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임관은 마음이 청결하며, 淸廉을 목숨같이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범죄자는 공직자가 되어서는 아니된다
다산의‘목민심서’는 공직자의 마음가짐과 처신 등을 세세하게 기술했다.
①부임(赴任) ②율기(律己) ③봉공(奉公) ④애민(愛民) ⑤이전(吏典) ⑥호전(戶典)
⑦예전(禮典) ⑧병전(兵典) ⑨형전(刑典) ⑩공전(工典) ⑪진황(賑荒) ⑫해관(解官)의
12강으로 크게 나누고 다시 각각 6조씩으로 세분하여 전체가 12강 72조로 되어 있다
가장 강조한 것은 청심(淸心), 선선(宣善), 봉공(奉公), 애민(愛民), 진황(賑荒),
해관(解官), 육전의 실무에 대한 마음가짐을 기록하여 두었다
그때로부터 200여년이 지났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고, 제도와 기술도 크게 달라졌다.
하지만 다산이 경고했던 공직자의 오만과 무책임은 여전하다.
시대가 달라져도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고전에서 지혜를 찾는 이유다.
다산이 제시한 공직 사상의 출발점은
‘수기율기(修己律己)’, 자신을 닦고 통제하는 일이다.
목민심서 첫 장인‘율기 6조’는 공직자가 가져야 할 도덕적 자세를 명확히 규정한다.
“벼슬을 하려는 자는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
다산은 청렴을 모든 선(善)의 원천, 모든 덕(德)의 근본,
가장 지혜로운 생존 전략으로 봤다.
욕망이 눈을 가리면 결국 파멸에 이른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사익 추구, 자녀의 입시와 취업을 둘러싼 비리·특혜 등은
모두 다산이 경계한‘부(腐)’의 현대적 변주들이다.
‘봉공 6조’는 공직자의 구체적인 태도를 다룬다.
다산은 단순히 법조문을 지키며 자리 유지에만 골몰하는 관료들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핵심은‘선선(宣善)’, 선한 정책을 널리 베풀고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조정에 법령이 있으면 목민관은 이를 지역의 현실에 맞게 마땅히 행해야 한다.
법령이 백성에게 해를 끼친다면 상소하여 이를 고치려 노력하는 것이 목민관의 도리다.” 요즘 말로‘적극 행정’‘현장 중심 행정’이다.
다산이 제시한 목민 사상의 종착지는‘애민(愛民)’,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애민 6조’와 가뭄·홍수 시 백성을 구제하는 방책을 담은
‘진황(賑荒) 6조’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다산은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 등 취약계층을 보살피는 일이
행정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믿었다.
관료들이 서류 작업에만 매몰돼 정작 굶어 죽어가는 백성을 놓치는 행태를
극도로 혐오했다.
“백성이 굶주릴 때 양식을 나눠주는 것은 불을 끄는 것과 같다.
절차를 따지느라 시기를 놓치면 그것은 구제가 아니라 살인이다.”
어엿한 경제 대국이지만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깊고 어둡다.
목민심서는‘해관(解官)’, 벼슬에서 물러나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다산은 권력의 자리에 연연하며 추태를 부리는 인간의 속성을 꿰뚫어 보았다.
관직을 떠날 때의 태도가 공직생활을 완성한다고 봤다.
“벼슬 버리기를 헌신짝 버리듯 해야 한다. 떠날 때 짐은 가벼워야 한다.
만약 갈 자리가 아닌데도 자리에 연연하거나,
물러난 뒤에도 권력의 주변을 맴돈다면 그것은 추한 일이다.”
자신이 떠난 후에도 공동체가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미래 세대를 위한 주춧돌을 놓고 미련 없이 물러나는‘서늘한’ 명예심,
그것이 바로 다산이 꿈꾼 거관(去官)의 미학이다.
그러나 자리에 머물기 위해 도덕적 성찰을 포기하고,
물러난 뒤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하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요즘만 같아라
6.3 지방선거 후보들의 자신 알리기가 한창이다.
