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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
구한말 나라는 빼앗기고 아내는 적의 칼에 난자 당하고
통탄의 삶을 살며
커피를 사랑했던 고종의 흔적을 찾아갑니다.
영화 "덕혜옹주"가 흥행을 하면서
정동길에 대한 역사 따라잡기 여행이 더욱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영화 개봉첫날 덕혜 옹주를 보면서
가슴아픈 역사의 길을 다시 한번 찾아 걸어 봅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덕혜옹주"
대마도 여행때도 덕혜옹중의 흔적을 찾는
아픈 역사 기행을 다녀왔었습니다
정동길은 덕수궁 돌담길 이라고도 더 잘 알려졌는데요.
예전엔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함께 걸으면 이별한다는 설도 있었지만
요즘은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을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 진다는 설로 바꼈다고 합니다.
세월따라 설도 바뀌나봐봅니다.
정동길은 백여년전 힘없고 나약한 조선과
고종의 애환과 조선의 아픔이 자리한 길 입니다.
당시 열강들의 숨막히는 힘의 논리로 민초들의 삶은 고단했고
백성을 돌보지 못하는 임금의 무기력함은 얼마나 힘든 시대 였을까요.
오전 11:30 ~13:30 까지 챠량을 통제 하는데요.
주변 직장인들이 이길을 오가며 점심시간의 여유를 즐깁니다.
정동길 초입에 있는 서소문 청사부터 둘러봐야 하는데요
청사 13층 전망대 다락 카페엔 덕수궁 일대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평일 09:00 ~ 18:00 까지 무료 개방합니다.
다락 카페엔 정돌길의 역사와 고종의 흔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요.
전망대에서 바라는 정동길 주변은 다체롭고 활기 찹니다.
덕수궁 석조전이 보이죠?
고종황제가 머물던 곳입니다.
여행 당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어서
청소년들이 현장학습으로 정동길 주변에 가득했는데요.
요즘 서울시내 여행에는 꼭 갖춰야 할 몇 가지 의상과 소품이 있습니다.
한복과, 셀카봉 인데요.
한복은 주변 지하상가에서 저렴하게 대여가능합니다.
궁 주변 여행의 트렌드로
남녀 젊은이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사진 찍는 풍경은 이체로운데요.
외국인 여행자도 한복 입은 모습이 곱더라고요.
궁에서 여러가지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학생들 웃음이 넘처 납니다.
요즘에 핫한 여행 사진 포즈가 있는데요.
"토르와 친구들 포즈"
땅을 향해 파워땅! 인데요. 리엑션은 필수 입니다
가운데 친구가 땅을 치면 친구를 둘러싼 사람들이 동시에 다리와 팔을 벌리면서 뒤로 점프 하는겁니다.
"장풍과 친구들 포즈"
모든 에너지를 모아 친구에게 발사 하는 겁니다.
그러면 친구들은 진짜 장풍을 맞은것 처럼 뒤로 날아가는 리액션 하는 거죠.
"진격의 거인 포즈"
10m 거리에서 친구를 손바닥 안에 올리는 겁니다.
그리고 파워 입김을 불면 손바닥 안에 있는 친구들은 입김에 날아가는 듯한 리엑션은 필수겠죠.
"파워 짓발기 포츠"
10m 거리에서 친구들을 발로 눌러 주는 겁니다.
리엑션은 필수 겠죠.
"유우니 단골 포즈"
10m 거리에서 아이템 먼저 투척해야 하는데요.
캔 커피 먹고 난 빈 깡통도 좋을것 같아요,
이포즈는 친구들과 앉아서 걷는데요,
사이좋게 기차놀이를 하는 것 처럼 합니다.
휠체어 사용하는 우린 휠체어로 기차놀이 하듯 하면 돼겠죠.ㅎㅎ
이밖에도 온몸으로 하트 만들기도 있는데요.
아이들이 정동길을 여행하면서 신나게 포즈 취하고 있더라고요.
서울시청 신 청사인데요.
구 청사를 감싸고 있는것이 옛 것과 새것이 언발런스 합니다.
전망대 다락카페 안엔 고종황제의 초상이 있어요.
실제로 보니까 황제의 위엄이 느껴지는데요.
체격은 아담해서 당시 조선사람 체격을 짐작을 하게 합니다.
