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령을 넘으면서
사월 첫째 토요일이다. 새벽에 잠을 깨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이기동 교수의 ‘유학 오천 년’ 제1권을 독파했다. 중국 상고사에서 요순시대를 거쳐 하, 상, 주나라 이후 춘추 전국시대에 노나라 숙량흘과 안징재 사이 태어난 공자였다. 저자는 공자의 출현과 유학의 완성을 일반인들도 이해가 쉽도록 잘 기술해 놓았더랬다. 공자를 계승한 맹자와 순자의 유학 사상까지가 제1권이었다.
아침 식후는 봄날을 맞은 야생화 탐방과 산나물 채집을 위한 걸음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정류소에서 월영동으로 가는 101번을 탔다. 원이대로로 나가자 급행 운행 체제를 위한 노면 개선 공사는 마무리 단계였다. 버스 정류소가 중앙분리대로 옮겨지고 아스팔트는 재포장 중이다. 동정동에서 창원역을 거쳐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마산역을 앞둔 정류소에서 내렸다.
마산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엔 산나물들이 펼쳐져 봄 정취가 물씬했다. 주말 이틀 가운데 토요일이 일요일보다 노점이 크게 열리는데 텃밭 푸성귀는 물론 산나물이 쏟아져 나와 장터가 풍성했다. 두릅이나 엄나무 순이 보이고 제피나무 잎도 벌써 돋아나는 모양이었다. 내가 지난주 조롱산에서 따와 식탁에 나물로 무쳐 나와 비빔밥을 비벼 먹는 홀잎을 따온 할머니는 더 반가웠다.
마산역 광장에서 봄철 타게 되는 노선은 두 군데로 서북동으로 가는 73번과 둔덕으로 가는 76번이다. 정한 시각 둔덕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밤밭고개를 넘었다. 진동 환승장을 들렀다가 해병 전적 기념비를 지난 진전 오서에서 국도 옛길을 따라 달리니 만개한 가로수 벚꽃은 꽃눈이 되어 날렸다. 일암과 대정을 지난 골옥방에서 배차 시각을 지키느라 잠시 쉬었다.
기사는 한동안 꺼둔 시동을 걸어 출발해 종점 둔덕에 닿으니 현지 주민 할머니 두 분과 같이 내리고 차를 돌려 골짜기를 빠져나갔다. 할머니는 마을로 가고 나는 군북 오곡으로 가는 포장된 길을 따라 걸었다. 깊은 산골 해발고도가 낮은 산기슭부터 연초록으로 물들면서 군데군데 산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일부 연분홍 야생 복사꽃이나 돌배나무에서 피는 하얀 꽃도 섞여 있을 듯했다.
오곡재로 향해 오르다가 미산령으로 가는 임도로 들어 숲길을 따라 걸었다. 평소에는 인적 없는 산중인데 마을 가까운 숲에서 부녀들이 나누는 소리가 들렸는데 두릅 순을 따러 온 이들인가 싶었다. 미산령으로 가는 임도는 당국에서 배수로를 정비해 놓아 봄철 피어날 야생화와 산나물을 당분간 만날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런 가운데도 어디쯤 남겨둔 양지꽃과 구슬붕이꽃은 볼 수 있었다.
임도를 벗어난 계곡 습지에 자라는 동이나물이 피운 노란 꽃을 봤다. 잎사귀가 곰취를 빼닮은 동의나물은 독성이 있어 식용 불가다. 그 곁에 서덜취가 자라고 있어 몇 줌 뜯고 복수초 군락지 언덕으로 오르니 꽃은 저물고 씨방이 맺혀 있었다. 일찍 돋는 참취를 몇 가닥 뜯으면서 숲속을 헤쳐 나가다 두릅나무를 만났는데 고지대여서 순은 덜 피었지만 가지를 당겨 몇 개 따 보았다.
오곡재에서 미산봉으로 오르는 산마루 두릅은 순이 덜 자라 남겨 놓았다. 미산봉에 오르자 노란 각시붓꽃과 꽃잎이 저물지 않은 복수초를 봤다. 상데미봉으로 건너가지 않고 비탈을 내려서자 취나물이 돋기 시작했는데 조금 더 자라야 산나물로 삼을 수 있을 듯했다. 산마루에서 미산령으로 내려간 정자에서 전방으로 펼쳐진 원경을 보며 고구마와 빵으로 소진된 열량을 벌충시켰다.
미산령 쉼터에서 북향 임도로 내려서자 길섶 가시덤불에 영아자 순이 보여 몇 줌 뜯어 모았다. 영아자는 생으로도 먹는 맛이 좋은 산나물이라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모를 녀석이 시식한 흔적이 보였다. 애기원추리와 바디나물도 자라 몇 가닥 뜯으면서 골짜기를 빠져나간 미산마을에서 봉성으로 걸었다. 진주를 출발해 서울로 가는 새마을호를 탔더니 창원중앙역까지는 금세 도착했다. 24.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