인사하며 손을 흔드는 후보자들의 모습이 반갑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모습으로 되돌아 가는
모습을 많이 본 까닭일 것이다.
초심불망(初心不忘) 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초심을 다잡고 싶다며, 먼저 왜 내가 출마를 했는가를 명확히 한뒤,
작은 성취를 쌓고 겸손한 태도로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초심을 잃는 것은 자신에게는 불행이요
주변사람(유권자) 들에게는 실망과 배신감을 불러온다.
유권자들이 주는 한표 속에는 제발 오늘에 그 마음 변치말고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모두의 바람을 발현해 달라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부처와 예수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부처처럼 예수처럼 사는것은 쉽지 않다.
정치인 또한 국민들의 헤아려 올곧은 정치인으로 산다는것 쉬운일이 아니다.
시대적 변화을 직시하고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흥하는 정치인들만이
살아 남을수 있을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읽고 아내는 남편의 마을을 헤아려 줄 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이다.
옛말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뜻이다.
허나 요즘음 여(與) 야(野)를 보는 국민들은 한숨만 토해 낸다.
죄악을 덮으려 온갖 짖을 다하고 한당은 집안 내분으로 보자기를 찢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서 한술 더떠 중립을 지켜야할 국회의장이란 놈은
당을 위한 편파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는 없고 그들만의 밥그릇 싸움에 매몰된 작태를 보이고 있잖니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면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또한 후보들의 면모는 어떠한가?
검찰의 조사를 받던 인물들이 버젓이 나와 표을 받겠다고 하니
유권자들은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악(惡)인지 혼란스럽다.
일찍이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에 이르기를
‘청렴’은 공직자가 개인이익을 위해 부당한 이득을 얻지 않고,
공공의 물건 재원을 내것처럼 아끼고 공정하게 일 하는 태도다.
청렴이 결여 되면 부정부패가 확산되고 부패한 상사가 있으면 부하직원은 닮아가게 된다.
또 성경 마태복음 5장8절에 이르기를 마음이 청결한 자는 있나니
그들의 하나님을 볼것이라 했다.
여기서 청결은 단순한 외적 정결이 아니라 죄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정결해진 마음을 가리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청결한 정치인은 당신을 지지해준 국민이 보일 것이다.
반대로 권력과 현혹된 죄악된 눈은 국민을 올바로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목민관의 자격이 엄중함에도 한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 기초·광역 단체장 후보 638명 중 256명이 전과자다.
성범죄나 사기, 절도 등의 형사범죄를 저질렀다.
음주운전 전과자도 70명이 넘는다. 심지어 전과 12범도 있다.
기초·광역의회 의원 후보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제 유권자가 눈을 크게 뜨고 다산의 정신을 가진,
늘 성찰할 줄 아는 목민관을 가려내야 한다.
그래야 공직사회가 주민의 삶을 진정으로 살피고 바꾸는 목민의 본분을 되찾게 된다.
이제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바라컨대 후보자들이여 초심을 잃지 말고 겸손과 지혜로움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다수당의 폭거,
대상자 악마화, 비난의 정치, 포퓰리쥼 정치,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정치로
국민도, 미래도, 가치도, 도덕도 없는 미친 정치를 하고 있다
국민이 선량을 뽑는 과정에 범죄자, 나쁜 놈중에 덜 나쁜 놈을 선택하는
하늘아래 찾아 볼 수 없는 선거 문화 때문이다
선량으로 뽑힌 놈들을 살며보면 범죄자중에 가장 나쁜
인간 쓰레기들이 모인 집단이 정치 집단이다
학교 현장에서 체험학습이 위축되는 것과 관련해 대통령이 교사들을 비난하자
“대상자를 악마화해 대중의 표적을 설정한 후에 논의를 시작하는 것”정치가 아니다
“비난의 정치를 그만두고 사회적 문제 해결의 본질에 집중하라”
체험학습이라는 비교적 작은 사안과 관련한 발언이었지만,
적을 설정하는 것은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문제의 본질과 해법 토론은 뒷전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비난할 것인지를 먼저 정한다. 오류의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현 정부 들어 가장 집중적인 표적이 됐던 것은 다주택자들이다.
