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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보 알림 공간 스크랩 국민의 武器/ 조갑제닷컴
鶴山 추천 0 조회 49 13.11.23 14: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끔찍한 對국민 선동史

 

 

추기경이 북한 비판한다고 항의 성명도 발표.

 

金成昱   

 

 

 

 [2010년 12월16일 記]
12월13일 “참다운 민주정부의 수립과 분단체제의 극복을 위해 더욱 근본적으로 생명과 평화를 주춧돌로 삼는 새 하늘 새 땅을 위하여”라는 주제의 미사를 하고 있는 정구사. 출처 정구사 홈페이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정구사)이 또 다시 膾炙(회자)되고 있다. 논란의 촉발은 천주교 정진석 추기경의 8일 발언. 이날 정 추기경은 4대강 개발과 관련해 주교회의가 3월에 내렸던 결정은 “4대강 개발을 반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뒤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에 대해 “진리를 차단하고 자유가 없는 北(북)에 대해 비관적”이라고 말했다.

정구사는 10일 성명을 통해 “노골적으로 정부를 편드시는 혹은 꼭 그래야만 하는 남모르는 고충이라도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다”며 특히 “추기경이 대중의 흥분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미움이나 부추기는 골수 반공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으니 이는 교회의 불행”이라고 비난했다.

현재 정구사는 “참다운 민주정부의 수립과 분단체제의 극복”을 하자며 대국민 선동에 열을 내고 있다.

이 단체는 지난달 8일부터 매일 저녁 ‘4대강 공사 중단 촉구 전국사제기도회’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고 6일부터는 소위 “참다운 민주정부의 수립과 분단체제의 극복을 위해 더욱 근본적으로 생명과 평화를 주춧돌로 삼는 새 하늘 새 땅을 위하여”라는 주제 아래 매주 월요일 저녁 국회 앞에서 ‘전국사제시국기도회’를 진행 중이다.

<이명박 정부는 차라리 강도집단?!>

1974년 결성된 정구사는 87년 이후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철폐·연방제통일 등 북한의 對南노선을 공개적으로 주장해 온 단체이다. 정구사는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참여단체이며, △2003년 ‘이라크파병반대행동’, △2005년 ‘평택범대위’, △2008년‘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해 反美(반미)운동을 벌여왔다.

정구사는 특히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대국민 선동의 전면에 서왔다. 2009년 용산放火(방화)사건 당시 정구사 신부 등 7백여 명은 2009년 11월2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죽은 자들과 죽어가는 뭇 생명들을 위한 위령미사’를 주최, 용산방화사건 판결을 비난했다.

용산방화사건은 전철련 등 소속 농성자들이 건물을 점거한 뒤 수백 개의 화염병, 염산병 등을 무차별적으로 집어 던져 인근 상가와 차도·인도 등을 방화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18차례 해산을 설득했지만 농성자들은 신나를 통째로 부으며 저항했고 이로 인해 농성자 5명과 경찰관 21명이 죽거나 다쳤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한양석)는 10월28일 용산방화사건 관련자 9명에게 징역 6년형 등을 선고했었다.

정구사는 11월2일 위령미사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 “가해자인 국가권력이 반성은커녕 피해자 국민들을 단죄해버렸으니 이토록 가혹하고 불합리한 형벌권 행사를 그냥 두고만 볼 것인가”라며 “국민을 괴롭히고 특정 권력을 위해서만 복무하는 국가형벌권이라면 그 위임을 철회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며 공권력을 가해자, 농성자들을 피해자로 뒤집어 놓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발전에 백해무익한 정치집단”, “도저히 정부라고 볼 수 없고 차라리 강도 집단”이라며 “바야흐로 신앙과 양심의 이름으로 국민 불복종을 선언할 결정적인 때가 닥친 것이다...정부의 탈선과 광기를 잠재우고 새로운 국가 공동체를 준비하는 일에 다 같이 신명을 내자”고 주장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진다?”>

정구사는 2008년 촛불집회가 폭동으로 번지며 여론이 나빠지자 구원투수(?)로 나섰다. 당시 촛불집회는 전국적으로 2398회나 벌어졌고 시위대는 500명 이상의 경찰을 다치게 했다. 시위대가 경찰을 포위한 뒤 폭행하는 ‘토끼몰이’는 100일 넘는 촛불집회 기간 중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정구사는 그러나 2008년 7월2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국민주권을 선언하고 교만한 대통령의 회개를 촉구하는 비상 시국회의 및 미사’라는 이름의 시국미사를 통해 폭동의 중단을 촉구하는 대신 공권력을 비난하고 나섰다.

