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낭환(笑彼蜋丸)
쇠똥구리는 쇠똥을 비웃지 않는다.
笑 : 웃음 소(竹/4)
彼 : 저 피(彳/5)
蜋 : 쇠똥구리 랑(虫/7)
丸 : 알 환(丶/2)
출전 : 청장관전서(靑莊舘全書) 권63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螗琅自愛滚丸, 不羡驪龍之如意珠. 驪龍亦不以如意珠, 自矜驕而笑彼蜋丸.
쇠똥구리는 스스로 쇠똥굴리기를 즐겨하여 여룡(驪龍)의 여의주(如意珠)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룡도 여의주를 가졌다는 것을 스스로 뽐내어 저 쇠똥구리가 쇠똥굴리는 것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또한 박지원((朴趾源)의 연암집(燕巖集) 연암집 제7권 별집 종북소선(鍾北小選) 낭환집서(蜋丸集序)에도 인용되고 있다.
蜣蜋自愛滾丸, 不羡驪龍之珠, 驪龍亦不以其珠, 笑彼蜋丸.
말똥구리(蜣蜋)는 자신의 말똥을 아끼고 여룡(驪龍)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여룡 또한 자신에게 구슬이 있다 하여 ‘말똥구리의 말똥(蜋丸)을 비웃지 않는다.
子珮聞而喜之曰; 是可以名吾詩. 遂名其集曰蜋丸, 屬余序之.
자패(子珮)가 이 말을 듣고는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로써 내 시집(詩集)의 이름을 붙일 만하다” 하고는, 드디어 그 시집의 이름을 ‘낭환집(蜋丸集)’이라 붙이고 나에게 서문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고전명구 공모전 당선작)
부러운 날의 위로
螗蜋自愛滾丸, 不羨驪龍之如意珠. 驪龍亦不以如意珠, 自矜驕而笑彼蜋丸.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을 아껴 여룡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도 여의주를 가졌다 하여 스스로 뽐내면서 저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舘全書) 권63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해설)
이 글은 박지원의 '낭환집서(蜋丸集序)'에 거의 같은 구절이 실려 유명하지만 이덕무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 먼저 보인다.
'낭환집서'에는 “말똥구리는 자신의 말똥을 아끼고 여룡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으며, 여룡도 여의주를 가졌다 하여 저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蜣蜋自愛滾丸, 不羡驪龍之珠. 驪龍亦不以其珠, 笑彼蜋丸)”로 되어 있다.
'선귤당농소'는 이덕무가 20대 중반에 쓴 수필집이다. '선귤당에서 크게 웃는다'는 제목처럼 일상 속의 크고 작은 생각들을 섬세하게 담았다.
이덕무는 왜 이 글을 썼을까? 그는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서얼이었고 가난했으며 몸이 약해 공부하기 어려웠지만 어릴 때부터 매일 책 읽을 양을 정해 1시간에 10번, 하루에 50번씩 읽었다.
담벼락에 해시계를 그리고 공부할 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놀다가도 들어와 반듯한 자세로 책을 읽었다. 평생 읽은 책이 약 2만 권, 베껴 쓴 책도 수백 권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신분의 한계, 물질과 건강의 어려움은 그의 평생 숙제였다. 30대 후반에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용될 때까지 직장이 없었고 서얼에 너그럽지 않은 시선은 다재다능한 그에게 큰 짐이었다.
청년 이덕무는 묵직한 삶의 무게를 책읽기와 글쓰기로 이겨낸 사람이다. 자신의 재능과 상황을 ‘말똥’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숱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여룡은 온 몸이 검은 용이다. 흑룡(黑龍)이라고도 한다.
여의주를 지닌 여룡처럼 환경이나 장점이 자신보다 돋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 삭였을 그가 정갈한 필체로 한 자 한 자 눌러 썼을 글에는 흔들리는 마음과 꿋꿋한 당당함이 묻어난다.
그의 스승이자 벗이었던 박지원도 그 마음을 읽고 '낭환집서'에 인용하지 않았을까. '낭환집서'는 역시 서얼이었던 유금(柳琴)의 문집 서문이다.
말똥구리는 말똥을, 여룡은 여의주를 소중하게 여긴다. 말똥구리와 여룡 둘 다 '내게 있는 것'에 자족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처럼 이름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과 사귀면서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부럽다 못해 남모르는 그늘이 있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때마다 읽고 쓰고 외우면서 꼼꼼하고 섬세한 장점을 지혜롭게 풀어냈을 옛사람의 발자취가 마음을 맑힌다.
