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화리에서 오랑대까지
▲ 연화리에서 멀리감치 바라본 대변항
▲ 물빛이 진한 연화리 앞바다 |
대변항에서 연화리 앞바다까지는 길이 이어져 있다. 길가에는 해산물을 취급하는 식당들이 많
이 있는데 4월의 한복판임에도 벌써부터 옷깃을 풀게하는 철모르는 더위와 죽성리부터 걸어온
피곤함으로 잠시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며 두 다리를 달래기로 했다.
허나 가게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마침 이쁘게 치장된 까페 하나가 사막 속에 오아시스
처럼 나타나 우리를 손짓한다. 그를 보는 순간 시원한 걸 마시며 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솟
구쳐 별 망설임 없이 그곳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빙수를 먹으려고 했으나 여름에만 판다고
해서(그때 날씨가 거의 여름이었음;;;) 흔한 이름의 커피 종류를 시켰다.
여기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10리 이상 부려온 두 다리의 불만도 잠재우고 이른 더위의 압박
에서 벗어나 일다경(一茶頃)의 여유를 누린다. 까페는 2층 규모인데, 차를 마시러 온 가족 단
위와 중년층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
▲ 연화리 까페에서 마신 커피의 위엄 (이름을 까먹음)
▲ 멀리서 본 오랑대(五郞臺) |
까페에서 30분 정도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시간은 이미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바
다 위에 높이 뜬 햇님은 퇴근시간이 점점 늦어짐을 원망하며 햇살의 강도를 점차 줄이면서 퇴
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화리 까페에서 바다를 따라 1km 정도를 가니 머리에 조그만 건물과 탑을 지고 있는 허벌나게
큰 바닷가 바위가 모습을 비춘다. 그가 바로 오랑대이다. |
▲ 꼬깔모자를 연상시키는 오랑대
(꼭대기에 자리한 건물은 용왕각) |
오랑대는 기장의 주요 해안 명소의 하나이다. 조선 어느 때에 이곳으로 유배를 온 사람이 있었
는데, 그의 친구 5명이 머나먼 이곳까지 놀러와 오랑대 바위에서 곡차(穀茶)를 겯드리며 가무(
歌舞)을 즐기고 시를 읊으며 놀았다고 한다. 그래서 5명의 선비를 뜻하는 뜻에 오랑대란 이름
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전설임)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 광경이 가히 장관으로 주변에는 멋드러진 기암괴석이 많다. 오랑대를
원시적인 모습으로 내버려 두었으면 좋으련만 오랑대 바닷가에 자리한 혜광사(慧光寺)가 그곳
을 접수하여 바위 꼭대기에 석축으로 자리를 다지고 용왕각(용왕단)을 달면서 보기가 좀 딱하
게 되었다. 용왕각 지붕에는 괴상하게도 하얀 피부의 3층석탑을 올려놓았는데 멀리서 보면 오
랑대 용왕각의 모습이 마치 만화에 나오는 꼬깔모자처럼 보인다. |
▲ 오랑대 지붕에 자리한 용왕각
▲ 용왕각에 봉안된 동해 용왕상 |
오랑대를 옆구리에 낀 혜광사는 법등(法燈)이 매우 짧은 현대 사찰이다. 오랑대 옆에 터를 다
지고 들어선 바닷가 절집으로 대자연이 빚은 오랑대를 휼륭한 후광(後光)으로 삼아 절을 꾸린
다.
오랑대 용왕각에는 용왕이 봉안되어 있는데 그 좌우에는 앳된 동자(童子)상이 있으며 용왕 뒤
로 유리창을 내어 그의 활동무대인 동대해가 보이게끔 했다. 지붕에는 네 모서리에 용머리를
달아 건물의 품격을 높이려고 애썼으나 시멘트 집이라 썩 정감은 가지 않는다. 절집답게 목조
기와집으로 지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 오랑대 찾아가기 (2017년 7월 기준)
* 부산지하철 2호선 해운대역(7번 출구)에서 부산시내버스 100, 181번을 타고 혜광사
하차, 혜
광사 방면으로 도보 7~8분 (100번이 그나마 배차간격이 짧다. 139번과 181번은 거의 20분 간
격)
* 부산 동해선 송정역(1번 출구 건너편)에서 139번 시내버스를 타고 혜광사 하차.
* 승용차 (혜광사에 주차장 있음)
① 부산시내 → 송정3거리 우회전 → 기장해안로 경유 → 혜광사입구 우회전 → 혜광사
② 부산시내(반송) / 울산 → 기장군청 → 연화육교 교차로 좌회전 → 기장해안로 → 혜광사입
구 좌회전 → 혜광사
* 오랑대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혜광사
☎ 051-721-3167) |
▲ 1칸 규모로 조촐한 용왕각
▲ 오랑대 주변 풍경 - 낚시삼매에 빠진 강태공들이 여럿 보인다.
▲ 오랑대에서 바라본 대변항 |
오랑대를 둘러보고 바다를 따라 해동용궁사 방면으로 이동했다. 허나 군부대로 그만 길이 막혀
부득이 혜광사 뒤쪽 산길을 이용해 기장해안로로 탈출했다.
기장해안로 주변은 혜광사입구부터 당사리까지 관광단지와 쇼핑타운를 짓는다면서 산과 들판을
죄다 밀어버려 폐허의 공간처럼 아주 흉물스러운 모습이었다. 인근에 오랑대와 해동용궁사, 대
변항, 국립수산과학원, 국립부산과학관 등의 명소를 받쳐주기 위한 관광단지라고 우기고 있으
나 굳이 그런 것이
없어도 이들 명소를 찾는 발길은 여전하다. 고위 위정자 밥버러지들이 그저 개발과 돈, 치적 쌓기에만 급급해 안그래도 좁은 강토를 자꾸 바람직하지 않게 건드리니 실로
씁쓸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개발의 칼질과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이 어색하게 공존하는 시랑리를 지나니 어느덧 용궁사입구
에 이르렀다. 여기서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심하다가 이곳
까지 온 거 잠깐 들리기로 했다.
용궁사는 2000년과 2014년에 가본 기억이 있는데, 오랜만에 발을 들인 바닷가 사찰, 용궁사는
관람객들로 완전히 시장통을 이루었다. 경내 곳곳에 불전함이 깨알처럼 자리해 돈을 요구하고
있고 바닷가든
대웅전(大雄殿) 앞이든 사람들이 징그럽게 많아서 거의 사람들 뒷통수만 본 것
같다. 이곳은 딱히 정도 들지 않고 사진에 담고 싶은 생각도 없어 대충 1바퀴 살피고 나왔다.
용궁사를 나오니 시간은 18시, 송정까지 마저 행군할까 하다가 너무 피곤하여 걷는 것은 여기
서 쿨하게 접고 부산시내버스 181번(기장 청강리↔센텀시티)에 고된 몸을 싣고 시내로 나왔다.
이날 죽성리에서 용궁사까지 걸은 거리는 거의 40리 정도, 우스개 소리로 거의 몇 달 걸을 분
량을 그날 하루에 다 걸었고, 바다도 정말 지겹게 두 눈에 넣어서 당분간 바다를 안봐도 섭섭
하지 않을 듯 싶다.
이렇게 하여 봄의 한복판에 판을 벌인 기장 동해바다 나들이는 재생이 불가능한 아련한 과거의
일부로 산산히 흩어지고 말았다. 역시나 사람의 인생은 무상(無常) 그 자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