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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대은병이라 하는데 현재 실물은 남아 있지 않다.
은병 하나의 가치는 시대에 따라 많이 변동했으나 대략 쌀 15석 안팎, 베 100필정도의 가치였다고 하니 요즘 쌀값으로 따진다면 대략 은병 하나에 300만원권인 셈으로 대단한 고액화폐인 셈이다.
은병을 만든 규정을 보면 은 12냥반, 동 2냥반을 합금하게 되어 있는데, 동 2냥반을 넣는 이유는 은병 만드는 공임을 빼기 위해서였다한다.
유통의 편의를 위해 만든 화폐인데 워낙 고액권이었기에 그 자체를 재물시하여 땅속에 묻기도 해 오히려 유통 기능을 망치기도해 결국 화폐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충혜왕 1년 1331년 대은병의 유통을 중지시키고 소은병을 발행해 유통시켰다
소은병의 가치는 베 15필에 해당되었다고 한다. 소은병은 조선초기까지 유통되다가 결국 유통의 기능을 잃게 되어 사라졌다.
은병에 합금시키는 동의 분량이 점점 늘어나 은병인지 동병인지 모를 지경이 되었고 위조은병이 나돌기도 했다고 한다.
대원군이 만든 당백전을 보면 경복궁을 재건하기 위해 만들어진 악전의 이미지가 강한 좋지 않은 돈이기는 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명분은 있었다.
당시 8도에는 전국 40여개소에서 제각기 찍어낸 당1전, 당2전 외에 가치가 낳은 돈이 무질서하게 유통되고 있었다.
대원군 집권후의 일이긴 하지만 서울에서 금강산을 여행했던 영국여류탐험가 이사벨라 비숍이 여행 경비로 영국돈 10파운드를 엽전으로 바꾸었더니 이 엽전을 운반하는데 말 한마리가 아니면 6명의 인부를 고용했다고 회고하였다.
이사벨라 비숍
당시 환율이 1불에 엽전 3200개였다고 하니 그럴수 밖에 없었다. 이토록 유통에 불편한 輕錢을 유통에 편리하게끔 고액권 重錢을 만들어야 한다고 실학자 유형원과 정약용등이 누누히 주장해 왔었다.
대원군은 남인들과 같은 생각을 가졌고 이들과 무리를 지었기에 당1전의 1백배요, 당2전의 50배나 되는 당백전을 正貨도 없이 발행한데는 이같은 화폐제도의 개혁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악전으로 전락해 전례없는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물가만 올려놓게 되고 만다.
고액권 발행에는 이점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는 법이다.
현재 가장 고액권은 5만원권이지만 10만원권 발행도 검토한다고 하는데
김구선생도 검토해볼수 있을듯 하다.
미국에 10만달러 화폐가 있었다고 하면 믿을까? 실제 시중에 유통은 되지 않고 중앙은행과 시중은행과 거래시 사용된적이 있다 한다
유고에서 1993년에 발행되기는 했으나 유통은 안되었다고 한다.
이거 동그라미를 세기도 힘든 이돈 100조짜리 지폐인데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겪을때 유통되었던 지폐라 한다. 동그라미가 14개다. 진정 고액권의 왕좌를 차지 할듯 한데 이게 가치가 있긴 했을까? 이게 계란 3개 가치였다면,,,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