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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이란 무엇인가
존재는 기억을 바탕으로 합니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며 시간이 흐른뒤 이를 어떻게 우리가 떠올리는지에 대해 오랬동안
연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는 실상의 절반만을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기억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왜 기억을 잊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10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마치 햇빛 아래 사진이 바래는 것처럼, 망각을 기억이 자연스레
사라지는 과정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연구자들에 의해 그러한 가정이 잘못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기억을 제거하는 것이 뇌의 또다른 기능이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밝혀진 사실들은 망각이 수동적으로 잃어나는 현상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망각은 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능동적인 활동의 결과입니다.
어쩌면 거의 모든 동물은 기본적으로 능동적인 망각 기능을 활성화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망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는 불안증, 외상후트라우마증후군(PTSD), 그리고 알츠하이머와 같은
병에 대한 더 나은 치료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망각이 없는 기억이 가능할까요?” 몬트리올 맥길 대학에서 기억의 신경생물학을 연구하는 인지심리
학자인 올리버 하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가능합니다.
기억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망각 기능 또한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망각의 생물학
우리 뇌에는 다양한 종류의 기억을 생성하고 저장하는 여러 부위와 기제가 존재합니다.
그 중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인 자전적 기억은 몇 시간 혹은 며칠 뒤 해마(hippocampus)라는 뇌
영역에 형성됩니다.
뉴런 세포는 시냅스라 불리는 연결을 통해 화학물질을 주고 받습니다.
하나의 뉴런 세포는 수 천 개의 다른 뉴런 세포와 연결되며, 각 뉴런들은 화학물질에 대한 수용체와
같은 단백질을 만드는, 시냅스 가소성 과정을 통해 뉴런 사이의 시냅스 연결들을 선택적으로 강화합
니다.
이를 통해 뉴런들의 네트웍이 형성되며, 이 과정에서 기억이 저장됩니다.
특정한 기억이 더 자주 회상될수록 그 네트웍은 더 강해집니다.
지속적인 회상은 해마와 피질에 동시에 존재하는 해당 기억을 강화합니다.
이를 반복함으로써 그 기억은 장기기억을 담당하는 피질에 독립적으로 저장되게 됩니다.
뇌과학자들은 기억의 이러한 물리적 존재를 엔그램(engram)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들은 하나의 엔그램이 다수의 시냅스 연결로 구성되며 여러 뇌 영역에 걸쳐있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의 뉴런 세포와 시냅스 연결이 다수의 엔그램에 포함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억이 어떻게 생성되고 저장되는 지에 대해 아직은 모르는 것이 더 많으며, 많은 연구자들이 이
문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비해 뇌가 어떻게 기억을 잊는지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동안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
니다.
캠브리지 대학의 인지 뇌과학자인 마이클 앤더슨은 이를 일리있는 지적이라 이야기합니다.
“기억 능력이 있는 모든 생명체는 망각 능력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떠한 예외도 없습니다.
아주 작은 유기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경험에서 교훈을 얻는 생명체는, 그 교훈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뇌과학자들이 망각을 그저 부수적인 현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무척 놀랍습니다.”
2012년 론 데이비스가 초파리에서 능동적 망각 현상을 발견했을 때, 이 주제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
었습니다.
플로리다 주피터에 위치한 스크립스 연구소의 뇌과학자인 데이비스는 초파리의 버섯체(곤충의 뇌 속
후각 및 다른 감각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에서 어떻게 기억이 생성되는지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버섯체 내부에서 뉴런을 연결하는 도파민 생성 뉴런의 작용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초파리의 뇌에서 초파리 행동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며, 데이비스는 이 도파민이
기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데이비스는 도파민이 기억의 망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특정한 냄새를 맡았을때 전기 충격을 느끼는 유전자를 가진 초파리를 만들었고,
따라서 그 초파리는 그 냄새를 맡은 뒤 이를 피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초파리의 뇌에 도파민 세포를 활성화 시켰을 때 그 초파리가 이 냄새에 대한 기억을 더 빨리
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도파민 세포를 차단할 경우 그 기억은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도파민 세포가 기억을 조절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곧, ‘망각’ 신호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살아있는 초파리의 뉴런 활동을 관찰하는 다른 연구를 통해 이 도파민 세포가 장시간 활성화
되어 있음을 발견했고, “뇌는 기존의 정보를 잊기위해 늘 노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초파리와 쥐
몇 년 뒤, 하트는 쥐에서 유사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쥐의 장기기억 저장소에 위치한 뉴런의 시냅스 연결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포유류 뇌의 경우, 뉴런간의 연결이 강화될 때 기억은 형성됩니다.