어느나라든 왕족은 미남 미녀 일쑤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왕비는 미모보다 현명함과 덕망을 보고 선택했다고 하지만
후궁들은 왕이 직접 고른 사람이 많잖아요.
그렇다 보니 예쁜 여자가 눈에 띄었겠죠.
연산군의 여인 장녹수, 숙종의 여인 장희빈, 고종의 여인 엄귀인 등등...
덕수궁 석조전 뒤에 있는 "구 러시아 공간"인데요.
당시 일본과 러시아는 전쟁중에 있었잖아요
일본은 조선에 들어와서 강제로 한일합방을하고
명성황후는 외놈들의 칼에 난자당하고 고종의 목숨까지 노리던 중
러시아 공사들의 도움으로 궁을 몰래 빠져 나와
러시아 공간으 몸을 피합니다.
석조전 입니다.
짧았지만 치열했던 대한제국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궁궐내에 최초로 서양식 건물로 왕가의 기품과 서양의 화려한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입니다.
서소문 청사 앞 화단입니다.
무궁화가 예쁘기 피었습니다.
장독대 가족입니다.
세상엔 작은 사람도, 큰 사람도, 어중간한 사람도 살아갑니다.
숫자가 적다하여 차별할 순 없습니다.
돌담길 입니다.
흑백으로 찍어봤는데 더 멋스러운 것 같습니다.
백년 전으로 떠나는 여행 길 답죠?
광화문 연가.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 주옥같은 가요를 작곡한 이영훈 입니다.
이곳에 서면 저절로 노래가 흥얼거려 집니다.
"광화문 연가"
이제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모두 세월을 따라 따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모두 세월을 따라 따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에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모두 세월을 따라 따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모두 세월을 따라 따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정동극장 입니다.
해외 여행객에겐 한국 문화여행으로 필수 코스 입니다.
길 따라 한걸음씩 너와 함께.....
"길들여 지기" 카페 입니다. 정동극장 안에 있는데요.
간판도 예술이고 액자 같았어요.
그 앞에 꽃들은 보기는 좋았으나
밤이되면 조명 빛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할것 같아 피곤할 것 같았습니다
식물도 밤엔 잠을 자야 잘 자란다고 합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잠을 자야 성장합니다.
고문중에서 잠 안재우는 고문이 가장 큰 고문이라고 하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잠 오는 눈꺼풀 이라는데요.
사람들의 이기심이 꽃을 잠들지 못하게 고문하는 것 같았습니다.
중명전 입니다.
중명전은 원래 정동지역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에 속해 있었습니다
1897년 경운궁(현 덕수궁)이 확장되면서 궁궐로 편입되었는데요.
이때 당호를 ‘수옥헌’이라 짓고, 주로 황실 도서관(King's Library)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2016년 8월~12월 말까지 접근가능한 문화제로 보수공사 한다고 합니다.
중명전은 휠체어 사용여행객이 내부까지는 접근 할 수 없습니다.
정동교회 입니다.
흑백사진이 백년전 시간으로 흘러갑니다
추억의 달고나...
옛 생각이 절로 납니다.
어릴땐 어찌나 맛있던지....
저거 한입 얻어먹으려고 달고나 옆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요.
영화 "가비"에서 고종은
"나는 가비의 쓴맛이 좋다. 왕이 되고부터 무얼 먹어도 쓴맛이 났다.
헌데 가비의 쓴맛은 오히려 달게 느껴지는구나." 라고 했거든요.
당시 커피(가비)는 황족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먹는 귀한 음료였고
가비를 마시며 하는 대화는 먼지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가비를 흔하게 먹지만
백년전 가비는 황족만 먹는 귀한 음료이고
영화"가비"에 서 고종은 가비로 인해 대한제국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고 합니다.
구) 러시아 공간입니다.
지금은 탑 부분만 남아 당시의 시절을 증언해 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 "가비"에서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간으로 피신해 있을때
러시아 무기상 에게 막대한 자금을 들여 무기를 구입해 의병의 힘을 키우려 합니다.
하지만 통역을 하는 조선의 신하는 고종의 말을 왜곡해 통역합니다.
그자는 외놈 압잡이 이었거든요.
나라가 망하는 징조는 매국놈이들 득실거릴때 인것 같아요.
지 뱃속만 채우는 나뿐 인간들.
러시아 공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고종은 일본에 매수되어온
"따냐"라는 조선 여연에게 통역을 부탁합니다.
