逸民 伯夷 叔齊 虞仲 夷逸 朱張 柳下惠 少連 학문과 덕행이 있는 백성으로는 백이와 숙제와 우중과 이일과 주장과 유하혜와 소련이었다. ○ 逸 遺逸 民者 無位之稱 虞仲 卽仲雍 與大伯同竄荊蠻者 夷逸 朱張 不見經傳 少連 東夷人 逸은 쓰이지 않고 버려져 숨은 인재이고, 民이란 지위가 없는 사람의 호칭이다. 우중은 곧 중옹인데, 태백과 더불어 荊蠻으로 달아난 사람이다. 이일과 주장은 경전에 보이지 않는다. 소련은 동이족 사람이다. 子曰 不降其志 不辱其身 伯夷叔齊與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뜻을 굽히지 않고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것은 백이와 숙제일 것이다.” 하시고, 新安陳氏曰 非其君不事 不降志 可見 不立惡人之朝 不辱身 可見 신안진씨가 말하길, “제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는 것에서 뜻을 굽히지 않음을 알아볼 수 있고, 악인의 조정에 서지 않는 것에서 제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음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謂柳下惠少連 降志辱身矣 言中倫 行中慮 其斯而已矣 유하혜와 소련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였으나 말이 윤리에 맞고 행실이 사려에 맞았으니 이런 점일 뿐이다.”라고 하셨다. ○ 柳下惠事見上 倫 義理之次第也 慮 思慮也 中慮 言有意義合人心 少連事不可考 然記稱其善居喪 三日不怠 三月不解 朞悲哀 三年憂 則行之中慮 亦可見矣 유하혜의 일은 위에 보인다. 倫이란 합당한 이치의 순서다. 慮는 사려란 말이다. 사려에 맞다란 뜻과 의로움이 인심에 부합함이 있음을 말한다. 소련의 일은 고증할 수 없다. 그러나 기록에 그가 居喪을 잘하였고, 3일 동안 게으르지 않았으며, 석 달 동안 풀어지지 않았고, 1년 동안 애통해하였으며, 3년 동안 근심하였다고 칭찬한 것으로 보아, 그 행실이 사려에 맞았음을 역시 알 수 있는 것이다. 李氏曰 惠不辭小官 降志也 不羞汚君 辱身也 이씨가 말하길, “유하혜는 작은 관직도 사양하지 않았으니 뜻을 굽힌 것이고, 더러운 임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니 몸을 욕되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記雜記下 孔子曰 少連大連善居喪 三日不怠三月不解 朞悲哀三年憂 東夷之子也 言其生於夷狄而知禮也 예기의 잡기하 편에서 공자가 말하길, “소련과 대련은 居喪을 잘하였는데, 3일간 게으르지 않았고 3월 동안 풀어지지 않았으며, 1년이 되어도 슬퍼하였고, 3년이 되어도 근심하였으니, 동이족의 자손이다.”라고 하였다. 그들이 夷狄의 땅에서 났지만, 예를 잘 알았다고 말한 것이다. 慶源輔氏曰 慮對倫而言 倫是義理之次第 則慮亦人之正思慮也 中倫謂所言合倫理 中慮謂所行當人心 人心乃人之公心 卽義理所在也 或以爲中我之思慮者 誤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慮는 倫에 짝지어 말한 것인데, 倫이 합당한 이치의 차례라면, 慮 또한 사람의 바른 思慮다. 윤리에 맞다는 것은 말한 바가 윤리에 부합함을 말한 것이고, 사려에 맞다는 것은 행한 바가 인심에 합당함을 말한 것이다. 인심이란 바로 사람의 公心이니, 곧바로 義理가 있는 곳이다. 혹시라도 나의 사려에 들어맞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降志辱身 行似卑汚 但其言中倫行中慮 異乎他人之降志辱身 所可取者如此而已矣 使不中倫慮 則降志辱身便不好了 쌍봉요씨가 말하길,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은 그 행실이 흡사 비루하고 더러운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말이 윤리에 맞고 행실이 사려에 들어맞는 것이 타인이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는 것과 다르기는 하지만, 그러나 취할만한 것은 그저 이와 같을 따름이다. 만약 윤리와 사려에 들어맞지 않는다면,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은 곧바로 좋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謂虞仲夷逸 隱居放言 身中淸 廢中權 우중과 이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숨어살면서 말을 함부로 하였으나 몸은 깨끗함에 맞았고 벼슬하지 않았으나 권도에 맞았다. 