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들으신 연꽃을 드신 뜻과,
산승이 오늘 주장자를 들고서 읊은 게송에 뜻이
같으냐? 다르냐?
같다고 해도 맞지 않고 다르다고 해도 맞지 않으니,
이 도리는 중생의 사량심으로, 이론적으로 따져서 ‘같다’, ‘다르다’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도리는 오직 자기 본참공안에 철두철미
참해서 확철대오함으로써만이 바로 이 도리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론적으로 따져서, 사량심으로 따져서
같다 다르다’ 말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조사공안 상(上)에 어떠헌 조사에 공안이나 화두나 법문을 대하더라도 바로 깨닫지 못했으면
자기의 본참화두를 바로 거각헐지언정 이리저리
사량심을 움직여가지고 알랴고 그러고 따져서 무슨
해답을 구하는 그러헌 마음가짐은 옳지 않는 것입니다.
비단 조사공안 뿐만이 아니라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에 있는 모든 말씀,
비단 경전에 있는 부처님에 말씀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모든 사건, 일상생활 속에서 제기되는
일체의 문제에 관해서도 바로 자기에 본참화두로
돌아올 줄 아는, 돌아올 때에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단축시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가 어데서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느끼거나 번갯불보다도 더 빨리 자기의 본참화두로써
모든 일을 대해나가고 일상생활을 영위해나간다고
하며는 우리의 도업이 늦을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면 보는 데 끄달리고,
귀로 들으면 듣는 데 끄달리고,
무엇을 느끼면 느낌으로 해서 자기의 생각들이
연속적으로 그 연상이 가지를, 가지에 가지를 뻗쳐서
생각이 이리저리 변해나감으로 해서 계속 쉴 사이가 없이 뻗어나갈 때에 우리는 우리 본참공부에 많은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고 마는데,
활구참선객은, 정말 발심한 수행인은
무엇을 보던지 무엇을 듣던지 무엇을 느끼던지 간에
두 번 생각, 세 가지 생각으로 뻗어나가기 이전에
바로 그 생각에서 한 걸음도, 한 생각도 옮기지 아니하고 나에 본참화두로 의심을 돌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허며는 우리의 공부는 즉일성지(即日成之)여. 하루하루 공부에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는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허시기를, ‘
신심이 철저해야하고, 신심이 철저하다면 분심이 동시에 거기에 갖춰지는 것이고,
분심이 갖추어지면 거기에 화두에 의심이 저절로
돈독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공부를 허며는 아무리 헐랴고 해도 망상이 일어난다,
또 ‘혼침이 온다,’ ‘화두가 잘 안 들린다,
여러 가지 그러험으로 해서 공부가 안된다고 호소를
해온 분이 종종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분심이 부족하고 분심이 부족한 원인은
신심이 철저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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