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과 우리말 / 서울 독도 등
독도는 돌섬
돌은 방언으로 ‘독’으로 많이 불려 와
독도의 원이름은 독섬
우리나라 가장 동쪽의 섬 독도, 가기가 그리 쉽지 않은 곳이다.
육지 안에서의 거리도 그렇지만 바닷길로도 한참을 가야 하는 곳, 동해의 바위섬 독도. 우리 땅의 가장 동쪽임이기에 가장 해가 일찍 돋는 곳이다.
울릉도를 기준해서는 2백리쯤 되지만, 육지인 강원도 땅이나 경상도 땅에서 간다면, 5백리가 훨씬 넘는다.
이 외롭게 떨어져 있는 우리 섬을 두고 느닷없이 '우리 것'이라고 우겨대는 나라가 있어 마음이 아프다. 독도가 옛날부터 우리 땅이라는 것은 그 이름으로도 나타나는데....
독도는 문헌상으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나타난다.
울릉도 동남쪽의 섬 독도는 본래 삼국시대엔 '우산국(于山國)'으로, 이 이름은 신라 22대 지증왕 12년(511)에 하슬라주(河瑟羅州;강릉) 군주(軍主)인 이사부(異斯夫)가 이 섬에 갔다는 기록으로 우리의 사서(史書)에 처음 등장한다.
다음으로 나타나는 이름은 '삼봉도(三峯島)'로, 이 이름은 조선 9대 성종(成宗) 2년(1471)에 '따로 삼봉도가 있다'는 말에 따라 박종원(朴宗元)을 보내어 찾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나타난다. '삼봉도'라는 이름은 이 섬이 보는 위치에 따라서는 봉우리가 셋으로도 보이기 때문에 나온 이름이다.
한자식 이름인 '독도(獨島)'는 울릉군청에 보관되어 있는 문서에도 보인다.
“광무 10년(1906) 음력 3월 5일 병오(丙午)에 울릉군수가 보고한 보고서에 '본군 소속 독도(本郡所屬獨島)'라.”
이 기사는 고종 18년(1881) 울릉도 개척 이후 울릉도 주민이 지어 낸 듯하다는 추측도 있지만, 실제 이 이름은 우리 어부들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토박이말로 써 이름을 한자로 적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섬을 다케시마라고 부르면서 자기네들 영토라고 한다. 동해의 섬 주민들이 왜구(倭寇)와 연락하여 변방에 환란을 지을까 염려하던 우리나라에선 조선 후기에 들어와 섬을 비우는 정책을 쓰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왜구들은 이 섬을 마음놓고 드나들게 되면서, 그들은 이 섬을 '이죽도(이소다케시마)' 또는 '다케시마(竹島)'라 했다. 일본은 이 섬 이름을 우리와는 이렇게 달리 불러 오면서 자기들 영토라고 주장해 왔다.
일본이 주장하는 '죽도(竹島)'는 '대섬'의 뜻인데, 이 이름은 '산의 섬'을 뜻하는 '달섬(山島)'이 변한 말을 일본인들이 한자로 옮긴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던져 주고 있다. '대'는 우리말에서 '산(山)'의 옛말인 '닫(달)'이 변한 말이며, 독도의 우리 옛 이름인 '우산(于山)'이나 '삼봉도(三峯島)'도 모두 '산'이 들어간 땅이름이므로 이 이름과 무관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닫'이 '대'로의 변화 과정은 '받(밝)'이 '배'로 되어 '밝달'이 '배달'(*배달겨레)로 된 과정과 연결지어 보면 될 것이다.
1904년, 일본 시마네켕(島根縣)에 사는 니카이(中井養三)라는 어부가 독도에 와서 특산물인 가제를 2천 7백 마리나 잡아가 기름을 짜고, 가죽을 팔아 재미를 보았다. 이 가재잡이를 독점하고 싶어 무인도인 그 독도를 시마네켕에 편입시켜 임대해 달라는 청원서를 일본 정부에 내무-외무-농상무 대신에게 냈다.
이에, 을사조약을 통해 대한 제국을 반신불수로 만들었던 1905년 일본 각의는 이 섬을 딴 나라가 점령한 적이 없다는 일방적인 이유를 들어 국토에 편입한다고 의결했다. 단지, 각의 결정만으로 자기 나라 땅을 만드는 선례는 그 어느 때 어느 나라에서도 없던 일이다.
독도가 우리 토박이말로 불렸던 이름이 따로 있었다.
‘독도’라는 이름은 '독섬'에 바탕을 둔 것이다. 지금도 울릉도 일부 주민들은 이 섬을 '독섬'이라 부른다.' 독섬'은 '바위섬'의 뜻을 갖는다. 전국에는 '바위섬'의 뜻을 갖는 '독섬'이 30여 개가 있는데, 이런 섬들은 대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어서 주민이 항상 거주하는 그런 섬들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섬은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이 풍랑을 만나면 배를 대어 일시적으로 피난하는 그런 고마운 섬이었다. 우리의 어부들은 이러한 섬을 천혜의 피난처로 알고, 풍랑이나 큰바람을 만나면 잠시라도 위험을 피할 수 있었는데, 어부들은 이런 바위섬을 대개 '독섬'이라 일컬어 왔다.