仲雍居吳 斷髮文身 裸以爲飾 隱居獨善 合乎道之淸 放言自廢 合乎道之權 중옹은 오나라에 기거하면서 단발하고 문신을 새겼는데, 벌거벗음으로 몸치장을 삼았다. 숨어 살면서 홀로 선함을 행하였는데, 도의 맑은 경지에 부합하였다. 말을 함부로 하고 스스로 벼슬을 폐하는 것은 도의 권도에 부합하였다. 左傳襄公七年 子貢曰 太伯端委以治周禮 仲雍嗣之斷髮文身臝(라)以爲飾 좌전 양공 7년에 자공이 말하길, “태백은 玄端服을 입고 委貌冠을 쓰고서 周禮를 취하였고, 중옹은 그를 이어받아 단발을 하고 문신을 하고서 벌거벗음을 장식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仲雍退處句吳以獨善其身 所以合乎道之淸 淸卽伯夷之淸也 放言自示其不可用 所以合乎道之權 放言雖無所考 然觀其斷髮文身之爲 則放言自廢 固宜有之 경원보씨가 말하길, “중옹이 물러나 구오 땅에 거처하면서 자기 몸을 홀로 선하게 한 것은 도의 맑음에 부합하는 것이니, 淸은 곧 백이의 맑음이다. 말을 함부로 한 것은 자신은 기용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준 것이니, 도의 權衡에 부합하는 것이다. 말을 함부로 한 것은 비록 상고할만한 것이 없지만, 그러나 그가 단발을 하고 문신을 한 것을 살펴보면, 곧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스스로 벼슬길을 폐한 사실은 진실로 있었다고 함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中淸中權是合道理底淸權 故集註皆以合道釋之 쌍봉요씨가 말하길, “淸에 맞고 權에 맞다는 것은 道理의 맑음과 권도에 부합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집주에서는 모두 도에 부합하는 것으로써 풀이하였다.”라고 하였다. 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 “나는 이와 달라서 가(可)한 것도 없고 불가(不可)한 것도 없다.”라고 하셨다. 孟子曰 孔子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所謂無可無不可也 맹자가 말하길, “공자는 벼슬을 할 만하면 벼슬하였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었으며, 오래 머물 만하면 오래 머물렀고, 빨리 떠날 만하면 빨리 떠났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반드시 해야 되는 것도 없고 해서는 안 되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南軒張氏曰 無可者 不以可爲主也 無不可者 不以不可爲主也 夫子之心 當可則可 當不可則不可 其曰無者 言其不存乎心也 若夷齊之心 則未免有不可 下惠少連 則未免有可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無可라는 것은 可에 주안점을 두지 않는 것이고, 無不可라는 것은 不可를 위주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자님의 마음은 可가 마땅하면 可를 취했고, 不可가 마땅하면 不可를 취했던 것이다. 공자님께서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것이 마음에 보존되어 있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만약 백이숙제의 마음이라면, 不可함이 있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고, 유하혜와 소련이라면 곧 可함이 있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致堂胡氏曰 無可無不可 以五字成文 當渾全以會其意 不當分析以求其義 設有人焉 絶世離俗 無一可者 有是理乎 行之而善 亦孤介一隅之士耳 設有人焉 和光同塵 無一不可者 有是理乎 行之而善 亦委隨苟合之人耳 聖人無可而無不可 則非固也 聖人無不可而無可 則 非流也 言之如平常 行之實未易 聖人從容中道 無所偏倚 德盛仁熟 自然發諸言語者如此 치당호씨가 말하길,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다는 구절은 다섯 글자로 문장을 이루었는데, 마땅히 순수한 전체로써 그 뜻을 이해해야 하지, 나누어 쪼갬으로써 그 뜻을 구해서는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설령 여기에 어떤 사람이 세상을 단절하고 속세를 떠나서 단 하나도 可한 것이 없다면, 과연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 그것을 아무리 잘 행한다고 할지라도, 역시 홀로 절개를 지켜 한 모퉁이를 차지하는 선비일 따름이다. 