연결의 강도는 시냅스에 위치하는 특정한 수용체 양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는 AMPA 수용체라 불리며, 기억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 수용체가 존재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수용체가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몇 시간 또는 며칠 사이에 시냅스 상에서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합니다.”
하트는 시냅스 상의 AMPA 수용체를 계속 유지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기체를 발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억들은 사라졌습니다.
하트는 AMPA 수용체를 능동적으로 제거하는, 곧 기억을 능동적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과정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 가정이 맞다면, 이 AMPA 수용체의 제거를 막을 경우 기억은 사라지지 않아야 합니다.
하트와 그의 동료들은 쥐의 해마에 위치한 AMPA 수용체가 제거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쥐가 물체의
위치를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어떤 사실을 잊기 위해서는 쥐의 뇌에서 능동적으로 그 시냅스를 파괴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트는 “망각이란 기억의 한계가 아니라, 바로 기억이 가진 기능입니다”라 말합니다.
토론토 아동병원의 뇌과학자인 폴 프랭크랜드 역시 뇌가 능동적으로 기억을 잊는다는 증거를 발견했습
니다.
프랭크랜드는 성체 생쥐를 대상으로 새로운 뉴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말하는 신경생성(neurogenesis)
현상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성장기 동물의 뇌에서는 이 신경생성이 활발하게 일어나지만, 성숙한 동물의 해마에서 이 현상이 발견된
것은 겨우 20년 전의 일입니다.
해마는 기억을 만드는 영역이며, 프랭크랜드와 그의 연구진은 성체 생쥐의 뇌에 신경생성 자극을 가할
경우 기억력이 향상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2014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들은 정확히 반대 현상을 보고했습니다.
신경생성을 늘일 경우 생쥐는 기억을 더 잘하기 보다는 더 잘 잊었습니다.
새로운 뉴런은 기억을 위한 세포가 더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기억력이 더 좋아져야 하기 때문에
이 결과는 얼핏 모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프랭크랜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새로운 뉴런이 해마에 추가될 경우, 이 뉴런은 기존의 네트웍과 결합하며, 따라서 기존의 네트웍에 저장
된 정보에는 더 접속하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프랭크랜드는 해마는 장기기억을 위한 장소가 아니며, 따라서 이러한 동적인 특성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
려 학습에 도움이 되는 장점이라고 말합니다.
환경이 계속 바뀔 때 생존을 위해 동물은 계속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는 예전의 기억에 새로운 정보를 덮어 쓸 때에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본성
연구자들은 인간의 뇌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경험을 일반화하는 우리의 능력 중 적어도 일부는 과거의 기억을 능동적으로 망각하는 우리
뇌의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토론토 스카보로 대학에서 기계학습과 신경 네트웍을 연구하는 블레이크 리차드의 말입니다.
리차드는 뇌의 망각 능력이 어쩌면 과적합(overfit)이라 불리는 현상을 막아줄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과적합이란 인공지능 분야의 용어로 주어진 과거의 데이터에 너무 적합하게 학습된 나머지 새로운 데이
터를 예측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공원에서 개로 부터 공격받은 사람이 공격을 유발한 특정한 행동 외에도 개가 으르렁거리게
만든 행동, 혹은 개의 귀 모양, 개 주인의 티셔츠 색깔, 태양의 각도 등의 모든 정보를 다 기억한다면 그
사람은 다음에 개로부터 공격받지 않기 위한 어떤 교훈을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불필요한 세부 내역을 제외한 핵심만을 기억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이 닥쳤을 때 이를 응용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뇌가 과거 경험에의 과적합을 피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기억을 잊는다는 가설은 충분히 그럴듯합
니다.” 리차드의 말입니다.
자전적 기억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 혹은 오히려 자전적 기억 능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어떤
특성을 보이는지를 통해 기억의 이러한 특성은 더 자세히 드러납니다.