따냐는 조선인지만 아비가 역적으로 몰려 러시아로 도망친
조선에 대한 애증을 가지 여인이죠.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온 따냐는 고종 옆에서 통역과 시중을 들며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고종의 진심을 알아갑니다.
고중은 따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중전을 보내지 않았다.
하여 아직 장례도 치르지 않았다.
허나 지금은 조선을 지키는 일만 생각하겠다"
고종은 "사는게 죽는것보다 치욕스럽다해도 나는 살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만들어 황제가 될것이라고 따냐에게 선포합니다.
고종에게 마음을 연 따냐는 고종이 좋아하는 커피를 볶을때 이렇게 말합니다.
"가비를 볶을때는 과일이나 꽃향기가 섞여나고
뜨거운 물에 우려낼때는 은은한 향을 내면서 가비만의 고소한 향이 납니다.
가비는 검고 쓴맛이 강해서 독을 타는데 이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따냐는 고종이 좋아하는 가비를 기미해 고종에게 커피를 건냅니다.
따냐는 어릴때 부터 러시아로 도망쳐 그곳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직업은
무기와 가비를 밀거래 하는 밀거래 상입니다.
밀거래 하는 기차 안 에서 단속하는 러시아 군에게 잡혀 죽음 직전에
조선인 "일리치"에게 구조 됩니다.
따냐와 일리치는 러시아와 중국, 일본을 오가면서
무기와 가비 등 밀거래 할만한 물건은 그들의 손에 조선이나 일본등으로
반입됩니다.
그들의 몸은 타국에 있지만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은
자금을 만들어 독립군에게 보내집니다.
일러치 에게 구조된 따냐는
사랑에 빠졌고 밀거래 자금을 조선 의병에게 보냅니다.
산속에 숨어 의병을 도와 일하다가
러시아 군에게 발각되 총살 직전 일본군에 구출됩니다.
일본군은 따냐의 목숨을 담보로 "일리치"에게 의병 소탕을 지시합니다.
어쩔수 없이 둘은 일본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일본군은 따냐에게 러시아에 밀사로 온 "민영환"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러시아 공간에서 통역사로 일하게 됩니다.
따냐와 고종은 그렇게 만나게 됩니다.
한 남자에게 가비는 사랑이고
또 다른 한 남자의 가비는 제국의 꿈이였습니다.
한국 최초의 커피 전문점은 바로 정동길에 있었습니다.
기록에의하면
1894년 고종에게 처름으로 커피를 대접한 손탁 여사가 새운
손탁 호텔 1층에 커피숍인데요.
호텔 커피숍에서는 "정동 구락부"라는 친목단체에서 활동하는 정치세력들이
많이 이용 했다고 합니다.
"정동구라부"는 친목단체 인데요.
내국인으로는
민영환, 윤치호, 이상재, 서재필, 이완용 있고
외국인으로는
미국공사 실과 프랑스영사 플랑시를 비롯해
당시 한국 정부의 고문으로 초빙된
다이와 리젠드르,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이 있었습니다.
구락부의 주요 회원으로 일본인들이 전혀 없는 것을볼때,
열강 세력의 성쇠 속에서 친구미파 인사와
주한 구미외교관들의 연대를 위한 연락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행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손탁호텔 커피숍에서 주로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한국의 커피 골목은 정동 길에서 부터 시작된거죠.
주한 캐나다 대사관 입니다.
러시아 공간 앞 이화 박물관을 갑니다.
박물관 안으로는 작은 턱이 있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민원으로 모두가 접근 가능한 박물관으로 만들어야 겠습니다.
이화 박물관엔 대한제국의 여성 독립운동가 있다고 합니다.
카페가 정겹습니다.
휠체어 접근 가능하고요.
조선시대 사주문 입니다.
당시 이화학당 대문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캐나다 대사관 앞 회화나무 인데요.
나이가 무려 5백살이고 서울시 보호지정 목이라고합니다.
5백살이면 조선 시대부터 근대, 현대 까지 역사의 질곡을 지켜봤을 나무입니다.
인간은 백년도 못 사는데 왜그리 서로를 미워하고 죽이고 그럴까요.
이화박물관 쪽 돌담길 입니다
보구 여관터 입니다.
보구여관은 1889년 미국 북감리회에서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인데요.
의사와 간호사를 양성해 여성의학 발전에 기여한 곳입니다.
1912년 흥인지문 옆 볼드원 진료소와 합쳐
해리스 기념병원이 되었고 이대의료원의 전신입니다.
