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 화훼연구소에서
사월 초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다. 새벽에 잠을 깨 교육단지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이기동 교수가 쓴 ‘유학 오천 년’을 펼쳐 읽었다. 저자는 성균관대에서 유학과 동양철학으로 후학을 가르치고 유학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한 이였다. 그가 강단에서 정년을 맞은 이후 공자로부터 우리나라로 전래 된 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전 5권 가운데 1권은 ‘유학의 발원과 완성’편이었다.
아침 식후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정으로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 소답동에서 내렸다. 창원과 김해는 경계를 벗어나 운행하는 구간도 시내버스끼리 환승이 된다. 마산 합성동 시외터미널을 출발해 김해 외동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140번 버스를 탔다. 소답동 정류소에서 김해로 가는 140번 버스를 탔더니 시외 구간 운행이라 좌석버스 체제였다.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남해고속도로 동창원 나들목을 지나니 김해 진영이었다. 좌곤리에서 대근아파트지 건너편에서 내려 광대현삼거리에서 제동리 들판으로 향해 나갔다. 창원 대산과 김해 진영 경계 신동마을에는 ‘김해가야시니어클럽’이 적힌 조끼를 입은 노인들이 천변의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어르신들에게 봉사활동 기회와 일정 수당이 지급될 일자리를 제공했다.
국도 25호 우회 도로 근처 주남저수지와 동판저수지 배수문을 빠져나온 주천강이 진영읍으로 흘러갔다. 남포리 회관에서 주천강 천변을 따라 창고와 가내공업 수준의 작은 공장이 이어져 있었다. 농로를 겸한 수로 틈바구니에는 민들레가 싹을 틔워 잎줄기를 불려 노란 꽃을 피워 눈길을 끌었다. 잔디밭도 아닌 콘크리트 틈새로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싹을 틔워 자라 피운 꽃이었다.
주천강이 남포리로 흘러와 밀포마을로 향했는데 도중에 상포에서 흘러오는 물길은 샛강이 되어 합류했다. 제동리에서 흘러온 물길이 밀포와 상포 사이로 역류하듯 흘러 주천강에서 만났다. 지난 삼월 중순 진영공설운동장에서 밀포마을은 답사한 바 있어 이번에는 천변에 형성된 상포마을을 찾았다. 휴경지 논으로 흘러드는 수로에는 여러 마리 참개구리들이 나와 와글와글 울어댔다.
구역을 달리한 비닐하우스에는 수박을 키웠는데 비가 잦고 일조량이 부족해 넝쿨만 무성하고 결실이 부실해 농부는 시름이 깊었다. 추수 이후 비워둔 일모작 논둑에는 자운영이 자주색 꽃을 피웠다. 예전 화학비료 공급이 달렸을 적 자운영을 녹비작물로 심어 대용 거름으로 삼았더랬다. 일부러 심지 않아도 지난날 그 자운영이 저절로 자라 씨앗을 퍼뜨려 야생초가 되어 피운 꽃이었다.
상포에서 잠시 들녘 한복판으로 나가 경남 농업기술원 화훼연구소를 찾아갔다. 대형 비닐하우스가 여러 동 딸린 경내 뜰에는 이삼십 명에 이를 사람들이 꽃을 심고 김을 매었다. 한 여성과 몇 마디 나눈 얘기에 오늘이 식목일이라 전 직원이 뜰로 나와 식목 행사를 겸해 화초를 가꾼다고 했다. 장미 정원의 김을 매고 아담한 동산 곳곳과 대형 화분에는 어디선가 키워온 꽃을 심었다.
그곳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화훼연구소에는 다양한 종류 꽃을 가꾸기보다 특정 꽃에 집중해 품종을 개량하고 재배 기술을 연구해 농가에 보급한다고 했다. 김해 대동면에는 대규모 화훼시설단지가 있고 근동에도 크고 작은 꽃재배단지가 있었다. 살짝 귀띔으로 사전에 연락을 취해 견학 가능 여부를 여쭈니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어느 훗날 문학 동인들과 함께 다시 찾아볼까 싶다.
화훼연구소 근무 직원들은 수목원처럼 풀꽃이나 나무와 더불어 지내 내게는 무척 부러움을 사는 직장이었다. 호미와 꽃삽을 들고 땀을 흘리는 그들의 밝은 얼굴에서 사철 싱그러운 식물을 대면하니 몸도 마음도 건강할 듯했다. 앞뜰 꽃밭 자연석 틈새 돌단풍은 이파리가 너풀너풀 자라 꽃이 피었다. 뒤뜰 건물 경계에 심어둔 매발톱꽃도 꽈리처럼 커 보인 자주색 꽃을 송이송이 피웠다. 24.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