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에게 배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시34:11-19)
2023.10.22 김상수목사(안흥교회)
미국의 저명한 복음주의 설교자 중의 한 분인 존 비비어(John Bevere) 목사님이 몇 년 전 브라질에서 열린 어느 기독교 집회에 강사로 초청받았을 때의 일이다. 약 4천석이나 되는 넓은 강당 안에 각 지역에서 모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였다. 찬양단의 찬양실력도 좋았고, 음향이나 조명 등 모든 것이 훌륭했다.
그런데 밝은 조명이 켜지고 존 비비어가 설교를 위해 강단에 올라갔을 때 깜짝 놀랐다. 어두운 조명 밑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모습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 저리에서 돌아다니는 사람, 다른 사람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사람, 따분해 보이는 사람,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는 사람, 이미 졸고 있는 사람, 삐딱한 자세로 마치 쑈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듯한 사람, 심지어 웅성거리면서 잡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비비어 목사님.은 1분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가 분위기가 안정되자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이웃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그 집 주인이 건성으로 맞이하며 ‘아 또 오셨군요. 들어오세요라고 말한다면서 어떨까요? .……. 아마 다시는 그 이웃을 찾아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만왕의 왕 되신 주님께서 그분께 합당한 영광과 존경을 받지 못하시는 곳에 과연 오실까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실까요?”
그러면서 그는 레위기 10장 3절 말씀을 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나님은 존경받지 못하시는 곳에 임하시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자세를 바로 잡고 경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성령님이 거룩한 경외감으로 그들을 사로잡았다. 기도 시간에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였다. “하나님은 존경받지 못하시는 곳에 임하시기 않습니다”라는 한 마디가 우리들에게도 울림을 준다. 우리의 예배나 삶의 모습은 어떤가?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기뻐하신다(시147:11). 우리나라 국어사전에서는 경외(敬畏)를 “존경하고 두려워함”이라고 적고 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경외는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보다 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성경이 말씀하는 경외는 자연적이고 파괴적인 세상이 주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함에서 우러나는 거룩한 두려움(The Fear of the Lord)을 말한다. 그렇기에 모든 성도들을 마땅히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거룩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존경하고 경외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오늘 본문인 시편 34편 11-12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말한다.
“11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12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시 34:11-12)
이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해야 복된 사람이 될 수 있고, 역으로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에 대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단서는 시편 34편의 서두에 있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는 작은 소제목에 숨어있다,
다윗이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났던 이야기는 사무엘상 21장에 나온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요나단과 헤어지고, 놉(Nob)이라는 곳으로 도망간다. 그때 다윗은 놉에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왕이 자신을 보낸 것처럼 두 번이나 거짓말을 한다(삼상21:2, 삼상21:8).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삼상 21:2)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삼상 21:8)
그는 왜 이런 거짓말들을 했을까? 사울 왕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삼상21:10). 더 쉽게 말하면 죽을까봐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심지어 다윗은 사울 왕을 두려워하여 거짓말을 한 것도 모자라서,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에게 도망가 버렸다. 그런데 우리 속담에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는 말이 있듯이 다윗은 그곳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고, 가드왕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간신히 빠져나온다. 이 모든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크게 깨닫고 지은 시가 바로 오늘 본문인 시편 34편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러한 자신의 실수와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말한다. 다윗이 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크게 요약하면 두 가지 이다. 그 첫 번째는, 입을 조심하는 것이다.
“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시34:13-14)
그러면서 이 시의 결론과도 같은 자신의 결심을 1-3절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다윗의 이 선언이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 하시는 결론이기도 하다. 다 같이 읽자.
“1 내가 여호와를 항상(all times)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always) 주를 찬양하리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시 34:1-3)
여기서 중요한 핵심 표현은 “항상(always)”이라는 말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송했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들쑥날쑥했다. 놉에서 사울 왕에게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파괴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제사장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방인 블레셋의 왕에게 도망가 버렸다. 그는 감정이나 상화에 따라서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자신의 태도가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모습이 아니고 오히려 악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우리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경외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항상” 만왕의 왕이시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내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랑하고, 높이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들이 완벽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어느 상황에서든지 입술로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고, 악을 행치 않으려는 마음과 태도를 가지려고 힘쓰는 것이다(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된 듯한 태도와 말투, 욕설과 저주,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표현, 정중하지만 감정이 섞인 서릿발 같은 말, 불신앙적인 말, 욕심에 휘둘리는 말 등).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항상 하나님을 찬송하고 높이려고 힘쓰려는 태도가 바로 경외이다. 그렇기에 성경적인 경외는 사실 감정의 영역 이전에 의지와 인격적인 결정이며 결단이다.
다윗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 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의 두 번째는 통회하고 회개하는 태도이다. 그는 가드왕 앞에서 자신이 죽을 위기에 쳐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겉으로는 미친 체 했지만, 속으로는 철저하게 통회하면서 부르짖었다(시34:18,). 이때 그의 기도가 얼마나 절박했겠는가? 이렇게 간구했더니 마침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서 그를 건져 주셨다.
그런데 성경은 이처럼 그 절박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바로 주를 경외하는 것임을 말씀한다(시34:6-7).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시 34:6-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다윗이라는 인물이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유는 그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파괴적인 두려움들이 파도처럼 밀려 올 때, 일시적으로 휩싸이는 실수들도 범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경외)으로 승화시키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항상 주님을 찬양하는(미래형, will)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시 34:1)
(I will extol the LORD at all times; his praise will always be on my lips)
그러므로 우리들도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다윗의 결심처럼 항상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일에 힘쓰겠다고 결심하자.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자. 이것이 경외이고,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는 경외자의 태도이다. 성령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