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회는 점점 더 높은 감성능력이 필요해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20세기까지는 IQ적인 능력이 생존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고 하면, 21세기에서는 EQ적인 능력이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우선 몇 가지 이유를 들어가면서 그 까닭을 이해해 보자.
21세기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내포한다. 첫째는 경제적 풍요의 확산이다. 어찌되었든 21세기 사회는 20세기에 비해서 의식주라는 기본적 생계수단의 충족정도가 높아지게 될 것이다.
둘째 특징은 누구나 지적하듯이 21세기는 정보화 사회라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의 유통이 활발해지고, 지식과 정보의 흐름 속에 있으면 적응이 가능해지지만, 그 흐름밖에 소외되게 되면, 부적응이 생긴다.
이러한 경제적 풍요와 정보화 사회라는 두 가지 특징은 우리들의 삶속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 오는가?
우선 경제적 풍요는 문화적 욕구의 상승을 초래케 될 것이고, 이 문화적 욕구의 실제내용은 결국 감성적 욕구 충족으로 모아질 것이다.
예컨대 보라, 21세기 사회에서는 이제 식사가 단지 영양분의 공급과 보충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기 보다는 하나의 분위기 있는 격식과 삶의 문화로 정착되게 될 것이다. 두 연인이 만나서 식당을 찾을 때 그들은 단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식당을 찾지 않고, 분위기 있고 맛있는 식당을 찾게 된다. 그런 연인들의 구미에 맞도록 꾸며진 식당이 생존경쟁에서 이길 것이고, 그런 식당으로 상대방을 안내할 줄 아는 남자 혹은 여자가 연애과정에서 더욱더 성공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사회는 문화적 욕구가 훨씬 더 강력하게 나타날 것이며, 이 욕구의 본체는 감성적 만족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감성적 만족의 제공에 누가 더 경쟁력이 있는가에 따라서 개인과 집단의 성공과 출세의 확률과 가능성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정보화 사회라는 21세기 사회의 주된 특징은 우리의 삶 속에 균질화라는 현상을 야기시킨다. 지식과 정보의 공유 현상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빠르고, 깊게 전개됨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이 비슷해지고, 동등해지게 된다.
우선 이런 균질화는 상품의 균질화로 나타나게 되어, 상품선택의 주된 요인으로 감성터치(emotional touch)가 중요해진다. 다시말하면, 모든 상품들이 비슷비슷해짐으로 성능의 비교에 따른 구매가 아니라, 마음에 와닿는 느낌과 인상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TV를 하나 산다고 치자. 이미 TV생산 공장에서는 정보화 사회라는 특징 때문에 최신의 기술에 입각한 TV를 만들게 되고, 이런 최신의 기술 도입에 실패하면, 낙후된다는 인식이 철저하기 때문에 최소한 성능상으로는 다른 TV에 뒤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아울러 그렇게 필요한 정보를 입수하는 데 그리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정보화 사회 속에서는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 무척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게의 진열대에 나온 대다수의 TV는 성능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게 당연하다. 그러면 이런 물건을 사러나온 구매자는 어떤가? 그의 머리 속에는 성능 차이에 대한 개념은 이미 흐리기 때문에 마음에 와닿는 디자인의 물건을 사게 마련이다. 마음에 와닿는 물건은 색깔, 디자인, 진열방식, 제조회사의 이미지 등 상당히 복잡한 정서적인 특성의 교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21세기의 구매행동은 이렇듯 감성적 특징에 의해 좌우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대다수 물건들의 성능이 비슷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 물건이 갖는 인상과 느낌이 상품의 선택에 영향을 줄 것이다.
둘째로 그러한 균질화는 인간관계의 양상도 바꾸어 놓는다. 정보화 사회가 가속화됨에 따라 사람들끼리 나누어 갖는 정보와 지식의 종류와 내용 그리고 그 깊이가 유사해지고, 동등해진다. 그래서 남녀간에 차별이 희미해지고, 사제간의 차별이 희미해지고, 노사간에 차별이 희미해진다. 이것은 부모· 자식 간에, 고부간에, 인종간에 차별의식의 약화도 물론 수반한다.
이와 같은 차별 의식의 약화는 인간관계 상의 대등성을 강화하게 되며, 그 결과로 인간관계상 그간 존재해 왔던 장유유서와 신분상의 권위는 매우 약화되어 간다. 자식이 단지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복종하던 관행은 점차 사라진다. 제자가 단지 제자라는 이유 때문에 스승에게 복종하지는 않는다. 복종해야 될 합리적이고,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없을 때에, 그들은 저항하기도 한다.