'독섬'이란 이름을 가진 섬들은 우리나라에 무척 많다. '독섬'과 같거나 비슷한 이름을 가진 땅이름들이 2천여 개나 발견되고 있다.
<독섬 이름을 가진 곳>(일부)
경남 통영시 사량면 돈지리의 독섬
경북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의 독섬
전남 고흥군 과역면 연등리의 독섬
전북 옥구군 옥도면 비안도리의 독섬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의 독섬
전남 신안군 비금면 덕산리의 독섬께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의 독섬배기
분명히 동해의 우리 독도도 그런 섬 중의 하나였고, 삼국시대부터 이 섬을 그렇게 이용을 해 왔던 섬이다. 그것은 바로 '독섬(獨島)'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잘 설명해 주고 있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울릉도 주민들을 비롯한 동해안 지방의 어부들이 지금까지도 그렇게 부르고 있는 사실이 잘 입증해 준다.
돌(바위)로 된 섬의 이름은 전국에 '돌섬'과 '독섬'의 이름으로 많이 남아 있는데, '독섬'이란 이름에서의 '독'은 바로 옛말에서의 '돌(石)'의 뜻인 '돍'의 전음(傳音)으로, 이를 한자로 소리옮김(音譯)한 것이 지금의 '독도(獨島)'라는 한자식 이름이다. 이에 반하여 '돌섬'은 대개 최근의 말을 따라 붙은 것으로, 이런 이름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다시 말하면, '독섬'과 '돌섬'은 그 뜻으로 보아서는 같지만, '독섬'은 대개 매우 오래 전에 붙여진 땅이름인 데 반해 '돌섬'은 대개 그보다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돌의 옛말 '돗'과 '독'
'돌'의 옛말에는 '돌' 외에 '돗' 또는 '독'이 있다. 그러나, '돌'은 지금까지 써 오는 말이지만, '독(돗)'은 일부 지방의 사투리로 남아 있거나 없어져 갔다. 따라서, '독'이라는 음이 들어간 땅이름 중에는 오랜 옛날에 형성된 것이 무척 많다.
'독(돗)'이 옛말로 '돌(石)'의 뜻이었다는 사실은 지금의 말의 '도끼'가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도끼'의 옛말은 '돗귀'로, 이 말의 뿌리는 바로 '독(돗)'이 되고 있다. 즉, 오랜 옛날엔 '돌' 자체가 지금의 도끼와 똑같은 구실을 했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이 '독(돗)'이란 말은 일본으로 건너가 '닷'이나 '돗'이 되어 '다찌(大刀)' 또는 '도쓰(短刀)'라는 말을 낳는다.
전라도에서는 돌을 대부분 '독'이라고 하고 있고, 대전과 그 근처 지방에서도 이 말을 많이 쓰고 있다. 그래서, 돌마을은 '독막'이나 '독골', 돌우물은 '독우물', 돌산은 '독미'로, 돌고개는 '독재' 등으로 부르고 있다.
돌이 많은 제주도에서도 돌을 '독'이라 많이 부른다. '독드르'(서귀포시 상예동), '독다리'(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독곶'(북제주군 한경면 조수리) 등의 땅이름이 널려 있다.
돌 관련 땅이름에는 돌골, 돌말, 돌곶이(돌꼬지), 돌고개 등 많은 이름들이 있다.
서울 송파구의 석촌동(石村洞)은 대표적인 돌 마을이다. 이곳은 본래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의 한 마을로서 돌이 많으므로 돌마리라 하였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경기도 구역 획정에 따라 한자명으로 석촌리라 하다가,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석촌동이 된 곳이다. 언래 ‘돌말이란 뜻으호 ’돌마리‘라고 불렸던 곳이다.
돌망이나 돌돌, 돌모추 중에는 돌(石)이 아니고 돈다(돌아든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도 많아 잘 살펴봐야 한다. ///
* 친척말
-돗기(도끼) 돗나물 독밭(돌밭) 독고개(돌고개)
* 친척 땅이름
돌내. 석촌(昔村) 【마을】 경남 양산시 상북면대석리
돌말. 석곡(石谷) 【마을】 충남 연기군 전동면 석곡리
돌골 석곡(石谷) 【마을】 충남 천안시 직산면 석곡리
돌싱 석곡(石谷) 【마을】 경북 고령군 쌍림면 용동
돗골 석곡(石谷) 【마을】 충남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
돌꼬지 석동(石洞) [돌꼬지, 석동] 전북 익산군 용안면
독골 【골】 전남 신안군 안좌면 탄동리
독밭 【골】 전남 순천시 별량면 봉림리
2022년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