는 행동들은 세계사의 인물들이나 제왕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결국 그의 인물적 성격과 행동들은 세계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그리스도의 하실 일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히11:23-29). 모세가 이집트의 황제 파라오를 만나 야웨 하나님의 분부를 전달했을 때 (출5:1등) 파라오는 거절하였고, 이에 따라 이집트의 학문과 지혜와 종교가 감당할 수 없는 기적들이 이집트 제국의 한계와 죄를 노출시켰다. 그때마다 파라오는 마음을 강퍅케 하였고 또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 (출4:21; 7:3, 13, 14, 22; 8:11, 28; 9:12, 34, 35; 10:1, 22, 27; 11:10; 14:4, 8, 17 등). 이것은 결국 이집트의 장자들과 첫 짐승들이 다 섬멸되게 되는 비극을 초래하였고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표시하므로 구원을 받았으며 이로써 유월절 제도가 수립되게 되었다 (출11:1-12:50). 이후의 역사는 바로 유월절을 중심으로 출애굽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언약이 체결되었으며,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지켜야 할 십계명과 규범을 받고 야웨 하나님 경배의 장소, 성막, 의식, 제사장 임명 등 세부적 지시 사항이 뒤따르게 되었다.
야웨 하나님께서 초강대국 이집트를 정복하시고 그 신들을 무기력화시키셨으므로 이스라엘의 삶과 종교는 내용과 형식면에 있어 이집트를 비롯한 고대 근동 또는 고대 전세계 어느 국가나 민족의 종교나 사회와 완연히 구별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모세가 시내산에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간 사이, 모세가 미처 내려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백성은 탈선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본문 출애굽기 32:1-14이 처하여 있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출애굽기 32:1-14은 32장에서 34장까지의 내용 전체를 고려하여 이해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자료비평, 양식비평, 전승 역사 연구를 한 것이 많다. 우리는 이 비평 연구의 내용에 대하여 상세히 논할 시간이나 지면이나 신학적 필요가 꼭 있지는 않다. 비평은 언제나 그 비평의 관점과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를 도출한다. 중요한 것은 수천년 동안 출애굽기 히브리어 본문이 구약 정경에 편입되고, 기독교 교회와 신학이 정경으로 인정하여 필사, 인쇄, 보전하여 오고 있다는 것이 비평과 전승 연구의 범주를 넘어서서, 가장 확실한 본문의 신빙성 근거가 된다. 또 이 본문에는 고대 근동과 세계 여러 고대 종교 경전과 다르고 독특한 특징이 있기 때문에, 그에 비견되지 않는 현대의 인간적 잣대로 그것을 분석, 비평, 비판한다는 것은 오히려 비평의 형평성이나 타당성을 저해하게 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출애굽기 32:1-14을 구약 비평학적으로 고찰할 때에도 성경 본문 전체를 종합적인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최근 우세하게 대두되었다. 출애굽기 전체 가운데 32-34장만큼 일관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며 극적 효과를 진작시키는 부분이 없다고 보고 있다. 32-34장이 또 출애굽기 전체 신학의 요체가 되어 있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야웨 하나님의 독특하신 신성, 하나님의 징벌과 모세의 중재가 긴장으로 맞선 가운데 야웨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이스라엘이 멸망되지 않고, 야웨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신다. 깨뜨려진 언약이 갱신되고 십계명의 깨어진 돌비들이 다시 대치되고 금송아지 숭배의 반역으로 실추된 모세의 권위가 그 얼굴이 빛남으로 (출34:29-35) 회복된다.
출애굽기에서 대표적 설화 형식이 있다면 역시 출애굽기 32-34장을 들 수 있다. 또 야웨 하나님의 신성 계시와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성도 32-34장에서 가장 대표적인 paradigmatic 성격을 띠고 나타난다. 32-34장의 출애굽기 3개 장이 놀라운 문학적 통일성을 이루고 있고, 출애굽기 신학의 정수가 되어 있다. 성경 전체의 내용이 하나님께 순종이냐 불순종이냐의 관계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것을 기준으로 사건 전개와 회막의 이야기 (33:7-11) 또 모세의 얼굴이 빛난 것 (34:29-35)을 고찰하여야 할 것이다.
출애굽기 32:1-6은 지금까지 구약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한 단위로 고려되어 왔으며 출애굽기 32장 이야기의 핵과 정곡으로 보고 있다. 출32:1-6은 더 세분하여 해부, 분석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신빙성을 결여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출32:1-6은 하나의 단위를 이루고 있어서 더 이상 쪼개서는 안될 것으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출32-34장의 내용 전체에 긴장을 조성하는 문장 단위와 설화의 근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형벌과 자비와 언약의 갱신과 화해의 역사가 바로 이 짤막한 불순종과 황금 송아지 사건으로 개시된 것이다.
