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강원도 영월군 법흥사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온다. 그 바람은 덥지도 차지도 않고
세거나 약하지도 않게 기분 좋도록 분다.
그 바람이 갖가지 보석 그물과 보석 나무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면 한 없이 미묘한 법음을 내고
갖가지 우아한 덕의 향기를 풍긴다. 이 같은 소리를
듣거나 향기를 맡으며 번뇌의 때가 저절로 사라지고
덕풍이 몸에 닿으면 심신이 저절로 상쾌해진다.
<무량수경> 에 나오는 글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바람을 맞는다는 것은 얼마나 상쾌하고 즐거운 일일까? 그 바람을 두고 마거릿 애트워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바람결에 무엇이 있는지 물어보라. 신성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라.”
신성하기도 하고 산뜻해서 안아주고도 싶은 바람을 생각하다 보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나라 안에 다섯 군 데 밖에 없는 적멸보궁을 간직한 절인 법흥사가 있는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이다. 이 지역은 본래 영월군 우변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자리 도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법흥사의 이름을 따서 법흥리라고 지었다.
도화동과 무릉동이 이곳에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 근처를 일컬어 “치악산 동쪽에 있는 사자산은 수석이 30리에 뻗쳐 있으며, 법천강의 근원이 여기이다. 남쪽에 있는 도화동과 무릉동도 아울러 계곡의 경치가 아주 훌륭하다. 복지(福地)라고도 하는데 참으로 속세를 피해서 살 만한 지역이다”라고 하였는데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뚝우뚝 솟아있는 사자산은 높이가 1,150미터로 법흥사를 처음 세울 때 어느 도승이 사자를 타고 온 산이라고 한다.
사나삼과 옻나무, 그리고 가물었을 때 식량으로 사용한다는 흰 진흙과 꿀이 있는 그래서 네 가지 보물이 있는 산이 즉 ‘사재산(四財山)’이라고도 부르는 이 산이 사자산이다. 이 산에 신라 때의 고승 자장율사가 지은 절로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에 한 곳인 법흥사가 있다.
“치생治生(생활의 법도를 세움)을 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먼저 지리地理를 가려야 한다. 지리는 물과 땅이 아울러 탁 트인 곳을 최고로 삼는다. 그래서 뒤에는 산이고, 앞에 물이 있으면 곧 훌륭한 곳이 된다. 그러나 또한 널찍하면서도 긴속緊束해야 한다. 대체로 널찍하면 재리財利가 생산될 수 있고, 긴속하면 재리가 모일 수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의 풍운아인 허균이 지은 <한정록>에 실린 여러 가지 사람이 살아갈만한 조건을 갖춘 곳이 바로 법흥사 부근이다.
영월군 주천면을 지나 주천강을 따라가다가 요선정이 있는 미륵암 부근에서 법흥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만나는 곳이 광대평廣大坪이다. 법흥리에서 가장 들이 넓고 전답이 많았다는 광대평을 지나 한참을 오르면 그 지형이 고기가 물결을 희롱하며 놀고 있는 형국이라는 유어농파형遊魚弄波형의 명당이 있다는 응어터(응아대) 마을이다. 그곳에서 법흥사 아랫마을인 대촌大村이라고도 부르는 사자리는 멀지 않다. 깊숙한 산골인데도 제법 넓게 펼쳐진 들판에서 관음사 가는 길과 법흥사가 있는 절 골로 가는 길이 나뉜다.
법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인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에 창곤한 절이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율사는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영취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등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이 절을 창건한 뒤에 진신사리를 봉안했으며 그 당시 절 이름은 흥녕사였다.
그 뒤 헌강왕 때 절중折中이 중창하여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중심 도량으로 삼았다. 징효대사 절중은 사자산파를 창시한 철감선사 도윤의 제자로 흥녕사에서 선문을 크게 중흥시킨 인물이다. 그 당시 헌강왕은 이 절을 중사성中使省에 예속시켜 사찰을 돌보게 하였다. 그러나 이 절은 진성여왕 5년인 891년에 불에 타고 944년(혜종 1)에 중건했다. 그 뒤 다시 불에 타서 천년 가까이 작은 절로 명맥만 이어오다가 1902년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중건하고 법흥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2년 또다시 불에 탄 뒤 1930년에 중건했으며, 1931년 산사태로 옛 절터의 일부와 석탑이 유실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자산 쪽을 바라보면 흥녕사에서 선문을 크게 열었던 징효대사 절종(826~900년)의 부도와 부도비가 세워져 있다. 징효대사의 부도비(보물 제 612호)에는 징효대사의 행적과 당시의 포교내용이 새겨져 있고 고려 혜종 1년에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소나무 숲이 너무도 아름다운 절
나라 안에 이름난 소나무 숲이 여러 곳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 숲은 이곳 법흥사의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다.
“나무는 별에 가닿고자 하는 대지의 꿈이다.”라는 ‘빈센트 반고호’의 말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우뚝 솟아있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을 걸어 올라가면 법흥사선원이 있으며 그 우측에 항상 흐름을 멈추지 않는 우물이 있다. 그곳에서 구부러지고 휘어지는 오솔길을 돌아 올라가면 법흥사 적멸보궁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인 적멸보궁 안에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지 않고 유리창 너머 언덕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는 사리탑이 보인다.
그러나 진신사리 탑일 것이라는 부도탑은 어느 스님의 부도일 뿐이고 정작 진신사리는 영원한 보존을 위해 자장율사가 사자산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두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가끔씩 사자산 주변에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서린다고 한다. 사리탑 옆에는 자장율사가 수도했던 곳이라는 토굴이 마련되어 있고 그 뒤편 사자산의 바위 봉우리들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적멸보궁에서 내려오는 길에 우뚝우뚝 서 있는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오랜 그리움의 한 자락 같기도 하고 보고 싶은 어떤 사람 같기도 한 그 소나무들 중 한그루를 나는 “내 사랑 소나무 ”라고 점찍어 두고 가까이 다가가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본다. 까실 까실하게 혹은 오랜 세월 부대낀 세월의 무게로 내 가슴속에 한 점 그리움으로 안겨오는 소나무와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아름답게 이를 데 없는 산길이 그곳이다. 나는 가끔씩 이 법흥사를 떠올릴 때마다 이 소나무와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휘어지고 굽어 도는 서러움 같은 그 길들이 떠올라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코로나 때문에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절, 소나무는 옛 모습 그대로인데,
동행했던 사람들만 다르다. 다시 찾아 갈 그날은 또 언제쯤일까?
2022년 9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