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이 아니고 '블랙 아이스'라고? 그럼 '칼바람'은 '콜드 윈드'라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또 '꽃샘추위'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콜드 스냅(The last cold snap)'이라고 말할 텐가?
우리말을 어렵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잘 통하는 우리 고유의 멋스럽고 친절한 어휘가 있는데도 굳이 유사어나 외래어를 남용하는 경우를 말함이다. 아마도 유식을 드러내거나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겠지만 이는 절대적인 오산이다. 더러는 습관적으로 토막영어 같은 것을 사용하지만 이는 정말 나쁜 습관이며 경박하다는 평을 면키 어렵다.
'요즘엔 책들을 많이들 안 읽어요.' 참 좋은 뜻의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좋은 뜻만큼의 공감이나 감동을 얻을 수가 없다. 우리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어는 우리말인데 어법과 문법을 크게 벗어나고 있다. '요즘엔 책을 좀체 읽지 않아요.' 이렇게 말해야 독서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세태에 대한 걱정이 제대로 전달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가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외래어 특히 영어의 문법과 말투가 몸에, 아니 혀끝에 배어서다. 책이란 낱말에 굳이 '들'이라는 복수 표기를 하지 않아도 책을 통칭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우리말이다. 더구나 '많이들'이라는 표현에서는 '들'이라는 복수 표현이 입에 붙은 습관이 되어버린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말글이 아닌, 일그러진 표현은 주로 방송사들이 앞장서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기독교방송에서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본다. 우리말 성경말씀을 굳이 토막영어 단어로, 우리말이 아닌 이상한 표현으로 바꾸기를 일삼는다. '말씀이 그의 스텝을 움직여' '드링크는 시냇물을 마시라' '스테이크까지 주신 하나님' '신앙생활의 베이직' '하나님의 터치' '하나님의 말씀들을 보게 되어지면' 등이다. 실제로 채집한 내용이다. 소통하려면 히브리어나 라틴어나 영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게 상례인데 어처구니없게도 거꾸로 우리말을 외래어로 바꾸어 설명하려 든다.
수집한 실제의 예를 좀더 들어본다. 사는 곳-->삶의 주거지, 어찌하여-->why, 곤고의 언덕-->힐 디피컬티, 치유의 단계-->치유의 스텝, 세미한 소리-->small sound와 같은 것이다. '하늘을 보면 이름 모를 숱한 별이 반짝인다'와 같은 표현을 할 줄 몰라 '하늘을 보게 되어지면 이름 없는 많은 별들이 보여진다'라고 말한다. 그것도 매우 자연스럽게.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할 줄 아는 교육과 연습과 노력이 정말 필요하다.
첫댓글 서정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듣는 '들'이 번쩍 눈에 띕니다.
선생님이 지적한 '많이들'' 많이에 많다는 말이 통하는데 들을
붙여야 바른 표현인것 처럼 굳어있어요.
다행이도 컴퓨터에선 이럴 때 빨갛게 밑줄을 그어주어 바로 잡기도 합니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요즘, 밖은 시끄러워도 공부하는 방이 있는
이런 곳이 있으니 차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열면서 남은 시간을 짜 봅니다.
당연하지만 지나칠수있는 그러나 매우 유익한 기사 입니다. 학습 잘했어요
감사합니다.
강병숙님. 정경학님~ 관심으로 호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심코 습관이 되어버린 글
생각 없이 쓴 글자
좀더 꼼꼼하게 생각하면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대가 빠르게 바뀌어서 요즘은 관용어나 속담이 사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야 의미를 알 수 있는 간접적인 대화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 현 시대는 매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예, 아니오'의 정확한 대답을 구하는 직접 화법이 더 선호하는 시대가 도래 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제가 실수로 다른 사람과 부딪쳤을 때" 먼 산 보느라고 " 그 분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우리말이 직접 화법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좀 더 느리게 살면서 구수하고 정취가 있는 우리말이 그리워집니다.
서정 기자님의 정확한 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