출32:7-14은 황금 송아지 숭배로 인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과 진노, 이스라엘 아니 죄인의 근본적 태도인 목이 뻣뻣한 존재 규정, 진노의 폭발, 모세의 선택과 그에 대한 창조적 미래상 제시, 이에 반한 모세의 중보적 간구, 야웨 하나님의 진노 진정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이 내용의 단위에서는 구속 신학 또는 기독교신학 전체의 축도(縮圖)가 예표되고 있다.
신학적 문제와 설교 요목
성경에서는 세계와 국가와 사회와 가정과 개인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 또 인간의 믿음과 순종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내용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출애굽기 32:1-14에서도 엄청나게 크고 많은 신학적 문제와 설교 주제들을 만나게 된다.
존재는 만남을 계기로 하여 역사를 형성하여 나간다. 존재론을 말하게 되면 존재의 근원을 묻게 된다. 인과율적 추리로 세계와 우주와 개인의 존재 근원에 소급한다는 것은 지성의 방황일 뿐 정착점이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를 정착점으로 확립하고, 하나님의 창조로 방황하는 사고(思考)에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 창조의 인격적 섭리 관계 설정에서 불순종하고 반역한 인간에게 은혜의 선택과 언약의 관계를 설정한다. 이 모든 것이 만남의 역사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만남의 관계는 결코 중립적인 관계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인간이 반역하고 타락한 후 하나님과의 만남은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기초를 둔 인격적 언약 관계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인간의 믿음과 순종, 또는 불순종과 반역의 관계가 노출되지, 이 만남이 중립적인 관계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집트에 있는 히브리 민족에게 야웨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능력을 뻗치셨다. 모세는 야웨 하나님의 지시와 분부를 받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것을 전달하고, 또 이스라엘의 뜻과 상황을 하나님께 보고하며, 어려운 상황에서 중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세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야웨 하나님을 만나러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사이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인내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변심하게 된다. 사랑과 변심은 인류사의 무궁한 주제이고 신학적 문제의 기본 테마가 된다. 설교자는 이 테마와 주제를 가지고 내용을 확대할 수 있다.
모세의 중재 역량에 회의와 배신을 표명한 이스라엘 회중은 고요하게 참으며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대리자를 구하고 또 언약 관계의 하나님을 망각하고 부인한 뒤 역시 대치신(代置神)을 갈망하고 요망하게 된다. 이것은 실존 인간의 당연한 진로같이 보인다. 그러나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 표출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기적의 현장에서 인내하지 못하고 회의와 불신과 반역을 꾀한 것은 인격적 상호 관계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소행이다. 출애굽의 기적을 이루신 야웨 하나님과 그의 대변자인 모세를 배척하고, 앞으로의 진로를 담당할 신들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소위 인본주의적 발상으로 인간 투영의 우상 제작이며, 인간 교만의 지배 원리와 통치 이념, 인간 노력의 구속사상(救贖思想)), 인간 본위의 행동 윤리와 도덕 강령이라고 볼 수도 있다. 현대는 대치신이 군웅할거 하는 시대이다. 21세기의 문턱 앞에서 바로 북한에서는 인간을 신격화하며, 또 많은 이단 사교들에서도 두목을 신격화하고, 이념적 서클에서 이념을 신격화하고 이에 숭배와 순교까지 강요하고 있다. 많은 주의(主義, 예:공산주의)와 사상이 신격화되기까지도 하였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20세기에 받은 가장 큰 상처이다. 이것은 많은 설교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다음으로 아론은 출32:2에서 아내와 아들과 딸들의 금귀고리를 떼어오라고 말한다. 아론은 금귀고리들의 사용 목적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아론이 금귀고리들을 떼어오라는 말로 백성의 동요를 진정시키고 모세가 오기까지 기다리게 하려는 의도를 추측하여 볼 수 있고, 다른 한편 금귀고리들을 떼어오라는 말은 의문의 여지 없이 또 재론의 여지도 없이 백성이 1절에서 요구한대로 대치신 곧 금 우상을 만들겠다는 분명한 의도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자 쪽이 더 맞는 것같다.
3절에서는 2절의 명령형이 직설법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 반복법은 고대 근동의 여러 문학 작품에서 아주 자주 나타나고 있는 문학 기법이나, 반복 현상이 히브리어 문장들에서는 간결하고 지리멸렬하지 않다.
4절에서 아론은 금을 부어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들이 출애굽 역사를 이룬 신들이라고 선언한다. 아론의 타협과 부패와 아부가 여실하게 드러난다. 아론은 모세를 수행하면서 야웨 하나님의 인격과 기적을 다 친히 목격하였다. 그러나 야웨 하나님을 위한 충성과 순교의 각오는 되어 있지 않았다. 위기 상황에서 종교 지도자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 가히 알 수 있다. 목회자와 설교자들에게 위대한 경고가 되는 사항이다.
