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대하여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를 금지했다
<임현근>
세상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어떤 이들에게 크리스마스가 단순히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기도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최대의 절기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았던 사실이 있음을 아십니까? 또한 크리스마스를 경축하는 일이 억제되고, 심지어는 금지되었던 때가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까? 이 글은 크리스마스에 대한 간략한 역사의 일부분을 다룰 것입니다.
주후 245년에 일단의 학자들이 예수님의 정확한 탄생일을 결정지으려고 시도하였고, 교회는 회의를 열어 예수님의 탄생을 "마치 바로 왕이 하는 것처럼" 기념하는 일은 잘못이라고 공포하고 그것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일을 정확히 찾아내려는 시도들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 결과 1월 1일, 1월 6일, 3월 25일, 5월 20일 등과 같이 다양한 날짜가 제안되었습니다. 초기에는 5월과 10월이 선호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누가복음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의 소식을 들었던 목자들이 밤중까지 양을 지키고 있었다(눅 2:8)는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목자들은 오직 양들이 새끼를 낳는 시기에만 밤낮으로 양 무리를 지켰다는데 기인합니다. 그때는 봄이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겨울철에는 일반적으로 동물을 우리에 가두어 키우기 때문에 양을 지킬 필요가 없으며 춥기 때문에 들판에서 묵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주후 349년에 로마 교황 율리어스(Julius)는 공식적으로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선정하였습니다. 이 날은 태양신 미트라(Mithras)를 기념하기 위해 로마 세계의 시민들이 이미 광범위하게 '정복할 수 없는 최고의 신인 태양신의 축일'로 지켜오던 날이었습니다. 그 축제는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 직후에 열렸습니다. 오늘날 푸른 나뭇가지로 집을 장식하고, 선물을 나누며, 축제 음식을 즐기는 크리스마스 풍습의 대부분은 이런 이교도 축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학자들은 교황 율리어스가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선택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미트라의 추종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들은 명백한 성경적인 기초가 없는 기독교의 기념일은 거부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탄생일을 경축하라는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영국 의회는 1643년에 크리스마스, 부활절 그리고 다른 많은 절기들을 금지시켰던 것입니다.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등을 위시한 청교도들이 잉글랜드를 장악했을 때 크리스마스는 그 이교도적 성격 때문에 법으로 금지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거나, 그날에 일을 안 하고 집에서 쉬는 것에 대한 형법은 엄했습니다. 그러나 12월 25일은 축일로서 사람들에게 너무 인기가 높아 1660년에 이르자 시민들이 환원을 요구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금한 것에 대한 폭동이 일어났고, 1660년 카톨릭 국왕 찰스 2세(Charles II)는 기념일을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영국 기독교의 많은 부분들은 아직도 크리스마스를 이교도의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 청교도, 침례교, 퀘이커교도, 개신교도, 칼빈교도와 다른 종파들은 초기 뉴잉글랜드에 반대했고, 18세기 중엽까지 미국에서 행해진 휴일에 강하게 반대하였다.”(The Origins of Christmas,: Rick Meisel Dec. 19, 1993, p.4-Quoting from a 23rd Dec. 1983 USA TODAY article)
1620년에 청교도들이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Plymouth)에 도착했을 때, 그들도 역시 크리스마스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1659년에 제정된 매사추세츠 주법은 12월25일을 경축하는 사람에게 벌금을 내도록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을 즐기는 종교적인 습성을 갖은 사람들의 마음에 이 날은 너무 인기가 높아, 비록 그 다음 세기까지 종교적 반대가 강했지만 1681년에 그 법은 개정되었던 것입니다. 루터교, 화란 개혁교회, 로마 카톨릭, 그리고 성공회(영국 국교회) 등은 미국 사회에 크리스마스 전통이 생기도록 하는데 앞장서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침례교, 장로교, 퀘이커교 그리고 청교도 신자들은 크리스마스 축제의 대부분이 이교도 축제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그 날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많은 종교적인 이주민들이 크리스마스 풍습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월삭과 절기를 지키기를 선호하는 카톨릭과 친 카톨릭주의자들의 종교심에 무력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조합교회 신자인 헨리 바르드 비쳐(Henry Ward Beecher)는 1874년 그의 뉴잉글랜드에서의 소년시절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이국의 날이었고, 그래서 나는 잠잠해야 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우리 동네에는 감독파의 교회가 있었고, 나는 그들이 상록수를 꾸미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왜 그들이 나무를 교회에 가지고 왔는지 궁금했지만 어디서도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얼마 후 나는 그것이 로마 카톨릭 교회로부터 나온 로마 의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기록을 신앙과 생활에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결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으며, 기념한 적도 없습니다.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은 1871년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시간과 계절에 따른 미신이 없다. 확실히 우리는 크리스마스라는 교회법상의 의식을 현재 믿지 않는다. 우선, 우리는 그것이 라틴어나 영어로 써 있거나 노래되더라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단지 경멸할 뿐이다. 둘째, 우리는 특정한 날을 구세주의 탄생일로 여기는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미신이다. 왜냐하면 성스러운 권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언제 발생했는지 발견할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신은 우리 구세주의 탄생일을 정해 버렸다.”(Spurgeon, C.H. "Joy Born At Bethlehem," A semon: delivered on a Lord's Day Morning, December 24th, 1871. Metropolitan Tabernacle Puppit, pp.697-698)
크리스마스의 관습과 전통들은 나중에 종교적이기 보다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바벨론 상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크리스마스 때 모든 품목을 훨씬 많이 팔았습니다. 당신은 계속 바벨론 상인으로부터 물건을 사시겠습니까?(계18: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