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통계에 의하면 교인(church goers)들의 이혼율이 불신자들의 그것보다도 높다하여 미국 교계에 큰 충격을 준 적이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한 기독단체인 한미준(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앞으로 당신이 결혼해 살면서 상황에 따라 이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중 기독인의 36%, 그리고 비기독인의 41%가 "그렇다"고 대답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통계에서 보듯이 이혼이란 명제에 관해서는 기독인이나 비기독인이나 사고방식에 거의 차이가 없는 듯 합니다. 한편 2004년 숙명여대 김영란 교수팀의 서울지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이혼율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경제적 이유'(59%)와 '생활습관과 성격 차이'(33.9%)가 1, 2위를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제1위 37%가 물질적 여유를 꼽았다고 합니다. 물질 만능의 시대와 이혼율 급증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교인들마저 같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세상에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만족시켜 줄 배우자는 없습니다. 서로 부족함 가운데 이해하고 용납함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서로 돕는 배우자로서 부족하지만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된 한 몸을 이혼으로 나누게 되면 크나큰 상처와 고통만이 남게 됩니다. 더욱이 자녀가 있는 경우, 그들이 당해야 할 고통과 상처는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와 메디아는 이혼이 마치 당장 처한 불만과 갈등을 해결해 주는 최선책인양 유혹하며 호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서론에서 언급했듯 한국의 가정은 아주 심각한 붕괴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루이스(C.S. Lewis)는 그러한 이혼에로의 유혹이 제시하는 신기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그는 다른 여자를 만나면 그때야말로 자기가 추구하는 신비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들은 이번에야말로 진짜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매번 실망을 거듭하면서 이 여자에게서 저 여자에게로 옮겨 다니느라 전 생애를 탕진 합니다.”
1998년 IMF이후 한국에 이혼율이 급증하자 어느 분이 이혼한 사람들의 재혼을 주선해 주는 [행복출발]이라는마케팅 회사를 창설하여 큰 돈을 벌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이혼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는 아주 보람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그분이 책을 한 권 출판하게 되었는데, 그 책에 의하면 지금은 처음 회사의 성격과는 반대로 오히려 이혼 하려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말리는 일에 힘을 더 쏟는다고 합니다. 그동안 "재혼하면 희망이 있다"는 부푼 기대 속에 새롭게 출발했던 가정들이 또 다시 붕괴되고 마는 수많은 경우들을 보아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배우자를 바꾼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 바바라 월터라는 유명한 여류 언론인이 있습니다. 그 남편 데이비스 월터도 유명 인사인데 그 부부가 그만 이혼을 하고 맙니다. 이혼 후, 데이비스는 새로운 배우자를 얻기 위해 컴퓨터에 자기가 바라는 배우자 상 및 아내 될 사람의 자격요건 등의 자료를 입력 했습니다. 처음에 3 만 명의 후보가 올라왔습니다. 그 후 더 상세한 자료를 입력한 결과 오직 4명의 후보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 중, 첫 번째 순위가 바로 전 아내 바바라 월터였다는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성급한 감정의 격류에 의한 이혼 결정은 최대한 유보하십시오. 이혼에는 승자와 패자가 없습니다. 부부는 오직 함께 승리하든지 함께 패배할 따름입니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할 지니라 (마19:6)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5:32)
사단은 최초의 인류를 무너뜨릴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무한한 은혜를 만끽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오직 한 가지에 주목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더욱 크게 보이게 하며 그것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하도록 하였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배우자의 80%의 장점보다는 20%의 단점이 더 크게 보이고 불만스럽게 되도록 유혹합니다. 그것이 가정을 파괴시키는 지름길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1911년에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그 유명한 모나리자 상이 도둑맞아서 이 년 동안 전시되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 그 이 년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도둑맞은 모나리자 상이 걸려 있었던 바로 그 자리를 보고 싶어 방문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소중한 것이 없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에 대한 귀중함을 더욱 깨닫고 애정과 집착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번 물이 엎지러지면 그 물을 다시 주워 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챤 정신의학 박사 폴 트루니에는 이혼 수속을 밟고 있는 자기의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다 합니다. “이혼은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므로 나는 자네의 결정에 찬성할 수 없네. 자네에게 이것을 숨기려면, 내 믿음을 져버려야 할 것일세. 나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진심으로 찾고 따를 마음만 있다면, 결혼 생활의 갈등에는 언제나 이혼보다 나은 해법이 있다고 생각하네. 만일, 자네가 이혼한다면 분명 현재보다 더 어려운 일들이 많이 닥칠 걸세. 이것이 내가 자네에게 주어야 할 확신이네” 이혼과 재혼이 모든 것을 해결 해 주지 않습니다. 부족함을 서로 용납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수용해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4:32)