정구사는 6월30일 작성한 성명을 통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을 상대로 마구 저지르는 오늘의 폭력상과 거짓...몽둥이와 방패로 시민들을 패고 내려찍으며 무참히 폭력을 행사했다”며 정부의 경찰력 행사를 ‘국민을 상대로 마구 저지르는 폭력’으로 규탄했다.

또 “국민이 그토록 간절하게 호소했건만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자진 굴복하여 문제의 쇠고기와 위험한 부속물 수입을 전면 허용해버렸기 때문...”, “그저 미국에 충성하려드는 맹목적 사대주의” 운운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미국에 굴복한 위험해 위험한 부속물 수입을 한 것’이라는 선동에 나섰다.

<노무현 전대통령을 예수의 비유>

정구사는 2009년 5월28일 노무현 前대통령 자살 이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추도미사를 올렸다.

정구사 고문 김병상 신부는 “예수를 처형한 장소에 로마가 경비병을 세웠듯이 노 전 대통령 분향소에 조문 온 시민들을 전경으로 둘러쌌다”며 “수구 기득권 세력의 공포를 보여주고 있다”고 강변했다.

金신부는 이어 “20억 명 크리스천들의 기도문에는 예수를 죽인 로마인 정치가가 나온다.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기획수사를 통해 盧 前대통령을 죽였다는 사실 역시 몇 백 년 동안 기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역시 정구사 소속의 김영식 신부도 김해 봉해마을 위령미사에서 예수의 부활과 盧 前대통령의 죽음을 연결시켰다. 金신부는 “부엉이바위는 부활과 승천의 자리였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발언한 김인국 신부는 “(盧 前대통령을 死因(사인)은 자살이지만) 사회적 타살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므로 구원의 여지가 열려있다고 본다”고 거들었다.

<“고려연방제 연구하고 논의하라”촉구>

정구사의 기본 임무는 미군철수로 요약된다.

정구사는 이미 1989년 6월6일 ‘민족통일을 향한 우리의 기도와 선언’에서 “민족의 삶에 배치되는 군사동맹 해체”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주장했었다. 2000년 8월2일 ‘불평등한 SOFA전면개정과 매향리 폭격장 폐쇄촉구 서명’에서는 “미군이 물러가는 진정한 민족통일의 그 날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와 평화로 결단한다.”고 주장했다.

정구사는 2002년 2월18일 ‘한(조선)반도 평화선언’을 통해 “6·15선언이 한(조선)반도에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최선의 현실적 방안임을 인정한다”며 “北의 고려연방제와 南의 국가연합제(남북연합제) 통일방안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대중적 논의를 통해 한(조선)반도에 필요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에도 정구사는 2002년 미선이·효순이 사건을 비롯해 매향리·직도·평택 등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反美집회에서 ‘미군철수’를 주장해왔다.

<송두율 입국 위한 대책위원회 참여>

정구사는 친북인사·친북단체 비호에도 앞장섰다. 이 단체는 2003년 8월 송두율 입국을 위해 결성된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 추진위원회’를 주도했고, 한국에 온 송두율이 구속되자 ‘宋교수 석방과 학문·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에 참여했다. 송두율은 입국 후 검찰 수사에서도 북한 對南공작원으로 확인된 자이다.

2004년 3월25일에는 정구사 소속 함세웅 신부가 이사장으로 있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는 당시 구속수감 중인 송두율에 대해 제3회 안중근평화상을 수상했다. 기념사업회는“송두율 선생이 안중근 의사의 애국애족과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정신을 체현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또 “부디, 시대성숙에 힘입어서, 우리 민족문화와 사상의 한 횃불이자 민족의 갈림을 잇는 데 기여할 한 ‘진정한 접점’으로서 송두율 선생이 우리의 역사를 자유롭게 견인할 그 날이 하루속히 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정구사 소속 신부들은 2002년 7월18일과 2003년 4월8일 각각 ‘한총련의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종교인 선언’과 ‘양심수와 정치수배 전면해제 촉구선언’에 대거 참여, 한총련 합법화와 수배해체를 주장했다. 한총련은 북한의 對南혁명노선을 추종하는 利敵團體(이적단체)로 판시돼 있는 단체이다.

