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따로 있나, 이곳이 바다로다
~ 일본제일의 호수 비파호 일주 기행록(4)
5월 24일(금), 바람 불어 걷기 좋은 날이다. 오전 8시, 숙소를 나서 히코네역 거쳐 시청 청사를 지나노라니 '세계문화유산 히코네성'이라 크게 내건 표어가 눈길을 끈다. 히코네성의 해자를 한 바퀴 돌아 비와코 호반에 이르니 잘 닦여진 자전거 길 코스에 들어선다. 이 길 따라 계속 북쪽으로 걸어가노라니 호수의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일본의 지인이 보낸 멘트, 이틀 전 ‘비와코, 바다인가 호수인가?’의 기행록 제목에 주목하였는지 '교수님, 비와코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실제 걸으면서 접하는 비와코는 정녕 바다처럼 드넓은 것을.
북녘 끝자락의 비와코
정오까지 열심히 걸어 이른 곳은 나가하마 역, 일행 중 일본 측 참가자 세 명(연장자인 재일동포 김승남 씨, 간사이공항까지 마중 나온 나카니시 하루요 씨와 엔요 교코 씨)이 오늘 오전까지 걷고 이곳에서 열차편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사흘간 함께 한 동호인들, 수고하셨습니다. 또 만나요. 아침 출발 때는 어제 함께 걸은 다나까 씨와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였고.
때마침 점심시간, 역 구내의 식당가에서 허기를 때우고 13시에 오후 걷기에 나섰다. 역 계단을 오르내리는 승강장 입구에 낯익은 복식차림의 초상을 새긴 석판이 크게 설치되어 있다. 다가가 살피니 임진왜란의 주역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그 주인공, 궁금증이 일어 일본 측 동호인에게 물으니 도요도미가 이곳 성주였고 큰 위세를 떨친 곳이라는 대답이다. 역 구내에 걸린 지역 명소의 표기에는 히데요시 아들의 묘소가 들어있기도. 뜻밖의 장소에서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과 부닥치는 소회가 별다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인연이 깊은 나가하마 성을 배경으로
오후에 접어들어 햇볕이 따가운데 바람이 제법 세게 불어 땀을 식혀준다. 열심히 걸어 오후 4시 지나 '잔잔한 파도'라는 표지가 이색적인 북녘호반의 휴식처에서 사흘째 걷기를 종료하였다. 걸은 거리는 29km. 전용버스에 올라 한참을 달려 이른 곳은 이웃 후쿠이(福井)현의 쓰루가(敦賀)시에 있는 숙소, 여장을 풀고 숙소 근처의 아담한 식당에서 저녁을 들고 나니 6일 동안 걷기의 절반이 훌쩍 지난다. 열심히 걸은 일행들, 보람된 날들 누리셨기를. 남은 절반 더 좋은 날들이어라.
도착지에서 살핀 비와코 지도
* 걷는 도중 히코네 시계를 지나 마이바라(米原) 시계에 접어든다. 이곳을 지나노라면 조선통신사 옛길 걷기 때마다 높은 언덕에서 비와코를 조망하며 언제 저곳을 가까이 가 볼 수 있을까 하는 상념에 젖었는데 오늘 바로 그 지역을 걸어서 지났다. 작년에 그곳을 지나며 적은 내용은 이렇다.
‘5월 5일(금), 8시 10분에 히코네 시청을 출발하여 기후(岐阜)현 다루이로 향하였다. 참가인원은 당일참가자를 포함하여 45명. 시가지를 벗어나 작은 고개를 넘어 40여분 걸으니 조선인가도가 끝나고 나카센도(中山道), 도리모도 거리를 지나 20여분 더 걸어가니 경사가 급한 고갯길에 이른다.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 마루에 오르니 멀리 비와코(琵琶湖)의 아름다운 전망이 시야에 잡힌다. 조선통신사들이 쉬어가고 메이지 천황도 들렀다는 보호도(望海堂)에 들어서니 예전과 달리 문이 닫혔다. 이곳을 지키던 주인여자의 유고로 관리할 사람이 없다는 전문이다. 주인 없는 명소에서 바라보는 비와코마저 날씨 탓인지 흐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