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가까이 있었다
최 화 웅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힘들고 고통을 겪을 때 놀라운 기적을 바란다. 기적은 삶의 변화다. 사람들 생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눈앞에서 일어났을 때 '기적'이라고 놀라워한다. 그렇다. 역사적으로 어떤 문화권에서나 기적에 대한 이야기와 믿음이 곧 토속신앙의 출발이었다. 기적은 마술과 같은 눈속임수가 아니고 평소 인간의 바람에 대한 응답이리라. 그것은 오로지 먼 하늘나라의 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기이할 기(奇)’ 자와 ‘발자취 적(跡)’ 자로 만들어진 기적(奇蹟, miracle)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믿기 힘든 놀라운 일”로 풀이하고 천주교 용어사전에서는 “인간의 힘으로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을 초월하는 초자연적 신비로운 현상”이라고 풀이한다. 기적은 하느님이 계시하고 구원을 베푼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기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적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그 핵심이다. 그것은 곧 신의 뜻과 의지를 표현하고 깨닫게 하려는 종교적 교훈이다.
기적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나는 이웃에 사는 외손녀 유나로부터 매일같이 기적을 발견하고 감동한다. 생후 18개월 된 유나는 할아버지에게 일상의 기적을 선물하는 보배다. 요즘은 한창 말을 시작하려고 소리를 지르곤 한다. 그러나 아직 두 단어를 이어 말하거나 긴 단어를 쉽게 발음하지 못한 채 단어의 첫 글자를 들먹인다. 빵, 밥, 시계, 언니, 오빠, 안경, 양말, 애플 등은 곧잘 말하면서 마트는 마, 미술관은 미, 빨강색은 빨, 바나나는 바, 우유를 ‘밀’이라고 줄여서 말하고 외삼촌을 ‘엉’이라 일컫는다. 자동차는 ‘붕’이나 ‘카’로 표현한다. 영어 알파벳은 'Q, R, L, W, X, Y'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알파벳을 기억하고 ‘오케이’와 ‘오픈’, 그리고 ‘플리즈’를 사용한다. 식탁에 케이크를 올리면 ‘해피(Happy)’라고 손벽을 치며 흥겨운 리듬에 겨워 나름의 솔로 율동과 맨손체조를 하며 빙빙 돈다. 어떤 때는 끙끙거리면서 내 손을 끌 때가 있다. 유나가 안내하는 곳은 그림책과 장난감이 널브러진 자기의 방, 놀이터 천국이다. 손녀 유나는 그렇게 나를 감쪽같이 자기의 동심세계로 안내하는 손길이 된다.
‘황금 돼지의 해’ 2019년 기해년(己亥年)의 마지막 휴일에는 유나와 함께 실내 동물원 ‘캐니언 파크(canyon park)’를 찾았다. 부산시 남구 전포대로 133번지 드림씨어터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동물테마공원은 만원에 안내원의 확성기가 쉴새 없이 떠들어 시끄러웠다. 관람환경이 두 번 오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다. 1,300여 평 규모의 실내 동물원에는 긴 알락꼬리가 예쁜 여우원숭이와 사막 여우, 알파카와 카멜레온, 악어와 박쥐, 토끼와 거북, 병아리까지 50여 종 200마리가 넘는다. 어린이들은 다양한 동물가족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서서 먹이를 주며 탄성을 질렀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별밤협곡’ 앞에 이르렀을 때 유나는 어깨띠를 멘 안내 마네킹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welcome'이라는 알파벳을 손가락으로 일일이 짚어가며 소리 내어 읽어 놀라게 했다. 그리고는 북새통을 이룬 사방을 둘러보며 “아빠, 엄마, 할미, 할삐”라고 일일이 부르며 눈을 맞추었다.
유나는 요즘 익혀서 아는 만큼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평소 그림책과 카드, 에니메이션으로 익힌 동물친구들을 지접 만나는 즐거움 속에 한나절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부산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행복을 그리는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Eva Armisen)의 초대전’을 관람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미술관과 전시회를 다닌 탓인지 차단선을 지키고 전시된 그림이나 조각품에 손을 대지 않는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작품을 올려다보며 감상하는 자세가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행복을 보는 마음의 돋보기를 가진 화가 에바 알머슨이 올여름 부산 광안리 해변으로 산책 나온 가족을 주제로 스케치한 유화 ‘해변에서의 하루’와 2017년 6월 제주 해녀의 이야기를 삽화로 담은 ‘엄마는 해녀입니다’ 삽화집을 비롯한 유화, 판화, 드로잉을 비롯한 대형 오브제와 작가 소장품을 전시하여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알머슨은 우리의 행복을 찾아내고 불러내는 기적의 화가였다.
내년 '흰색 쥐의 해' 2020년 경자년(庚子年)에 초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는 호주의 친손녀, 리아도 몰라보게 컸다. 요즘은 스스로 책을 읽는 만큼 생각이 깊어지고 성숙해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이달 들어서는 엄마 아빠와 더불어 수영을 하고 자전거와 일라인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산타할아버지 편에 보낸 선물, 자전거와 보호장구를 보라는 듯 쓰고 카톡을 찍어서 보내기도 한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야외 공원과 근교 바닷가에 나가서 온 가족이 실전 로드 테스팅을 하는 동영상을 여러 컷 보내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생일에는 일일이 생일 축하노래를 피아노로 쳐서 축하인사와 함께 보낸다. 성탄 때에도 피아노 반주로 캐롤을 노래하는 깜찍한 모습의 동영상을 보내와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생활 속의 기적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었다. 손녀들이 태어나서 자라는 순간순간의 모습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기적을 빠뜨리지 않고 챙겨서 공유하려는 며느리와 딸이 있어 더욱 행복하고 감사한 나날이다. 기적은 스스로 발견하고 느끼는 자의 것이리라.
첫댓글 그렀습니다 전 68들이 되도록 살아 숨쉬고 있으무로 이것이 기적이지요 감사합니다 늘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하니다.
새해에 더 큰 기적 이루십시오.^^*
저에겐 안 아프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게 기적같습니다.!!!
그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