정구사는 KAL기 폭파 사건에 대해 ‘조작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후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에 의해 KAL기 폭파 사건이 ‘북한 정권의 계획적 테러’로 밝혀졌지만, 정구사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김일성의 영생(永生)을 기원한 문규현>

정구사 소속 신부들은 이른바 ‘운동권’이 많다. 정구사 문규현 신부는 89년 임수경 방북사건에 동행, 국보법위반으로 징역5년형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98년 평양통일대축전에 참가해 김일성 시체가 안치된 금수산 궁전 방명록에 “金주석의 永生(영생)을 빈다”는 글을 남겨 물의를 빚었다.

文신부는 2005년 5월 군산 앞바다 直島(직도)사격장 폐쇄를 위해 ‘군산 직도 폭격장 폐쇄를 위한 全國시민사회단체대책위원회(직도대책위)’를 결성하는 등 反美운동의 선봉에 서왔다.

문규현 신부의 여섯 살 터울 형인 문정현 신부 역시 마찬가지 행적을 보인다. 그는 2000년 美공군 사격훈련장인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사격장폐쇄를 주장하며 만들어진 ‘매향리美軍국제폭격장폐쇄汎국민대책위원회(매향리범대위)’상임대표 및 2005년 평택범대위 상임대표 등을 맡아 反美운동을 이끌었다.

文신부는 2002년 5월22일 경북대학교 ‘제1기 통일아카데미’ 강연에서 “나 역시 북한을 방문하였을 당시 만경대에 가서 ‘김일성 장군 조금만 오래 사시지 아쉽습니다’라고 썼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저는 국가보안법을 꼭 철폐하고 말 것입니다. 주한미군도 꼭 철수시킬 것입니다(2001년 11월30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국보법 위반 선고공판 ‘최후진술’)”, “이제 미군부대만 지나면 저주의 마음이 든다”(2002년 9월30일 朴모라는 시민이 미군 트레일러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장례식장에서)는 등 극렬한 주장을 해왔다.
[ 2010-12-16, 10:25 ]

출처 : 2010년 재록

[ 2013-11-23, 09:30 ]

 

 

 

 

平和와 統一을 망쳐 온 '햇볕정책'

 

 

햇볕정책 비판(1)

 

金成昱   

 

 

 

90년대 중후반 대량아사로 망해가던 공산주의 정권, 주체사상 체제를 되살려 냈다. 결과적으로 平和(평화)도 멀어지고 統一(통일)도 멀어졌다.
  
  98년~2007년까지 한국정부에서 북한정권으로 확인된 액수만 69억5,950만 달러가 흘러갔다. 2009년 5월 정부 발표에 따르면, 1998~2007년 한국 측이 북한정권에 준 현금이 29억 달러(3조6천억 원·환율 1240원 적용), 현금과 현물을 더한 대북지원·경협(經協)의 총규모는 69억5950만 달러(8조6800억 원)로 나타났다.
  
  ■ 69억5,950만 달러로 북한의 식량을 샀다면 최소 23년 간 한 명도 굶어죽지 않았을 것이다. 구체적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김정일 정권이 남한으로부터 들어온 현금에서 29억 달러만 식량구입에 썼더라면 북한에선 한 사람도 굶주리지 않을 수 있었다. 1990년대 중후반 대기근(大飢僅) 기간에 북한정권이 매년 3억 달러만 써서 옥수수 200만t씩을 수입했었다면 굶어죽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200만t은 북한이 매년 국제기구 등에 요청하는 식량부족분 100만t을 포함해 최대로 잡은 수치다. 만일 1998~2007년 북한에 간 것으로 확인된 69억5950만 달러로 식량을 샀다면 최소 23년 간 한 명도 굶어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통계가 나온다.
  
  ■ 돈과 쌀을 받은 북한서 일어난 유일한 변화는 戰力(전력)증강이었다. 2000년~2006년 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99년에 비해 3배 가량 늘었고 그 이후도 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계속 늘었다.
  
  북한은 소위 남한과 협력을 통해서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집중했다. 같은 기간 북한은 핵무기 실험(2006년 10월9일)에 나섰고 생화학무기를 세계 3위, 미사일을 세계 4위로 끌어올렸다.
  