▶️ 笑(웃을 소)는 ❶형성문자로 关(소)와 동자(同字), 咲(소)는 고자(古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夭(요; 요염하게 앉아 있는 여자의 모양, 소)와 대나무(竹)의 흔들리는 소리가 웃음 소리 같다는 뜻이 합(合)하여 '웃다'를 뜻한다. 옛날엔 자형(字形)의 기원(起源)을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듯이 몸을 꼬면서 웃는 모습이라 하고, ㉯竹(죽)과 犬(견)을 써서 개가 대바구니를 쓰고 거북해하는 모양이 우스운 데서 웃다로 되었다 하고, ㉰사람을 따르는 개가 낑낑거리는 소리와 사람의 웃음소리가 닮았기 때문이라 하였다. ❷회의문자로 笑자는 '웃음'이나 '웃다', '조소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笑자는 竹(대나무 죽)자와 夭(어릴 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夭자는 팔을 휘저으며 장난치는 아이를 그린 것이다. 笑자는 이렇게 장난치는 놀고 있는 아이의 머리 위에 竹자를 결합한 것으로 竹자는 눈웃음 짓는 모습으로 응용되었다. 그래서 笑(소)는 ①웃음 ②웃다 ③비웃다 ④조소(嘲笑)하다 ⑤꽃이 피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우스운 이야기를 소담(笑談), 웃으면서 하는 말을 소언(笑言), 상스럽지 않은 우스운 이야기를 소화(笑話), 웃는 얼굴을 소안(笑顔), 익살과 웃음거리를 주로 하여 관중을 웃기는 것을 목적하는 연극을 소극(笑劇), 소리를 내지 않고 빙긋이 웃는 것 또는 그 웃음을 미소(微笑), 크게 웃는 웃음을 대소(大笑), 웃으면서 이야기 함을 담소(談笑), 조롱하여 비웃는 웃음을 조소(嘲笑), 쌀쌀한 태도로 비웃음을 냉소(冷笑), 어처구니 없다는 웃음을 가소(可笑), 거짓 웃음을 가소(假笑), 여럿이 폭발하듯 갑자기 웃는 웃음을 폭소(爆笑), 기뻐서 웃는 웃음 또는 기쁜 웃음을 희소(熙笑), 알지 못하는 사이 웃음이 툭 터져 나옴 또는 참아야 할 자리에 툭 터져 나온 웃음을 실소(失笑), 어이가 없거나 하찮아서 웃는 웃음을 고소(苦笑), 콧소리를 내거나 코끝으로 가볍게 웃는 비난조의 웃음을 비소(鼻笑), 소리 없이 눈으로만 가만히 웃는 웃음을 목소(目笑),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딴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을 소면호(笑面虎), 웃음 속에 칼을 감춘다는 뜻으로 말은 좋게 하나 마음속으로는 해칠 뜻을 가진 것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을 소리장도(笑裏藏刀), 웃음 속에 칼이 들어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내심으로는 해치려 함을 이르는 말을 소중유도(笑中有刀), 근엄하여 좀처럼 웃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소비하청(笑比河淸),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소이부답(笑而不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른다는 말을 소제양난(笑啼兩難), 가난을 면하지 못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귀소소(爲鬼所笑), 천금을 주고 웃음을 산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함을 비유하는 말을 천금매소(千金買笑),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하다는 말을 여읍여소(如泣如笑), 말하고 웃는 것이 태연하다는 뜻으로 놀라거나 근심이 있어도 평소의 태도를 잃지 않고 침착함을 이르는 말을 언소자약(言笑自若) 등에 쓰인다.
▶️ 彼(저 피)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皮(피; 원줄기에서 갈라지는 뜻)로 이루어졌다. 갈라진 길의 뜻으로 원줄기에서 갈라져 가는 데서, 먼 곳의 물건 또는 사람을 가리킨다. ❷회의문자로 彼자는 '저'나 '저쪽'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彼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皮(가죽 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皮자는 동물의 생가죽을 벗겨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가죽'이나 '겉'이라는 뜻이 있다. 彼자는 본래 '길 바깥쪽으로 걷다'는 뜻을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래서 '겉'이라는 뜻을 가진 皮자에 彳자를 결합해 '길 바깥쪽'이라는 뜻을 표현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彼자는 '저'나 '저쪽', '그'와 같이 바깥쪽이라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래서 彼(피)는 ①저 ②그 ③저쪽 ④덮다 ⑤아니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나 아(我), 이 차(此)이다. 용례로는 저것과 이것을 이르는 말을 피차(彼此), 저쪽이나 저편을 이르는 말을 피변(彼邊), 그와 나 또는 저편과 우리편을 피아(彼我), 저 사람을 이르는 말을 피인(彼人), 저 땅을 이르는 말을 피지(彼地), 저곳을 문어적으로 이르는 말을 피처(彼處), 소송 행위에서 당사자가 서로 상대편을 이르는 말을 피척(彼隻), 강의 건너편 기슭을 피안(彼岸), 저편과 이편의 사이를 이르는 말을 피차간(彼此間), 그와 나와의 사이를 이르는 말을 피아간(彼我間), 상대방인 저쪽은 그르고 나는 올바르다는 말을 피곡아직(彼曲我直), 저것은 옳고 이것은 그르다는 말을 피시차비(彼是此非), 저것이나 이것이나 마찬가지를 이르는 말을 피차일반(彼此一般), 이것이나 저것이나 또는 이러나 저러나를 이르는 말을 이차이피(以此以彼), 저기의 것을 걷어내어 이곳에 얽어 만듦을 이르는 말을 철피구차(撤彼搆此), 오늘 내일 하며 자꾸 기한을 늦춤을 이르는 말을 차일피일(此日彼日),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어쨌든 이라는 말을 어차어피(於此於彼),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말을 지피지기(知彼知己), 자기의 단점을 말하지 않는 동시에 남의 잘못을 욕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망담피단(罔談彼短) 등에 쓰인다.