이러한 대등성 때문에 21세기에서의 인간관계는 서로간에 참고 지내며, 견디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설혹 자기 딸이라고 하더라도 부모 마음대로 하기가 어려워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고칠 생각보다는 참고 견디려는 노력이 더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배꼽티를 입고 다니는 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부모는 마음에 안들어서 “입지 말라”고 이야기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끝내 고집할 경우 부모는 이를 막을 길이 없다. 그 딸 아이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할 근거를 갖게 된다. 그리고 배꼽티를 입지 못하게 하는 자신의 부모가 얼마나 완고하고, 특이한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를 모으게 되므로 대립만 더 심해진다. 따라서 이런 경우 최선의 방책은 충고는 하되, 충고를 안들을 경우 참고 견디는 능력을 발휘하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21세기 사회에서는 점점 더 강하게 누구이건 사람인 이상 자신의 주장과 이득 찾기를 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긴장, 갈등, 대립은 더욱 커진다. 이러한 긴장과 대립을 벗어나고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능력은 무엇인가? 결국 감성능력 뿐인 것이다. 끝없는 논쟁의 결과는 양쪽 당사자 모두에게 손해이다. 따라서 끝없는 논쟁의 함정에 빠지기 보다는 그 전에 대화·양보·타협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는데, 이런 양보와 타협은 IQ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EQ에 의해서 더 용이해진다. 결국 감성적 능력의 발휘 여부가 민주주의적인 폐단인 끝없는 논쟁의 마무리를 결정하게 된다.
21세기는 앞에서 말한 두 가지 경향성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경제적 풍요와 정보화 사회에로의 대쉬(dash)가 그것이다. 이런 대쉬가 파생시킬 삶의 모습은 감성능력의 발휘가 성공과 출세의 관건이 되는 삶이다. 문화적 욕구, 상품 선택에서의 감성의 중요성, 인간관계에서의 감성능력의 중요성 등이 바로 21세기에 나타난 바람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는 바로 감성의 세기가 될 것이다.
2. 정서능력에 관심 갖자.
21세기가 감성의 시대이고, 이런 시대를 살아가려면, 정서능력을 키워야 한다. 정서능력은 그간 지적능력 이른바 IQ적인 능력에 가리워 제 몫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제 정서능력에 대한 올바른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인간의 정신능력은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된다. 하나는 이성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정서능력이다. 이성능력이란, 합리적인 사고능력을 가리키는 바, 기억력, 이해력, 추리력, 계산력, 창의력 등을 말한다. 이른바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일수록 이성능력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정서능력이란,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통제능력을 가리키는바, 인내심, 지구력, 충동억제력, 만족지연능력, 용기, 정제, 감정이입 능력 등을 말한다. 이른바, 참을성이 있는 사람, 신념과 용기가 있는 사람, 자기절제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정서능력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역사상의 유명한 학자와 과학자들은 높은 이성능력의 소유자였다고 할 수 있다. 갈릴레이나 아인쉬타인, 토마스 에디슨과 뉴턴, 찰스 다윈과 시그문트 프로이드 등은 모두 이해력, 추리력, 계산력이 뛰어난 인물로서 자연세계에 숨어있는 법칙을 찾아내는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편, 역사상의 유명한 도덕자, 정치가, 예술가 중에는 높은 정서능력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예컨대, 윈스턴 처칠과 루즈벨트, 간디와 루터 킹 목사, 베토벤과 고갱 등은 모두 인내심과 지구력, 정열과 용기, 신념과 절제력이 뛰어난 인물로서, 자기 자신의 감정을 올바르게 통제하고, 활성화시키는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처럼 이성능력과 정서능력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해서, 이 두 능력이 완전히 별개로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두 능력의 크기와 양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존재한다고 하여도, 이 두 능력은 서로 함께 작용하지 않으면, 각자의 독특성을 잘 발휘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아인쉬타인이 아무리 논리·수학적인 지능 즉, 이성능력이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능력을 인내심과 정열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하지 않았다면, 그는 훌륭한 과학적 업적을 이루어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에디슨도 마찬가지이다. 뛰어난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만약에 그가 100여 차례 이상의 지루한 반복 실험을 해낼 수 있는 지구력과 인내심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면, 전구의 발명에 실패하였을 것이다.
처칠은 용기와 정열, 그리고 인내심이 뛰어난 정치가였다. 그러나 그가 사리에 맞지 않는 비합리적인 정책을 추진했더라면, 아무리 그가 정열과 신념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했더라도 그는 실패했을 것이다. 간디도 마찬가지이다. 인도의 독립과 국민들의 불쌍한 처지에 대한 동정과 사랑의 열망이 넘쳐흘렀지만, 만약 그가 비합리적이고, 사리에 맞지 않는 시민 운동을 전개하였더라면 인도의 독립운동에 실패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성능력과 정서능력은 함께 균형을 맞추어 발달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간 불행하게도 이성능력에는 큰 강조를 두고 중요시해 왔지만, 정서능력에는 별로 큰 관심을 쏟지 못하였다.