  특히 미국 CSIS가 발표한 ‘아시아 군사력비교’ 2002년 판·2003년 판·2006년 판 및 2007년 6월 2일 발표된 영국 IISS의 ‘세계군사력비교’를 종합해보면, 2010년 북한의 늘어난 군사비는 잠수함(submarine)과 상륙정(landing craft)에 집중 투자됐다.
  
  예컨대 잠수함은 2003년 26척에서 2004년 77척으로 증가했고, 2005년에는 다시 88척으로 늘어났다. 상륙정은 2002년 130척에서 2003년 260척으로 2배가 늘어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잠수함과 상륙정은 12만에 달하는 북한의 특수부대를 한반도 全해역에 침투시킬 수 있는 전략무기로 알려져 있다.
  
  현재 북한의 잠수함은 로미오급(1800t) 22척, 1996년 강릉에 침투했던 상어급(300t) 21척, 200t급 이하 잠수정 45척으로서, 美해군정보부(ONI)는 북한을 “세계4위의 잠수함강국”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의 세계적(?) 잠수함 능력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爆沈(폭침)으로 확인됐다. 가련한 북한의 동족을 버리고 평화를 구걸한 대가는 참담했다.
  
  이명박 집권 후에도 햇볕의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피격 살해, 2009년 9월 임진강 관광객 水攻(수공) 살해,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으로 이어지는 도발로 북한에 들어가는 ‘달러’ 중 인도적 지원은 줄였지만 개성공단 지원은 폭증했다. MB 5년 동안, 개성공단 지원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북교역은 9조원을 넘었는데 이는 김대중 당시 2조여 원, 노무현 당시 4조여 원의 몇 곱절에 달했다.
  
  ■ 햇볕정책은 북한주민에 대한 憐憫(연민)과 사랑이 결핍돼 있었다. 북한주민에게 가지 않는 지원을 ‘人道的(인도적)’이라는 수식어로 가장한 뒤 정작 유린당하고 겁탈당하고 죽어가는 주민들에 대해선 침묵했다. 가증스런 정치범수용소, 공개처형, 탈북자에 대한 강제송환, 강제낙태, 영아살해 등 온갖 만행에 대해서 철저히 침묵했다.
  
  한국의 잘난 종교인들마저 이런 ‘햇볕’의 어두운 범죄에 동참했다. 惡(악)의 방관자, 협력자가 돼버린 것이다. 햇볕정책을 통한 지원이 북한주민을 해방하고 구원하는 것과 무관한 공산주의 정권 지원, 주체사상 체제 지원일 뿐인데 ‘人道的’이라며 外飾(외식)했다.
  
  북한에 대한 지원이 천안함 폭침을 넘어 연평도 포격으로 이어졌다. 명백한 警告(경고) 사인이 울렸다. 그러나 ‘햇볕’에 갇힌 자들은 거짓을 반성치 않았다. 심지어 평양에 김일성 주체사상탑과 주체사상연구센터를 세우고 남한의 IT기술을 북한에 직접 전하는 중에도 ‘선교’를 한다며 대북지원을 고집했다.
  
  ■ 햇볕정책은 惡(악)한 것이고, 90년 독일 통일 이전 서독의 ‘동방정책(Ostpolitik)’은 善(선)에 가까웠다. 동방정책은 단순한 화해협력 정책이 아니라 공산주의 동독의 變化(변화)가 전제돼 있었다. 동독 정권과 주민의 분리를 통한 ‘인권 개선’과 ‘개혁 개방’이 목표였다. 특히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는 ‘대가를 받지 못하면 주지 않는다’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주지 않는다’ ‘동독이 요구하기 전에는 주지 않는다’는 3不(불) 원칙을 지켰다.
  
  돈을 주고 자유를 사 오는 서독의 프라이카우프(Freikauf)는 절정판이었다. 62년~89년 사이 동독이 억류한 정치범 3만4천여 명과 가족 25만 명을 서독으로 데려와 자유를 누리게 했다(출처: 통일연구원 통계). 동독주민은 서독의 TV를 시청하고 왕래하며 통일을 꿈꿨고, 동독 영토 한 가운데 위치한 서베를린은 서독을 알리는 창구였다.
  