▶️ 蜋(사마귀 랑/낭, 쇠똥구리 량/양)은 형성문자로 螂(랑)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벌레 훼(虫; 뱀이 웅크린 모양, 벌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良(량)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蜋(랑/낭, 량/양)은 (1)'사마귀 랑/낭'의 경우는 ①사마귀(사마귓과의 곤충) ②버마재비(사마귀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등의 뜻이 있고, (2)'쇠똥구리 량/양'의 경우는 ⓐ쇠똥구리(쇠똥구릿과의 곤충) ⓑ풍뎅이(풍뎅잇과의 곤충)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쇠똥구리를 달리 일컫는 말을 강랑(蜣蜋), 행동이나 생각하는 것이 제멋대로임을 일컫는 말을 도랑(跳踉),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 힘이라는 뜻에서 아주 미약한 힘 또는 아주 미약한 병력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당랑력(螳蜋力), 쇠똥구리는 쇠똥을 비웃지 않는다를 이르는 말을 소피낭환(笑彼蜋丸) 등에 쓰인다.
▶️ 丸(둥글 환)은 ❶지사문자로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見解)도 있다. '기울어지다'의 뜻을 가진 仄(측)을 거꾸로 쓴 글자로서 '기울어져 구르다', '굴러가다', '둥근 것' 또는 활 시위에 쏠 화살을 얹어 놓은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상형문자로 丸자는 '둥글다'나 '둥글게 하다', '알'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丸자는 둥근 원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그런데 글자를 만든 방식이 매우 재미있다. 丸자의 소전을 보면 사람을 뜻하는 人(사람 인)자와 매우 비슷하게 그려져 있었다. 다만 人자보다는 획 하나가 더 길게 내려와 있는데, 이것은 앞구르기를 하기 위해 양팔을 바닥에 짚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앞구르기를 하기 위해서는 몸을 둥글게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丸자는 이렇게 사람이 뒹구는 모습으로 그려져 '둥글다'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丸(환)은 ①둥글다 ②둥글게 하다 ③취하다(取--) ④알, 새의 알 ⑤탄알(彈-) ⑥방울 ⑦전동(箭筒ㆍ箭筩: 화살을 담아 두는 통) ⑧높이 곧게 솟은 모양 ⑨무성(茂盛)한 모양 ⑩환약(丸藥)의 이름에 붙이는 말 ⑪환약(丸藥)을 세는 단위(單位) ⑫오로지, 한결같이 따위의 뜻이 있다. 유의어로는 團(둥글 단/경단 단, 수레 천)이다. 용례로는 남자의 성기 불알을 달리 일컫는 말을 고환(睾丸), 총이나 포에 재어서 터뜨리면 폭발하여 그 힘으로 처란이나 탄알이 튀어 나가게 된 물건을 탄환(彈丸), 대포의 탄알이나 포탄 또는 육상 경기에서 투포환에 쓰이는 쇠로 만든 공을 포환(砲丸), 작고 둥글게 만든 약을 약환(藥丸), 약가루를 풀에 반죽하여 환을 만듦 또는 그 환약을 호환(糊丸), 죽은 뒤의 약이라는 뜻으로 시기를 놓친 것을 의미하여 이르는 말을 사후청심환(死後淸心丸), 사방이 적국에 포위되어 공격의 대상이 되는 아주 좁은 땅을 이르는 말을 탄환지지(彈丸之地), 언덕 위에서 공을 굴린다는 뜻으로 어떤 세력에 힘입어 일을 꾀하면 쉽게 이루어지거나 또는 그 일이 잘 진전됨의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판상주환(阪上走丸) 등에 쓰인다.