설령 여기에 어떤 사람이 빛을 감추고 塵世를 함께 해서 단 하나라도 불가한 것이 없다면, 도대체 이런 이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것을 아무리 잘 행한다고 할지라도, 또한 맡기고 따르게하고 구차하게 영합하는 사람일 따름이다. 성인께서는 가함이 없되 불가함도 없었으니, 이는 곧 완고한 것이 아니다. 성인께서는 불가함이 없되 可함도 없었으니, 이는 곧 세속에 흐르는 것이 아니다. 말로 하면 평범하고 쉬운 것 같으나, 실행하는 것은 실로 쉽지 않은 것이다. 성인께서는 조용하게 도에 맞으셨고, 한쪽에 치우치고 기대는 바가 없었으며, 덕은 성대하고 仁은 성숙하였으니, 자연스럽게 말씀에 드러나는 것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方其事未定之時 則此心無可無不可 及其事已斷之後 則有可有不可矣 쌍봉요씨가 말하길, “바야흐로 그 일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때에는 이 마음에 可함도 없고 不可함도 없는 것이나, 그 일이 이미 결단된 후에 미쳐서는 곧 可함도 있고 不可함도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謝氏曰 七人隱遯不汙則同 其立心造行則異 伯夷叔齊 天子不得臣 諸侯不得友 蓋已遯世離群矣 下聖人一等 此其最高與 柳下惠少連 雖降志而不枉己 雖辱身而不求合 其心有不屑也 故言能中倫 行能中慮 虞仲夷逸隱居放言 則言不合先王之法者多矣 然淸而不汙也 權而適宜也 與方外之士害義傷敎而亂大倫者殊科 是以均謂之逸民 사씨가 말하길, “일곱 사람이 은둔하여 세속에 물들지 않은 것은 같으나, 그들이 마음을 먹고 행동에 나아간 것은 각자 달랐다. 백이와 숙제는 천자가 신하로 삼을 수 없었고, 제후가 벗으로 삼을 수 없었으니, 대개 이미 세상을 등지고 무리를 떠난 것이므로, 성인 바로 아래 등급이니, 이는 그들 중에서 제일 높다고 할 수 있다. 유하혜와 소련은 비록 뜻을 굽혔지만 자신을 굽히지는 않았고, 몸을 욕되게 하였지만 구차하게 영합함을 구하지는 않았으니, 그 마음에는 하찮게 여기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말을 하면 능히 大倫에 맞았고, 행실도 능히 사려에 맞았던 것이다. 우중과 이일은 숨어살면서 말을 함부로 하였는데, 말은 선왕의 법도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맑아서 세속에 더렵혀지지 않았고, 권도로써 마땅함에 나아갔으니, 方外之士가 義를 해치고 가르침을 손상시킴으로써 대륜을 어지럽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였다. 이런 까닭으로 그들을 모두 일민으로 일컫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夷齊遯世避群與沮溺之徒不同 遜國而逃 父母兄弟之倫 厚矣 其諫伐而餓 君臣之倫 厚矣 此便見他不是全然忘世底 쌍봉요씨가 말하길, “백이숙제가 세상을 등지고 무리를 피한 것은 장저와 걸닉의 무리와 다르니, 나라를 양보하고 도망친 것은 부모형제의 인륜이 두터운 것이고, 그들이 무왕의 주왕 정벌에 간언하다 굶주려 죽은 것은 군신의 윤리가 두터운 것이다. 여기에서 곧바로 그들이 완전히 세상을 잊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遯世離群出乾卦文 言伯夷惟於淸之一德極於聖耳 他固有未盡也 故曰 下聖人一等 然視數子之性行 則固爲高矣 隱居則非君子庸行 然身中乎淸而不汚 然不汚而已 去伯夷之淸 則有逕庭矣 放言雖不合先王之法 然自廢則中乎權而得宜 權而得宜 則權不失正也 方外之士 皆指接輿沮溺丈人之徒 然此兩言實出莊子所謂遊方之外不可拘於禮法也 故其弊必至於害君臣之義 傷先王之敎而賤亂人之大倫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세상을 등지고 무리를 피한다는 말은 주역의 건괘문에 나온다. 백이가 오직 맑다는 하나의 덕에서만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을 뿐이고, 다른 것들은 본래 미진함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성인보다 한 등급 아래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 선생들의 性行에 견주어 보면, 백이가 진실로 높은 것이다. 