  한국정부는 98년~2007년 69억5천만 달러, 당시 국제 곡물가격으로 환산하면 북한의 식량을 26년 치나 살 수 있는 금품을 줬지만 정치범은커녕 납북자 한 명 데려오지 못했다. 개혁 개방도, 인권 개선도 이루지 못했다. 북한주민은 한국의 TV 시청은 물론 왕래도 못한다.
  
  ■ 햇볕정책·대북지원을 통하여 천문학적 현금과 현물을 퍼준 결과, 북한은 3대세습과 核(핵)무장에 성공했다. 그 결과, 한국은 북한의 공갈과 협박, 전쟁 위협에 직면해 있다.
  
  만일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진짜’ 전쟁을 벌이면 그 원인은 햇볕정책 때문이다. 2400만 주민의 해방과 구원을 외면한 罪(죄)의 결과, 자신만 살겠다는 이기적 평화, 위선적 민족, 墮落(타락)의 결과다. 거짓의 나팔을 불어댄 광명의 천사들 탓이다. 나라는 軍事力(군사력)과 經濟力(경제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善惡(선악)의 기준이 무너질 때 망하는 법이다.
  

[ 2013-11-23, 00:58 ]

 

 

 

 

돈을 주니 오히려 평화가 깨졌다

 

 

햇볕정책 비판(2)

 

金成昱   

 

 

 

■ 북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 전쟁을 초래하지 않는다. 통계는 오히려 반대다.
  
  6·25사변 포함 2011년까지 국방부에서 공식적으로 제시한 ‘주요 도발’ 사례는 총 221건이다. 이 221건 중 6·25가 있었던 이승만 정권과 18년 집권한 박정희 정권을 빼고 1980년 이후 역대 정권 기간의 북한 도발 횟수를 비교할 때 햇볕정책 논리와 전혀 다르다.
  
  북한의 도발이 가장 많았던 시기는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 때로서 연평균 각각 4.8회(총 24회)와 4.6회(총 23회) 도발이 있었다. 그 다음은 노무현 정권 때인데 연평균 3.4회(총 17회) 도발이 있었다. 북한에 돈을 주니 오히려 전쟁이 났다는 통계다.
  
  도발 빈도가 현저히 낮았던 기간은 군인 출신 대통령 집권 기간이었다. 노태우 정권과 전두환 정권 때는 연평균 각각 2.4회(총 12회)와 2.25회(총 18회)였다. 북한 같은 비정상 체제에 대해선 단호한 대응이 도발을 막는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북한의 주요 무력 도발 사례는 1958년 KAL기 피납사건, 1968년 김신조 일당 청와대 기습사건,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83년 버마랭군 폭파사건, 1987년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 1996년 동해 잠수함 침투 등이 있다.
  
  북한이 남한의 돈·쌀·비료를 본격적으로 빨아들인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에도 1998년 동해 좌초 잠수정 1척 예인과 동해 무장간첩 시체 1구 발견, 남해 반잠수정 침투, 1999년 제1연평해전, 2002년 제2연평해전, 2003년 전투기 서해영공 침범 등 도발은 멈추지 않았다.
  
  ■ 북한의 가장 큰 도발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전에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이다. 이날 이후 남북관계는 극도로 왜곡돼 버렸다.
  
  2006년은 어떤 해인가? 소위 북한과 협력이 없어서 이런 도발이 터졌나?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2006년은 對北지원이 가장 많았다. 그 해 對北지원은 2억9828만 달러로서 한국 돈으로 2,982억 원에 달했고, 정부 지원만 해도 2억2,740만 달러(2,273억 원)로서 최고치였다. 이 수치는 식량차관(쌀 지원)을 뺀 것이나, 식량차관을 합친 대북지원은 핵실험 다음 해인 2007년이 4,397억 원으로서 최고치였다. 요컨대 돈을 제일 많이 준 해에 핵실험을 했고 핵실험을 한 뒤 돈을 더 줬다는 말이다.
  

[ 2013-11-23, 01:26 ]

 

 

 

 

千英宇 전 안보수석, "보수신문조차 MD 문제 왜곡, 한심"

 

 

스스로를 지킬 미사일 방어망도 없는데 어떻게 미국 미사일망에 들어간단 말입니까?