하지만 성경은 몇 가지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불신자와의 혼인인 경우, 불신자인 배우자가 이혼을 끝까지 주장하고 요구할 때는 그렇게 해 주어도 된다고 합니다 (고전 7:15). 불신 배우자의 일방적이고 지속적인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결정적인 타격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는 부부일 경우에는 끝까지 하나님 안에서의 회복 가능성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서로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보겠다는 가정 하에 일정 기간 동안의 별거는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폭력이 상습적으로 행해질 때, 우선은 별거한 상태로 카운슬링을 받는 등, 그 해결책을 모색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부간에 심한 갈등이 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원리는 서로 상대를 바꾸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대를 바꾸려고 힘을 쓰면 쓸수록 갈등의 깊이는 증가하게 됩니다. 이혼 사유 중에 '심하게 다른 성격차이'를 대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남자와 여자는 그 특성과 역할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것은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호 보완이 가능합니다.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약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습니다. 서로의 문제점만을 바라보지 말고 각자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의 부족함을 바라보십시오. 그 분의 말씀 안에서 먼저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고쳐 나아가도록 애쓰십시오. 그러는 가운데 서로를 향한 찌름과 갈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해결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싸움이 잦은 부부간에 파경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 꼭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성경 말씀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4:26)” 입니다. 분은 내는 만큼 마음에 쌓이게 됩니다. 그것이 축적되면 더 큰 미움으로 자랍니다. 오랫동안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우리 몸 안에서 독소가 분출되고 그 스트레스로 인하여 면역체계가 현저히 저하됩니다. 그로 인해 건강에 결정적인 타격을 받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귀하고 비싼 약이나 음식이라도 애써 찾아 먹지 않습니까? 우리 몸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건강을 너무도 생각하신 나머지 분을 오래 품지 말라고 권면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부부갈등의 문제에 실천하려는 사람은 왜 그리도 적을까요? 다른 타인과의 갈등과 미움은 매일 가까이서 보지 않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덜하겠지만,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하는 부부간에 증오심이 있다면 그 쌓이는 독소와 스트레스는 실로 엄청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4:26)”의 성경 말씀은 부부간에 특히 중요한 것입니다. 무슨 갈등이 생기더라도 그것이 오래가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십시오. 결혼 전에 “배우자에 대해 분이 나더라도 하루 이상 품지 않기”를 서로 서약하는 것도 결혼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공부를 하시는 분 중에는 이미 이혼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 이혼이 다시 회복 될 수 없는 것이라면, 더 이상 자책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이혼한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다른 죄들(술취함, 중상모략, 거짓말등)보다 더 특별히 정죄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당신의 모습보다는 지금과 미래에 당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순종에 더 관심이 있으십니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비젼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또한, 남편이나 아내를 사별했을 경우, 재혼할 자유가 있으나, 주안에서 믿는 자와 재혼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고전 7:39). 하지만, 그러한 경우라도,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를 위해서 주님의 사역에 헌신하며 재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도 복되다고 하였습니다 (고전 7:40).
첫댓글요즘 몇가지 이유로 늘 이문제가 제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는데 주님이 이렇게 또 ... 바야흐로 이혼 유행시대입니다. 이혼이 이젠 진보적인 처사?로까지 여결질 판 입니다. 사랑이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아니지요. 세상이 자기 중심적으로 돌아가다보니 더욱 심화되는 것 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첫댓글 요즘 몇가지 이유로 늘 이문제가 제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는데 주님이 이렇게 또 ...
바야흐로 이혼 유행시대입니다. 이혼이 이젠 진보적인 처사?로까지 여결질 판 입니다.
사랑이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아니지요. 세상이 자기 중심적으로 돌아가다보니 더욱 심화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