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3부 일통 천하 (154)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17장 범수(范睢)의 복수극 (6)
누추한 차림의 범수(范睢)는 객관 앞에 이르러 대문을 두드렸다.
객관에서 심부름하는 사동(使童)이 나와 물었다.
"어떻게 오셨는지요?“
"위나라 사신 수가(須賈) 어른을 뵈러 왔네.“
"들어오시오."
사동(使童)은 범수를 수가에게로 안내했다.
범수(范睢)는 태연스럽게 사동을 따라 수가 앞에 섰다.
수가(須賈)는 처음에 범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시던가...........?“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앗!“
죽은 줄로만 알았던 범수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수가(須賈)는 얼마나 놀랐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뜬 채 한참동안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수가(須賈)는 겨우 가슴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범숙(范叔)은 그날 맞아서 죽은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그대가 죽은 줄로만 알았네."
숙(叔)은 범수의 자(字)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은 그를 범숙이라 불렀다.
범수(范睢)는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하늘의 도움을 받아 다행히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따로이 갈 곳이 없어 이 곳 진(秦)나라까지 흘러 들어왔습니다."
"마침 어제 길을 가다가 대부의 행차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이렇듯 찾아뵙게 된 것입니다.“
"예전의 일은 참으로 안되었네. 내가 그대를 살리려고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위제(魏齊)의 노여움이 워낙 커서........."
"괜찮습니다. 저는 그때의 일을 다 잊었습니다.“
범수의 말에 수가(須賈)는 다소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경계심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그대는 유세하기 위해 이곳 진(秦)나라로 온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다만 위(魏)나라 재상의 미움을 받는 몸이기 때문에 붙잡힐까 두려워 이곳으로 도망쳐온 것뿐입니다.
어찌 감히 이런 몸으로 유세(遊說)할 수 있겠습니까?"
수가(須賈)는 그제야 경계하는 마음이 완전히 풀렸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그대는 여기서 무엇으로써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 하나뿐이라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막일을 하고 있습니다."
범수(范睢)의 이러한 꼴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수가(須賈)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그의 처지가 몹시 불쌍했다.
동정하는 마음이 들어 술과 음식을 내오게 했다.
마침 날씨가 쌀쌀했다.
두터운 명주 솜옷을 내오게 하여 추위에 떠는 범수에게 입혀주었다.
범수(范睢)는 감격한 듯 허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부께서는 참으로 인자하시군요. 그런데 진(秦)나라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수가(須賈)는 범수가 함양에서 몇 년 살았음을 상기하고 되물었다.
"나는 진나라 승상 장록(張祿)에게 긴히 청탁할 일이 있어 왔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아직 장록 승상과 안면이 없네. 혹 범숙(范叔)은 장 승상과 친한 사람을 알지 못하는가?
이번 일은 오로지 장(張) 승상만이 할 수 있어 내 반드시 그에게 줄을 대어야만 할 처지네.“
"그 일이라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모시는 주인이 장 승상과 매우 가깝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승상을 한 번 뵈온 적이 있습니다. 제가 우리 주인에게 가서 승상을 만나뵐 수 있도록 줄을 대 보겠습니다."
수가(須賈)의 얼굴이 환해졌다.
급한 마음에 재차 물었다.
"언제쯤이면 가능할까?“
"지금 당장 가서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지금 당장 말인가?“
"곤란하십니까?“
"아니,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이번에 먼 길을 오느라 말이 병들고 수레가 망가져 지금 형편으로는 대문 밖을 나갈 수가 없네.
자꾸 부탁해서 미안하네만, 어디서 수레를 빌릴 수는 없을까?"
"그 또한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우리 주인에게 부탁하여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도 빌려드리겠습니다.
곧 다녀올 터이니, 대부께서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객관을 나온 범수(范睢)는 승상부로 돌아가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몰고 다시 객관으로 왔다.
"대부께서는 운이 좋으십니다.
모든 게 다 잘 풀렸으니 이 수레를 타시고 지금 곧 승상부로 가시지요. 제가 대부를 위해 수레를 몰겠습니다.“
범수는 친히 마부가 되어 수가(須賈)를 태운 후 승상부를 향해 달렸다.
이윽고 승상부 앞에 당도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범수의 얼굴을 알고 있는 승상부 사람들은 자기네 승상(丞相)이 허름한 차림에 마부 노릇을 하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다른 곳으로 숨어버렸다.
영문을 알 리 없는 수가(須賈)는 사람들의 그러한 행동이 자신에 대해 예의를 지키느라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장록(張祿)은 승상에 오른 지 얼마 안 돼 타국 사신을 자주 접하지 않은 모양이로군.'
그때 범수(范睢)가 수가에게 말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안으로 들어가 승상께 알리겠습니다.“
수레에서 내린 수가(須賈)는 문 밖을 서성거리며 기별이 있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승상 장록으로부터 들어오라는 기별도, 심부름을 간 범수(范睢)도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수가(須賈)가 승상부 문지기에게로 가 물었다.
"아까 범수(范睢)라는 사람이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직까지 나오질 않는구나. 수고스럽지만 그대는 안으로 들어가 범수를 좀 찾아주게."
문지기가 방문객 명부를 뒤져본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범수라는 사람은 부중(府中)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아까 전 나와 함께 수레를 타고 와 이 안으로 들어간 그 사람 말일세.
그대도 그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똑똑히 본 것으로 아는데, 어찌 들어간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는가?"
"아아, 그 분 말씀이십니까? 그 분은 바로 우리나라 승상 장록(張祿) 선생이십니다.
승상께서는 옛 친구를 만나보신다며 일부러 옷을 갈아입고 객관으로 나가셨다가 아까 전에야 돌아오신 것이지요.
그런데 나리께서는 어째서 우리 나라 승상을 범수라고 부르십니까?“
순간 수가(須賈)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범수(范睢)가 장록 승상이라니!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감을 느꼈다.
맑은 하늘의 날벼락도 이보다 더 충격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죽었다!'
그는 승상부 문 앞에 주저앉았다.
윗옷을 벗어 맨몸을 드러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육단(肉袒)이다.
죄를 청할 때 하는 행위다.
수가(須賈)는 문지기에게 말했다.
"위나라 죄인 수가가 지금 부중 앞에 엎드려 죽을 죄를 청하오니, 들어가서 승상께 전해주시오!"
문지기가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에 다시 나와 말을 전했다.
"승상(丞相)께서 위나라 사신을 안으로 들라 하십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첫댓글 회장님.
고맙습니다ㅡ
남부지방에는 비가 오락가락합니다ㅡ
여기 내포도 우천이라
빗소리 요란합니다.
팔월 초에 뵙겠습니다
예.
회장님.
그때 뵙겠습니다ㅡ
대회 준비로
애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