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심 춘심
사월 초순 둘째 화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전날 동선을 따라 생활 속 글을 남기고 평소 음용하는 약차를 달여 놓았다. 지난주 울산 친구가 충청도 어딘가 약초 농가에서 생산한 당귀를 부쳐 주어 건재에 함께 넣었더니 특유의 향이 풍겼다. 날이 밝아오는 아침은 직장인들의 출근보다 빠른 시각에 자연학교로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걸어 원이대로로 갔다.
대방동을 출발해 주남저수지를 비켜 본포를 거쳐 마금산 온천장으로 가는 30번 버스를 탔다. 충혼탑을 둘러 창원대로로 나간 버스는 명곡교차로로 돌아와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났다. 이른 아침 요양원이나 소규모 회사로 출근하는 부녀들이 내린 버스가 본포에 닿으니 혼자였다. 기사는 차를 돌려 북면으로 향하고 나는 강둑으로 올랐다.
날이 밝아온 시간이 제법 지나 구름 속에 엷은 햇살이 비쳤다. 올 새해 첫날 새벽 본포로 나와 다리를 걸어 건너면서 일출을 봤던 적이 있다. 강심을 흘러가는 물길 건너 동읍과 대산 들녘 옥정마을 뒤 야트막한 산자락으로 붉은 기운이 서리면서 아침 해가 떠올랐더랬다. 일출 이후는 학포 노리를 거쳐 임해진으로 가는 벼랑길을 따라 걸어 부곡으로 가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왔었다.
이번에는 학포로 건너가 반월 둑길을 걸어 수산으로 내려갈 참이다. 1킬로미터 넘는 긴 다리를 걸어 건너면서 강변을 바라봤다. 차를 타고 스쳐 지나는 사람들은 감히 볼 수 없는 멋진 풍광이 펼쳐졌다. 낙동강 중하류에서 멀고 가까운 산들이 강심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 같았다. 의관을 정제한 만조백관이 구중궁궐 임금 앞에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는 형국처럼 보였다.
강물이 유장히 흐르는 강가 갯버들은 연두색 잎이 돋아 유록색으로 번져 싱그럽기만 했다. 강 건너 학포에서 노리로 가는 지방도 가로수 벚나무들은 벚꽃이 만개해 일직선의 엷은 분홍색 띠를 둘러쳐 놓은 듯했다. 다리를 건너간 학포에서 샛강으로 흘러온 청도천에 놓인 반학교를 건너 반월로 갔다. 샛강에는 4대강 사업 때 유량에 따라 수위 조절이 가능한 낮은 보가 설치된 곳이다.
강둑이 원호를 그리면서 에워싼 반월 들판에는 마늘과 보리가 풋풋했다. 넓게 펼쳐진 습지를 조망하며 걷다가 둔치로 내려섰다. 지역에서 ‘초동 연가길’이라는 이름으로 꽃길을 조성해 외지인들이 찾아와 구경하는 한 명소였다. 4대강 사업 이후 국토부 선정 아름다운 꽃길 100선에도 들었던 둔치였다. 늦은 봄은 꽃양귀비와 금계국이 수를 놓고 가을엔 코스모스가 알록달록 피었다.
산책로 길섶 꽃양귀비는 잎줄기 세력이 약해 보여도 어느 때부터는 폭풍 성장으로 잎줄기를 불려 선홍색 꽃을 피웠다. 강가로 나가니 갈대와 물억새는 색이 바랜 채 드러누워 세대교체를 앞둔 때였다. 어디선가 둥지를 틀어 알을 놓아 모을 꿩 한 쌍이 내 앞에서 푸드덕 날이 올라 내가 더 놀랐다. 밀림을 연상하는 둔치 습지는 꿩과 고라니들이 서식하기 좋아 녀석들에게는 낙원이다.
강둑이 끝나 곳에서 성북마을로 가는 대곡 들판을 지났다. 상추를 수경재배하고 토마토와 가지를 가꾸는 대형 비닐하우스단지와 보리밭이 펼쳐졌다. 요즘은 찾는 이가 적어 경작 농가가 줄어 보기 드문 보리밭이다. 벼농사 뒷그루로 심은 보리는 싱그럽게 자라 이삭이 패고 있었다. 내가 어릴 적은 보리밥이 주식이고 봄날 하교 후 쇠꼴을 베러 나가 보릿짚을 잘라 호드기를 불었다.
성북마을에서 곡강을 지난 하남읍 수산에 닿아 제1 수산교를 걸어서 건넜다. 앞서 본포교에서처럼 강심에서 사방의 풍광을 조망하면서 다리를 건넜다. 자전거 길 가로수 벚꽃이 저무는 강둑에서 신성마을 국숫집으로 들어 점심을 들었다. 식후 풋고추와 당근을 경작하는 비닐하우스단지 들녘을 걸어 가술로 향했다. 죽동 천변 산수유나무는 꽃이 저물고 잎이 돋아 가지가 무성해졌다. 2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