드라마 "제중원"에서 유석란 이 조선 최초 여성의사 입니다.
당시 여성은 의사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의사 시험을 보기 위해 남장을 하고 수석으로 합격하지만
여성이라는 것이 들통나 큰 고초를 치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제중원의 최고 전문의 황정도 백정이었습니다.
백정은 이름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황정이 황정이란 이름을 정식으로 갖기전에 불런 호칭은 소근개 였습니다.
"소근개" 는 근수가 덜나가는 "작은 개 새끼" 라는 뜻입니다.
신분 사회에서 이름도 없이 이슬처럼 사라저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해보면 아찔합니다.
신분도 결국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불합리한 제도 인거죠.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신분을 벽을 넘지 못하던 시절이었고 그 후 개화기를 맞아
신분의 관습은 점차 사라지고
지금은 터만 남아 당시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 프란시스코 성당 작은 형제회 입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사랑을 전하셨습니다.
낮은데로 임하고 가난하고 병든자를 구원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뜻을 잘못 전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에 혈안이되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멸시합니다.
종교를 빙자해 사기꾼이판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위안부 소녀 상은 성당 마당에 있습니다.
십대 소녀들이 일본군 성 노예로 끌려가 죽음으로 최후를 맞은 그 시기도 일제 강점기 입니다.
영화 "귀향"은 당시의 상황을 증언해 줍니다.
아픔을 가진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일본정부는 백배 천배 진심으로 사죄하고
피해자 할머님들께서 "됐다 그만해라" 할때가
사죄하고 반성하고 제발방지에 노력에 노력을 더 해야 합니다.
창덕여중 안에 있는 프랑스 공사관 터 석조물 입니다.
일본 신사 참배하던 재단 입니다.
일본은 한국인에게 창씨 개명과
신사 참배하라고 총 칼로 위협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진 안았지만 치가 떨리고 소름이 돋습니다.
덕수궁 옆 건물 공사하는 벽 입니다.
사진은 덤 입니다.
사진은 덤 입니다.
사진은 덤 입니다.
사진은 덤 입니다.
덕수궁 옆 와플 집인데요.
줄이 끊이질 않습니다.
꼭 먹고싶었지만 줄은 줄어들 기미가 안보입니다.
다음번엔 꼭 먹어보고 말것 입니다.
증명전 옆 덕수정 입니다.
부대찌개 1인분에 7천원에 맛도 정말 좋습니다.
무엇보다 휠체어 사용자가 접근할 수 있어 더 맛있습니다.
점심시간대인 11:30~13:30 까지는 피해서 가는것 좋습니다.
길게 늘어선 줄이 도통 줄어들지 않거든요.
오후 2시쯤 갔는데도 한참을 기다려서 먹었습니다.
시청역 10번 출구쪽 우동집 "유림"입니다.
50년 전통의 맛을 자랑하는 곳인데요.
맛도 좋고 휠체어 사용자도 접근 가능합니다
저 자린 드라마 "별그대" 김수현이 앉아서 우동을 먹었던 자리라고 해서
일본, 중국, 관광객이 줄서서 기다리는 자리입니다.
캐나다 대사관 앞 정동빌딩 1층에 장애인 화장실 입니다.
이건물은 유니버셜 디자인 된 건물입니다.
가는 길...
1호선, 2호선 시청역 이용해서 대한 앞으로 나오면 됩니다.
먹거리...
정동길 덕수정 "부대찌개"
카페 캐나다 대사관 옆 루소
성프란 성당 내 신드
서소문 서울시청 13층 카페 다락
"유림"의 50년 전통 우동 및 국수
시청역 10번출구
화장실...
시청역, 서소문 서울시청1층,
성프란시스코성당 작은 형제회
정동빌딩 1층
이 외에도 정동길엔 휠체어 접근 가능한 곳이 많아요.
여행 팁..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날엔
덕수궁에서 석조전 음악회가 오후 7시 부터 개최됩니다.
공연문의
http://www.deoksugung.go.kr/cms/contents/reserve/reserve03.asp
첫댓글 대박♡
잘보고갑니다^^
쥬와요
여행후기의 진수를 보여주십니다.
관광해설사 보다 더 멋진 역사해설,
길안내, 먹거리, 편의시설, 여행팁....그리고 사진까지.
완벽한 여행후기군요.
당장 가고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