송아지에 대해서 알아볼 것들이 많다. 세계 종교들에서 송아지나 황소 또는 소(聖牛) 숭배는 많이 고증되고 있다. 이집트 종교와 고대 가나안 종교에서 소 숭배는 단연 많이 나타난다. 현재 인도에서는 아직도 성우(聖牛) 숭배가 대단하다.
영국의 유명한 근동어학자 와이스맨 D. J. Wiseman 의 성경고고학 예화나 독일의 유명한 이집트어학자 오토 E. Otto 의 이집트 소 숭배 논설 (Beiträge zur Geschichte der Stierkulte, 1938, 6-8, 32, 33)을 보면 고대 이집트의 멤피스나 헬리오폴리스 그리고 동쪽 삼각주 고센 땅에는 소 숭배가 왕성하였다. 여기에는 이집트의 호루스 Horus 신과 송아지 또는 황소의 숭배가 혼합된 종교 형태가 있었다. 이집트에서 송아지나 황소는 풍요와 힘의 상징이었다. 또 이 송아지나 소 숭배는 고대 근동의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집트에서도 천체 숭배와 연관되어 있었다 (행7:41-42과 연관시켜 고찰하여 볼 것).
가나안에서도 황소나 송아지는 바알신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로 풍요와 힘을 상징하였다. 바알신은 메소포타미아의 아닷 또는 시리아의 하닷신으로서 폭풍우와 비와 채소와 풍요의 신이었다. 가나안과 이집트의 동쪽 삼각주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또 이 삼각주에는 이스라엘 사람들 외에 많은 셈족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기록을 생각하여 볼 때 시내 사막에서의 황금 송아지 조형 숭배는 당시의 송아지 또는 황소 숭배의 혼합적 측면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송아지는 힘과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에, 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바빌로니아에서 최고의 신 마르둑 Marduk 은 송아지(⌈아마르⌋ AMAR)와 ⌈우투⌋신(태양신)이 혼합하여 된 신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하여 볼 필요가 있다.
5절에서 야웨 축제(⌈하그 레야웨⌋ hw"hyl; gx;)라고 한 것은 이스
라엘의 야웨 하나님을 비도덕적 자연신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7절에서 야웨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의 백성이 못된 짓을 하였으니 산으로부터 내려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길로부터 빨리 이탈하였다고 8절에 말씀하셨다. 신앙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우리 인간적인 잣대와 언어로 표현하고 설명하고 경배하려는 행위는 모두 보이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황금 송아지와 동일시하여 경배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성향은 참다운 하나님 인식과 그분과의 바른 인격적 관계에서 이탈하여 자기 본위로 나아갈 때 늘 나타난다. 이스라엘이 솔로몬 왕의 후계자 르호보암의 잘못 까닭에 남북으로 분단되었을 때에 북방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여로보암은 분단된 현실에서 북방 이스라엘의 주민들이 전통적인 야웨 숭배가 행해지는 남방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마음이 전향하지 않을까 우려한 나머지 북방 이스라엘의 벧엘과 단에 두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이 황금 송아지를 보고 야웨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촉구하였다 (왕상12:28-33; 왕하17:6; 대하11:14-15; 13:8). 고대 근동의 조각이나 그림에 바알신이나 하닷신이 그들의 힘이나 풍요의 표상인 황소나 송아지 위에 서있는 것으로 그려지거나 새겨졌다 (J. B. Pritchard, The Ancient Near East in Picture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 ANEP, 19742, 170, 179; 그림 500, 501, 531 참조).
아론의 황금 송아지와 마찬가지로 여로보암의 실책도 치명적 결과를 가져왔다. 그가 야웨 하나님을 자연신처럼 격하시켜 가나안의 바알신들과 같게 하였으므로 북방 이스라엘 왕과 백성은 의와 정의와 높은 도덕적 수준에서 추락하여 영성을 버리고 물질적 사고 방식에 빠지게 되었으며, 종교적으로 타락하고 사회는 붕괴되고 어두운 세계에서 선민의식과 사명감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비극적 결과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왕상15:30; 16:2, 7, 19, 26, 31 등 다수)와 연관되었다. 결국 북방 이스라엘은 많은 쿠데타를 거치면서 나라가 쇠퇴하여 강대국 앗시리아의 군대에 의하여 수도 사마리아는 주전 722년에 함락되고 주민은 거의 대부분 포로로 먼 나라에 압송되었다.
