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예수님을 따라 “해맞이꽃 사랑”으로
2023.8.11.금요일 성녀 클라라 동정(1194-1253) 기념일
신명4,32-40 마태16,24-28
오늘날을 정의하면 길을 잃은 사회, 희망을, 꿈을 잃은 사회, 중심을 잃은 사회, 한마디로 요약하면 병든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지구도 병들고 사람들도 병들고 있습니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입니다. 특히 한국은 더한 것 같습니다. 정말 총체적 난국같습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자살자들도 많고 이해하기 힘든,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곳곳에서 너무 많이 일어납니다.
심리적 무정부 상태 같습니다. 세대가 서로간 단절도 너무 크고 좋은 전통도 끊겼습니다. 도대체 사람되는 공부가 학교 교육현장에도 전무해 보입니다. 애완견이 아닌 반려견들의 죽음후의 화장에 이들을 보관한, 사람들로 하면 납골당같은게 있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습니다. 사실 반려견의 화장터에서 슬피우는 동영상의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고 참 괴이하고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분이 몹시 얹짢았습니다.
“병든 사람, 병든 사회다! 그것도 중병이구나! 이를 어쩌나?”
하는 말이 저절로 탄식처럼 새어나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물음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가?”입니다. 주제가 참 고마웠습니다. 저절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 강론 제목에 대한 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해맞이꽃 사랑으로 살면 됩니다.
길을 잃은 사회, 희망을 잃은 사회, 중심을 잃은 사회, 병든 사회라 했습니다. 믿는 이들의 삶은 아주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길이요, 희망이요,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내 공동체의 중심에 모시고 살 때 건강한 삶의 회복입니다. 정신 건강, 영혼 건강에 참 희망이자 참 기쁨, 참 평화의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습니다.
요즘 곳곳에 청초한 샛노란 달맞이꽃들이 한창입니다. 아무도 가꾸고 돌보지 않아도 때되면 저절로 피어나는 달맞이꽃들에 다양한 들꽃들입니다. 7-8월에 한창 피어나는 칠레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인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 ‘밤의 요정’, ‘소원’, ‘무언의 사랑’등 많은 꽃말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희망의 표지들이 때되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야생화 들꽃들입니다.
어제 달맞이꽃들을 보며 새삼스런 감동에 써놓은 글을 나눕니다. 달맞이꽃만 있고 ‘해맞이꽃’은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달맞이꽃이 아닌 “해맞이꽃 사랑”이란 제목을 달았습니다.
-“자리 찾지 않는다
그 어디든
뿌리 내리면 바로 거기가 꽃자리이다
누가
봐주든 말든
알아주든 말든 상관치 않는다
때되면
샛노란 청초한 사랑으로 하늘 향해
피어날뿐이다
하늘 사랑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한 삶인데 더 무엇을 바라리
너는
달맞이꽃
나는 해맞이꽃 사랑이다”-2023.8.10.
‘해맞이꽃 사랑!’ 얼마나 멋진 명칭인지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에 대한 답을 줍니다. 해맞이꽃 사랑으로 살면 됩니다. 태양인 해가 상징하는 바, 하느님이자 예수님입니다. 날마다 우리 영혼의 태양이신 주님을 맞이하여 중심에 모시고 살면 됩니다. 오늘 말씀의 배치가 참 적절하여 고맙습니다. 주 하느님의 위대함과 선택받은 이스라엘에 대한 신명기의 말씀이 참으로 고무적입니다.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깨우쳐 주시려고 하늘로부터 당신의 소리를 너희에게 들려 주셨다. 그분께서는 몸소 당신의 큰 힘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오늘”이 거푸 두 번 연속 나옵니다. 한마디로 오늘 지금 여기에서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해맞이꽃 사랑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 그 구체적 지침을 주십니다. 누구나 해맞이꽃 사랑으로 살 수 있는,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활짝 열린 구원의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성인의 길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만고불변의 구원의 진리입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주님 때문에 목숨을 잃은 자기 버림의 여정에 항구한 이들은 목숨을 얻을 것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수 있습니까? 얻은 것은 덧없는 삶이요 잃은 것은 영원한 삶이라면 너무 억울하고 허망합니다.
바로 영원한 삶의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그 자발적 사랑의 표현이 자기 버림이요,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이 아들, 예수님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오실 때,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주실 때, 구원의 잣대가 됩니다.
어제는 성 라우렌시오 부제 축일이고 오늘은 성 프란치스코의 영원한 영적도반으로 깊은 영적우정을 나눴던 성녀 글라라 기념일입니다. 성녀 글라라 예외없이 해맞이꽃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여 평생 시종여일 한결같이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이름 뜻 그대로 “주님의 빛”으로 살았습니다. 40여년 동안 공동체를 지도하면서 다정한 자매요 어머니로서 늘 자매들의 말을 경청하며 겸손하게 섬기며 살았습니다.
성녀 클라라는 42년의 수도생활 중 대부분을 병상에서 보내야 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봉쇄구역 안에서 오로지 기도에 의지하여 모든 일을 이루었습니다. 1253년 8월11일, 바로 오늘 성녀 클라라는 선종했고 그 임종어입니다.
“저를 지어내시어 이 삶으로 부르셨으니 주님, 찬미받으소서.”
선종 2년만인 1225년, 최단기간에 성인품에 올린 교황 알렉산드로 4세의 성녀에 대한 소감은 바로 성인품에 올린 근거가 됩니다.
“클라라는 숨어 살았지만 그 생애는 모든 이에게 알려졌고, 침묵하였으나 그의 명성은 세상 끝까지 자자했다. 봉쇄 담장 안에 자신을 숨겼으나 곳곳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게 됐다.”
기념, 기억하라고만 있는 성인이 아니라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해맞이꽃 사랑으로 주님 따라 성인의 삶을 살라고 삶의 좌표의 선물로 주어진 성인들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해맞이꽃 사랑으로 성인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다시 제 좌우명 고백기도시를 나눕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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