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과 임진강 도보(첫 번째-2)
(철원 정자연∼포천 화적연, 2022년 7월 16일∼17일)
瓦也 정유순
오전에 퍼 붇던 장맛비는 그치고, 오후에는 내려 쬐는 한 낯의 무더위를 피할 심산으로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흔적이 있는 복계산 매월대폭포를 먼저 둘러본다. 복계산(福桂山, 1057m)은 계유정란(癸酉靖亂)을 일으킨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端宗)의 왕위를 찬탈하자 관직을 버리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던 매월당(梅月堂)이 높이 40여m나 되는 바위를 깎아 세워놓은 것 같은 바위에서 아홉 선비들과 바둑을 두며 단종의 복위를 꾀했다는 <매월대(梅月臺)> 등 기암과 암릉(巖陵)이 있다.
<복계산안내도>
<매월대-네이버캡쳐>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에 있는 복계산은 민간인으로 오를 수 있는 남한의 최북단에 있는 산이다.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10여 분 올라가면 높이 약 30m의 매월대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로 더위를 날려준다. 다른 이름으로 선암폭포라고도 불리며, 철원 8경의 하나다. 주변에는 TV 드라마 <임꺽정>, <덕이>의 촬영장소로 촬영세트가 보존되어 관광객의 볼거리가 되고 있다. 청석골에서 매월대에 이르는 계곡은 여름철 피서지로도 유명하다.
<매월대폭포>
다시 버스로 직탕폭포 입구인 동송읍 장흥리로 약 28㎞를 이동하여 한탄강을 더듬어 본다. 가는 도중에는 차창 밖으로 금학산이 철원평야를 아우른다. 금학산(金鶴山, 947m)은 산의 형세가 학이 날아와 앉아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궁예가 도읍지를 정할 때 도선국사(道詵國師)가 금학산을 진산(鎭山)으로 정하면 300년을 통치한다고 했지만, 궁예가 고남산(古南山, 643m)을 고집하여 18년 만에 멸망하였다고 전한다.
<금학산>
직탕폭포 입구에서 하류로 조금 내려오면 태봉대교가 기다린다. 태봉대교(泰封大橋)는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와 철원군 갈말읍 상사리 사이를 연결하는 교량으로 궁예를 상징하는 태봉에서 이름을 따왔다. 태봉대교에는 국내 최초의 상설 다리형 번지점프장(높이 52m)이 설치되어 있어서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번지점프 등의 레저를 즐길 수 있다. 또한, 겨울철에는 한탄강에서 아이스트래킹을 즐길 수 있어 철원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태봉대교는 폭은 17.8m, 높이는 50m, 길이 240m 규모로 건립되었다.
<태봉대교>
태봉대교에서 약 1㎞ 떨어진 곳에는 송대소가 있다. 송대소(松臺沼)는 한탄강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호수 같이 은은히 흐르는 한탄강과 주변의 풍경이 어우러져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송대소 단애(斷崖)의 주상절리는 지표로 분출된 용암이 식을 때 수축작용에 의해 수직의 돌기둥 모양으로 갈라진 절리(節理)를 말하는데, 송대소의 수직절벽은 30m 높이의 위용을 자랑하고, 그 절벽보다 더 깊어 보이는 송대소의 물속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실제로 한탄강에서 수심이 제일 깊다고 한다.
<송대소>
그 옆의 <철원한탄강은하수교>는 한탄강주상절리길 1코스인 동송읍 장흥리와, 2코스인 갈말읍 상사리를 연결하는 연장 180m, 폭3m 높이 50m로 “1주탑 비대칭 현수교(懸垂橋)”다. 수십만 년의 시간이 빚어낸 현무암협곡의 청정 자연생태인 송대소에 위치한 한여울 길을 따라 자연스러운 동선으로 유네스코(UNESCO)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한탄강유역을 탐방할 수 있다. 은하수교는 풍광이 수려한 ‘한탄강’에 ‘철원’의 지명을 추가하고, 별들로 이루어진 길을 뜻하는 ‘은하수’로 이름 지었다.
<철원한탄강은하수교>
한탄강은 약 27만 년 전 평강의 오리산(452m)에서 분출한 용암이 화산 폭발로 인해 푹 꺼져버린 골짜기 사이로 흐르면서 현무암질의 기암괴석과 주상절리 등 천연비경을 만들어 관광명소를 만들었다. 때로는 강물이 큰 여울을 만들면서 빠르게 흐르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속도를 늦추어 강폭을 넓히면서 묘하게 한반도지형을 연출한다. 그렇잖아도 이곳에 오면 굳게 닫힌 철조망을 보며 언제쯤 숨통이 터질까 답답했는데, 자연이 그 마음을 아는지 통일의 꿈을 갖게 해준다.
