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 - 제5편]
## 두 번째 고향, 십정동 달동네 주민들과 함께
1986년의 십정동은 인천과 서울에서 철거당한 분들이 쫓겨나서 야산 무덤가에 모여서 만들어진 동네였습니다. 동네 여성분들은 주로 근처의 무허가공장에서 부업거리를 받아왔습니다. 한두평 짜리 좁은 방에서 목걸이도 꿰고 제품 접착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이 동네에서 해님 공부방을 열었지요. 하지만 처음에 십정동 공부방에 선생님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후배들이 선생님으로 일하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똑같이 살았습니다. 대학 다닌 것도 알리지 않고 부업도 하고 공장도 다니고 일일학습지도 돌렸습니다.
그때 친해진 동네분이 말씀하시길
“공부 많이 하고 배경있는 사람인 줄 알았으면 그렇게 가까이 하지 않았을텐데 ㅎㅎ 그런데 그때 홍미영씨 덕분에 참 많이 배웠어요.”
라고 하셨는데요. 역시 주민으로 살았던 선택이 옳았던 것 같습니다.
십정동은 가난한 동네라고 행정에게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천 세대 가까이 사는데 공중전화는 두어 개 밖에 없었고, 쓰레기 수거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깨진 보도블럭이나 위험한 계단은 손보지 않은 채 몇 해였습니다. 가로등은 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수구를 제대로 묻지 않아 비가 오면 오폐수가 역류합니다. 밤이 되면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살림하느라 힘든데, 수도는 새벽에야 나오니 잠 안 자고 기다렸다가 물 받아서 빨래하고 밥해야 했습니다. 제가 제일 힘들어했던 것은 쓰레기 버리는 일이었어요. 아침에 애들 밥 주다가도 쓰레기차 종소리가 들리면 연탄재 들어간 함지박 이고 비탈길을 뛰어내려가야 하는데, 몇분 늦으면 그냥 가요. 타종식이 아니라 문전수거식으로 쓰레기를 치우면 해결되는 일인데, 당시 구청에서는 신경쓰지 않았던 거죠.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이런 세상이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정말 절실하게 들었어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힘을 합쳐 서명도 받고 동사무소 문턱이 닳도록 돌아다녔습니다. 공중전화가 새로 설치되고, 오래 고장난 가로등에 불이 다시 들어왔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동네 분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였습니다.
“서명지에 이름 쓰면 경찰에 끌려가는 거 아냐?”
“난 무서워서 이런 거 못 하겠어, 남편에게 허락 받고 할게”
하던 분들이 변하기 시작한 거죠.
당당히 의사표시를 하고 생활의 불편과 불합리함을 해결해가게 되었습니다.
이 일들은 해님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해님방은 단지 공부방이 아니라 동네 공동체였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뿐 아니라
젊은 어머니들을 위해 아기들을 돌보는 놀이방도 열었고
이를 기반으로 어머니 모임, 아버지 모임을 열었어요.
‘열우물 소식’이라고 동네 소식지도 만들고
마을 도서관처럼 ‘해님쉼터’라는 이름의 책방도 열었습니다.
이렇게 해님방을 중심으로 동네 사람들이 모였지요.
특히 매년 마을 잔치할 때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여 같이 준비하고 즐겼어요.
상정초등학교 운동장에 그네까지 걸고 큰 잔치를 벌였어요.
얼마 전에 해님방 30주년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해님방을 다니던 아이들이 지금은 해님방 선생님이 되어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고, 청년가수가 되기도 했어요.
홀로 손주 두 명을 키우셔야 했던 상훈이 할머니는
“만약 해님방이 없었으면 혼자 어떻게 손자들을 키웠겠냐”고
저만 보면 고맙다고 눈물 흘리십니다.
장난꾸러기 손자들은 이제 다 의젓하게 잘 커서
할머니 드릴 용돈 들고 배우자와 함께 십정동에 찾아옵니다.
그때 젊은 어머니였던 여성들도 지금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혼자 살기보다 같이 사는 공동체를 만들면서 우리가 함께 만들고 얻었던 것들이 계속 이어져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주민 분들에게 받은 배움과 힘으로
제 인생에서 힘들 일이 닥칠 때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 분들에게 받은 것을 다 갚고 있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나 생각하다 보면,
새벽에도 번쩍 눈이 떠져 자료를 뒤지며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살피게 됩니다.
인천 최초의 여성 구의원에서
인천 최초의 여성 시의원이 되고
인천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야당 출신 최초의 여성 구청장이 되어
그리고 인천 최초의 여성 시장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까지
제가 만난 여러 사람들이 씨실과 날실로 엮어져 든든한 매듭이 되어
지금의 제 모습을 이루었고
많은 사람들의 희망을 모아서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 희망들을 모아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