과잉기억증후군(HSAM)을 가진 사람은 특정한 날 자신이 입었던 옷을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놀라운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다른 영역에서 특별한 성공을 거두기 보다는 오히려
강박증과 같은 증상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토론토 베이크레스트에 위치한 로트만 연구소의 인지뇌과학자 브라이언 레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특정한 사건에서 자기자신을 분리할 수 없다면 강박증에 걸리기 쉽겠지요.”
반대로 자전기억결핍증(SDAM)을 가진 이는 자신의 경험에서 세부적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들 또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리바인은 이 SDAM을 가진 이들은 추상적 사고가 필요한 직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다고 말
합니다.
이는 그들이 시시콜콜한 사실에 신경쓰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SDAM 을 가진 사람들은 평생 일화적 기억에 얽매이지 않으며, 따라서 구체적인 일화에 구애
받지 않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뛰어난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HSAM 이나 SDAM 이 아닌 이들의 망각 능력에 대한 연구 또한 건강한 뇌를 위해 망각이 얼마나 중요
한지를 보여줍니다.
앤더슨의 연구진은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과 자기공명분광법(MRS)을 이용해 해마에서 억제성 신경
전달물질인 GABA(γ-아미노부티르산)가 능동적인 망각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연구합니다.
이들은 특정한 생각을 억누르려 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GABA 수치가 높은 이들이 해마를 억제
하는 전두엽 영역이 더 넓으며, 망각 또한 더 잘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이 특정 신경전달물질과 망각의 관계를 찾은 것입니다.”
잊기 위한 노력
생물학과 인지심리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망각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앤더슨과 다른 연구자들은
불안증, PTSD, 알츠하이머 등의 질병에 대한 더 나은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뇌의 GABA 수치가 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앤더슨의 발견은 1960년대 이래 널리 사용된, 디아제팜과
같은 항불안제의 성분인 벤조디아제핀의 효과를 설명합니다.
연구자들은 벤조디아제핀은 GABA 수용체의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불안을 줄인다고 생각했지만, 구체적
인 이유는 알지 못했습니다.
앤더슨의 발견은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을 제시합니다.
곧, 전두엽 피질이 해마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억제하며, 해마에 충분한 GABA 가 있어야만, 전두엽피질
의 지시를 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두엽피질은 해마의 활동을 억제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장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 명령을 따를 병사가 충분하지 않다면, 그 명령은 수행되지 않는 것이죠.”
원하지 않는 생각을 GABA를 통해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공포증, 조현병, 우울증 등에도 GABA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러한 질병은 과거 회상, 강박적 사고, 우울한 기억,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의지대로 제어하기 어려워
하는 등의 공통적인 증상을 가지고 있으며, 해마의 과잉활동이라는 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증상과 질병의 공통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앤더슨의 말입니다.
이 결과는 또한 트라우마를 만든 경험을 너무 잘 기억하는 증상인 PTSD의 치료에도 이용될 수 있습니다.
앤더슨과 그의 동료들은 그들이 자발적 망각(motivated forgetting)이라 부르는, 자원자들에게 원치 않는
기억을 억누르게 하는 실험에서 더 강한 트라우마 경험을 이야기한 자원자들이 특정한 기억을 억누르는
일에 더 능숙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인지심리학적으로 이해하고, 정신적 탄력성을 키우는 방법을 찾게 된다면, 이를 PTSD
치료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트는 알츠하이머 또한 기억이 아닌 망각 기능의 오작동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망각 기능의 과잉 활동에 의해 기억이 더 쉽게 지워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더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합니다.
이제 점점 더 많은 기억 연구자들이 망각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의 생성과 저장, 인출에 이어 망각이 기억의 또다른 과정이라는 사실에 점점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연구자들은 망각을 기억의 중요한 영역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이트는 말합니다.
“우리는 왜 기억을 하게 된 걸까요?
인간은 자신의 과거를 상세하게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기억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만들며, 또 그 지식을 업데이트 할 수 있게 만듭니다.”
망각을 통해 우리는 개인으로, 하나의 생물 종으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진화는 기억의 미덕과 망각의 미덕 사이에 우아한 균형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영속성과 탄력성 사이의 균형인 동시에 불필요한 것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앤더슨의 말입니다.
(네이처, Lauren Gravi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