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시인에게 외 1편
배정웅
지구라는 행성의 이 어지러운 빛 아래서
아니 아니 이 문명의 오염된 불빛 아래서
쓰여졌거나 쓰여 질 시는 다 가짜 짝퉁이다
하늘의 별보다도 더 외롭게 황홀하게 춤 추다가
서서히 서서히 죽는다는 촛불마저 꺼진
그 옛날 리스본의 어둠이었던가
집에서 기르는 한 마리의 고양이
그 야성의 눈빛아래서 시를 썼다는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
그렇게 살아있는 생명의 빛아래서
쓰여지지 않는 시는 다 가짜 짝퉁이다
내 사랑하는 이 만나면
이 세상의 불빛이란 빛은 모두 끄리
그 순간 어둠은 악마처럼 미친 듯이 춤을 추겠지만
오직 그녀, 영혼의 순수 눈빛만으로
두어 줄 간절한 생명의 시를 쓸 수만 있었으면.
목각여인
내 여자를 잃고 난 뒤 미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시장에서 쉽게 눈이 맞은 여자 하나를 집에 들여 놓았다. 남 아메리카의 잉카 족을 본떠 만든 반라여인. 아직도 꼬까 닢 내음과 야생의 달 그림자와 야마의 울음이 몸에 배인 제법 섹시한 그녀. 그녀가 안방을 차지하고서는 아이마라언지 케추어인지 분간이 안 되는 침묵의 언어로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한다. 저, 알 수 없으면서도 알 것 같기도 한 목각 여인의 묵언이어. 노간주 나무보다 더 호리 낭창한 유칼립투스 나무를 한 줌 꺾어 와서는 무엇인가 열심히 빚는 것 같다. 코뚜레를 만드시는가. 언젠가는 내 코에다 허허한 구멍 하니 뚫어 저, 한량없이 어두운 시간의 적멸 속으로 데리고 가려는.
*잉카족의 언어들.
배정웅; 시인, 미주시학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