10절에 야웨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폭발과 이스라엘 민족 말살을 선언하신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설교 내용은 다양하게 전개할 수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 말살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한 인물을 이스라엘보다 더 큰 국가 민족으로 확대 발전시키겠다는 의사 표명을 하신다. 하나님 앞에 수(數)의 다과(多寡)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창조적 소수의 무한한 가능성을 설교 주제로 삼을 수 있다. 후에 모든 유대인들이 배척한 예수님 한 분께서 전세계에 은혜의 왕국을 펼치시고 계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날의 선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지구촌의 조그만 땅이고 분단된 현실에 있으나 하나님의 분부와 주신 사명에 성실할 때 한국이 세계를 뒤흔드는 창조적 소수자로서의 신장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11-13절의 모세 중보기도는 이스라엘 보전이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야웨 하나님의 이름과 그 영예에 행여라도 누가 되는 일이 있을까봐 드리는 중보기도였다. 야웨 하나님께서 진노를 푸시고 하나님의 선택이 그 뜻하신 대로 성취되기를 기도 드린 것이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에 절하고 제사를 드리고 하는 행위가 모두 고대나 현대를 막론하고 신전 문화에 속하는 행위들이다. 사람은 종교의 대상 없이 살 수 없다. 믿는 대상 없이 혼자 자기를 믿고 산다는 것은 위선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냐가 문제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야웨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하자 곧 대치신을 세웠다. 현대인은 참 하나님과 창조자와 구속자를 떠나 대치신의 우상숭베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우상 앞에 생명과 시간과 재산과 정력을 다 바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들 위에 축적되고 있다 (요3:36; 마3:7; 눅3:7; 21:23 등). 출32:10, 12의 하나님의 진노는 오늘날 지구촌 전체와 우리 민족에게도 해당되는 진노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또 다각적인 설교의 주제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화해와 직결되는 주제이다.
모세의 중보기도와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 중보기도와 비교하는 것도 좋은 설교 주제가 될 수 있다.
신약신학과의 연계
구약의 모든 주제와 문제와 고민은 신약성경에서 그 해답과 안정과 완성과 성취를 찾는다. 신약성경은 하늘의 언어로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언어 말씀으로 성육신하신 것이다 (요1:1, 14).
그러므로 출32:1-14의 구약 원문도 신약 성경에 조명하여 결론을 맺어야 할 것이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과 함께 구약을 초월하는 내용들이 은혜롭게 나타난다. 시내산에서 모세는 떨어져 있었지만,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 (마17:1-8; 마9:2-13; 눅9:28-36). 예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졌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신약 성경의 의의를 늘 강조하여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으나 신약 성경에서는 금과 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중요하다 (행3:6).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드는 자들은 소박하고 정숙하며 단정한 옷차림으로 자기를 단장하고 머리를 지나치게 꾸미지 않으며 금붙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치장하지 않는다 (딤전2:9). 삶의 자세와 태도가 이미 생활 문화에서 달라져 있다.
구약의 백성은 출애굽 당시의 파라오처럼 목이 곧고 마음이 강퍅하여 결국 영광의 그리스도인 예수님까지 배척하였다 (행7:5; 2:22- 23). 이 때문에 그리스도와 정의를 배반한 죄를 지적하여 규탄할 때,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행2:37; 7:54) 회개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이 배척하는 자의 양심을 깨우칠 때, 그들은 회개하게 된다. 이것이 교회의 역사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스데반의 순교는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인물 사도 바울을 획득한 것이다 (행7:59-60; 8:1-9:35 등). 목이 곧고 마음이 강퍅한 자들이 십자가와 순교의 사랑을 만나면서 회개한다.
마지막으로 신전 문화, 성전 문화의 지양에 대해서 말하겠다. 고대의 문화는 모두 신전, 사찰, 성전 문화로 집약된다. 고대의 위대한 문화 유적은 모두 신전, 사찰, 성전들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인간이 죄를 지어 불안하므로 믿지 않을 수 없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믿음의 노력과 표시를 한 것이 제사와 율법과 신전, 사찰, 성전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엄청난 노력과 수고를 그만두고 예수님 자신에게 와서 안식을 찾으라고 말씀하신다 (마11:28-29). 그리고 성전을 파괴하라고 하셨고 사흘 후에 다시 짓겠다고 하셨다 (요2:13-22). 예수님의 부활은 죄와 불안으로 인한 성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지금은 성령으로 우리의 존재 자체와 함께 하신다 (고전6:19-20). 성령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떨어졌었던 것과 같은 분리는 있을 수 없고 하나님과 우리는 영원한 평화 속에 있으며 새로운 창조물이 된다 (엡2:1-22; 고후5:17등).
구약은 오로지 신약 성경의 조명으로 읽을 때 은혜와 완성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을 목회자와 설교자는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