<한탄강 한반도모형>
그러고 보니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한탄강 한여울길>이다. 한여울은 ‘한탄강(漢灘江)’의 순 우리말로 직탕폭포에서 승일교까지 약 5㎞ 이어지는 제1구간이다. 한탄강은 강 양쪽이 대칭을 이루는 현무암 협곡지대가 많지만, 한쪽은 현무암 수직 절벽이고 반대편은 완만한 경사를 보이는 화강암 지대가 나타나는 비대칭 협곡도 많다. 협곡을 가르는 물여울은 자연이 만들어 준 여건대로 순응하며 세월과 함께 흐른다. 한여울길은 한탄강을 중심으로 6구간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육각정>
<한탄강 한여울길>
육각정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며 휴식을 취하다가 고석정꽃밭 앞을 지나 승일교로 향한다. 고석정꽃밭에는 <숙근버베나>가 자주색 꽃망울을 터트린다. 숙근 버베나는 브라질·아르헨티나 원산의 추위에 강한 여러해살이풀이다. 높이 30∼60cm로서 곧게 자라며 줄기의 단면이 내모진다. 뿌리는 다육근으로 옆으로 뻗어나간다. 6∼10월에 자줏빛을 띤 붉은색의 작은 꽃이 산형꽃차례로 피다가 수상꽃차례로 바뀐다.<네이버 두산백과>
<고석정꽃밭(숙근버베나)>
큰 길 옆의 탱크저지시설(?)은 <안보관광의 중심 철원>의 광고탑으로 변신하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접경지역에 가면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드는 경향이 있었다. 중간 중간에 군인경찰(헌병)이 올라와 신분증 검사를 하면 괜히 ‘내가 뭣이라도 잘못한 것 없나?’하며 움츠려들던 시절이 있었고, 민간인통제구역이라도 들어가려면 초소에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증을 교부 받아 목에 걸고 출입해야 했으나 요즈음은 많이 완화된 것 같다.
<안보관광 광고탑>
쓸데없는 옛 생각을 하다가 발걸음은 승일교 아래로 내려간다. 승일교는 동송읍 장흥4리와 갈말읍 문혜리를 잇는 다리로 국가등록문화재(2002년 5월)로 지정되었다. 해방 후 철원군이 북한 영역에 속하던 1948년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장이었던 김명여의 설계로 한탄교(漢灘橋)로 착공되었다. 러시아식 공법의 아치교로 설계된 이 다리는 동송읍 쪽의 아치교각만 완성된 상태에서 한국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된 것을 국군과 미군 합동으로 갈말읍 쪽 교각을 완성하여 1958년 개통하고 승일교로 이름을 붙였다.
<승일교>
<승일교 상판>
승일교의 명칭에 대해서는 김일성이 시작하고 이승만이 끝냈다고 하여 이승만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한자씩 따서 승일교(承日橋)라 했다는 설과 <김일성을 이기자>고 해서 승일교(勝日橋)라고 했다는 설이 있으나, 한국전쟁 중 큰 공적을 세우고 전사한 연대장 박승일(朴昇日)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승일교(昇日橋)라고 지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한탄대교(漢灘大橋)는 승일교를 대체하기 위하여 1999년 준공되었는데 차량통행만 가능하고 승일교는 사람 보행만 가능하다.
<한탄대교>
승일교를 건너 갈말읍 내대리로 건너오면 승일공원이 나온다. 승일공원(昇日公園)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태봉구문(泰封九門)이라는 조형물이다. 천년의 꿈 태봉국에서 통일 한국의 밝은 미래로 가는 9개의 문이라는 뜻이다. 하나의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단단한 바위를 뚫듯이 방문하는 한 사람 한 사람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이 모여 9개의 문을 통과하면 머지않아 통일 한국의 문도 열릴 것이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 승일공원 한편에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참전기념비 및 공덕비 등이 있다.
<승일공원 구문대>
오전에는 장대비가 쏟아져 옷을 다 적시더니 오후에는 이글거리는 태양이 몸속의 수분을 다 빨아 올려 땀방울이 옷을 적시며 피부를 타고 흘러내린다. 헐벗은 민둥산에서 흘러내린 북한의 물빛은 탁류가 되어 흘러내린다. 저 멀리 고석정(孤石亭)이 보이는 것 같은데 해는 벌써 옆으로 길게 뻗는다. 궁예(弓裔)가 궁궐터를 잡는 과정에서 지관의 말을 따라 엎드려 있다가 성급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태봉국(泰封國)이 오래가지 못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역시 기다림의 미덕을 연상시킨다. 그래 우리도 내일을 기다려 보자!
<철원 하늘의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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