대통령은 심지어 다주택자 때문에
“혼인 출생 거부, 산업 국제경쟁력 저하, 잃어버린 30년 추락 위험 등
온갖 사회문제를 야기한다”비판하기까지 했다.
집 한 채 더 가졌다고 해서 이웃의 자녀가 결혼을 안 하거나
나라가 잃어버린 30년으로 추락하는 것까지 책임져야 한다니 요즘 말로 기적의 논리다.
일부 국민을 비난하는 데에 집중하지 않고 진짜 해법을 모색하려고 한다면
부동산 문제와 관련한 정책적 고려 사항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복잡하다.
사람들이 전부 서울에만, 강남에만, 아파트에만,
역세권에만 모여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노무현 정부 때 종부세를 설계·도입하는 책임을 맡았고,
문재인 정부 때 정책실장을 맡아 부동산 정책을 주도했던
김수현 실무자가 광역 대중교통을 언급한다.
런던이나 도쿄는 80㎞를 출퇴근 거리로 보는데 서울은 2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좁은 반경 안에서만 부동산 해법을 찾으려니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진다.
만약 우리도 80㎞까지 넓힐 수 있다면 부동산 정책의 선택지는 지금과 완전히 달라진다.
광화문에서 경기도 이천시까지가 정확히 80㎞다.
경기도민도 광역교통만 조금 더 좋아진다면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지금도 광역버스를 일단 타기만 하면 30분 만에 광화문 한복판에 내려주는데,
불편한 것은 광역버스가 15분에 한 대쯤 다닌다는 점이다.
지금보다 두 배 많아진다면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수익성 문제가 대두될 것이고, 정부 보조금도 아마 필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효과도 없는 부동산 정책에 쏟아부은 비용에 비하면
수천만분의 1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왜 부동산 문제를 교통으로 풀면 안 되는 걸까.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지역 소멸을 막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고,
학교나 병원 같은 핵심 기간시설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데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해법들을 차분히 토론하지 못하고
기껏 집 두 채 가진 사람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비난하는 데에 몰두하는 걸까.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사태에 대입해 볼 수도 있겠다.
이번 파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운동의 근간인 연대의 정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연대는커녕 같은 삼성전자 내부에서조차 수익성이 낮은 부문하고는
아예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노조 간부들의 입을 통해 나왔다.
경영권을 침해하고 주주의 이익을 훼손하는 것에도 개의치 않았다.
세계 여러 나라의 자본주의를 흔히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나누는데,
주주 자본주의라면 감히 주주들의 이익을 이렇게 쉽게 무시하지 못할 것이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면 거래 기업과 동료 노동자들을 이리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 한국에서 기업 활동을 하려면
어떤 원칙을 따라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
삼성전자 노조가 이처럼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데에는
다른 성장 동력들이 하나씩 둘씩 꺼져가면서 AI시대와 맞물린 반도체 부문이
거의 유일하고도 강력한 희망이라는 배경이 있다.
온 나라가 반도체에 명운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데
우리가 파업하면 다같이 망할 테니 요구를 들어달라는 협박이다.
온 나라를 볼모로 단군 이래 최고 성과급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집 두 채를 가진 사람들 중에 누가 더 비난받아야 할 사람일까.
무리한 파업에 따르는 경제적 책임을 면제시켜 준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킨 사람들은 다주택자는 그리도 잘 비난하더니
삼성전자 노조에는 왜 입을 다물까.
다주택자에게 요구하는 엄청난 사회적 책임을 왜 삼성전자 노조에는 요구하지 않을까.
문제 해결의 본질에 집중하지 않고 표적을 비난하는 데에 집중하면
사안별로 단편적인 대책들만 나오게 되고,
그것들은 서로 충돌해 무엇이 원칙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비난을 멈추고 근본에 집중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정직한자, 청렴한자, 진실한자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