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 면발 담긴 멸치국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코밑 거뭇해진 아들과 겸상을 한다 친정 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 - 국수 / 이재무-
그러다 보니 농번기 바쁜 일손 줄이자고 새참으로 나가기도 했고 또 여름날 날도 덥고 들일은 바쁘고 하니 다시국물 만들어 낼 여가도 없이 국수 삶아 시원한 우물 물에 풋고추 성큼성큼 썰어 넣은 양념장에 말아 먹기도 했다.
국수를 삶아 먹는 것 자체는 간편식일지 모르지만 그 과정은 결코 간단치가 않았건 것으로 기억된다
요즘에야 마트가서 바로 구입할 수 있지만 우리가 어릴적 시골의 상황은 주변에 마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니 밀 농사를 지어 깨끗하게 씻어 방앗간 가져가 갈아서 밀가루를 만들고 반죽해서 면을 뽑고 또 볕좋고 통풍 잘 되는 곳에서 말리고 썰어서 집으로 가져왔는데 이게 꼬박 하루를 매달려야 하는 과정 이었다.
먹을 것이 귀할 때 였으니 그랬을 것이다. 그때는 짭쪼롬하게 간이 잘된 생국수 그 자체 만으로도 어찌 그리 맛이 있었던지?
그 비밀은 아마도 소금간이 아니었을까? 모든 음식에는 간을 맞추는 절대 황금 비율이 있을 것이다.
우리밀 국수 역시 면 자체에 간을 해서 싱거움을 없애 주고 쉽게 부패되는 것을 방지 하기 위해 소금간을 했는데 그것이 손이 자주 가도록한 절대 황금 비율 이었던 것이다.
국수는 지방 마다 다양한 음식 문화의 풍습으로자리 하고 있는데 잔칫날 먹는 잔치 국수 또 생일 날에 먹는 생일 국수가 있었고 오래전 군 생활 할때 기억 이지만 강원도 고성 지역의 경우 설날 아침에도 국수를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마마도 이런 풍습의 경우 면발처럼 오랫동인 부부의 인연이 유지되고 내 가족의 명이 길어 오랫동안 살라는 바램이 반영된 염원이 아니었을까?
또 종류도 열무 김치가 들어간 열무국수도 있고 비빔국수 물국수 밀면 메밀 국수 등이 있으며 요즘은 건강식 국수로 양파 국수, 녹차국수 긍등 몸레 돟가는 것은 다 국수로 만들어져 나오니 선택의 여지가 참 다양해졌다.
면의 역사는 참 오래된 모양이다. 국수나 냉면의 차이는 재료의 차이고 방법의 차이 이지 대동소이 하다 할 것이다
중국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굳이 국수라는 표현 보다는 역사적 자료에 냉면으로 많이 등장 하는데 평양식의 물냉면 함흥식의 비빔 냉면 그리고 진주냉면이 있다는데
已喜高齋敞(이희고제창) 높다랗게 탁 트인 집이 하마 좋은데 還驚異味新(환경이미신) 새로운 별미 대접에 더욱 놀라워라 紫漿霞色映(자장하색영) 불그스름 국물은 노을빛 어렸는데 玉粉雪花匀(옥분설화균) 백옥 같은 가루는 눈꽃이 고루 배었네. 入箸香生齒(입저향생치) 젓가락 들자 입안에 향기가 돋아나고 添衣冷徹身(첨의냉철신) 옷을 껴입어야 할 듯 한기가 스미네 客愁從此破(객수종차파) 나그네 시름 이로부터 사라지리니 歸夢不須頻(귀몽불수빈) 돌아갈 꿈은 굳이 자주 꾸지 않겠네. - 紫漿冷麪/張維-
함흥식 이나 평양식의 경우 많이 알려져 있지만 진주식 냉면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어제 방송을 보니 진주냉면은 냉면에 고명이 많이 들어 가고 육전이 들어 가는 것이 특생 이라고 한다.
아직 진주식 냉면은 먹어 보지 못했는데 언제 진주에 갈 일이 있으면 한번쯤은 먹어 뵜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선주후면(先酒後麵) 냉면을 먹는데 있어 주식 보다는 간식 개념이 많이 엿보이는데 요즘의 식사 자리도 고기에 반주 그리고 후식은 냉면 이지만 옛날에도 그랬던 모양 이다
보통의 식사 자리는 밥을 먼저 먹고 술자리를 가지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 냉면의 경우 술을 먼저 마시고 나중 면을 먹는다는 데서 나온 이야기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 이야기의 근원을 교방문화에서 찾고 있는 모양 이다.
즉 술로 생기는 흥분과 열기를 가라 앉히고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야식으로 즐겼다는 설이다.
연일 계속되는 열기로 심신이 치쳐가는 날 시원한 국수 힌 그릇도 좋고 면빨이 가늘고 부드러운 냉면 한 그릇으로 더위를 식혀 봄도 좋을 것이다.
한때 해마다의 여름이면 부지런히도 쫒아다녔던 가음정 시장의 이가네 가야 밀면집 그리고 상남 재래시장의 전통 국숫집들이 있었는데 아직도 그대로인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