은거하는 것은 군자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은거하면 몸이 淸에 맞아서 더러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더러워지지 않을 따름이니, 백이의 淸으로부터는 곧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비록 선왕의 법에 부합하지 않지만, 그러나 스스로 벼슬을 폐하는 것은 곧 권도를 행하여 합당함을 얻는 것에 들어맞게 된다. 권도를 행하여 합당함을 얻었다면 곧 권도는 그 올바름을 잃지 않은 것이다. 方外之士는 모두 접여, 장저, 걸닉, 장인의 무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두 마디 말은 실제로 장자가 말한 ‘세상 밖에서 노닌다면, 예법에 구속될 수 없다’는 것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그 폐단이 반드시 군신의 義를 해치고 선왕의 가르침을 상하게 하여 사람의 큰 인륜을 천박하게 어지럽히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라고 하였다. 尹氏曰 七人各守其一節 而孔子則無可無不可 此所以常適其可 而異於逸民之徒也 윤씨가 말하길, “일곱 사람 각자 그 한 마디를 지켰을 뿐이지만, 공자는 해도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었는데, 이것이 바로 항상 그 옳은 바로 나아가면서도 또한 逸民의 무리와 달랐던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常適其可 如學記當其可之謂時之可 謂合乎理之當然也 신안예씨가 말하길, “항상 그 옳은 바로 나아간다는 말은 마치 예기의 학기 편에서 ‘그 可함에 합당함을 일러 時라고 한다’는 구절의 可와 같으니, 이치의 당연함에 부합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揚雄曰 觀乎聖人 則見賢人 是以孟子語夷惠 亦必以孔子斷之 양웅이 말했다. “성인을 잘 살펴보면 어진 사람을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맹자는 백이와 유하혜를 말할 적에도 역시 반드시 공자로써 그들을 논단하였다.” 南軒張氏曰 七人者 皆爲逸民 而制行則異 亦有深淺 固不同也 不降其志不辱其身 其淸之至與 下惠少連 雖立於惡人之朝 未免乎降志辱身 然道則未嘗枉也 故言不失於倫理而行不違其思慮 此所謂由由然與之偕而不自失者也 至於虞仲夷逸 則又其次也 放言謂其言放而不拘也 異乎中倫者矣 然而其持身亦合於淸者之所爲 而其退而廢也 亦非索隱行怪之爲 有合於權 爲可取也 若夫孔子之無可無不可 則異乎七子者之撰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7사람은 모두 逸民이 되지만 制行이 다르고 또한 깊고 얕음이 있었으니, 본래부터 서로 같지 않았던 것이다. 제 뜻을 굽히지 않고 제 몸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면, 백이숙제는 淸이 지극한 사람이겠지! 유하혜와 소련은 비록 악인의 조정에 섬으로써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함을 면하지 못하였지만, 그러나 道만큼은 일찍이 구부린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말은 윤리에서 잘못을 하지 않고, 행실은 그 사려에 어긋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유유히 그들과 함께 하여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중과 이일에 이르러서는, 다시 그 다음이다. 放言이란 그가 말을 방자하게 하여 구애받는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말이 윤리에 맞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몸가짐은 역시 淸者가 행하는 바에 부합하면서, 또한 그가 물러나 벼슬을 폐함에 있어서도, 역시 은미한 것을 찾고 괴이한 짓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權道에 부합되는 바가 있어서 취할만한 것이 된다. 만약 공자님의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다’는 저 경지라면, 7명의 선생들이 갖추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