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정벌레’라는 뜻의 록 그룹 비틀스Beatles의 첫 음반 <Please Please Me>가 나온 1963년 3월, 세계 대중음악의 질서가 잠시 흔들렸다. 열광과 환호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표현 가능한 모든 수사가 이들을 위해 준비됐다. 그후 비틀스는 곧 그 질서의 ‘추’가 되었고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비틀스 이전에 비틀스는 없었으며, 비틀스 이후에도 비틀스는 없었다.
1969년 앨범 <Abbey Road>로 그들은 혁명의 종료를 고한다. ‘Something’ ‘Golden slumber’를 끝으로 비틀스란 이름은 명예의 전당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 기존의 클래식 연주 진영에서 비틀스를 탐닉하기 시작한다. 베를린 필 첼리스트들의 ‘첼로를 통해 들여다 본’ 비틀스는 단연 그 선두주자다.
그동안 비틀스를 클래식 풍으로 연주한 음반은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피아노로, 기타로, 첼로로, 아카펠라로, 플루트와 피아노가 합세하는 앙상블로 비틀스 음악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그 모두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비틀스를 재료로 한 크로스오버의 성공 요건은 자기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주 선율만을 좇아가는 반주 오케스트라 스타일로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런 점에서 베를린 필 첼리스트 12명(The 12 cellists of the Berlin Philharmonic)이 연주한 비틀스 음반 <The Beatles In Classics>(Teldec-Warner Music Korea/1995)는 경이롭다. 레넌과 매카트니의 작품인 ‘언덕 위의 바보The fool on the hill’를 들어보자. 도발적인 첼로 합주의 서막은 전혀 예기치 못한 것. 그러나 몇 소절 흐른 후 그것이 언덕 위에서 홀로, 말 한 마디 없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느린 선율을 온전히 돕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대위법적인 구조, 화성적인 튼튼함을 보건대, 베를린 필 첼리스트들의 편곡은 차라리 ‘비틀스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다.
1974년 부활절에 결성된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는 1978년 ‘음악에 사랑을 싣고’란 TV 프로에서 비틀스를 처음 선보인 후 4년 만에 독일음반비평가상을 수상했다. 비틀스 크로스오버 음반에 주어진 최초의 음반상이었다. 베를린 필 첼리스트는 ‘비틀스 커넥션’을 품에 안고 1996년 첫 내한 공연을 펼친 뒤로 2018년까지 9번의 내한 공연을 가졌다. 12 첼리스트는 첼로라는 단일 악기로 구성돼 있지만 하나의 오케스트라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풍성한 사운드와 하모니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