이성능력을 우리는 그간 IQ라는 말로 부르면서, 측정하고자 노력하였고, IQ를 높이고자 애써 왔고, IQ 높은 사람을 선호해 왔다. 그러나 정서능력에 대해서는 별 뚜렷한 개념을 제시하지 못했고, 측정하는 방법도 몰랐고, 정서능력을 높이려는 시도도 하지 못했다. 단지 정서능력이 높은 사람을 개인적으로 선호하기는 했으되, 선발의 요소로 삼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정서능력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게 되는 바, 정서능력을 정서지능(Emotional Intelligence)라고 부르면서,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개발할 방법도 있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3. 정서지능, 과연 무엇인가?
정서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은 일반지능(Intelligence)에 대비되는 말로서, 감정과 느낌을 통제하고 조정할 줄 아는 능력을 가리킨다.
화가 날 때, 이것을 터뜨리고 발산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에게도 해가 되는 일을 저지르게 되는 사람의 정서지능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현저하게 낮다.
내일까지 해내야 되는 숙제가 있는데, 하기가 싫다. 이럴 경우 미적거리면서, 결구 못해 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해내는 학생이 있다. 이렇게 하기 싫은 숙제를 스스로를 달래 가면서 악착같이 해내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하여 정서지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정서지능은 사고능력이나 기억력, 계산력, 추리력이 아니라, 그런 능력이 발휘되게끔 하는, 또는 그런 능력을 억압하고 제한하는 그런 감정능력이다. 기억력이 출중하여도, 기억하겠다는 의지와 감정이 없이는 기억행위가 나타나지 않는다. 머리가 좋은 것과 좋은 머리를 실제로 사용하려는 의지와 감정은 서로 다른 능력인 것이다.
정서지능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90년 미국 New Hampshire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존 메이어(John Mayer)와 Yale 대학의 교수인 피터 샐로비(Peter Salovey)이다. 그들은 정서지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1)
정서지능이란,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평가하고, 표현할 줄 아는 능력,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조절할 줄 아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성취하기 위해서 그런 정서를 이용하여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다(1990).
4. 정서지능, 왜 중요한가?
정서지능은 왜 중요한가? IQ 즉, 합리적 이성능력의 개발만 가지고는 부족한가? 대답은 분명하다. 똑똑한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지적능력만 높아 가지고는 부족하다. 정열과 용기, 도덕성과 신념, 성숙한 정서와 감정이 중요하다. 바로 이것이 EI 즉 EQ이다. 정서지능을 측정하여 수치화한 것이 곧 정서지수(Emotional Quotient : EQ)이다. 아직 IQ처럼 EQ는 수치화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개념상 EQ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구분해 볼 수 있는 있을 것이다.
EQ가 높은 사람은 어떤 장점이 있는가?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의 윌터 미쉘(Walter Mischell)교수의 실험을 예로 들어보겠다2). 이 실험은 네 살짜리 아이들의 EQ를 측정해서, 그 EQ의 높고 낮음이, 그 아이의 미래에 매우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네 살짜리 아이들에게 맛있는 과자(매쉬멜로우)를 한 봉지씩 나누어 준후, 그 과자를 지금 당장 먹을 수도 있고, 30분을 기다렸다가 먹을 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그 다음에 만약 30분을 기다려서 먹게 되면, 기다릴 줄 안다는 장점을 고려해서 상으로 과자 한봉지씩을 더 준다고 알려준다. 아이들 중에는 과자를 받는 즉시 먹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30분을 기다리는 아이도 있는데, 여기에서 EQ가 높은 아이는 바로 30분을 기다릴 줄 아는 아이가 된다. 즉 그들은 만족지연 능력이라는 EQ의 한 요소가 다른 아이보다 뛰어난 것이다.
EQ가 높은 아이와 낮은 아이를 구분한 후에 18살까지, 그들의 삶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계속 관찰하였다. 놀랍게도 큰 변화가 목격되었다. EQ가 높았던 아이들 즉 30분간 참을 줄 알았던 아이들의 학교성적이 다른 집단에 비해서 휠씬 높았다. 또한 그들은 친구들과 교사들로부터 “인기 있는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4살 때에 30분간 참을 수 있었던 아이들은, 그들의 16년간의 삶속에서도 참고 견디며,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을 계속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Pennsilvania 대학의 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낙관성으로 사회적 성공과 실패를 예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991).