 

천영우   

 

 

 

미국 MD에 들어갈 일이 없다
  
   미사일 방어망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미국 MD시스템에 편입이 되냐 안되냐 이런 논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를 지킬 미사일 방어망도 없는데 어떻게 미국 미사일망에 들어간단 말입니까? 미군은 주한미군이 3만명 밖에 없지만 주한미군을 지킬 미사일 방어망이, 즉 최신 PAC-3미사일이 다 배치가 되어 있습니다. 3만명이 있는 미군기지를 지키기 위해서 미국이 엄청난 돈을 들여가지고 미사일 방어망을 만들어 북한에서 아무리 미사일을 쏘더라도 중간에서 다 막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5000만 국민의 安全(안전)을 지키고 정부 청사고 국방부고 다 서울에 있는데 미사일 방어망을 만들 생각도 안하고 한가하게 2020년 이야기 하고 있단 말입니다. 북한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는데, 미국이 하도 기가 막히니까 당신들 지킬 미사일 방어망 제대로 만들어라, 이 이야기지, 우리가 미국으로 갖고 들어갈 미사일 방어망이 어디 있습니까? 스스로 지킬 노력을 한국도 좀 해라, 우리한테만 기대지 말고, 이런 이야기입니다.
   근데 이제 뭐 가지고 오해가 일어나느냐 하면, 北의 核미사일을 막으려면 미국의 데이터 정보망하고 우리 MD정보망이 링크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왜 필요하냐 하면 우리 레이다 가지고는 북한 미사일이 발사되고 한참 지나야 탐지가 됩니다. 발사하는 단계에서 우리가 인공위성도 없고, 高고도 정찰기 가지고 온다 하지만 옆에서 비스듬히 봐가지고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요. 북한 기지 위에서 봐야 발사를 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발사 전에 탐지하는 것은 인공위성밖에 없습니다. 직각으로 위에서 딱 내려다 보니까. 옆에서 비스듬히 봐가지고는 斜角(사각) 때문에 미사일 발사후 한참 올라가야 우리 레이다에 탐지가 되고 우리 조기 경보기에 탐지가 되지 그 전에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하고 너무 종심이 짧아서 미사일 방어망 만들어봐야 소용이 없다, 그거 뭐 몇분이면 넘어오는데 언제 막느냐 그러는데, 그것도 좀 무식한 사람들이 아는 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북한 미사일이 노동이건 스커드건 대부분 액체연료를 쓰기 때문에 발사하기 30분 전에 地下 갱도에서 꺼내 가지고 우선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어야 합니다. 미국 위성은 발사하기 한 30분 전부터 다 압니다. 지금 몇 대가 나와서 기름을 넣고 있다, 그러면 우리 MD 정보망에서 다 들여다 보고 있어야 북한이 지금 어느 미사일 기지에서 어떤 미사일 발사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구나, 그쪽에서 날아오면 우리한테 어디로 온다, 해서 딱 고도를 세워가지고 보고 있다가 인공위성에서 발사했다고 알려주면 안 놓치고 잡을 수 있습니다.
  
   미국 인공위성 데이터망과 링크는 되어야
  
   그런데 미국 데이터망과 링크가 안되어 있는 상황에서야 발사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우리 레이다망에 잡혀서 그때 가서 쏘려고 하면 놓칠 수가 있거든요. 종심이 짧아서 5~6분 내에 다 오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위성 정보망 이것이 우리 MD시스템에 편입되는 거다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 시스템에 우리 시스템이 편입되는 것이 아니고.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미국 MD에 편입되느냐 안되느냐는 이슈가 아닙니다.
   우리 군도, 미국 MD에 편입되는 것보다는 북한 미사일에 맞아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 속에서 자꾸 이야기해요. 우리는 죽어도 미국 MD에 안들어간다 이 이야기밖에 안합니다. MD에 들어가라고 미국이 요청할 일도 없고, 들어가는 일을 검토하고 결정할 일도 없는데 미국 미사일 방어망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 거기에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만든 프레임 속에 들어가서 이야기 하니까 아무리 이야기해도 보수신문조차 미국 MD시스템에 편입하는 代價(대가)로 전작권 전환 연기를 어떻게 하고 이런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스토리를 쓰고 있거든요. 여기에 계시는 분들만큼은 무슨 소리인지 알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 11월6일 趙甲濟의 현대사 강좌 초청 강연
[ 2013-11-22, 2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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