이와 같은 정서능력의 장점은 학교에서의 공부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의 성공도 보장해 주며, 대인관계에서의 성공도 기약해 준다. EQ가 높은 사람은 결혼 생활에서도 성공을 거둔다. 결국 인생에서의 성공과 출세에 EQ와 IQ가 다같이 공헌한다고 볼 수 있지만, 골먼은 그의 책에서 단언을 한다. “IQ는 출세와 성공의 20%를 설명하지만, EQ는 그것의 네배인 80%를 설명한다”라고 말이다.
5. 정서지능의 측정과 개발, 과연 가능한가?
그러면 정서지능을 측정할 수 있는가? IQ는 지능검사를 통해서 측정할 수 있다. IQ가 100정도이면 평균이고, 130이 넘으면 꽤 똑똑하다고 말할 수 있다. 70이하이면, 학습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생활하기가 어렵다.
이처럼 EQ도 어떤 수치로 제시될 수 있는가? 대답은 “아니오”이다. EQ는 아직 수치화될 만큼 발달된 개념이 아니다.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EQ는 그것을 측정할 수 있는 정서의 하위영역이 너무도 다양하고, 복잡해서, IQ처럼 몇 개의 하위검사 점수를 합산하여 하나의 점수로 계산해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로 EQ는 IQ처럼 정답을 아는가, 모르는가 하는 정답 찾기가 아니라, 느낌과 감정의 통제능력을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지필평가를 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이런 정서능력 즉 EI를 개인간에 비교해서 서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인내심이라는 EQ는 높지만, 정열과 용기는 부족할 수도 있고, 오히려 그 반대인 사람도 있다. 따라서 이런 구체적 정서능력을 세세하게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이것을 지수화하여 등수를 매기는 것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클 수가 있다.
이런 세 가지 이유 때문에 EQ의 수치화는 현재 어렵고, 앞으로도 쉽게 나타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EQ의 총점수가 아닌, EI의 각 하위요소별 측정은 지금 매우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앞서 말한 만족지연능력, 낙관성 점수, 충동성, 도덕성, 인내심과 지구력, 대인관계 능력 등에 대한 측정은 많이 시도되고 있다. 아울러 감정이입 능력, 타인의 표정 읽기 능력, 감정조절 능력 등에 대한 측정도 시도되고 있다. 정서지능의 개념을 처음 공식화하였던 Mayer와 Salovey는 정서의 평가와 표현을 측정하는 척도인 SMMS(State Meta-Mood Scale)과 TMMS(Trait Meta-Mood Scale)을 개발하였다(1990). 또한 Harvard 대학의 심리학자인 Robert Rosental은 감정이입을 측정하는 척도인 PONS(Profile of Nonverbal Sensitivity)를 개발하였다(1990). 가까운 시일 내에 전체 EQ가 아닌, EI의 하위영역별 EQ점수를 측정하는 검사가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정서능력의 개발은 어떤가? 과연 정서능력이 그렇게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의 개발은 가능한가? 물론 가능하다. IQ의 개발 가능성에 비해서 EQ의 개발가능성은 더 높다.
EI연구자들이 제시하는 EQ의 개발원리는 간단하다. 감정의 인식, 표현, 조절, 그리고 활용의 체험이 가장 중요한 개발의 원리인 것이다.
스케이트를 배우려면, 스케이트를 타 보아야 하는 것처럼, 정서능력을 높이려면 정서조절과 표현의 체험을 해야 하며, 연습과 훈련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화가 나면 이것을 직선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참고 소화하여 억압할 수도 있고, 아주 창의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조절할 수도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그리고 자녀들로 하여금, 이런 세가지 방법을 시연해 보도록 유도할 수 있다. 몇 가지 구체적 방법을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릴 때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나 형제․자매 등 가족 구성원들의 표정과 감정, 그리고 속마음을 읽는 연습을 하도록 시켜라.
둘째, 화, 분노, 질투, 충동, 조바심 등이 일어날 때, 그런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은지 사례를 들어가면서, 예행연습을 시켜라.
셋째, 동화, 소설, 영화 속에 나타난 관심 있는 인물과 주인공의 정서처리 능력과 방법에 대해서 조서, 분석케하고, 표현하게 해보라.
넷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스스로의 정서표현, 조절, 활용의 경험을 개발하고, 반성케 해보라.
이런 네 가지 활동의 꾸준한 실행은 사람들의 EQ를 높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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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dner, H.(1983), Frames of Mind : The 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s, BasicBooks.
Mayer, D., Salovey, P., Goldman, L., & Turvey, C.(1995), Emotional Attention, Clarity, and Repair: Exploring Emotional Intelligence Using the Trait Meta-Mood Scale, American Psychological Assn, pp.12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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